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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54코스
여수종합버스터미널 앞-중앙여고 앞-여수세계박람회장-자산공원-하멜전시관-여수해양공원 종포마을
20220222
1.여수 찬가와 애가, 절정의 빛나는 여수 풍경 전망
남파랑길 53코스를 끝내고서 바로 54코스를 시작한다. 54코스는 거리가 짧아서 제한 시간을 짧게 주지만 제대로 보려고 하면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
여수종합버스터미널 앞에서 좌수영로를 따라가다가 오림삼거리에서 좌수영로와 헤어져 충민로를 따라간다. 벚나무 가로수들이 줄지어 선 충민로는 이순신 장군의 1호 사당인 충민사가 있기 때문에 충민로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충민로에는 충민사가 없고, 마래산 기슭에 있는 충민사를 가기 위해서는 충민로에서 벗어나 충민사길을 따라가야 한다.
충민로를 걸어가면서는 종고산과 장군산 사이에 있는 충무동과 광무동 일대 풍경이 멋지다. 그 지역을 가르며 흘러가는 하천이 연등천인데, 연등천은 종고산과 장군산 사이 분지를 흘러서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 앞에서 남해 바다에 몸을 푼다. 그 모습은 55코스를 걸으며 확인할 것이다.
마래산과 종고산의 안부 고개를 넘는다. 왼쪽 마래산 방향으로는 현암도서관과 충민사 가는 길이요, 오른쪽 종고산 자락에는 중앙여고 교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언덕을 내려가는 길에 교회들이 너무 많다. 이 지역에 개신교 신자들이 많다는 뜻일까? 덕충주공삼거리 오른쪽에 여수 '좋은우리교회' 흰색 건물이 특이하다. 거대한 물고기 형상을 한 이 건물은 작고한 차운기 건축가가 건축한 것이라 한다.
덕충안길을 따라 덕충주공파트를 지나면 건너편에 마천루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힐스테이트, 시티프라디움 등 하늘로 치솟은 밀집된 아파트 건물들은 아마도 여수 세계박람회가 개최되면서 건립된 것 같다. 마래산 자락 아래 예수사랑교회 앞 꽃가람공원길을 따라 덕대천변을 따라가면 여수 세계박람회장으로 이어지고, 해양 여수의 눈부신 발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엑스포광장을 거쳐 '여니교'를 건너 해상에 세워진 주제관 앞 해상보도교를 따라 세계박람회 개최를 통하여 건립된 여러 시설물과 조형물을 보면서 베네치아호텔 방향으로 향하면 '수니교', 수니교를 건너 베네치아호텔을 왼쪽으로 한 바퀴 빙 돌아나간다. 이 과정에서 끝없이 눈길을 끄는 것은 종고산과 마래산, 여수 세계박람회장은 종고산과 마래산 사이에 건립되었고, 여수신항이 건설 중이다.
여수팔경(麗水八景) 중에 제7경이 마수조욱(馬岫朝旭, 마래산 자락에 비치는 아침햇살)이라 한다. 마래산은 여수 동쪽에 위치한다. 동쪽의 경남 사천에서 마래산 자락에 비치는 아침 햇살이 마치 신기루처럼 피어나는 멋진 아침 풍경을 이르는 것이다. 조종응(趙鐘應, 1891~1951)님이 작사·작곡한 '여수항 경치' 1절은 "북쪽에는 종고산이 솟아있고요./ 남쪽에는 장군도가 놓여 있구나./ 거울 같은 바다 위에 고기 잡는 배./ 돛을 달고 왔다갔다 오동도 바다// 아~ 아름답구나 여수항 경치./ 아~ 아름답구나 여수항 경치" 종고산(鐘鼓山)은 한산대첩 후 은은한 북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이순신 장군이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는 산이다. 그 후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종고산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베네치아호텔 뒤쪽에서는 오동도와 남해 바다 그리고 남해군의 산줄기가 멋지게 조망된다. 오동도는 여수팔경(麗水八景) 중 제1경 죽도청풍(竹島淸風, 대섬(오동도)의 시원한 바람)에 속하며 여수를 빛내주는 섬이다. 한산도와 여수를 잇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지점이자 끝지점이 오동도이다. 오동도 방파제와 탁 트인 풍경은 여수팔경을 넘어서 남해팔경이라 이를 만하다. 봄바람에 푸른 물결 넘실거리는 오동도 바다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베네치아호텔 앞쪽으로 나가는데 한쪽 구석에 '신항과 함포사격'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내용을 읽어보면 여순사건 때 백두산 호랑이로 악명을 떨쳤던 김종원 대위가 이곳으로 상륙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뒤, 이후에 그 분풀이로 민간인 학살의 만행을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여순사건의 비극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는 이 지역주민들의 마음이 이해된다.
해방 뒤 우리나라 최초의 금지곡이 1949년에 나온 '여수야화' 노래라고 한다. 김초향/작사, 이봉룡/작곡, 남인수/노래 '여수야화'는 여순사건의 비극을 노래한 내용이다. "무너진 여수항에 우는 물새야/ 우리 집 선돌 아범 어데로 갔나요/ 창 없는 빈 집 속에 달빛이 새어 들면/ 철없는 새끼들은 웃고만 있네// 가슴을 파고드는 저녁 바람아/ 북정 간 딸 소식을 전해 주려무나/ 에미는 이 모양이 되었다만은/ 우리 딸 살림살인 흐벅지더냐// 왜놈이 물러갈 땐 조용하더니/ 오늘엔 식구끼리 싸움은 왜 하나요/ 의견이 안 맞으면 따지고 살지/ 우리 집 태운 사람 얼굴 좀 보자" 여순사건 이후 가족과 집을 잃은 한 여인의 넋두리가 가슴을 후빈다.
일출정과 해상케이블카승강장을 거쳐 자산공원에 이른다. 광장 동쪽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 양쪽에는 이은상의 '거북선 찬가'와 '충무공 찬가'가 붙어 있는데 국민학교 시절에 노래를 배워서 잘 알고 있다. 자산공원 여수항 해상교통관제센터 1층은 곤충박물관 해오름전시실이 있는데 임시휴관이고, 4층과 5층은 전망대이다. 54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일출정과 여수항 해상교통관제센터 전망대에서의 조망이다. 여수 지역의 중심되는 곳과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조망하며 가슴이 벅찼다. 54코스는 이 전망대에서의 조망 하나만 보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 지리적 위치를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자산공원에서 내려오면 여수밤바다 낭만포차거리, 그곳을 돌아나오면 풍차와 하멜 동상이 그 앞에 조성된 하멜전시관이 있다. 그리고 종화방파제 끝에 붉은 뱃 하멜등대가 눈길을 끈다. 하멜 조선 땅에서 13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하다가 이곳 종포항을 탈출하여 조국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그후 <하멜표류기>를 기록하여 조선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하멜전시관과 하멜등대를 거쳐 종포해변 거리를 걸어 여수해양공원 종포광장에서 54코스를 마친다. 여수항 개항 이후에 가장 먼저 형성된 어항이 종포항이라고 한다. 고기잡이를 마친 어부들이 항구로 돌아와 그물을 수선하면서 부르는 종포어가(鐘浦漁歌)는 여수팔경 중 제4경이다. 종포어가(鐘浦漁歌)의 노랫말은 전해지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항구가 매립되면서 종포항은 그 옛 모습을 잃었다. 여수의 유명 관광지가 된 종포광장을 걸어 도로로 나가는데, 종포어가(鐘浦漁歌)가 환청으로 들려온다. 덩달이처럼 종포 어부(漁夫)가 되어 어부가를 멋대로 부르며 광장을 걸었다.
2.걸은 과정
왼쪽 횡단보도를 건너 좌수영로를 따라 직진
오른쪽 길은 좌수영로, 왼쪽 길은 충민로. 남파랑길은 왼쪽 충민로를 따라 진행. 오른쪽은 장군산 줄기
연등천은 여수시 교동 연안여객선 터미널 앞에서 남해 바다에 합수한다.
남파랑길은 덕충주공삼거리까지 충민로를 따라간다.
오림동과 박람회장을 잇는 충민로는 총길이 2.86km의 기존 3차로 도로를 여수세계박람회를 위해 4차로로 확장하였다. 충민로는 아산 현충사보다 103년 전에 지은 충무공 사액사당 제1호인 충민사(忠愍祠, 사적제381호)와 연결되며 종고산 자락을 넘어 박람회장의 주진입로다.
종고산 왼쪽 자락에 흰색 건물은 중앙여고 교사(校舍)이다.
왼쪽에 자비사가 있다. 종고산 언덕에 여수시 덕충동 중앙여교 건물이 보인다.
장군산(왼쪽) 아래 광무동과 충무동 일대, 연등천이 마을을 가르며 남해 바다로 흘러간다. 오른쪽에 보이는 산은 호암산인 듯. 중앙에 여수종합버스터미널이 있다.
중앙 왼쪽에 연등천이 흐른다. 좌수영로를 경계로 충무동과 광무동이 나뉘는 듯. 이 시가지 끝에 연안여객선터미널이 있다.
왼쪽으로 충민사(忠愍祠) 올라가는 충민사길이다. 남파랑길은 충민로를 따라 직진한다. 충민사를 들르지 못하고 통과.
충민사(忠愍祠)는 마래산(385.2m)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선조 34년(1601) 체찰사 이항복(1556~1618)이 왕명을 받아 임진왜란이 끝난 뒤의 민심을 살펴본 후 통제사 이시언(?~1624)에게 명하여 건립한 것이다. 충민사를 세우자 우부승지 김상용이 임금께 이 사우(祠宇)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간청하여 선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그것을 새긴 현판을 받음으로써 이충무공과 관련된 최초의 사당이 되었는데, 함께 충무공을 기리는 통영의 충열사보다는 62년, 숙종 30년(1704)에 세워진 아산의 현충사보다는 103년 전의 일이다. - 대한민국 구석구석
왼쪽 마래산 능선과 오른쪽 종고산 능선 자락이 만나는 고개를 넘어 덕충동으로 들어선다.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덕충안길로 진행
하얀색의 건축물은 여수 '좋은우리교회' 건물인데 건축가 차운기의 작품이라고 한다. 특이한 형상의 건물이다.
덕충안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예수사랑교회 앞 꽃가람공원길로 진행
마래산 능선과 덕대천, 여수사랑교회 앞으로 걸어왔다.
꽃가람공원을 통과해 여수세계박람회장으로 진행
붉은 그리움/ 툭, 툭 피멍지네
엑스포브릿지를 건너 여수세계박람회장으로 진행
정면에 주제관이 오른쪽 뒤에 베네치아호텔이 보인다.
수니교를 건너 베네치아호텔 뒤 왼쪽 해안길로 꺾어 진행
백두산 호랑이로 악명을 떨쳤던 김종원 대위가 부산의 5연대 1대대를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기 위해 1948년 10월 22일, 23일, 26일 박격포로 포격했으나 여수 시가지에 대화재를 일으켰을 뿐 상륙에 실패했다고 한다. 김종원 대위와 부대는 여수 진압이 완료된 뒤에야 이곳으로 무혈상륙했다고 한다. 김종원은 그 분풀이로 종산국민학교(현재 중앙초등학교)에서 일본도를 휘두르면서 민간인 학살의 만행을 저질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여순사건의 비극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종고산(왼쪽)과 마래산 사이에 여수세계박람회장이 위치, 베네치아호텔이 반짝이고 있다. 여수신항 여객선터미널이 오른쪽 끝에 위치한다.
길을 건너 유람선매표소 옆 골목으로 들어가 뎈 계단을 올라 일출정으로 진행
마래산과 여수세계박람회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뒤쪽은 남해군 해안과 산봉들
남해군 설흘산과 그 앞 작은 섬 소치도가 흐릿하다.
오동도 뒤로 남해군의 산봉들이 가늠된다. 맨 왼쪽은 망운산, 맨 오른쪽은 응봉산과 설흘산
오동도는 한산도와 여수로 이어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점이자 종점이다. 한려해상풍경이 시원하다. 멀리 맨 끝에 하동의 금오산, 그 오른쪽으로 남해군의 최고봉 망운산이 조망된다.
해상케이블카승강장 앞을 거쳐 자산공원으로 오른다. 자산공원에 위치한 여수항 해상교통관제센터가 보인다.
충무공 찬가(왼쪽) - 이은상/시, 손재형/글씨
충무공 오! 충무공/ 영원히 꺼지지 않는/ 민족의 태양이여// 지금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 거북선 거느리고/ 호령하는 그의 위풍/ 일생을 정의에 살던 그이시다/ 내 동포 살리려고/ 피를 뿌리신 그이시다// 그날 땅과 하늘을 울리시던/ 그의 맹서/ 저 산 저 바다에/ 그대로 서려 있다./ 외치는 저 목소리를 따라가자/ 살 길은 오직 하나/ 저가 우리를 이끄신다.// 충무공! 오! 충무공/ 영원히 꺼지지 않는/ 민족의 태양이여
거북선 찬가(오른쪽) - 이은상/시, 손재형/글씨
이 땅 겨레의 혈관 속/ 줄기찬 전통이 힘을 뭉쳐/ 구만리 하늘이라도 솟구쳐 오를/ 물기둥 같은 정성을 뭉쳐/ 피와 땀과 슬기와/ 금강석보다도 더 굳은 얼을 뭉쳐/ 한바다 창과 위에 던지니/ 신기롭다 그 이름 거북선// 그것은 힘이었다. 정성이었다./ 그리고 깰 수 없는 얼 덩이었다./ 파도 높이보다 더 높은 자세로/ 휩쓸고 달리던 바다의 성벽이었다.// 승리의 역사를 짓고/ 바다 위에선 조용히/ 그 모습 거두고 말았어도/ 겨레의 가슴마다에 새겨진/ 오! 우리들의 힘이여 정성이여/ 그리고 셀 수 없는 얼 덩이여
곤충박물관 해오름전시실이 1층에 있는데 현재 임시 휴관 중이다. 4층과 5층은 전망대, 4층으로 올라간다.
일출정에서의 조망보다 더 폭넓게 조망된다. 남해군 설흘산과 소치도가 가늠된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오동도와 남해 바다
하동의 명산 금오산이 맨 뒤에 흐릿하고 남해군의 최고봉 망운산이 중앙에 우뚝하다. 여수신항과 오동도가 아늑하다. 한산도에서 여수까지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 오동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출발지이며 종착지이다.
마래산과 여수 신항 그리고 하동의 금오산(중앙 맨 뒤)과 남해군의 망운산(오른쪽), 한려해상국립공원.
종고산(왼쪽)과 마래산(오른쪽),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최로 눈부시게 발전한 신시가지
중앙 왼쪽에 우뚝한 구봉산, 그 오른쪽에 장군산, 그 오른쪽 앞에 종고산, 여수만 종포항이 해안 중앙에 보인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 아득히 펼쳐진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돌산도에서 홍도로 이어지는데, 돌산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다. 돌산도가 왼쪽 앞에, 오른쪽에는 구봉산이 우뚝하다.
곤충박물관 해오름전시실이 1층에 있고, 4층과 5층은 전망대이다.
이순신동상 건립을 위한 박정희 前 대통령 성금기념비. 그 옆 비석에는 성금 기부자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1968년 건립.
3개의 탑은 임진왜란, 여순사건, 6.25전쟁을 의미한다고 한다.
전라좌수영의 성터길
전라좌수영은 1479년(성종10) 설치되었으며, 전라좌수영성은 1485년에 시작하여 1491년에 완성하였다. 성의 둘레는 1.47km이며 높이는 대강 4m 정도였다. 전라좌수영은 임진왜란 때에는 삼도수군통제영이었으며, 봄이면 매화가 아름다워 매영성(매영, 매성)이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갖고 있다. 서문터, 서문독다리, 서문해자, 우물, 외남문터, 남문터, 복파당터, 성벽, 덕지터, 동문터, 동헌터 등의 유적을 체험하는 길이다.
전라좌수영의 승전길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에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철저히 대비하였다. 거북선과 판옥선을 만들고 해자를 보수하고 쇠사슬을 바다에 설치했으며 병사들의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승전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선조들이 흘린 피와 땀이 스며있는 유적을 살펴보며 우리들의 의기(義氣)를 키워보는 길이다. 수장터, 선소터, 고소대터, 오포대, 철쇄(쇠사슬) 시설터 등을 체험하는 길이다.
구봉산과 장군산(오른쪽)이 여수를 지켜주는 산처럼 느껴진다. 왼쪽 뒤로 돌산대교가, 그 앞에 장군도가 보인다.
맨 뒤쪽에 돌산대교가 보인다.
뒤쪽에 구봉산이 늠름하다. 구봉산 앞에는 여수만의 국동항이 있다.
1653년 1월에 네델란드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텍셀에서 출발하여 7월 바타비아(자카르타)를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 8월 16일 제주도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제주에 표착하였다. 살아남은 사람은 64명 중에서 36명이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헨드릭 하멜이었다. 1654년 5월 왕(효종) 명으로 일행은 서울르 압송되었다가 1656년 강진 전라병영으로 압송되어 7년 세월을 보냈다.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하자 1663년 2월 살아남은 22명을 여수에 12명, 순천에 5명, 남원에 5명씩 분산 수용하게 되었다.
여수에 오게 된 12명 중에 하멜이 있었고, 여수 전라좌수영성 문지기 생활을 하였다. 1664년 초에 부임한 이도빈 수사는 인자하여 하멜 일행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으며 양모장사를 하여 탈출할 배도 살 수 있는 돈을 벌게 되었다. 1666년 부임한 수사 정영은 인자하지 못하여 힘든 생활을 하다가 탈출을 시도하게 되었다.
1666년 9월 4일 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주민들과 함께 지내다가 전라좌수영성 담을 넘어 약속해 두었던 부둣가로 갔다. 식수를 준비하여 썰물이 시작될 때 군선 옆을 지나 남쪽 끝을 향하여 달렸다. 저녁 무렵 부산 끝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한국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곳이 하멜 일행이 자유를 찾아 항해를 시작한 출발지이다.
맨 뒤에 구봉산, 오른쪽에 종고산이 보인다.
종포는 조선시대에 현재의 종화동에 있던 포구를 이르는 지명이며, 종고산(鐘鼓山) 아래 마을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포구라 하여 '종개' 또는 '종포'라 하였다. 조선시대의 종포는 읍내에서 떨어진 동쪽의 해안마을로 전라좌수영의 본영과 인접하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1591년(선조24)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왜군의 침입에 대비해 돌산과 소포(현 거북선대교 아래) 바다 밑에 철쇄형(쇠사슬)을 설치하였다. 이 내용은 <난중일기>에도 기록이 되어 있다.
고소개 아래에서 오동도가 있는 자산공원과 동쪽 해변까지를 종포라 하였으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윗종포와 아랫종포로 불렀다. 일제강점기에는 여수 최초의 어업전진기지로 수산업과 유통이 활발하였고 어업과 관계된 기관이 종포에 위치하여 수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946년 일제강점기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변경하면서 종포동과 종화동으로 바뀌었으며 1998년부터 행정동인 동문동(東門洞) 관할에 있다. 현재는 해양친수공원과 아름다운 경관 조망이 어우러져 관광객과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여수 밤바다의 대표적인 해안산책로가 되었으며, 종포에서 오동도를 배경으로 바라보는 해돋이도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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