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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54회
백복령-1022봉-원방재-큰상월봉-
작은상월봉-이기령-부수배리-가목1교
20240317
1.흰이빨 드러낸 근골의 첩첩산봉
봉은사 홍매화와 백매화가 피어나고, 대모산에 노란 생강나무꽃이 피어나더니 곧바로 산수유도 노란 꽃을 활짝 펼쳤다. 귀룽나무 초록 잎싹은 푸릇푸릇 싱싱하다. 봄날의 봄빛은 노란 빛과 푸른 빛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서울의 봄은 화사하게 반짝인다.
봄날이 화사하게 반짝이는 3월 17일 백두대간 산행을 위해 북쪽의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과 강릉시 옥계면을 이어주는 백복령으로 떠났다. 날은 흐리다가 맑아졌으며 기온도 따스하다. 그런데 해발 780m 백복령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다. 이번 겨울 백두대간 산행에서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내리는 눈과 내려 쌓인 눈과의 만남, 행복하지만 고통스러운, 눈을 헤치는 산행이 계속된다. 크리스털 상고대가 반짝이는 금대봉과 매봉산의 눈길, 함백산의 운무와 눈보라, 소백산의 찬란한 눈꽃&상고대, 구룡령과 약수산의 폭설, 환선봉과 황장산의 대설, 대관령&능경봉과 골폭산의 쌓인 눈, 이번 겨울 산행은 눈, 눈, 눈이었다. 2주 전 백복령에서 백두대간 산행을 진행하려다가 쌓인 눈이 너무 깊어서 이 구간 산행을 미루고 강릉 괘방산 산행으로 돌렸다. 2주 전 시도하려다가 연기한 백복령에서 이기령까지의 백두대간 남진 산행을 드디어 백복령에서 출발한다.
백두대간 능선의 눈은 아직도 깊었다. 선두에서 눈을 헤치며 눈길을 내서 후미 대원들은 손쉽게 눈구덩이를 밟으며 진행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날이 따뜻해져 바삭바삭한 눈들이 풀어져 몽실몽실 부드러워진다. 눈밭의 몽실몽실 부드러워진 눈이 눈길을 아주 미끄럽게 만든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어렵지만 내리막길은 미끄러운 눈길 때문에 더 힘겹다. 4번째로 이 구간을 산행하기에 주요한 산봉과 위치를 포함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세부적인 행로와 위치는 불명확하다. 그런데 무릎 깊이로 쌓인 눈, 선두 대원들이 개척한 눈 구덩이의 눈길을 따라 미끄러운 눈길 걷기에 정신이 팔려 세부적인 행로와 위치는 더 가물거렸다.
이 구간에서 주요 관심사는 백두대간 자병산이 석회암 채광 때문에 100m 정도가 잘려 나갔으며, 그래서 백두대간 산줄기 산행은 자병산과 멀리 떨어져 산행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자병산 살리기를 통하여 다양한 식물들을 자병산에 옮겨 심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제가 끊은 백두대간 이화령을 복원하였다고 하여 이명박 정부에서 우렁찬 소리를 울린 것은 이 자병산을 끊은 것과 연관하여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곳곳의 미끄러운 눈길 헤치기의 어려움은 접어두고, 이 구간에서 가장 힘겨웠던 곳은 달팽이산 갈림목인 헬기장이 있는 1022봉 오르기, 원방재에서 상월산 큰상월봉(서봉) 오르기, 상월산 큰상월봉(서봉)에서 내려갔다가 작은상월봉(동봉) 오르기 등이었다. 그 큰 고통을 씻어내고 감격의 환희에 잠기게 하는 곳은 862봉 능선과 상월산 능선이 마주한 곳에서의 조망이 압권이다. 862봉 능선의 전망바위에서 맞은편 상월산 능선을 조망하고, 남서쪽의 괘병산과 남쪽으로 연칠성령과 청옥산, 두타산으로 이어지는 고적대 능선의 조망은 가슴을 떨리게 한다. 저 능선을 걸어가는 지난 시절의 모습이 환하게 보인다.
이번 산행에서의 조망 최고의 압권은 상월산 암릉 지대에서의 조망일 것이다. 바로 앞 맞은편에는 862봉 능선이 소의 잔등처럼 편안하게 이어지고 그 오른쪽 뒤에는 달팽이산과 1022봉이 작은 낙타봉처럼 앙증스럽게 이어져 있다. 멀리 북쪽 백복령 너머로 강릉 시가지와 동해 바다를 조망하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풍경은 흐릿하여 가늠하는 것으로 그친다. 그럼에도 가슴은 부풀어 오른다. 강릉, 양양, 속초, 고성을 지나 통일전망대가 눈에 어른거린다. 엊그제 다녀온 고성 통일전망대와 화진포, 거진항의 동해 바다가 넘실넘실 춤을 춘다.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북쪽을 향하면 고향의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칠 것이다.
"3월 달이라면/ 해도 30리쯤 길어져서/ 게으른 여우가/ 허전한 시장기 느낄 때다// 오, 함경도의 산/ 첩첩준봉에/ 흰 이빨 드러낸 눈더미/ 아직 찬바람에/ 코끝이 시린데/ 끝없이 흐르는 두만강의 숨소리/ 너무 가깝다// 느릅나무 검은 가지 사이로/ 멀리 바라보이는 개울가/ 버들꽃 늘어진 눈물겨움,// 마른 풀 사르는 냄새 나는/ 신작로 길을 홀로 걷고 있는 저분은/ 누구의 어머님인가// 외롭고 어여쁜 걸음걸이/ 어머님이시여 어머님이시여/ 햇빛이 희고 정다우니// 진달래도 피지 않은 고향산천에/ 바람에 날리는 봄이 왔나 봐요/ 봄이 왔어요." - 김규동(1925~2011)의 '3월의 꿈' 전문. 함경도의 첩첩준봉이 흰 이빨 드러낸 눈더미, 두만강의 숨소리, 버들꽃 늘어진 신작로를 걷는 어머님, 그 고향 산천에 봄이 왔다고, 그 봄을 맞이하고 싶다고 시인은 아프게 노래한다. 시인의 마음이 상월산 암릉 지대에서 북쪽을 조망하는 길손의 가슴을 울린다.
상월산 암릉 지대에서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가 남북분단의 아픔이 가슴을 찌른다. 상월산 큰상월봉(서봉)에 올라 쉼터의자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걸어온 산길을 다시 뒤돌아 본다. 겨울의 백두대간 능선이 모든 장식을 벗어 버린 근골로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꾸밈없음의 아름다움이 저런 모습일 것이다. 꾸밈없이 소통하고 꾸밈없이 버려야 한다. 저 능선이 금강산으로 그리하여 백두산으로 이어지는데 남쪽 사람들은 그곳에 가지 못하고 지금은 향로봉에서 그치고 있다. 북쪽 백두대간 산줄기를 산행할 그날이 생전에 찾아올 수 있을까? 그 비원은 남북 정치인이나 시민들 모두 꾸밈이 없는 겨울산의 근골을 닮을 때 이루어질 것 같다.
상월산은 움푹하게 파인 안부 양쪽에 큰상월봉과 작은상월봉(동봉)이 솟아 있다. 두 산봉은 가파른 비탈길로 이어져 있어 두 산봉을 오르내리기가 몹시 힘겨운데 눈길 때문에 더욱 힘겹다. 헬기장인 작은상월봉에 상월산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큰상월봉에 상월산 정상표석을 설치하는 대신 왜 이곳에 상월산 표지판을 설치하였을까? 추측컨대 상월산 큰상월봉은 위태로운 암릉 정상이므로 여러 산객들이 기념 사진과 정상에서의 활동들이 있다면 사고의 위험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넓은 헬기장이 있는 작은상월봉에 상월산 표지판을 설치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상월산 작은상월봉에서 이기령까지는 1km, 등산로는 대부분 내리막길이다. 순식간에 이기령에 도착한다. 이기령은 동해시 이기동과 정선군 임계면 부수베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이 고갯길을 통하여 영동과 영서의 문물이 교로되었던 중요한 길목이라고 한다. 이기령의 본래 이름은 힘들다는 의미의 강원도 토박이말 더바지령이라고 한다.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백복령에서 동해시 이기동 이기령까지의 백두대간 10km의 산행을 마쳤다. 이제부터는 더바지령에서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부수베리까지 6km의 거리를 내려가야 한다. 부수베리 옛길은 아직도 눈길이다. 임계천은 부수베리골의 눈이 녹은 물이 흘러들어와 철철 넘쳐 쏜살같이 흐른다. 부수베리 옛길을 따라 부수베리골 눈덮인 들녘을 지나 임계천을 건너 임도로 들어왔다. 이곳에서부터 도로명은 '부수배리길'이다. 더바지령(이기령)에서 이곳까지 3.6km의 부수베리 옛길을 따라왔다. 지금부터는 부수배리길을 따라 가목리 부수배리마을 가목1교까지 임계천과 동행한다. 임계천의 물은 바위에 부딪쳐 물보라를 일으키며 흘러간다. 어라, 임계천 냇가에 갯버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갯버들은 무수한 꽃송이들을 달고 보송보송하다. 버들강아지 꽃들이 피어난 것을 보니 분명 봄이 왔음을 알겠다. 김소월의 詩 '금잔디'가 부수베리 골짜기에 푸른 봄빛을 펼치는 것 같다.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 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김소월(1902~1934)의 '금잔디' 전문
2.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6.4km
전체 소요 시간 : 6시간 56분
해발 780m 백복령은 정선군 임계면과 강릉시 옥계면을 잇는 고개로 국도 제42호선이 통과한다. 국도 제42호선 정선-동해 구간은 영서와 영동을 잇는 도로라는 뜻의 '서동로'라고 불린다.
백복령에는 표석과 이정목,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원방재를 원방제라고 잘못 표기하였다.
백복령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시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이 고개는 사료마다 한자가 달리 쓰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척주지』에는 백복령(白卜嶺), 『여지도시』에는 백복령(百福嶺), 『해동지도』에는 백복령(百腹嶺), 『1872년 지방지도』에는 백복령(白伏嶺), 『대동여지도』에는 백복령(白福嶺)으로 되어 있다. 현재 사용하는 백복령(白茯嶺)은 복령(茯苓)이라는 약초가 있는데, 이 중에서도 흰 복령이 많이 자생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961.4.22. 건설교통부고시』에 백복령으로 고시하였다. 1937년 42번 국도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로로서 옛 조상들의 애환과 숨결이 붙어있는 길이다. 원래 백두대간은 백복령을 거쳐 자병산으로 향해야 하나 현재는 석회석광산 개발로 자병산이 훼손되면서 백두대간이 단절되었다.
정면에는 위치 표지, 왼쪽에 백복령 지명 유래가 적혀 있다.
「택리지」에서 백봉령으로, 「여지도서」 편에는 백복령, 일명 희복재라 하였으며, 「증보문헌비고』에는 백복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 사용하는 백복령은 복령이라는 약초가 있는데, 이 중에서도 흰 복령이 많이 자생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961.4.22 건설교통부고시」에 백복령으로 고시하였다. 1937년 42번 국도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로로서 옛 조상들의 애환과 숨결이 묻어 있는 길이다.
백복령에서 정선군 임계면 방향을 바라본다. 아리랑의 고장 정선 표석과 쉼터정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백복령 남쪽 나들목에서 원방재 방향으로 백두대간을 남진한다.
이정목 날개에 원방재 7.4km라고 적혀 있다. 이 날개에는 잘못 표기된 원방제를 원방재라고 올바르게 표기하였다.
백복령 남쪽 나들목에서 리기다 소나무 조림지의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오며 북동쪽 방향을 조망하면 파헤쳐진 자병산(紫屛山)이 보인다.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사이에 있는 자병산은 석병산에서 내려온 산으로 산이 온통 돌에 둘러싸여 있다. 산의 이름은 돌의 색깔이 불그레하여 주위가 늘 붉게 보이는 데서 생겨났다. 자병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산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반대편의 서쪽 사면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경사를 보이고 있다. 자병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약 5㎞ 지점에 옥계면 산계리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를 연결하는 생계령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북쪽으로 향해 오르면 석병산에 이르고 더 나아가 두리봉을 지나 강릉과 정선의 교통로의 주요 고개인 삽당령에 다다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가파른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면 소나무에 리본들이 달려 있고 차단 난간이 설치된 쉼터에서 대간은 오른쪽으로 굽어진다.
백복령에서 올라온 첫 산봉의 쉼터에서 내려오다 북동쪽으로 자병산을 다시 바라본다. 자병산은 본래 높이에서 100m가 깎여 나갔다고 한다. 아래는 국도 제42호선 정선-동해를 잇는 '서동로'가 통과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능선 동쪽으로 유역면적을 이루는 하천이 주수천이 된다. 주수천(珠樹川)은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의 생계령과 절골, 황지미골에서 발원한 물이 학림(鶴林)에서 만나 동쪽으로 흘러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천이다. 하류의 천남리 일대에서는 북류하는 남양천을 합류하고, 본동의 가평들 일대에서는 동류하는 낙풍천을 합류한다. 백두대간에서 강릉시 남서단에 위치하는 능선부는 북쪽에서 두리봉[1,033m]·석병산[1,055m]·생계령·자병산[972.5m]으로 이어지는 분수계를 이루고 있다. 이 분수계의 동쪽으로 흐르는 계류들이 모여 주수천을 이룬다. 이 지역은 전체적으로 석회암이 기반암으로 깔려 있어서 여러 개의 동굴과 석회암 지형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보이는 돌리네 등이 나타나 있어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을 이루는 곳이다. 자병산(紫屛山)에 오르는 길은 정선군 임계면과 동해시를 연결하는 42번국도를 따라 양 지역의 경계가 되는 백봉령에서 북쪽으로 가깝게 이를 수 있다. 자병산의 산체를 이루는 석회암은 고생대 전기에 바다 속에서 오랫동안 퇴적되어 만들어진 해성퇴적암으로서 풍화에 비교적 강한 암석이다. 이 석회암은 시멘트, 석회비료, 카바이트 등의 원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생태계의 보고인 백두대간에 석회암 채취가 종종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산의 붉은색은 석회암으로 구성된 산체가 원래 산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석회암이 만들어질 때 착색된 석회암의 색깔 때문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백두대간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아 남쪽으로 굽이진다.
나즈막한 산봉을 넘어 내려오면 산객들의 정성이 담긴 돌무지 2개가 있다.
돌무지 2기가 세워져 있는 곳을 내려오면, '백복령 1.3km, 원방재 5.79km' 이정목이 보인다. 선두 대원들이 쌓인 눈을 헤쳐 이정목 아래쪽으로 눈길을 냈다.
원방재 1.3km 지점을 통과하여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른다.
왼쪽의, 백복령에서 올라온 첫 산봉에서 오른쪽 산봉을 거쳐 왔다.
왼쪽 산봉을 내려와 돌무지 2기가 세워져 있는 곳과 백복령 1.3km 이정목 아래를 통과하여 비탈길을 오르고 있다.
참나무숲이 이어지는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가면 832m 산봉, 가파른 비탈길이 남쪽으로 이어진다.
832m 산봉을 넘어 계속되는 참나무숲 비탈길을 내려간다. 앞쪽의 987m 산봉을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간다.
백복령 2.4km, 원방재 5km 지점을 통과한다. 앞쪽의 산봉은 859m 산봉일 것이다.
백복령 2.4km, 원방재 5km 지점의 이정목에서 832m 산봉을 뒤돌아본다.
특별한 표시가 없는 산봉을 왼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백복령 2.4km, 원방재 4.69km라고 적힌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방금 전 나무 이정목에 백복령 2.4km, 원방재 5km라고 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백복령 2.4km라면 어느 표시가 맞을까? 나무 이정목이 올바른 거리 표시라고 한다면 이곳에는 백복령 2.71km, 백복령 4.69km라고 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정목 위쪽에 어느 산객이 해발 861.2m를 적어 놓았다. 고도계가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아 이 고도 표시를 신뢰할 수 없다.
리기다 소나무 종류인 듯. 이 종류의 소나무숲이 이어지는 능선을 걸어올랐다가 다시 내려간다.
859m 산봉이 맞을까? 소나무숲 산봉을 내려가면 서학골 삼거리에 이른다.
859m 산봉을 내려가면 동해시 신흥동 서학골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이른다.
서학골 주차장 4.15km, 원방재 4.17km 이정목이 서학골 삼거리에 세워져 있다. '서학골 주차장 - 서학골 삼거리 - 원방재 - 서학골 주차장' 13.4km 코스는 동해시에서 조성한 백두대간 생태문화탐방로 1탐방로이다.
해발 987m 산봉을 왼쪽으로 돌아 내려간다. 눈이 덮여서 삼각점 등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987m 산봉 능선에서 남서쪽의 1022m 산봉을 올려본다. 그 오른쪽에 해발 1027m 달팽이산이 있다.
동해시 신흥동 서학골이 내려다보이고 그 뒤의 저수지는 달방저수지인 듯. 동해 바다의 묵호항과 동해항이 아득히 가늠된다.
달팽이산 삼거리라고 하는 1022m 산봉은 헬기장이다. 오른쪽으로 내려가서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내려가서 1022m 산봉으로 올라간다.
1022m 산봉 오름길에서 방금 걸어온 987m 산봉 능선을 뒤돌아본다.
1022m 산봉을 오르다가 멈추어서 987m 산봉 능선을 다시 되돌아본다.
가파른 비탈의 눈길을 힘겹게 헤치고 헬기장인 1022m 산봉에 오른다.
이정목 날개의 백복령 3.5km, 원방재 4km 거리 표시는 잘못되었다. 백복령 5.2km, 원방재 2.2km로 바로잡아야 한다. 닉네임 '아랑구렝'님이 백두대간 1022봉이라는 표지판을 이정목 기둥에 붙여 놓았다.
백두대간 종주대원들이 1022m 산봉 헬기장에서 점심을 나누고 있다.
20분 동안 점심을 먹고 1022m 산봉을 내려서며 뒤돌아보았다.
1022m 산봉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미끄러지며 내려간다.
1022봉을 내려가며 참나무 줄기 사이로 앞쪽의 862봉 능선과 중앙 뒤의 두타산, 그 오른쪽 청옥산, 연칠성령 능선을 바라본다.
백복령 5.2km, 원방재 2.2km 지점을 통과한다. 정확한 거리는 백복령 5.4km, 원방재 2km 지점이다.
862m 산봉 능선의 전망바위에서 남쪽의 상월산을 조망한다. 움푹 파인 안부에 의해 상월산은 두 산봉으로 나뉘어 있다. 중앙의 산봉을 큰상월봉, 그 왼쪽의 산봉을 작은상월봉이라 이르고 싶다.
이 위태로운 바위에 올라서 상월산 능선과 백두대간 고적대 능선을 조망한다.
오른쪽에 뾰족 솟은 괘병산(수병산), 왼쪽 뒤에 고적대와 연칠성령이 가늠된다.
중앙에 큰상월봉, 움푹 파인 왼쪽에 헬기장인 작은상월봉이 상월산 능선을 이루고 있다. 오른쪽 맨 뒤에 연칠성령이 가늠된다.
862m 산봉 능선은 소나무숲이 계속 이어진다.
백복령 6.4km, 원방재 1km 지점을 통과한다. 서쪽 방향으로 내려가면 원방재이다.
해발 730m 원방재는 동해시 신흥동 명주목골과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부수베리를 이어주는 고갯길이다.
원방재에서 동해시 명주목골 방향을 내려본다. 원방재는 동해시 신흥동 명주목골로 내려가기에 명주목이라고도 이르는 듯.
명주목이는 동해소금길의 주 코스로 주막터에서 선녀소 개울을 건너 명주(明珠)로 가는 길목, 즉 여의주인 수병산(괘병산)으로 가기 위한 길목이었다. 예부터 천리지행(天理地行)을 믿었던 산촌민들은 정초에 산제 및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이 길목을 지났고, 보부상들은 북평장과 삼척장을 거쳐 임계장과 정선장을 보기 위해 힘겨운 삶과 꿈을 이고 지고 이 길을 넘었으리라.
학이 머무는 고을 서학골 비룡음수형의 명당 백두대간 생태문화 탐방로 3개 코스의 노선도, 경로 거리와 시간을 안내하였다.
1탐방로 : 예로부터 용의 꼬리 부분인 서학골 용소에서 용의 머리 부분인 정선군 괘병산 까지가 '비룡음수형' 지형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동해에서 원방재를 넘어 정선을 넘나들던 보부상들이 쉬어가는 주막터가 있고 탐방로 주변에는 이야기를 간직한 많은 볼거리가 있습니다. 주차장- 4.4km, 1시간10분- 원방재- 4.2km, 1시간- 서학골 삼거리- 4.8km, 1시간20분- 주차장
2탐방로 : 참나무로 숯을 생산하던 숯가마 터와 움막 티를 볼 수 있고 탐방로 끝자락에는 삼부연폭포가 있어 시원스러운 폭포소리를 들으며 숲속의 명상과 산림육을 즐길 수 있는 쉼터가 있습니다. 주차장- 1.2km, 15분- 주막터- 2.4km, 40분- 삼부연폭포
3탐방로 : 수력동굴은 임계지역에 댐을 건설하여 동해지역으로 유입할 수로를 개발하던 중 중단된 인공동굴이며, 탐방로 구간에는 폭포와 음지에서 자라는 양치식물 군락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주차장- 0.7km, 8분- 생태연못- 1.5km, 25분- 수력동굴
원방재에서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부수베리 방향을 바라본다.
원방재에서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부수베리 방향을 내려본다. 대간 종주대원들이 단축 코스로 하산하고 있다.
1.백복령 먹거리촌 : 백복령 정상에서 임계시내 방향으로 약 2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선갓전병을 비롯한 감자옹심이, 메밀국수, 도토리묵, 감자전, 메밀전, 막걸리 등 강원도 토속음식을 판매하는 먹거리촌이 밀집되어 있으며 사계절 각각 다른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다.
2.부수베리 : 부수베리는 강원도 정선의 임계(송계)를 가로질러 골지천으로 흘러드는 임계천의 최상류에 자리잡은 골짜기이다. 이 계곡은 도전계곡과 Y자 모양으로 합쳐져 임계로 흘러가는데 북서쪽의 부수베리가 도전계곡보다 더 길고 유역면적 역시 더 넓어 수량도 많다.
3.임계 5일장 : 지난 1914년 개설된 임계 5일장은 지난 2013년 전통시장으로 등록되어 임계사통팔달시장으로 명칭을 변경해 운영되고 있다. 현재 장터에는 80여 개 점포가 운영 중에 있으며, 매월 5일과 10일 장이 열린다. 크지는 않지만 맛, 멋, 흥이 넘치는 임계사통팔달시장은 장이 열리는 날이면 많은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강릉, 평창, 동해, 태백으로 통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지역으로 상인들이 각 지역에서 온갖 물건을 가지고 좌판을 열기 때문에 전통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물건을 만나볼 수 있다.
동해소금길의 중심 코스는 백두대간 원방재를 가로지르는 길이었나 보다.
원방재(遠方嶺)에서 1.5km 거리의 상월산으로 향한다.
원방재 바로 위에 상월산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부터 상월산 능선까지 가파른 비탈 눈길 오르기가 힘겹다.
상월산은 백두대간마루금 천수상이며 서학골 진산이자 마을의 수호산으로 용루폭포의 발원지다. 비룡음수형 혈지의 주봉으로 여의주인 수병산(괘병산) 천기를 받아 장수공깃들바위와 망바위에 생기를 전했다는 신성한 산이다. 상월산 정상에 장수가 올려놓았다는 공깃들바위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이곳은 천연기념물 산양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상월산 능선으로 오르다가 상월산 능선과 마주보고 있는 북쪽의 862봉 능선을 뒤돌아본다.
가파른 비탈의 눈길을 힘겹게 헤치며 상월산 능선으로 오른다. 바로 앞에서 왼쪽 상월산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오른다.
상월산 능선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맨 왼쪽에 두타산, 그 오른쪽에 청옥산, 오른쪽에 연칠성령과 고적대가 가늠된다.
상월산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월산 오름길의 암릉 지대에서 북쪽과 서쪽 조망은 압권이다.
암릉 지대에서 북쪽을 조망한다. 맨 왼쪽 뒤에 달팽이산과 1022봉이 분명히 보인다.
중앙의 862봉에서 왼쪽으로 벋는 862봉 능선은 남쪽의 상월산 능선을 마주보며 멋닞 풍경을 연출한다. 오른쪽 뒤에 달팽이산과 1022봉이 분명히 확인된다.
오른쪽 백두대간 862봉 능선이 왼쪽 아래 원방재로 내리벋고, 그 뒤쪽에 부수베리골이 보인다.
왼쪽에 1220.5m 괘병산(수병산)이 솟아 있고, 중앙 뒤에 부수베리골, 중앙 아래는 원방재이다.
중앙 뒤에 괘병산이 여의주를 물고 솟아 있고, 바로 앞 소나무 뒤쪽으로 상월산 능선이 서쪽으로 벋어내린다.
상월산 암릉 지대의 정상인 해발 970.5m 큰상월봉으로 오른다. 큰상월봉을 상월산 서봉이라고도 일러도 될 듯.
해발 970.5m 상월산 정상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다. 이곳을 큰상월봉이라 이르고싶다.
상월산 큰상월봉에서 북쪽으로 달팽이산과 1022봉을 다시 조망한다.
상월산은 움푹 파인 안부에 의해 큰상월봉(서봉)과 작은상월봉(동봉)으로 나뉘어 있으며, 작은상월봉에 상월산 표지판이 붙어 있다. 큰상월봉과 작은상월봉 사이의 안부에서 양쪽 산봉 오르내르기가 몹시 힘겹다.
안부로 내려가며 동해시 신흥동 서학골을 내려다보았다.
큰상월봉에서 안부로 내려와 북쪽을 조망하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위치와 동해 바다를 분명히 살필 수 없다.
안부에서 힘겹게 올라와 헬기장인 상월산 작은상월봉에 이른다. 상월산 동봉이라 일러도 될 듯.
상월산 작은상월봉에 상월산 표지판과 거리 표시판이 세워져 있다. 상월산 표지판과 함께 상월산 산행을 기념한다.
상월산 작은상월봉을 뒤돌아본다. 작은상월봉은 헬기장이며 이곳에서 이기령까지는 1km 거리이다.
이기령으로 내려가며 동해시 지역을 조망하지만 분명하게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동해시 이기동과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부수베리를 이어주는 이기령에 이른다. 이기령(耳基嶺)은 본래는 '힘들다'는 뜻의 강원도 토박이말인 '더바지령'이었는데 이후 이기령이 되었다고 한다. 동해시 이기동(耳基洞)은 원래 구리터(동기, 銅基)마을이었다고 한다. 이 구리터가 변화되어, 구리터>구이터>귀터. 이 귀터를 한자로 표기하여 이기동(耳基洞)이 되었으며 더바지령 고개 이름도 마을 이름을 따서 이기령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백복령 10km 지점의 이기령에서 백두대간 산행을 종료한다. 이곳에서 동해시 이기동까지는 6.5km,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부수베리까지는 5.8km 거리이다.
동해시 이기동 이기령에 소원 성취의 돌무지와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아득한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과나리 봇짐과 짚신을 등에 멘 선비 유생들은 청운의 뜻을 품고 이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등짐과 복짐을 메고 든 장돌뱅이 보부상들은 거상의 꿈을 꾸며 험하고 험한 이 길을 수도 없이 오갔다. 한양 천리길은 장원급제의 꿈과 큰 포부를 안고 오가던 선비에게는 희망의 길이었고 이 장터 저 장터를 떠도는 장돌뱅이 보부상에게는 한많은 애환이 담긴 길이기도 하였다. 이 험난한 고갯길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여로의 무사 안녕과 소원을 빌며 한두 개의 돌탑을 쌓거나 돌을 던졌다고 한다. 하나둘씩 쌓인 돌무더기는 국시댕이(국시)라 불리며, 서낭당과 같은 신령한 장소처럼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 국시댕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길 위에서 길을 찾는 나그네에게 이 옛길은 힐링의 길, 소원성취의 희망의 길로 거듭나게 하고자 한다. 2015년 10월 31일 (사)동북아시아 문화 허브센터
이곳에서 남쪽 고적대까지 6.6km 거리이다. 이곳에서 오른쪽 임도를 따라 부수베리로 내려가도 되지만 임도를 건너 옛길을 따라 부수베리로 내려간다.
백두대간 설명안내판의 내용을 옮긴다.
◎백두대간이란 :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작은 개을 하나 건너지 않고 높은 산의 능선으로만 연결된 총 연장 1,400km, 487개의 산, 봉, 령, 재 등으로 구성된 산줄기로 한반도의 등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의 유래 : 18C 조선 영조대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산경표」에서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이중 기둥이 되는 가장 커다란 산줄기를 백두대간으로 정의하였습니다.
◎백두대간의 가치 :
■우리민족의 상징 : 백두대간은 대륙을 함해 힘차게 뻗어 나가는 형상으로 우리민족의 기상을 담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중심축 : 우리나라 산줄기의 대부분은 백두대간에 뿌리를 두고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어 동물의 서식이나 이동 및 식물군의 개체 확산이 용이하여 총 다양성의 공급원이기도 합니다.
■문화적 특성을 구획하는 울타리 : 백두대간은 한반도를 동서로 구분하여 영동·영서권, 영남·호남권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각 지역은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니고 발전해 왔습니다.
◎생태계의 중심축으로서의 백두대간 : 자연은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서 빌려 왔다고 합니다. 우리 삶의 터전이며 수많은 동·식물의 서식처이고 또한 이동 통로입니다. 맑은 공기와 각종 자원을 공급해 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연을 파괴하고 질서를 어지럽힙니다. 자연이 없으면 인간도 없습니다.
임계천변 옆 부수베리 옛길을 따라 부수베리골을 통과한다.
임계천 위쪽의 부수베리 옛길을 따라 자동차 차단막을 통과하여 임계천을 건넜다.
부수베리골 들녘 눈밭에 누군가 눈토끼를 예쁘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눈여우로도 보인다.
괘병산(掛屛山, 1200.5m)은 수병산(繡屛山)이라고도 불린다.
괘병산(1200.5m)은 수병산(繡屛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임계면 도전리와 가목리 일원에 있으며 원시림이 울창하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다.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은 정상에서는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감탄을 자아내게 하며, 공룡 발자국 모양의 샘이 여러 곳 있고, 바다 조개껍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억 년 전 바다가 융기되면서 생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운이 좋은 날은 정상에 있는 기암괴석 위 구부정한 노송을 구름이 비단처럼 감싸는 풍경을 볼 수 있으며, 때마침 동해바다의 비릿한 내음이 실린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구름이 흩어졌다 다시 바위와 노송을 감싸는 멋진 광경이 보고 있는 사람들을 짜릿하게 만든다. 전설에 의하면 인근 주민들이 가장 신성시한 산으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형상을 하였다고 괘병산이라 하며, 암벽이 흰색으로 변하면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있다.(대한민국구석구석)
'부수베리 옛길'에서 임계천을 건너 '부수배리길'로 올라선다.
임계천을 건너면 임도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더바지령은 이기령이다. 이기령에서 이곳까지 3.6km를 걸어왔다.
오른쪽 부수베리 옛길을 따라 임계천을 건너 이곳에서 왼쪽 임도와 합류하여 부수배리길을 따라간다. 부수베리와 부수배리가 혼용되어 쓰인다. 정확한 표기가 무엇일까?
부수배리길을 따라 내려오면 괘병산 등산로 출입구가 나온다.
부수배리(부수베리)가 무슨 뜻일까? 부수베리는 부싯돌이 많은 벼랑 또는 벼랑에 자라는 소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이 골짜기에서 부싯돌이 많이 나고 또 벼랑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부수배리라는 지명을 얻었을 것 같다.
임계천 냇가에 버들강아지꽃들이 피어났다. 봄날이 왔구나!
버들강아지 꽃송이가 보송보송하다.
부수배리길을 따라 내려가면 부수배리길이 끝나는 지점에 임계천을 가로지르는 가목1교가 보이며 눈꽃마을길이 시작된다.
부수배리길 가목1교 입구에 괘병산 종합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부수배리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눈꽃마을길이 시작된다.
왼쪽은 부수배리길, 가목1교로부터 눈꽃마을길이 시작된다. 눈꽃마을길 입구에서 산행을 종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