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전립선 암으로 수술하고 5년여 정도를 투병하시다가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말씀의 사람으로, 선지자적인 영성으로 늘 죽은 영혼, 잠자는 영혼을 깨우셨던 목사님 이셨습니다.
목사님의 로망인 총회장을 하시고,
총회(예장 합신)일을 이것 저것 감당하시고,
교회도 몇개를 개척하시면서 복음의 열정을 불태우시다가 정년퇴임하신지 10년만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저와의 만남은 김성란 사모의 아버님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장인어른으로서의 만남이지만,
엄청난 연배의 목회자 선배로서의 목사님이셨습니다.
처음 도전받았던 것은 꾸준한 영적생활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새벽기도후 8시까지 성경보고 기도하기를 계속하셨던 것에 대한 도전입니다. 부목회자 때 좀 따라서 해보았지만, 너무 힘들어서 오래 지속함이 얼마나 힘든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희 집에 한 번씩 오시곤 했는데, 새벽 4시면 일어나셔서 성경보시고 기도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설교를 한 번 들으시더니 영성을 키우라 하시면서
성경많이 보라, 기도많이해서 능력받아야 한다고 늘 앉으면 나에게 권면하시던 그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결혼후 얼마가 지나고 나서는
친히 박윤선 목사님 주석을 영음사 출판사에 가서 직접 사주셨습니다. 생존에 친하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수정교회 담임 소식을 들으시고 오셔서 본당에서 울면서 기도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사위이기 이전에 목사 후배로서 늘 권면해주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또한 새벽기도후 아침식사 전에 가정예배를 드리시면서 온 자손을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고, 저녁에도 가정예배를 드리시기를 평생하셨습니다.
자녀들을 잘 양육하셨습니다.
3남 2녀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하셨습니다.
장남은 현 대구 동남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고,
장녀는 중학교 음악교사로, 교회 권사로, 남편은 장로로, 울산시 장학사로 시무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도 장로로, 삼성에서 근무하고
세째아들도 장로로 시무하면서 목사님을 잘 섬기고 있다.
막내 딸은 김성란 사모입니다.
전부터 자녀들의 결혼은 목사자녀나 장로자녀로만 한정을 하시더니 결국 말씀대로 되셨습니다.
이제 육신은 땅에 묻혔지만, 그 영혼은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이제 하나님의 품안에 안식하셨습니다.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고 흘러가지만, 나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충성다하는 주님의 종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람의 영광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목회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