남계 박세채『南溪 朴世采,1631년(인조 9)~1695년(숙종 21)』선생의 인물 개성을 살린 17세기 후반의 관복본(官服本)과 유복본(儒服本) 초상화이다. 박세채의 외손자인 신경申暻(1696~1766)의 문집에는 박세채의 관복본과 유복본 초상의 초본(草本)을 그린 화가가
평양출신의 화가 패천(浿川) 조세걸(曹世傑, 1635-1705)이라 하였는데 면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
©경기도박물관(2008)
<남계 박세채 영정>은 조선후기의 문신 박세채를 그린 초상 2점이며 관복본과 유복본이 있다. 박세채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이다. 증조부 박응복(朴應福)은 대사헌, 할아버지 박동량(朴東亮)은 형조판서를 지냈다.
김상헌(金尙憲)과 김집(金集)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관복본은 높은 사모에 단령을 입고 있으며 정면을 향한 당당한 유학자의 풍모를 드러내고 있다. 이 관복본은 후대에 다시 그린 이모본이며, 이를 그린 화가의 기량이 뛰어나지 못해 원본을 꼼꼼히 옮겨 그리지 못한 부분이 많다.
수염의 표현은 흰수염이 검은 수염을 감싼 매우 특이한 형태이다. 단령은 아청색 운문단이며 목깃이 넓다. 조선중기 초상화의 한 특징인 삼각형 무(武)가 사라졌으며, 옷을 표현하는 선이 부드럽고 가늘다. 의자에는 표범가죽을 깔았는데 17세기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형식이다.
박세채는 정1품 좌의정까지 지냈으므로 공작흉배에 서대(犀帶)를 착용해야 하는데, 운학흉배를 착용하고 있다. 발 받침대 아래에 표범가죽의 머리를 둔 것은 실학박물관 소장 김석주(金錫胄) 초상과 같은 양식이다. 17세기 후반 초상화의 양식을 공유한 것으로 간주된다.
▲南溪 朴世采 影幀©경기도박물관(2008)
©경기도박물관(2008)
유복본은 동파관(東坡冠)을 쓰고 두 손을 소매 안에 맞잡은 정면형의 입상이다. 과장하여 그린 듯 상당히 여유로운 편복 위로 검은색 끈을 매어 늘어뜨렸다. 큰 옷 속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얼굴은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여 생동감을 주었다. 옷 색깔은 갈회색이며, 초록색 신발은 직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좌우로 벌린 자세의 신발에는 녹색과 흰색의 점을 찍은 점묘법을 사용하였다. 얼굴과 옷의 일부에는 색감이 변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