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2
지은이: 후안 마누엘
옮긴이: 김창민, 강성식 외
펴낸곳: 도서출판 자작나무
(저자 약력)
* 지은이: 후안 마누엘(Don Juan Manuel)
1282년 스페인의 에스깔로나(Escalona)에서 태어났으며, 뻬로뻬스 데 아알라 주교와 함께
14세기 스페인의 산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현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알폰소 10세(제위기간: 1252--1284)의 조카라는 신분
덕택에 젊어서부터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였고, 페르난도 4세와 알폰소 11세 때에는
전쟁에 활발히 참여했다. 나이가 들자 자신이 도미니크 수도회에 기증한 뻬냐피엘 수도원에
들어가 작품활동을 하다가 1348년 삶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토록 도미니크 수도회를
정신적^5,23^물질적으로 후원하면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지만 동시에 부와 명예에 관한
세속적인 관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기사와 시종에 관한 이야기 Libro de caballero et del escudero',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이야기 Libro de los estados'가 있고 그 외에도 '시가집 Libro de los cantares o de
sus cantigas', '산추린 연대기 La cronica abreviada', '무기교본 Libro de las armas' 등이 있다.
* 옮긴이: 김창민
1959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다시 동 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했다. 멕시코 구아달라하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중남미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역서로는 '저주받은 사랑'(열음사), '미국은 섹스를 한다'(자작나무)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푸에르토리코 현대소설에 나타난 문화적 갈등', '수필에 나타난 에르네스또 사바또의
문학관'이 있다.
강성식, 이소현, 박정희, 전미연, 정수현, 최철훈, 한희주, 허인숙: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대학원 재학중@ff
첫번째 이야기 서로 다른 두 부부의 이야기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이야기했다.
"빠뜨로니오, 내겐 이미 결혼한 두 형제들이 있소. 그 중 하나는 부인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절대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고, 반대로 또 다른 하나는 부인을 너무나 싫어하는 나머지
아예 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오. 이 두 동생들이 항상 내겐 큰 걱정이오. 그러니 현명한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내게 조언을 해주길 바라오."
그러자 이야기를 들은 빠뜨로니오는 이렇게 대답했다.
"백작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백작님의 형제들은 두 분 다 잘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인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도, 그렇게 싫어하는 것도 내색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형제분뿐 아니라 부인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을 겁니다. 글쎄, 이런 경우 백작님께
화드리께 황제와 그의 황후 그리고 알바화네스 미나야와 그의 부인의 이야기를 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화드리께 황제는 한 귀족처녀와 결혼을 했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결혼하기 전부터 있던 부인의 나쁜 습관을 황제가 미리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그녀는 점점 다루기 어려운 여자가 되어갔습니다. 황제가 잠을 자고 싶어할 때
그녀는 깨어 있으려 했고, 황제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표시하면 그녀는 즉시 그 사람을 증오하는
식이었죠. 황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그녀는 싫어하며 황제가 하는 모든 일에 반대로
행동하곤 했습니다.
처음엔 참으려 했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부인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자, 황제는 자신의 그런
고통스런 삶은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라와 백성들에게도 해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행동하려면 어떤 합리적인 생각도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죠. 결국 황제는 교황에게 가서 그간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이혼을 허락해 줄 것을
탄원하였습니다. 교황 역시 황후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결혼생활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긴 했지만 천주교리상 이혼은 금지된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황제는 자기 나라로 되돌아와 아부와 충고, 협박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시 한 번 시도해보았지만 황후의 나쁜 습성은 더욱 심각해질 뿐이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황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슴사냥을 하러 나가는데 사슴을 죽이기 위해 화살촉에 묻힐 독성분이 있는 풀을 조금
가져갈 것이오. 남은 풀은 다음번 사냥을 위해 남겨두고 가는데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절대로
피가 나는 상처부위나 종양 근처에 닿게 해서는 안 되오. 만약 그렇게 되면 어떤 생명체든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이 생길 테니 조심하시오."
그리고 나서는 부인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몸에 있는 종기 치료에 좋다는 고약을 발랐습니다.
부인뿐 아니라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약효가 얼마나 금방 나타나는지 알게 되었죠.
그리고 황제는 부인에게 상처를 치료하려면 고약을 사용하지 절대 풀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재차 당부한 후 사냥을 떠났습니다.
황제가 떠나자마자 황후는 이렇게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황제가 내게 뭐라고 얘기했는지 아세요? 그는 내가 앓고 있는 옴이 나기가 앓고 있는
종기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게 자신이 사용하는 고약을 사용하라고 했답니다. 그 약으로는
내 병이 치료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는 내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풀은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나는 그가 돌아왔을 때 내가 다 나은 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 풀을 바르겠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마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걸
테니까 말이에요."
그러자 곁에 있던 신하들과 궁녀들은 그 풀을 바르면 목숨을 잃게 될 테니 제발 그만두시라며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황후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상처부위에 풀을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죽음이 엄습했고 그녀는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할 틈도 없이 그 고집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되었지요.
화드리께 황제 이야기가 끝나자 빠뜨로니오는 알바화네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스까르 지방에는 선하고 정직한 알바화네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꾸례야르 지방엔 세
딸을 둔 뻬드로 안수레스 백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알바화네스는 예고도 없이 뻬드로
백작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백작은 갑작스런 그의 방문에 매우 놀라긴 했지만 함께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지요. 이윽고 갑작스럽게 방문한 이유를 묻자 알바화네스는 백작의
세 딸 중 한 사람에게 청혼을 하려 했는데, 그 중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짝을 고를 수
있도록 세 딸과 따로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갖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알바화네스가 훌륭한
청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백작은 흔쾌히 요구를 받아들였지요.
백작의 첫째딸과 은밀히 만난 자리에서 알바화네스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당신과 결혼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먼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저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젊진 않답니다. 전쟁에서 부상을 많이 당했기 때문에 몸이 아주
약하기도 하구요. 또 술을 조금만 마셔도 이성을 잃고 난폭해지기 일쑤며 정신이 들면 내가 무슨
얘길 했는지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한답니다. 이런 버릇 때문에 보통 여자들은 나와
결혼하길 꺼려하죠."
이야기를 모두 들은 첫째딸은 결혼이라는 건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부모님의 문제이기도
하니 부모님과 상의해 보겠다고 대답한 후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부모에게 그런 사람과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백작은 알바화네스에게 큰딸은 아직
결혼할 뜻이 없는 것 같다고 둘러댔습니다.
다음으로 둘째딸과 이야기를 하게 된 알바화네스는 그녀에게 역시 똑같은 이야기를 했고
둘째딸의 반응 역시 큰언니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똑같은 이야기를 들은 막내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같은 분이 제게 청혼을 하다니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 그리고 당신이
말씀하신 그 술버릇은 제게 맡기세요. 제가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할테니까요. 그리고 당신의
나이 또한 결혼생활을 하는데 장애가 되진 않을 거예요. 그런 결혼생활로부터 얻는 좋은 것들도
많을 테니까 말이죠. 그 외에 다른 일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화나게 하지도 않을
것이며, 설사 당신이 화를 낸다 하더라도 한마디 불평없이 참을 수 있으니까요."
결국 알바화네스의 말에 막내딸만 현명한 대답을 했으며 그는 매우 만족해서 이해심 많은
여자를 만나게 해준 신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곧 뻬드로 백작에게 막내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고 백작 역시 기쁜 마음으로 즉시 결혼식을 치러주었습니다. 그의 부인이 된 막내딸
도냐 바스꾸냐나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여인이었기 때문에 알바화네스는 매우 행복해 했으며
그녀가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항상 배려했습니다.
그녀도 남편을 매우 사랑했으며 남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모든 언행은 항상 옳다고
믿었습니다. 남편의 모든 행동과 말들이 그녀를 항상 기쁘게 했으며 남편이 좋아하는 어떤
일에도 반대의 뜻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남편을 기쁘게 하거나 남편에게 아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이 원하거나,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이 옳으며 누구도 그보다 더
옳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진정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현명하고 신중해서 언제나 이치에 합당한 일을 했기 때문에 알바화네스도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녀가 하려는 모든 일을 언제나 따르고 존중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알바화네스 집에 조카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그 조카는 궁정에서 왕의 시중을
들던 자였는데 얼마간을 숙부 집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조카가 알바화네스에게
숙부는 모든 것이 다 좋지만 한 가지 흠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숙부가 숙모에게 재산을
관리하는 데 너무 많은 권한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알바화네스는 며칠 후면 그 까닭을
알게 될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알바화네스는 부인에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조카를
데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사람을 보내 부인이 자신의 뒤를 따라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에선 숙부와 조카가 말을 타고 가고 있었고, 멀리 뒤에선 부인이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가다 그들은 소떼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그러자 알바화네스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너 보았니? 얼마나 멋진 말들이냐!"
이 말을 들은 조카는 놀라긴 했지만 숙부가 농담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말했습니다.
"숙부, 저건 말이 아니라 소예요."
그러자 숙부는 여전히 소떼를 보고 말떼라고 우겼습니다. 조카 역시 숙부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며 입씨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멀리서 바스꾸냐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조카는 숙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숙모님, 숙부와 저는 지금 말다툼을 하고 있었어요. 숙부가 저 소들을 보고 계속 말이라고
우기시길래, 제가 저건 말이 아니라 소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숙부는 제 정신이 나갔다고
하시네요. 그러니 숙모님이 숙부님께 누가 옳은지 말씀을 해주세요."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도 저 무리가 소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 알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숙부가 저것이
말들이라고 확신하신다면 확실히 저건 소가 아니라 말일 테니까요."
그리고는 조카와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 동물의 색깔이나 특징을 가리키며 남편의
주장이 맞다고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확신에 차 이야기를 하자 그 곳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서서히 자신들이 착각을 했으며, 그들이 본 것은 알바화네스의 이야기대로
소떼가 아니라 말떼였을 거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다시 길을 가던 중 그들은 이번에는 말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알바화네스는
조카에게 말떼를 보고 소떼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조카는 역시 소떼가 아니라 말떼라고 말하며 숙부가 정신이 나갔다고
했습니다. 알바화네스 역시 다시 말떼를 보고 소떼라고 우겼고 또 다시 그들의 입씨름이
시작되었지요. 그러던 중 바스꾸냐나가 또 다시 그들이 있는 곳까지 다다랐고, 소떼를 만났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바스꾸냐나의 설득으로 함께 있던 사람들은 말떼를
소떼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다시 길을 가던 중 그들은 물레방아가 있는 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말들에게 목을 축이게
하면서 알바화네스는 이 강은 위로 흐르고 있으며 그래서 물레방아는 위에서 아래로 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래서 위로 받고 있다고 조카에게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조카는 자신이 말을 소로, 소를 말로 생각했을 때처럼 또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말해 또다시 입씨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후 바스꾸냐나가 도착하자 그녀는 남편의 뜻에 동조하며 여러 이유를 들어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또다시 조카가 착각했다고 믿었지요. 그러자 이젠 조카
자신도 바스꾸냐나의 말에 설득되어 스스로가 판단력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조카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알바화네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언젠가 네가 나에게 얘기했던 그 한 가지 흠에 대해 이젠 답이 된 것 같구나. 사실 나
역시 너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단다. 처음에 본 것은 네 말대로 소였고, 나중에 본 것
역시 네 말대로 말이었지. 물론 네 숙모 역시 네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네 숙모는 항상 나의 판단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내가 착각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이유와 논리를 대면서 내가 옳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믿게끔 한 것이란다. 네
숙모는 우리가 결혼한 첫날부터 내가 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았고, 언제나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가장 옳고 합당한 일이라고 믿어왔단다. 어떠한 순간에도 내 이름과 명예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며 모든 이에게 내 뜻에 복종해야함을 일깨워주었단다. 그것은 결코
자기의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명예를 위해서였지. 나와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
나를 위해 이렇게 했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아내가 나를 위해 이렇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니 네 숙모를 위해 무엇인들 못하겠니."
조카는 알바화네스의 이야기를 듣고, 숙부가 숙모를 그렇게 사랑하고 숙모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황제의 부인과 알바화네스의 부인은 상당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의
동생들이 한 분은 부인을 끔찍히 사랑하고 또 다른 한 분은 끔찍히 싫어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아마 그 동생분들의 부인은 제가 말씀드린 황후나 바스꾸냐나처럼 행동할 것입니다.
부인들이 그러하다면 동생분을 비난해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두 경우처럼
부인들이 그렇게 선하지도 그렇게 제 맘대로인 것도 아니라면 그땐 남편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불신감이 생기면 결국은 앞에서 말한 화드리께 황제와 황후의 경우처럼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 깨달아 남편이 부인을
신뢰하고 부인도 남편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다.
* 부부 사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다.@ff
두번째 이야기 변덕스런 아내를 둔 남자 이야기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빠뜨로니오, 내게 항상 도움을 청하는 한 사람이 있소. 그런데 그 자는 내가 도움을 주었을
때는 감사하게 여기지만 계속되는 부탁을 한번이라도 거절하면 그동안 내가 해주었던 일들은
모두 잊고 불만을 토로한다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소.
그러자 빠뜨로니오는 루까노르 백작에게 세비야의 왕 아베나벳과 그의 부인 라마이끼아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세비야의 왕 아베나벳은 부인 라마이끼아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부인이었기에 아랍인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흠이
있었는데 그것은 때때로 심한 변덕을 부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해 2월 그들이 꼬르도바에 머무를 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폭설이 내렸는데 이를 본
라마이끼아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부인에게 우는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항상 눈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에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꼬르도바의 모든 산에 편도나무를 심게 했습니다. 꼬르도바는
날씨가 더운 지역이라 거의 눈이 내리지 않지만 다 자란 2월의 편도나무는 눈이 흩날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왕은 이렇게 해서라도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또 하루는 라마이끼아가 강이 내다보이는 방에서 한 여자가 맨발로 진흙탕 속에 들어가 벽돌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우는 이유를 묻자, 자신은 강가에 있는 그 여자처럼 저런 일을 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부인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꼬르도바의 큰 연봇에 원래의 연못물 대신 장미빛 물을 채우게 하고, 진흙 대신에 설탕, 계피,
향료, 사향 등 좋은 냄새가 나는 모든 것으로 채워놓게 했습니다. 또한 짚 대신 사탕수수를
심어놓게 했습니다. 연못에 모든 준비가 다 끝나자 왕은 부인에게 신을 벗고 들어가 진흙 속에서
만들고 싶은 만큼 마음껏 벽돌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또 어떤 이유에서인지 라마이끼아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를 묻는 왕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냐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한 나머지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왕은 그녀에게 이렇게 넋두리를 하기 시작했지요.
"다른 건 다 잊어도 내가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준비했던 그 진흙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께서 그 사람을 위해 아무리 많은 것을 해주어도, 부탁하는 것을 모두
다 들어주지 않는다면 결국 나중에 그 사람은 백작님이 해주신 일들을 다 잊고 오히려 불만을
토로할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 백작님의 재산에 피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또한 누군가가
백작님을 위해 무슨 일을 했을 때 비록 흡족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에게 받은 도움을 결코
잊지는 마십시오.
* 남들이 자신의 선행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선행의 미덕을 버려서는 안 된다.@ff
세번째 이야기 눈먼 남편을 위해 자신의 눈을 찌른 아내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조언자 빠뜨로니오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많은 전투로 인해 적지 않은 재산을 잃었소. 그런데 부하
중 몇몇은 나의 호의를 그토록 많이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배신해 곤경에
빠뜨렸다오.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더 이상 예전처럼 사람을 신뢰할 수가 없다오.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니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좀 해주시오.
"백작님, 만약 당신을 곤경에 빠뜨린 사람이 다음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세 기사들과 같은
사람이라면, 또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더라면 결코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없었을 겁니다.
옛날에 로드리고라는 백작이 살고 있었지요. 그는 훌륭한 아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구실을 들어 아내를 괴롭혔습니다. 남편의 학대에 견디다 못한 아내는 신에게
기도하기를 만약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자신에게 벌을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남편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했지요.
그러자 신은 기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에게 나병이라는 형벌을 내렸고 그 후로 그들은
헤어졌지요. 그 소식을 들은 나바라 왕국의 임금은 사절을 보내어 그녀에게 구혼을 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나바라의 왕비가 되었지요.
한편 로드리고 백작은 자신이 나병에서 결코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성지에서 죽기
위해 순례를 떠났답니다. 그에게는 막강한 권력과 훌륭한 부하들이 많이 있었지요. 하지만 막상
성지를 향해 떠나려 하자 세 명의 기사만이 따를 뿐 아무도 그를 계속 섬기려 하지 않았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세 명의 기사만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지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하게 되자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본국을 떠날 때 가져온 재물도
바닥이 나서 결국에는 백작에게 먹을 것조차 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요. 그래서 세 명의
기사들은 품삯일을 해야 했지만 밤이 되면 그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백작을 목욕시키고 나병의
종기를 씻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들은 백작의 다리를 씻겨주다가 입에 침이 고이자 그것을 뱉어내었지요.
그러나 백작은 기사들이 자신의 상처 때문에 구역질이 나서 침을 뱉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비탄에
빠져 슬피 울었답니다.
그러자 기사들은 오해를 풀기 위해 백작을 씻기고 난 고름으로 뒤덮힌 물을 한손 가득히 담아
단숨에 마셔보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백작이 죽는 날까지 비참한 생활을 보냈지요.
백작이 죽고 나자, 그들은 주인도 없는데 돌아가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여
본국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백작을 화장시키고 뼈만이라고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지요. 그러나 기사들은 백작이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고 나서도
그의 몸에 손대는 것이 불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장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백작을
땅에 묻고 백작의 몸이 모두 흙으로 변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지요.
세월이 흘러 백작의 몸은 흙으로 변했고, 그들은 백작의 뼈를 상자에 담아 본국을 향해
떠나기로 했답니다. 때로는 상자를 둘러멘 채 구걸을 해가며 여러 나라를 지나가야 했지요.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 가련한 기사들이 똘로사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부일을
화형시키겠다며 모여 있었는데, 그 부인은 간통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만약 부인을
위해 싸울 기사가 있다면 그녀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 싸울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지요.
이 소식을 들은 충직한 기사 뻬드로는 만약 그녀가 진실로 죄가 없다면 자기가 그녀를 위해
싸우겠다고 동료들에게 말했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진실을 물어 보았지요. 그러자 그녀는
마음 속으로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했었지만 실제로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기사는 그녀가 마음 속으로나마 죄를 저질렀다는 말에 그리 썩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마음 속으로 지은 죄로 인해 자신에게도 약간의 불상사가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녀가 실제 행동으로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를 위해
싸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고발한 사람들은 기사만이 싸울 자격이 있다며 거부했지요. 그러자 뻬드로
기사는 이제까지 적어둔 그들의 기록을 보여주었답니다. 그 기록을 보자 그들도 별 수가
없었지요. 부인의 부모는 뻬드로 기사에게 말과 무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결투장에 나가기
전에, 신의 가호로 기사는 명예를 그리고 자기 딸은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지요. 하지만
자기의 딸이 마음 속으로나마 죄를 지었기 때문에 어떤 불행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사는 신의 도움으로 결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쪽 눈을
잃어버렸지요. 염려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기사는 부인과 친척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고, 덕분에 그들은 별 어려움 없이 본국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충직한 기사들의 소식을 전해 들은 본국의 왕은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왕국에 그렇게 위대한
기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신에게 충심으로 감사했답니다. 그리고는 사신을 보내 평소의 누추한
복장 그대로 왕국에 들어와 줄 것을 그들에게 요청했지요. 기사들이 왕국에 도착했을 때, 왕은
말도 타지 않은 채 친히 나가 그들을 맞이하며 그들의 충성심을 치하했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큰 상을 내렸지요. 그 상은 워낙 대단한 것이어서 오늘날까지도 계속 후손들에게
상속되고 있답니다. 게다가 기사들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왕과 신하들은 백작의 영지
오수나까지 동행했고, 백작의 유해를 안장하고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 중 다른 한 명의 기사 곤잘레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부인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앉았지요. 그런데 갑자기 아내는 앞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는 하늘을
향해 합장을 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겠습니까?
"이 날을 보게 해주시다니. 신이시여,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고기와
포도주는 남편이 떠난 이후로 처음입니다."
기사는 이 말은 듣고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아내는 남편이 조국을 떠나면서
했던 말을 상기시켰습니다. 즉 기사는 백작과 함께가 아니라면 절대 조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그동안 자기 부인으로서 명예를 잘 지키라고 했던 겁니다. 그리고는 집에 빵과 물은 절대
부족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그 후로 아내는 어려운 생활에도 남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지 않았고, 남편에 대한 신의로 식사 때마다 물과 빵만 먹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기사 뻬드로가 집에 도착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의 아내와 친척들은 그가 돌아온 것을
매우 기뻐하며 웃음으로 맞이해 주었지요. 하지만 기사에게는 그들의 웃음이 잃어버린 자기의
눈에 대한 비웃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망또로 얼굴을 가린 채 슬픔과 탄식에 빠져 병져
누웠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뻬드로가 괴로워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남편 모습을 보다 못해 그 이유를 물었지요. 그러자 기사는 남들이 자기의 눈을 비웃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어디선가 바늘을 하나 가지고 와서는 자기의 한쪽 눈을 찔렀습니다.
남편이 놀라 그 이유를 묻자, 자기의 웃음이 남편에 대한 비웃음으로 오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세 명의 기사들은 신의 도움으로 행복한 여생을 누릴 수 있었답니다.
백작님, 당신께 그런 짓을 한 사람이 앞에서 얘기한 세 명의 기사와 같이 충직한 사람이거나
자신들이 이제껏 누린 호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짓은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백작님을 저버린다고 선행을 중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나쁜 짓은
백작님보다도 그들 자신에게 더 해가 될 테니까요. 그리고 백작님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백작님을 충심으로 섬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백작님께는
배신보다 충성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아울러 이제까지 잘 대해주었다고 그들이 모두
백작님께 도움을 줄 거라고 기대하셔도 안 됩니다. 그러나 호의를 베풀다보면 언젠가는 그러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 비록 몇몇 사람이 당신을 실망시켜도 호의를 베푸는 것을 멈추지는 말라.@ff
네번째 이야기 사냥꾼의 눈물에 속은 메추라기
언젠가 빠뜨로니오와 이야기하던 중 루까노르 백작은 이렇게 말했다.
"빠뜨리니오, 때때로 사람들이 내게 고약한 일을 할 때가 있소. 내 재산이나 부하들에게 해를
입히고 난 후에 그 사실에 대해 심히 후회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내 앞에서
변명을 한다오. 이럴 때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으니 의견을 말해주오."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이 고민하고 계시는 그 문제는 메추라기 사냥을 하던 한 남자에게
일어난 일과 꽤 유사하군요."
한 남자가 메추라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쳤습니다. 메추라기가 그물에 걸리자 사냥꾼이 다가와
한 마리씩 죽이면서 그물에서 빼내고 있었지요. 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 사냥꾼은 먼지로 인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아직 그물 안에서 목숨을 부지하던 메추라기 한 마리가 다른
메추라기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들, 이것 좀 보시오. 이 남자는 비록 우리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마음으로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소."
방금 이렇게 말한 메추라기보다 현명해 사냥꾼의 그물을 피할 수 있었던 다른 메추라기가 그
근처를 날고 있다가 이 얘기를 듣고 이렇게 빈정거렸습니다.
"이것 보시오. 내가 당신 경우라면 나는 그물에 걸리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하겠소. 그리고
앞으로도 나와 내 친구들을 죽이고 해치고 난 후에 마음 아파 우는 사람의 손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빌겠소."
"루까노르 백작님, 당신을 해치면서 그 일로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단,
실제로 악의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소의 태도를 보시고,
그 행동이 불가피했으며 진실로 마음 아파한다고 판단되시면 눈감아주십시오. 그러나 실수하는
일이 자주 있어서 당신께 화를 입히거나 명예를 훼손하면 한 된다는 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 반대로 계속 그런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면 멀리 내쳐서 당신의 재산과 명예를 보존하십시오.:
* 짐짓 괴로운 척하며 해를 끼치는 자를 만나게 되면 그를 멀리할 궁리를 하라.@ff
다섯번째 이야기 아랍의 세왕자 이야기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내 집에는 젊은이들이 몇 사람 있는데 그 중 몇 명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되는
이들의 자식이고, 몇 명은 이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의 자식들이라오. 그런데 그들의 거동을
지켜보자면 과연 그들이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 걱정이 된다오. 당신은 지혜로운 사람이니
이들 중 내게 쓸모있게 될 자와 그렇지 않을 자를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가르쳐주오."
"그런 종류의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미래란 불확실한 것인데 백작님의
질문은 바로 그 미래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은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몇
가지 징조를 가지고 짐작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징조로는 외모나 안색,
행동거지 그리고 체격 등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단지 징후에 불과하며 실제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어떤 외적 징후들을 보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더 뚜렷한 징후는 얼굴, 특히 눈에 나타납니다. 이것은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생겼지만 인물값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못생겼지만 믿음직한 사람도
있습니다. 균형잡힌 신체는 민첩함과 용기의 징후일 수 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징후에
불과합니다. 백작님께서 그 청년들의 가능성을 점쳐보고 싶으시다면 그들 내부의 품성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가를 잘 살펴보십시오. 참고 삼아 한 아랍 왕이 왕국을 물려줄 후계자를
결정하기 위해 세 아들을 시험했던 이야기를 해드릴까 합니다."
아랍의 어느 왕에게 아들이 셋 있었습니다. 왕이 노년에 접어들자 셋 중 한 명에게 왕관을
물려주어야 했기 때문에, 신하들은 어느 아들에게 왕좌를 넘겨줄 건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한 달이 지난 후에 말해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며칠 후 왕은 큰아들에게 다음날 아주 일찍 말을 타러 나가고 싶다며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왕자는 왕에게로 갔지만 왕이 말했던 만큼 이른 시각은 아니었습니다. 왕자가
도착하자 왕은 옷을 입어야 하니 자기 옷을 가져오게 하라고 왕자에게 지시했습니다. 왕자는
시종에게 옷을 가져오라고 했고 시종은 왕께서 무슨 옷을 입으실 거냐고 왕자에게 되물었습니다.
아들은 그것을 묻기 위해 왕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왕은 알후바(아랍인이 입는 소매가 짧고 좁은
외투의 일종)를 입고 싶다고 말했고, 왕자는 시종에게 돌아가 왕이 알후바를 입고 싶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시종은 어떤 알메히아(역주: 스페인 내의 아랍족이 있었던, 거친 천으로 짠
작은 망토)를 입으실 건지 물었고, 왕자는 다시 왕에게 그것을 물으러 가야만 했지요. 왕자가
이렇게 몇 번이고 왔다갔다한 후에야 왕은 옷을 입고 신을 신을 수 있었습니다.
옷을 입고 신을 신자, 왕은 왕자에게 말을 끌고 오게 하라고 했습니다. 왕자는 왕의 말을
돌보는 사람에게 말 한 마리를 끌고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마구간지기는 어떤 말을 타실 건지
물었고, 왕자는 왕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안장과 재갈과 칼과 박차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말에 타기 위해 필요한 것 하나하나 때문에 그는 일일이
왕에게 물으러 간 것이지요.
모든 것이 준비된 후, 왕은 왕자에게 자기는 말을 탈 수 없겠으니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잘
보고 와서 자기에게 이야기해달라고 했습니다.
말에 올라탄 왕자는 수많은 신하들을 동반하고 풍악소리를 크게 울리며 행차를 시작했습니다.
얼마간 마을을 돌아다닌 후 왕자가 돌아오자, 왕은 마을에 나가서 보고 온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왕자는 풍악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던 것을 빼고는 모든 게 좋았다고
대답했습니다.
며칠 뒤에 왕은 둘째아들을 불러 첫째아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둘째아들도 큰 아들과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은 막내아들에게 다음날 아침 일찍 자기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막내아들은 아주
일찍 일어나서 왕이 깨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왕이 일어나자, 왕자는 공손하게 절을 하며
들어왔습니다. 왕이 옷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자 왕자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신을 신으실 건지
물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마치 자기 행동이 아버지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면 자신에게 또한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 아버지이므로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드리는 것이
그에게는 당연하고 합당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옷을 입고 신을 신자 왕은 말을 끌고 오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왕자는 어떤 말에 안장은
어떤 것으로 앉히고 재갈은 또 어떻게 하실 건지, 어떤 칼을 차고 그 외에 말을 타는 데 필요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말을 탈 때 누구를 곁에 세우고 싶으신지까지 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무엇
하나 반복해 묻는 일이 없이 왕의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왕은 말을 타고 싶지 않다면서 왕자에게 말을 타고 나가 둘러보고
나서 이야기해달라고 했습니다. 왕자는 전에 자기 형들과 함께 갔던 사람들을 대동하고 궁궐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왕이 왜 그러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왕자는 말을 타고 나가 모든 마을과 거리, 왕이 보물을 보관해둔 장소들, 사원들 그리고
끝으로는 도시에 있는 큰 건물 하나하나와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기에게 보여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말을 타고 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자기를 따라오던 모든 군사를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 왕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군대 묘기를 모두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을의 성벽과 탑과 요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두 다 둘러본 후, 그는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도착한 것은 이미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왕은 그가 본 모든 것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왕자는 만약 왕께서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자기 의견을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왕은 아무 걱정 하지 말고 한번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자는 아버지께서 아주
훌륭한 왕임에는 틀림없지만 자기가 보기엔 충분한 것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왕자의 질책에 왕은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했던 기일이 되자 신하들에게 막내
아들을 왕으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세 아들 중 누구라도 왕이 될 수 있었지만, 세 형제의 행동이 천지차이임을 확인한 왕은 오직
막내아들이 왕국을 물려받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그를 후계자로 공표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청년들 중 누가 가장 나을지 알고 싶으시다면 이 시험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청년들이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 지 뭔가 짚이는 바가 있으실 겁니다.
* 젊은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나가는가를 지켜보면 그가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짐작할 수
있다.@ff
여섯번째 이야기 사나운 신부 길들이기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심각한 목소리로 빠뜨로니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빠뜨로니오, 내 부하 중 한 명이 자기보다 부유하고 가문도 나은 여자와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그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여자라고 소문이 났다는
사실이라오. 과연 부하에게 그 여자와 결혼하라고 해도 괜찮을지 알고 싶으니 이야기를 좀
해주시오."
그러자 빠뜨로니오는 어느 선한 아랍인의 아들이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마을에 선량한 아랍인이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청년이었지만 워낙 가난해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의욕은 많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껏 풀이 죽어 지냈습니다.
같은 마을에는 그 청년의 아버지보다 훨씬 부자고 세력도 있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그 딸은 청년의 곧은 성품과는 대조적으로 사납고 모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나운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답니다.
어느날 그 선량한 청년은 아버지에게, 자신은 물려받을 재산이 없어 평생 초라하고 궁핍하게
살든지 아니면 고향을 떠나야 할 지경이니 차라리 자기가 좋은 혼처를 찾아보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이 맞다며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같은 마을에 사는 그 부자를 찾아가 딸을 달라고 부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매우 놀라며 아무리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그 딸의 성격을
아는 한 그녀와는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꼭 그녀와
결혼하겠다면서 비록 당장은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겠노라며 간청했습니다.
아들의 뜻이 워낙 확고한지라 아버지는 곧장 그 부자 친구를 찾아가 아들의 말을 그대로
전하면서 자기 아들이 그의 딸과 결혼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만일 그 결혼을 허락한다면 나는 친구가 아니라 사기꾼일 걸세. 자네 아들이 불행해질
수도 있고 자칫하다간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나는 정말 나쁜 놈이 되는 게 아닌가.
확신하건대 내 딸과 결혼하게 되면 죽거나 아니면 죽는 것만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될 걸세. 자네
뜻을 저버리기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게. 만일 정말로 내 딸을 사랑하여
데려만 가준다면 자네 아들이 아니라 그 누구라 해도 기꺼이 줄 수 있네."
그러나 청년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하지만 아들이 그 딸과 결혼하기를 무척
원하고 있으니, 자기의 아들을 기쁘게 받아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윽고 결혼식이 올려졌고 신랑과 신부는 신랑 집으로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랍인들의
관습대로 신혼부부에게 저녁상을 차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양가의 부모와 친척들은 신랑이 다음날
심하게 다쳐 있거나 시체로 발견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두 사람을 남겨두고 모두
나갔습니다.
두 사람만이 남게 되자 이들은 식탁에 마주앉았습니다. 신부가 한마디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신랑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개 한 마리를 보고 성을 내며 말했습니다.
"이봐, 이 개놈아, 손 씻을 물 좀 가져와!"
개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더니 그는 더욱 화가 나서 손 씻을 물을 가져오라고 다시
소리쳤습니다. 이번에도 아무 반응이 없자 그는 미친 듯이 성을 내더니 식탁에서 일어나서는
칼을 집어들고 개에게 갔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향해 칼을 들이대며 다가오는 것을 본 개는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도 개를 쫓아갔습니다. 그들은 테이블, 식탁, 화로 위를
뛰어다녔고 마침내 젊은이는 개를 잡아 머리와 다리를 잘라 토막을 내면서 테이블보, 식탁할 것
없이 온 집안을 피로 범벅이게 만들었습니다.
아직도 채 화가 가라앉지 않은 젊은이는 피투성이인 채로 식탁으로 돌아왔고 다시 주위를
살피더니 이번에는 고양이를 보고 손 씻을 물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역시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본 젊은이는 격분하여 말했습니다.
"아니, 이 응큼스러운 간신 같은 놈아! 내 명령을 듣지 않은 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못 보았어?
만약 내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너도 똑같은 신세로 만들어버리겠다."
고양이가 물을 가져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꼼짝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식탁에서 일어나더니 고양이의 다리를 붙잡아 벽에다 대고 치면서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이번에는 개를 죽였을 때보다 더 화가 난 것 같았습니다.
젊은이는 이렇게 사납고 성난 모습으로 다시 식탁에 와서는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는 신랑이 미쳤거나 이성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신랑은 사방을 둘러보더니, 이젠 집에 유일하게 남은 말 한 마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게 손을 씻으려 하니 물을 가져오라고 매우 사납게 소리쳤습니다.
당연히 말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죠. 그러자 신랑은 또 말했습니다.
"이봐, 내 집에 네놈만 남았다고 해서 명령을 거역해도 내가 가만히 내버려둘 거라고
생각하나? 만일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네놈뿐 아니라 이 세상 어떤 놈이라도 방금 전 개나
고양이 같이 비참한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는 걸 명심해!"
말이 자기 말을 듣고도 꼼짝하지 않고 있자 그는 이제까지보다 더 화를 내며 말의 목을
베어버리고, 완전히 잘게 토막을 내었습니다.
신부는 신랑이 분개해서 자기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그와 같은 결과를 맞게 될
거라고 소리치며 하나밖에 없는 말까지 죽이는 것을 보자, 그가 장난삼아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만일 집에 천 마리의 말과 천 명의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 명령을 어긴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죽여버리겠다고 맹세를 하면서 신랑은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상태로 피투성이가 되어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피로 범벅이 된 칼을 쥔 채 사방을 살피더니 주변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자기 부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향해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손 씻을 물을 가져오시오."
부인은 무슨 화를 당할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얼른 일어서서 손 씻을 물을 가지러
달려갔습니다.
"아! 당신이 내 말을 듣다니 신께 감사한다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 명령에 불복종한
녀석들과 같은 신세가 될 뻔했지 뭐요."
그런 다음 신랑은 즉시 음식을 준비하라고 했고 그녀는 신랑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가
난폭한 투로 명령할 때마다 그녀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숙이며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신부는 말 한마디 못하고 남편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면서 밤을 보냈고 이윽고 그들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시 후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밤에는 내가 너무 화가 났었던 모양이오. 지금까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소. 그러니
아침에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도록 신경을 쓰시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도록 하시오."
이윽고 아침이 되어 양가의 부모들이 신혼부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집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분명히 남편이 이미 죽었거나 심하게 다쳤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문 틈을
통해서 집안을 들여다본 그들은 집안에 신부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공포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신부는 문밖에 부모님들이 오신 것을 알고 그들에게 조용히 가서는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쉿, 조용히들 하세요. 이렇게 떠들다가 그이가 깨기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 모두 그 사람 손에
줄초상이 날거라구요."
신부의 말에 깜짝 놀란 그들은 지난밤의 일을 신부에게 모두 전해듣고는, 사나운 신부를
다스리기 위해 신랑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순하고 행복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신부의 아버지도 자기의 부인을 다스려 볼 심산으로 사위가 했던 것처럼 마구 화를
내며 집에 있는 말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인은,
"이봐요, 당신은 너무 늦었어요. 당신이 말 백 마리를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효과도 없을
거예요. 그럴려면 좀더 일찍 시작하셨어야죠. 우리는 이제 서로를 너무 잘 알잖아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작님, 만일 당신의 부하가 그 사위와 같이 집안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결혼을 허락하시고,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만두게 하십시오. 그리고 더 나아가 만일 백작님이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을 하신다면, 당신께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처음부터 알리라. 그렇지 않으면 후에 아무리 알리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ff
일곱번째 이야기 자식을 살해할 뻔한 아버지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은 그가 들은 치욕스러운 말에 매우 화가 나서 빠뜨로니오를 불렀다.
빠뜨로니오는 화난 백작을 위로하며, 돈을 주고 조언을 구하려던 한 상인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마을에 직업도 지위도 없고 오직 돈을 받고 조언을 해주며 사는 현자가 있었습니다. 한
상인이 조언을 파는 현자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 마을로 찾아갔습니다. 상인이 조언을 얻고자
값을 묻자 현자가 대답하기를 조언에 따라서 가격도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자는 상인이 일
마라베디짜리 조언을 부탁하자 다음과 같은 조언을 주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을 초대해서 처음 보는 음식을 대접한다면, 우선 제일 먼저 나오는 요리로
배를 가득 채우십시오."
상인이 그 조언은 중요한 것이 못된다고 하자 현자는 자기가 받은 일 마라베디 역시
마찬가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상인은 두배의 값을 지불하며 조언을 청했고 현자는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습니다.
"당신이 아주 격분하여 분풀이를 하고 싶을 때라도, 정확한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불평하지도
격분하지도 마십시오."
상인은 그와 같은 뻔한 조언을 더 얻으려 했다가는 가지고 있는 돈만 모두 잃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고 금방 얻은 교훈만이 마음 속 깊이 새기고 돌아왔습니다.
상인은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떨어진 다른 지방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임신한 자기 부인을
남겨둔 채 배에 올랐습니다. 그 후 상인은 20년간을 그곳에서 장사를 하며 살았습니다. 고향에
남겨진 부인은 아들을 낳았고 그녀는 남편이 죽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오직 아들을 위로삼아
사랑하고 심지어는 남편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침실에서 잠을
잤답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소식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고통중에서도 정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한편 상인은 마침내 부자가 되어 금의환향하게 되었고, 예고도 없이 자기 집에 들어가서는
부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몰래 숨어 엿보았습니다.
해질녘에 아들이 돌아오자, 부인은 아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어디 다녀오시는 거죠?"
상인은 '여보'라는 소리를 듣자 그 자가 새 남편이거나 아니면 남편이라기에 너무 젊으므로
애인쯤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를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에 두 마라베디를 주고 산, 격분하지 말라는 현자의 조언을 기억해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부인과 아들이 함께 저녁 식사하는 광경을 보자 상인은 또 다시 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충고를 기억하여 다시 분을 참았습니다.
이윽고 밤이 되자 그들은 함께 잠자리로 갔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그 자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는 다시금 그 조언을 되뇌이며 참았습니다.
날이 밝기도 전에 부인은 소리없이 흐느끼기만 하더니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아니, 아들아, 상선이 왔다는구나! 네 아버지가 간 곳에서 말이야. 가능하면 아침 일찍
항구로 나가보렴. 혹시 네 아버지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니."
이 말을 듣자 상인은 아내가 임신한 상태에서 장사하러 떠났었다는 것을 떠올렸고, 부인과
같이 있던 남자는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자기가 아들을 죽였더라면
평생을 두고 괴로워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도록 도와준 현자의 조언을 그는 크게 갑사하고
기뻐했답니다.
"백작님, 아무리 말로 분을 해소하면 고통이 줄어들 것 같아도 사건의 진상을 알기 전에는
절대로 화를 내지 마십시오. 진실을 알기까지 조금 참는 것은 아무 해도 없지만 화를 내면 곧
후회를 하게 되는 법이랍니다.
* 진실을 알기 전에 화를 내면 격분하는 만큼 후회하게 된다.@ff
여덟번째 이야기 수탉과 여우
언젠가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과 빠뜨로니오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내 지배하에 있는 땅이 넓다는 것을 그대도 알고 있소. 그러나 그런 만큼
걱정거리도 많다오. 짜임새 있게 요새화된 곳이 있는가 하면 허술한 지역도 있고, 어떤 곳은 미처
내 권력이 미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나보다 우세한 자들과 맞서야 할 때면 스스로
내 친구라거나 고문임을 자청하는 자들이 내게 겁을 준다오. 내 관할지역 안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멀리 떨어진 곳에는 가지 말고 나의 힘이 미치고 안전한 곳에만 머루르라고 말이오. 내
그대의 충성심과 박식함을 알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어찌해야 하는지 알려주기
바라오."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확실한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나쁘다고 판단했던 것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으며 그 반대로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 때로는 나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래를 점칠 수 없는 일에 관해 충고할 때면 심히 괴롭습니다. 그 충고가
적절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므로 굳이 감사의 말을 들을 까닭이 없으나, 올바른
충고를 하지 못하면 그 화가 조언을 한 사람에게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충고를 원하시는
상황은 불투명하고 위험하므로 제 의견을 접어두었으면 합니다만, 백작님께서 이렇게 물으시니
회피할 길이 없군요. 그러나 충고를 드리기에 앞서 수탉과 여우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골 농장에 많은 암탉과 수탉을 기르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수탉 중 한 마리가 집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아무 겁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지요. 그때 여우 한 마리가 이 수탉을 보고는
잡아먹을 시기를 노리며 몰래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수탉은 이를 눈치채고 농장 한 가운데에
외로이 서 있는 나무 위로 날아올랐지요. 수탉이 달아나자 여우는 진작 덮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어떻게 하면 그 닭을 잡을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잠시
후 나무 밑으로 가서는 수탉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 내려와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탉은 여우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지요. 듣지 좋은 말로는
닭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여우는 자기를 믿지 않은 대가로 큰 화를 입을 것이라며
협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수탉은 여우가 보호해 주겠다고 하든지,
협박을 하든지 아랑곳하지 않았답니다.
말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여우는 나무 밑동을 갉아먹으며 꼬리로 세차게 후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불쌍한 수탉은 지레 공포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여우의 행동은 단지 겁을
주기 위한 것이며 해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은 못했던 거지요. 무조건 겁에 질린 수탉은 다른
나무로 옮기는 것이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는 겨우겨우 날아 옆에 있는 나무로 갔습니다.
수탉이 겁을 집어먹은 것을 눈치챈 여우는 집요하게 따라가 닭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계속
옮겨다니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공포 때문에 정신을 잃은 닭은 나무에서 떨어졌고 여우에게
잡아먹혀버렸습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그 누구의 협박이나 거짓된 충고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이유 없이 놀라지
마시고 위험이 있을 법한 일은 신중히 행하십시오. 멀리 떨어져 있는 땅 한 치라도 지키기 위해
항상 싸우셔야 하며,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충분한 물자를 지니셨으니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 든든하지 않다고 두려워 마십시오. 근거 없는 두려움 때문에 변방을 버려두신다면 그
땅들로부터 시작하여 야금야금 당신이 설 땅을 모두 잃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변방을
지키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을 적이 보면 그것을 빼앗으려 더욱더 날뛸 것이기 때문이지요.
백작님은 그들이 설치는 것을 보시면 더욱 겁에 질리게 될 것이고 소유한 것을 몽땅 빼앗길
때까지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처음부터 백작님 것을 지키신다면 안심하고 편히
지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수탉이 처음에 자리잡았던 나무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처럼 말입니다. 그 예는 요새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유용하다고 봅니다. 요새를
포위하려고 나무로 집이나 성을 올리는 것을 보고 두려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요. 이런
짓은 포위된 사람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제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실 수 있도록 한 말씀 더 드리지요. 벽을 타고 넘거나 땅을 파지 않고는 그 어떤 요새로
점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벽이 높다면 사다리가 그 꼭대기까지 닿지 않을 것이며 땅을 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요새가 함락되는 것은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공포에, 특히
이유 없이 공포에 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백작님처럼 세력 있는 사람이든 백작님보다는 못한 사람이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상황을 잘 관찰하고 난 후 확고한 태도로 밀고나가야 합니다. 일단 일을 시작했으면 쉽게
놀라거나 이유 없이 겁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위험이 닥쳤을 때 살아남는 자는 도망하는 자가
아니라 싸우는 자입니다. 늑대의 공격을 받은 작은 강아지가 버티고 서서 으르렁거리면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큰 개일지라도 도망치면 늑대가 따라가 죽여버릴 것입니다."
* 근거 없는 두려움에 떨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을 지켜라.@ff
아홉번째 이야기 양약을 입에 달게 하는 법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빠뜨로니오, 내가 무척 아끼는 친척이 있었는데 어린 아들을 하나 남기고 죽었다오. 그래서
내가 그애를 키웠지. 그 아이와 나의 유대관계를 봐서나 그애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그리고 그애가 자라면 감사해 하며 나를 위해 일해 줄 거라고 생각했기에 아주 잘 교육시켰다오.
나는 그애를 친아들처럼 사랑했소. 그런데 아이가 똑똑하고 선량하기는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때때로 미혹에 빠지고 올바른 길을 가지 않는다오. 그애가 정신을 좀 차린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대는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애의 장래를 위하여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좀 알려주겠소?"
이 말을 들은 빠뜨로니오는 백작에게 위대한 철학자와 그가 가르치는 젊은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떤 왕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왕자를 교육시키기 위해 자기가 신임하는 철학자에게
맡겼습니다. 왕이 죽자, 아직 어린 아들이 왕의 뒤를 계승했습니다. 철학자는 그가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어린 왕은 사춘기에 접어든 후부터 사부의 말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젊은 조언자들의 말만 들어려 했지요. 그들은 왕자에게 아무런 신세도
지지 않았기에 닥쳐올 재난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야 할 의무감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린 왕은 재산을 잃어갔음은 물론이고 예의범절도 생활태도도 눈에 띄게
나빠져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왕을 욕했고, 예전에는 훌륭하게 교육받은 그가 이제는 제멋대로
행동하며 소유했던 그 많은 재산을 다 탕진해버렸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사태가 점점 악화되어가자 철학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왕에게
애원도 해보고 비위도 맞춰보고, 심지어는 나무라보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젊은 혈기는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커다란 장애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조언이
쓸모없음을 알게 되자 철학자는 다음과 같은 일을 꾸몄습니다.
그는 궁 안에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예언자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전해듣게 되었고 나중에는 젊은 왕의 귀에까지 가 닿게 되었습니다. 왕은
철학자에게 사람들의 말대로 그렇게 예언을 잘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처음엔 부인하는
척했으나 결국에 가서는 사실이라고 고백하면서 다른 사람이 알아선 안 되니 더 이상은 묻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으레 무엇이든 알고 싶어하듯이 왕도 철학자가 어떻게 예언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
안달을 했습니다. 하지만 철학자는 이리저리 회피하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그럴수록 왕은
더욱더 몸이 달았습니다. 왕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자 철학자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했고, 대신 아침 일찍 아무도 모르게 자기와 함께 궁을 빠져나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황폐해진 마을이 있는 계곡으로 갔습니다. 얼마를 걷고 있는데 나무
위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듣기 싫은 소리로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후에 다른 까마귀 한
마리가 근처의 다른 나무에서 또 울었습니다. 두 마리는 저마다 앉은 나무에서 듣기 거북한
소리로 계속해서 울어댔습니다. 한참은 듣고 있던 철학자는 갑자기 자기 옷을 쥐어뜯으면서 마치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신세라도 되는 듯 구슬피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젊은 왕은 크게 놀라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철학자는 몇 번이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왕은 계속해서 이야기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마지못한 듯 철학자는 입을
열었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제가 아둔하여 왕께서 계속 땅과 재산을 잃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들까지도 알고 있지 뭡니까. 이제는 새들까지도 임금님을 무시하니 제가 무슨 면목으로
선왕을 뵙겠습니까?"
젊은 왕은 도대체 새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기에 그러는지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철학자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저 두 까마귀는 자식을 결혼시키기로 서로 약속해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첫번째 까마귀가
결혼하기로 한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임금님께서 왕좌에 오른
뒤부터 자기네 계곡에 있는 마을들이 황폐해지고, 무너진 벽들 사이의 폐허에서 자라는 먹이가
많아져서 이제는 자기가 더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까마귀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것 때문에 결혼을 미루려 한다면 참 미련한 짓이라고 대답하더군요. 그 까마귀 하는
말이 이 왕이 계속 살아만 있게 되면 금방 자기가 더 부자가 될 거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열
배가 더 큰 마을이 있는 자기네 계곡도 얼마 안 가 황폐해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결혼을 미룰 이유가 아니라고 하니 다른 까마귀도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젊은 왕은 이 말을 듣고 큰 고통에 사로잡혔고 자기 영토를 황폐해지게 내버려두는 것은 결국
손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철학자는 왕이 고통스러워하며 근심에 싸여 있는 것과 아직
남아 있는 땅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잘 지킬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아주 훌륭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얼마 안 가서 젊은 왕은 자기가 통치하는 왕국은
물론 사생활까지 모든 것을 옛날 그대로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빠뜨로니오는 루까노르 백작에게 말했습니다.
"백작님께서는 그 청년을 교육시키고, 그의 재산이 늘어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야기와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효능은 높다는 것을 참고로 하시어 백작님께서 어떻게
하셔야 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가 똑바로 행동하도록 하려고 벌을 주거나
나쁘게 대해선 절대 안 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멀리하려
합니다. 본인에게 해가 될 일을 하지 못하도록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이지만 젊은이들은 대개 그런 친구를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쁘게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백작님과 그 사이에도 증오가 싹튼다면 그러한 증오는 이후에 더 나쁜 방향으로
악화되어 갈 수도 있습니다."
* 젊은이를 책망하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를 바른 길고 이끌기
위해서는 되도록 듣기 좋은 말로 설득하라.@ff
열번째 이야기 서로 먼저 종을 치겠다고 싸운 성직자와 수도사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이야기했다.
"빠뜨로니오, 내 친구와 나는 우리 둘의 명예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오. 나는
혼자서도 그 일을 할 수가 있지만 그가 도착할 때까지 차마 그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소.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현명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소."
그래서 빠뜨로니오는 대교회의 성직자들과 파리의 수도사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교회의 성직자들은 교회의 우두머리인 그들이 새벽 종을 쳐야 한다고 날이면 날마다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수도사들은 교회 성직자들은 공부도 해야 하고 새벽기도도 드려야 하므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지만, 자신들은 그런 일들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자기들이 새벽 종을
쳐야 한다고 반박하였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놓고 큰 소송이 일어났고 이 소송을 위해 양측은 변호사에게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 소송이 오랜 시간 계속되자 교황은 한 추기경에게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을 해결하라며 모든 문제를 위임했습니다. 추기경은 그간의 소송서류를 가져오도록
시켰습니다. 엄청난 양의 서류를 보고 추기경은 양측에게 그 다음날 판결을 하겠으니 참석을
하라는 통지를 보냈습니다. 이윽고 다음날 양측이 모인 자리에서 추기경은 모든 서류를
태워버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 소송은 너무나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당신들 모두 많은 돈을 낭비했고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소송을 끌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먼저 일어난 사람이 종을 치도록 하십시오."
이야기가 끝나자 빠뜨로니오는 이렇게 얘기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그 일이 백작님과 친구분, 두 분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지만 우선 백작님께서
해결하실 수 있는 일이라면 친구분을 기다리지 말고 서둘러 일을 처리하십시오. 왜냐면 때때로
잘 마무리 될 수 있는 일이 미적거리다 정작 그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땐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 자신에게 크게 유익한 일이면 지체하지 말고 그 일을 해야 한다.@ff
열한번째 이야기 꿀항아리와 함께 깨져버린 꿈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내게 세상의 모든 일들은 쇠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잘 이용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었소. 만약 그가 내게 말한 대로만 된다면
그것은 내게 큰 이득이 될 것 같소."
그 이야기를 들은 빠뜨로니오는 이렇게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저는 헛된 망상이 아니라 확실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들어왔습니다. 허황된 것에다 기대를 건다면 그 사람에게는 도냐 뚜루아나라는 여인에게
일어났던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독히 가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여인은 머리에 꿀항아리를 이고 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면서 그녀는 그 꿀을 팔면 달걀 한 줄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달걀을
부화시키면 닭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그 닭을 판 돈으로 양을 사고 또 소를 사고 그렇게
계속하면 다른 이웃들보다 훨씬 부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여인은 상상 속의 재산을 가지고 이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딸은 어떻게
결혼시킬까? 며느리와 사위들이 두루두루 모여 사는 그 거리를 어떻게 뻐기며 지나다닐까?
그렇게 가난하던 내가 큰 재산을 모았으니 사람들이 그 행운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자신의 밝은 앞날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그녀는 큰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녀는 자신의 이마를 치며 웃었고 그 순간 꿀항아리는
바닥에 떨어져서 박살이 났습니다. 깨져버린 항아리를 본 그녀는 꿀항아리부터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는 너무나 비통하게 울었습니다. 허황된 것에 모든
희망을 다 걸고 있었는데 결국 그녀가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작님, 사람들이 백작님께 하는 말이나 백작님께서 기대하시는 것들이 확실한 것이기를
바라신다면 언제나 그런 일들이 타당한 근거가 있는지 혹시나 허황한 기대는 아닌지 따져보셔야
합니다. 지금 누리는 행운을 잃지 않으시려면, 확실하지 않은 이익을 바래 지금 손안에 있는 것을
거는 모험을 하지 마셔야 합니다."
* 하늘을 나는 두 마리 새보다는 내 손 안의 한 마리 새를 더 소중히 여겨라.@ff
열두번째 이야기 죽은 척해야 했던 여우 이야기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얘기했다.
"빠뜨로니오, 내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은 형편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에게
갖은 모욕과 간섭을 받으며 살고 있소. 사람들은 내심 공개적으로 대놓고 그 사람을 헐뜯을
구실이 될 일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오. 나의 친척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모욕을 참기
어렵다면서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얘기한다오. 이럴 때 내가
어떤 충고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대에게 조언을 청하는 것이니 현명한 조언을 좀 들려주시오."
그러자 빠뜨로니오는 루까노르 백작에게 죽은 척해야 했던 한 여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밤 여우 한 마리가 닭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닭을 쫓다보니 어느 새 날이 밝아왔고 이미
사람들이 길가에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숨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민끝에
여우는 밖으로 몰래 나와 길가에 죽은 것처럼 누워 있기로 했습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여우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여우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여우의 이마에 있는 털을 아이들 이마에 붙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가위로 털을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여우 등의 털을, 그 다음 사람은 옆구리 털을
잘라갔습니다. 이런 식으로 결국 여우는 옆구리 털이 모두 깍인 채 길가에 누워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우는 그까짓 털이 잘린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여전히 죽은
시늉을 하며 누워 있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사람은 여우의 엄지손톱이 생인손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손톱을 뽑아갔고, 그 다음 사람은 여우의 이가 어금니 통증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이를 뽑아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우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남자가 나타나 여우의 심장이 사람의 심장병을 치료하는 데 좋을 거라고
말하면서 칼을 꺼내 여우의 심장을 꺼내려 했습니다. 이때 여우는 자신의 심장을 도려낸다면 더
이상 자신은 회복할 길이 없이 목숨을 잃을 께 뻔하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일어나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백작님, 친척에게 이렇게 충고해주는 게 좋겠습니다. 특별히 자신에게 큰 피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웬만한 일은 참는 것이 낫고, 특별히 적극적인 방안이 없을 땐 차라리 수치심을
느끼거나 모욕적이라는 내식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수치심이나 모욕을
느낀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 경우 자신에겐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지요. 피할
수 있고 참을 수 있는 일이라면 참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명예에 큰 해가 되는 경우라면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대처하는 것이 좋겠지요. 불명예스럽게 사느니 명예와 권리를 지키며
죽음을 맞는 게 오히려 나으니까 말입니다.
* 참아야 하는 것은 참고 잊을 수 있는 것은 잊어야 한다.@ff
열세번째 이야기 다리가 부러져 목숨을 건진 기사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조언자인 빠뜨로니오에게 조언을 구했다.
"빠뜨로니오, 나는 지금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소. 그 내막은 이러하오. 한 이웃과 나는 어떤
별장까지 걸어서 가기로 내기를 했소. 물론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그 집의 임자가 되는 것이오.
실제로 나는 아주 날렵하니 시합에서 이겨 큰 명예와 이득을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소.
헌데 갑작스레 몸이 개운치 못하니 지금으로서는 이길 가망이 없어져 버렸다오. 내 비록 많은
것을 걸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 집을 잃게 된다면 시합에서 이겨 그것을 얻는 명예보다 시합에
져서 재산을 잃는 불명예가 나를 갑절이나 더 괴롭힐 것이오. 당신을 믿는 터에 어찌하면 좋을지
묻는 것이라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염려하시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럴 경우엔 아주 좋은 방책이 있습니다. 마침
돈 뻬드로 멜렌데스 데 발데스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으니 그 얘기를 들려드리지요."
레온 왕국의 기사였던 돈 뻬드로 멜렌데스 데 발데스는 난처한 일만 생기면 이렇게 말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신에게 영광 있으라! 신이 하신 일이라면 바로 그것이 최선의 방책일지니!"
그런데 이 돈 뻬드로는 왕의 총애를 받는 대신이었기에 그를 시기하는 숱한 정적들이 있어서
그만 중상모략으로 왕의 미움을 사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돈 뻬드로가 집에 있는데, 왕의 부하가 그를 붙잡아 대령시키라는 칙서를 가지고 도착했습니다.
그의 집에서 반 레구아(역주: 1레구아는 약 5.5km) 떨어진 곳에는 친히 사형을 집행키 위해
행차한 왕과 구경하려는 군중들이 모여 있었지요. 그런데 돈 뻬드로가 왕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말을 타러 나가던 중 그만 현관 계단에서 떨어져 한쪽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왕의
명령을 따를 수 없게 되자 체포하러 왔던 부하와 수행원들은 이를 보고 이렇게 빈정거렸습니다.
"어이, 돈 뻬드로 멜렌데스. 당신은 항상 신이 하신 일이 최선이라고 말하더니만 지금이야말로
그렇게 되었군."
돈 뻬드로는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이제 비로소 사람들이 신이 하시는 일이 최선임을
알게 되지 않았느냐고 대꾸했습니다.
형을 집행하러 모여 있던 이들은 죄수가 도착하지 않는 이유를 전해 듣고서 왕에게 명령을
수행할 수 없는 까닭을 아뢰었지요. 그래서 왕은 돈 뻬드로의 다리가 나을 때까지 형 집행을
연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돈 뻬드로가 다시 말을 탈 수 있을 만큼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왕은 중상모략의 내막을 알고서 그를 모함한 이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총애하던 신하를 죽일 뻔한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사과하는 뜻으로 많은 재물과
높은 관직을 하사하는 한편 그가 보는 앞에서 정적들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신이 무고한 돈 뻬드로를 구했다고 여겨 그가 즐겨 말하던 '신이 하신
일이라면 모든 것이 최선'이라는 말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그러니 닥친 불운을 한탄하지 마시고 신이 허락하신 일이 최선임을
믿으십시오. 또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두 가지 종류가 있음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즉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때와 어떤 조언도 소용없는 때입니다. 먼저의 경우에는 그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만일 신의 뜻대로, 혹은 우연히 불운이
닥친다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닥친 일 또한 신의 뜻이니 저로서는
어떠한 충고도 해드릴 수 없군요. 하지만 신이 하신 일이 최선이라면 역시 신께서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 우연히 닥친 불운 앞에서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ff
열네번째 이야기 거짓 나무에게 생긴 일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빠뜨로니오, 내게서 큰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내 주변에서 수없이 말썽을 일으키며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이 몇 있소. 그들은 언제나 나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거짓말만 일삼는다오.
그럴듯한 거짓말로 내게 큰 손해를 가져오는가 하면 부하들을 부추겨 내 말에 거역하게
만든다오. 난들 속임수를 쓸 줄 모르겠소? 나도 마음만 먹으면 그들보다 훨씬 더한 속임수도 쓸
수 있지만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소. 거짓말은 항상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이런
자들을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내게 조언을 좀 해주실 수 있겠소?"
이 말을 들은 빠뜨로니오는 백작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거짓과 진실이 서로 만났습니다. 어느날, 거짓은 진실에게 자기들 사이에 나무를 한 그루
심으면 과일도 얻고 더운 날엔 그늘에서 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습니다. 진실은
단순하고 무슨 일이든 좋게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둘 사이에 심은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자 거짓은 진실에게 나무를 반씩 나누어 관리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습니다. 진실이 동의하자 거짓은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가며 뿌리는 나무의
생명이고 본질적인 것이니 나무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땅 밑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뿌리를 가지라고 진실을 설득하면서 자기는 이제 겨우 움이 튼 작은
가지들을 갖겠다고 했습니다. 가지는 땅 위에 있어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라버리거나 잎을 따버릴 수도 있고, 짐승들이 갉아먹거나 새들이 흔들어댈 수도 있으며, 더위에
말라버리거나 추위에 얼어버릴 수도 있으니 언제나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거짓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뿌리는 안전하다는 것이었지요.
진실은 교활한 구석이 없는 데다가 아무나 쉽게 믿기에 자기 친구인 거짓의 말을 듣고 뿌리
쪽을 택했습니다. 거짓은 자기의 속임수가 제대로 먹혀들어가 진실이 뿌리를 택하는 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진실은 자기에게 배당된 부분에서 살기 위해 땅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반면 거짓은 위에 남아
땅 위에 사는 것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거짓은 말주변 좋게 속임수를 쓸 줄 알았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그에게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나무는 곧 성장하기 시작해 굵은 가지 위에 넓은 잎이
무성하게 달려 사람들을 유혹하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나무 그늘로 와서 오랫동안 머물려 꽃을 보고 즐겼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거짓나무의 그늘에 앉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 그늘 밑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거짓은 아첨을 잘하고 아는 것도 많았기
때문에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고, 모두가 그로부터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거짓은 단순한 사람들에게는 작고 평범한
거짓말을 했고, 좀더 영리한 사람들에게는 약간 복잡한 거짓말을, 그리고 현명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복잡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개야, 내가 너에게 이러저러한 일을 해줄게"라고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거짓말입니다. 거기에 맹세를 하고 담보가 주어질 때, 그
거짓말의 효력은 두 배로 증가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해준 뒤,
자기가 약속한 것을 해줄 때가 오면 그때서야 모든 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거짓은 아는 게 많았고, 자기 나무 그늘 아래로 오는 사람들에게 이것 저것 듣기 좋은
말을 해 주었습니다. 거짓은 어떤 때는 나무의 아름다움으로, 또 어떤 때는 속임수로 사람들을
현혹했지요. 그런 기술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거짓의 말은 잘 먹혀들어갔고,
모두가 그의 속임수에 넘어갔습니다.
거짓은 이렇게 하루 하루 일이 잘 풀려나갔지만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불행한
진실은 땅 밑에 숨겨진 채 지냈습니다. 아무도 그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고, 아무도 그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으며, 누구 하나 그것을 찾아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진실은 자기에게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친구의 충고를 듣고 택한 뿌리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쩔 수
없이 뿌리를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나무가 아주 훌륭한 가지와 넓은 잎이 있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서로 겨루기라도 하듯 색색의 꽃을 피워냈지만, 진실은 아무것도 먹을 게
없었기 때문에 열매가 맺기 전에 나무의 뿌리들을 다 갉아 먹어버렸습니다.
뿌리가 모두 갉아 먹히고 잘린 거짓의 나무는 강한 바람이 불어오자 단번에 쓰러져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거짓은 큰 상처를 입었고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죽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생긴 구멍을 통해 숨어 있던 진실이 나왔을 때 땅 위로 올라온 진실은 자기
주변에 거짓과 그를 찾아온 이들이 모두 죽거나 크게 다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거짓에게 배웠던 기술은 그럴 때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입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거짓은 큰 가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말과 아부의 꽃은 사람들이 유쾌하고
즐겁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당신 적들이 속임수와 거짓된
지혜를 사용한다면 최대한 그들을 멀리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속임수를 따라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거짓말하는 기술을 이용하여 혜택을 누리는 자들을 시샘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이
얼마 가지 못할 것이며 끝이 좋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요. 사람들이 그 그늘 밑에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었던 거짓
나무에게 일어났던 일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진실이 비록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진실에 손을 내미시고 더 높이 평가하십시오. 그러면 백작님께서는 틀림없이 그 때문에 행복하게
될 것이며 바람직한 결과를 얻게 되실 것입니다. 백작님은 결국 이 세상에서는 많은 부와 육신의
영광을 얻게 되실 것이고, 저승에서는 영혼이 구원받으리라는 확신을 얻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진실을 따르고 거짓을 멀리하라. 거짓은 또다른 거짓을 낳기 마련이다.@ff
열다섯번째 이야기 참새와 제비
루까노르 백작이 두 명의 이웃과 같은 시기에 싸움을 하게 되었다. 한 명은 별로 강하지는
않지만 가까이 살고 또 한 명은 힘이 아주 세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루까노르는 이
두 사람과의 싸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관해서 빠드로니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빠뜨로니오는 한 남자와 참새와 제비 사이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마을에 몸이 허약한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참새와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에 매우
짜증이 나 있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그는 친구를 찾아가 참새와 제비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좋은 해결책이 없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친구는 참새와 제비를 동시에 해치울 수는 없으나 그 중에 한 마리를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어느 쪽이 더 방해가 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찾아온 친구는 곰곰히 생각해본 뒤,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제비는 참새보다 더 시끄럽게 지저귀지만 집안에 들어왔다가는 다시 나가버리거든. 그런데
참새란 놈은 항상 집안에 들어와 있으니 참새가 더 귀찮다네."
"그러므로 백작님, 비록 멀리 살고 있는 사람이 힘이 더 셀지라도 우선은 약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과 먼저 싸워야 한답니다."
* 힘이 약할지라도 가까이에서 괴로히는 자와 먼저 상대하라.@ff
열여섯번째 이야기 돼지 시체를 들고 시험한 우정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은 빠뜨로니오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나에겐 나를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재산과 삶을 희생할 것이며 세상의 어느 것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소. 당신의 그 올바른 직관으로 그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겠소?"
"백작님, 좋은 친구만큼 든든한 재산이 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이 어려운 지경에
처하면 어떤 친구들이 외면할 것이며 또한 정작 도움이 필요한 때 누가 당신에게 도움을 줄
친구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백작님께서 누가 어려울 때 의리있고 좋은 친구인지
확인하시기 위해선, 친구가 많은 아들을 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어떤 착한 남자가 살았는데, 그에겐 아들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에게
좋은 친구를 많이 두라고 충고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충고를 따르려고 애를 썼고, 친구로
만들려고 많은 이들에게 선심을 썼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그에게 자신들은 진실한 친구라고
말했고, 필요하다면 그를 위해 자신들의 인생과 재산을 희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일러준 대로 했는지 그리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지
물었습니다. 아들은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 중 열 명 정도는 어떠한
위험이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를 저버리지 않을 친구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그처럼 단시간 내에 많은 친구들을 사귄 것을 칭찬했습니다. 사실 이미
늙어버린 아버지에겐 오직 친한 친구 하나와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 하나 밖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친구들에 대해 확신하자,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친구들을 시험해
보라고 충고했습니다.
"돼지 한 마리를 죽여서 그걸 자루에 넣고 너의 친구들 집을 이집 저집 다녀보아라.
친구들한테는 그것이 네가 지금 막 죽인 시체라고 말을 하렴. 또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고 말하거라. 그리고 친구들에게 너희는 내 친구이니 이 시체를 좀
숨겨주고 필요하면 날 보호해 달라고 청해보거라."
아들은 그대로 행했습니다. 모든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저지른 불행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모두들 한결같이 다른 어떤 일이라도 도와줄 수 있지만 이번만은
사정이 있어 도와줄 수 없으며 제발 자신들의 집에 다녀갔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몇몇은 그를 위해 변호해주겠다고 이야기했고, 또 몇 사람은 친구가
교수대에 끌려가더라도 끝까지 그를 버리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친구들을 시험해 본 후, 아버지에게 돌아와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듣고 아들에게 아버지의 친한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를
똑같은 방법으로 시험해 보라고 충고했습니다.
아들은 먼저 아버지와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를 시험하러 찾아갔습니다. 밤에 그 친구 집에
죽은 돼지를 넣은 자루를 들고 찾아가서는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에 관해 자초지종을 밝히고 모든
친구들이 자기에게 섭섭하게 대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와의 친분을
생각해서라도 곤경에서 구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아버지와 친하지 않은 친구는, 비록 그를 잘 모르고 도와주어야 할 의무도 없지만 자신과 그의
아버지와의 친분을 생각해서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체라고 믿는 죽은 돼지 자루를
들고 가서 양배추밭 고랑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곤 원래 있던 대로 양배추들을 다시 심고,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면서 그를 돌려 보냈습니다.
아들은 돌아와 아버지에게 그 일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음날에 어떻게
하든지 트집을 잡아 그 친구와 말다툼을 벌여 가능한 한 아주 심한 모욕을 주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그대로 했고, 아버지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넌 아주 못돼먹은 놈이구나. 하지만 비록 네가 더 버릇없는 짓을 한다고 해도 밭에 심은
양배추들을 다 뽑아버리지는 않겠다."
아들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버지는 자신과 아주 친한 친구를 시험해보라고 했고,
아들은 또 그렇게 했습니다. 그 집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 아버지의 친구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죽음으로부터 그 아들을 지켜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같은 동네에서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마침, 몇몇
사람이 그 젊은이가 자루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본 터라 사람들은 그를 살인범으로 고소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결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결국, 그 아들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아버지 친구는 그를 구해주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재판관들에게 저 젊은이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으며,
진짜 살인범은 바로 자신의 외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외아들은 결국 자백을 한 뒤
사형선고를 받았고, 누명을 썼던 아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자, 백작님. 오늘 친구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 예화가 진실된
사람을 가려내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친구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시절에만 친구일 뿐이고, 그 시절이 지나가버리면 우정도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자, 백작님. 누가 좋고 진실된 친구인지 그리고 그런 친구들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셔야 하는지 이제 아셨을 겁니다."
* 참된 우정은 어려울 때 드러나며, 진실을 통해서만 지켜나갈 수 있다.@ff
열일곱번째 이야기 개미가 살아가는 방법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사람들 말이 내가 이만하면 충분히 부자인 셈이니 걱정하지 말고 이젠 좀 즐기고,
먹고, 마시고, 쉬기도 하라는 거요. 이미 내겐 여생 동안 쓰고도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줄
충분한 재산이 있지 않느냐고 말이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당신도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젠 내가 그만 일하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 말을 듣고 빠뜨로니오는 물론 쉬고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개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느냐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개미는 미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먹고 살기 위해 그리 많은 준비를 해둘 필요는 없을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개미들은 매년 추수 때면 집에서 나와 탈곡장으로 가서 힘닿는 데까지
낟알을 모아들이고 자기들의 곡식창고에 넣어둡니다. 그러다가 비가 오면 그것을 밖으로
꺼냅니다. 이 때 사람들은 그들이 곡식을 말리려고 그런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미들이 곡식을 집 밖으로 꺼낼 때는, 비가 오기 시작하고 겨울이 다가오는 때입니다. 비가 올
때마다 말리기 위해 곡식을 내놓아야 한다면, 개미들의 노고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일한 보람도
별로 없을 겁니다. 겨울엔 해가 뜨는 일이 별로 없고 따라서 젖은 곡식을 말리기가 무척
힘드니까요.
사실 첫비가 올 때 곡식을 꺼내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개미들은 자기들 집에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곡식을 채워넣습니다. 그것을 모두 합쳐보고는 자기들에게 일년 동안 필요한 양식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런데 비가 오면 곡식은 젖어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 개미들은 만약
곡식이 자기들 집안에서 싹이 튼다면 먹고 살기 위해서 모아둔 양식이 자기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그래서 그들은 곡식마다 싹이 터 나오게 되는 가운데 씨를
빼내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그 나머지를 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비가 와도 더 이상
싹이 트지 못합니다. 이런 식으로 개미들은 일 년 내내 양식을 보관합니다.
게다가 먹고 살기에 필요한 것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날씨가 좋을 때면 집에서 나와
눈에 띄는 대로 나뭇잎 조각들을 집으로 가지고 갑니다. 개미들은 혹시라도 식량이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을 한 순간도 헛되이 흘려버리지 않고 아주 잘
활용한답니다.
"그러니 백작님, 미물에 불과한 개미도 매일같이 식량을 찾아 그렇게 열심히 지혜롭게
일하는데,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위대하며 만물을 통치하고 있는 인간이 이미 벌어놓은
것에만 의지해 살아간다면 될법한 일입니까? 새로 집어넣는 것은 없고 매일같이 꺼내기만 하는
주머니는 얼마 안가 텅 비게 됩니다. 성격이 무르고 통이 작은 것은 게으른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제게 조언을 구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하지 않고 먹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의 지위와 명예가 지속되고 있는 동안은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많은 돈을
벌어서 보람있게 쓰고 싶어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보람된 곳에 써서 명예를 드높일 기회도 없는
것입니다.
* 벌은 것을 탕진하지 않고 보람있게 쓴다면 죽어서 명예를 남기게 될 것이다.@ff
열여덟번째 이야기 일만 금덩이 지고 강 못 건너랴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은 큰 재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꼭 가고 싶다고
빠뜨로니오에게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혹시 그곳에서 무슨 불상사가 생겨 많은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빠뜨로니오는 백작에게 어떤 값진
물건을 무겁게 지고 강을 건너게 된 젊은이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젊은이가 값지고 운반하기가 힘들 정도로 커다란 보석덩이를 가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큰
강을 만나자 그는 무거운 보석을 지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보석이 너무 무거워
자꾸만 가라앉더니 마침내 강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몸이 거의 잠기다시피 했습니다.
강가에 있던 한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는 보물을 포기하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소리쳐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불행한 젊은이는 보물을 포기하면 보물만 잃지만, 물에
빠지면 보석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잃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의 탐욕은 그를
익사하게 만들었고 목숨과 보석 모두를 잃게 되었습니다.
"백작님, 아무리 돈이나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일지라도 만일 위험한 일을 만나면,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신체뿐 아니라 명예에 손상이 되는 일에는
관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자신을 귀히 여기지 않거나 탐심으로 가득한 사람을 스스로를
죽음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존경하도록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자기 스스로 존중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존경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럴 만한 일을 해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아는 사람은 탐심이나
불명예로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아는 참된 사람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하는 법입니다.
* 탐심으로 모험에 나서는 자는 결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ff
열아홉번째 이야기 아랍인을 향애 바다로 뛰어든 영국의 왕 리차드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조언자인 빠뜨로니오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나는 그대의 지혜로움을 익히 알고 있소. 그대가 이해할 수 없거나 조언할 수
없는 문제라면 세상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가능한 한 제일 좋은 방도를 알려주기 바라오. 그대는 내가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소. 태어나서 오늘날까지 난 언제나 전쟁의 와중에서
자라고 살아왔소. 그때마다 난 항상 다른 왕들이나 나의 신하들, 백성들과 힘을 합쳤었소. 그러니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을 해치곤 했소. 하지만 지금 내 나이가 나이인지라 필연적으로 맞게 될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소.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상의 그 누구도,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안심시켜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언젠가 우리의 심판관이신 신 앞에 나아가게
되겠지만 그 앞에서 난 어떤 말, 어떤 방법으로도 용서를 구할 수가 없을 것이오. 난 더도 덜도
말고 내가 행한 선행이나 악행만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오. 불행하게도 내게 악행이 더 많다는
신은 필시 나를 처벌하실 것이오. 그런데 내겐 지옥의 고통 속으로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용서를
구할 만한 어떤 구실도 없고, 내가 영원히 그 지옥 속에 머무리게 된다면 이승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소. 만약 신이 내게 은혜를 배풀어 나를
당신의 종들 중 하나로 선택하거나 내가 천국의 희락을 누릴 만한 선행을 쌓게 하신다면 세상의
어떤 즐거움도 그 행운, 그 즐거움, 그 영광에 비길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소. 행운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불행에 빠질 것인지 하는 이런 중대한 문제가 다 나의 행실에 달렸으니, 내
처지와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그대가 알고 있는 최고의 조언을 해주기를 부탁하는 바요. 내 죄를
회개하고 신의 은총을 받을 방도가 무엇인지 알려주시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의 말씀을 들으니 대단히 기쁘군요. 특히 백작님께서 처한 상황에
따라 조언을 해달라시니 더욱 그러합니다. 만약 다른 방식으로 조언을 부탁하셨더라면 일전에
말씀드린 왕과 그 측근의 이야기처럼 나를 시험하시는 것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외에도 대단히
기쁜 것은 백작님께서 그 왕처럼 백작님의 나라와 명망을 버리시지 않은 채 신께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고 싶어하시니 더욱 그러합니다. 만약 백작님께서 백작님의 나라를 버리고
물러나버리신다면 백작님에 대한 평판이 대단히 나빠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백작님께서
분별력이 없어서 자기들처럼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을 싫어한 탓이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들려드릴 얘기를 신께서 어떤 고매한 은자 앞에 나타나셔서 그와 영국의 왕
리차드에게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이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은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선을 행하며 훌륭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의 은총을 얻기 위해 힘든 고행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정성이 그렇게 지극했으므로 신께서 그에게 천국의 영관을 누리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은자는 신께 감사를 드리고는 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고 생각하고 천국에서 누가 자기의
동료가 될 것인지 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신께서는 천사 한 명을 보내서 그런 것을 청하는 것은
잘하는 짓이 아니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자꾸만 간청하자 신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천사를 보내 천국에서 그의 동료가 될 사람은 영국의 왕 리차드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은자는 그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리차드 왕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차드 왕은 엄청난 싸움꾼에다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면서 그들의
대를 끊어놓은 자였습니다. 은자는 그 왕이 언제나 자신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을
지켜보아온 탓에 구원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여겨왔으므로 대단히 기분이 상해
있었습니다.
신께서는 다시 천사를 보내어 은자에게 그 사실에 대해 놀라지도 말고 불평하지도 말라고
전했습니다. 리차드 왕은 한번의 싸움을 통해 은자가 평생 쌓아온 선행에 의한 것보다도 신을 잘
섬겼으며, 따라서 은자보다 더 많은 은총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은자는 깜짝 놀라서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프랑스 왕과 영국 왕 그리고 나바라의 왕이 울트라마르 지방을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항구에 도착한 그들은 모두들 무기를 챙긴 후 배에서 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엄청난
수의 아랍인이 해안에 모여서 그들이 배에서 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프랑스 왕이 영국의 왕에게 사람을 보내 자기 배로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을 하자고
청했습니다. 말을 타고 있던 영국 왕은 이 말을 듣고 프랑스 왕의 사신을 불러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분노를 살 만한 짓을 여러 차례 저지렀으며 그 외에도 이
세상에서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온몸을 바쳐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빌어왔는데 신의 은총으로 마침내 그렇게도 원하던 그날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곳에서 죽는다면 자신이 고국을 떠나기 전에 그렇게도 빌어왔던 참회를
하는 셈이 되어 신께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주실 것이요 자기가 만약 아랍인들을 쳐부순다면
신은 그것을 대단한 선행으로 여겨주실 거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모험을 감행해 볼
생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왕은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모두 신의 뜻에 맡기고 가호를 빌면서 부하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해변에 있는 아랍인들을 향해 바다로
뛰어내렸습니다. 비록 항구에서 가까운 곳이긴 했지만 바다는 그다지 얕지가 않아서 왕과 왕의
말은 물 밑으로 가라앉아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께서는 그가
'신이시여, 당신은 이 죄인의 죽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서 살아남기를 원하십니다'라고
기도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그를 구해서 육신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물에서 빠져나와 아랍인들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영국 병사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왕의 뒤를 따라 모두 바다로 뛰어들어 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프랑스 병사들도 용기를 얻고 바다로 뛰어들어 모로족을 공격했습니다.
모로족들은 그들이 죽음도 무릅쓴 체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돌격해 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항구 뒤편으로 물러나더니 급기야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병사들은 육지에
도착하자 닥치는 대로 아랍인들을 무찔렀습니다. 이 일이 바로 영국 왕 리차드가 전쟁을 통해서
쌓은 선행이었습니다.
은자는 이 말을 듣고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만약 백작님의 죄를 참회하고 싶으시다면 백작님이 조그마한 해라도
입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십시오. 백작님은 백작님의 죄를 회개하셨으니 차후라도
이승의 헛된 영화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익을 따져 행동하라고 권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에는 반드시 성공의 가능성이 있는지, 결말이 어떨지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 따져본 연후에 믿으셔야 합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께서는 자신의 잘못들을 회개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헛된 영화는 쫓지는 마십시오. 신께서 백작님께 이 땅을 주셨으니 백작님은 이
땅에 살면서 백성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그날까지 바다와 육지에서 아랍인들과 싸우는
것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백작님께서는 훌륭한 삶을
사시는 것이옵니다. 이것이 바로 백작님의 영혼을 구원하고 나라를 보전하는 최고의 방법이며
명예를 지키는 길입니다. 신을 섬기기 위해서는 일찍 돌아가셔서도 안 되고 백작님의 영토를
떠나셔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그렇게 신을 섬기다가
돌아가신다면 백작님은 순교자가 될 것이요 행복한 생을 누리신 분이 될 것입니다. 비록
전쟁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백작님의 그 뜻과 선행만으로도 충분한 순교자가
되셔서 설령 사람들이 백작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고싶더라도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백작님이 나쁜 악마의 꾐에 빠져 허황된 속세의 광명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신의
종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조금도 태만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작님, 백작님께서 제게 조언을 청하신 바대로 백작님의 처지에 가장 적합하게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 이제 저는 백작님이 청하신 조언을 해드렸습니다.
백작님의 처지에 알맞으면서도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추천하건대 그
싸움에서 영국 왕 리차드가 했던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행동하셔서 훌륭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 신의 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특정 교단에 들어가거나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영국의 왕이 보여준 행동이 더욱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ff
스무번째 이야기 발가벗기운 채 쫓겨난 영주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조언자 빠뜨로니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충고하기를 내 지위와 품위를 지켜주는 재산과 명성을
계속 키우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소. 당신은 항상 나에게 좋은 충고를 해주시니,
이런 경우에 그들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아닌지 가르쳐주시오."
"백작님, 저에게 청하신 충고는 두 가지 이유에서 저에게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첫번째, 저는
백작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반대되는 말씀을 들리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그분들께서 이미
말씀하신 방법과는 반대로 백작님께 충고를 드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충실한
조언자라면 손해나 특정이익에 관계없이, 또 상대방의 기분에 관여치 말고 항상 더 좋은 방법을
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백작님께 오직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백작님
상황에 맞는 방법만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앞서 사람들이 해드린 조언들은 완벽하지 못했고,
백작님께 유익하지도 않습니다. 백작님께 알맞고 완벽한 조언으로 백작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어떤 큰 지역의 영주가 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제가 말씀드릴 그 지역에는 해마다 새로운 영주를 뽑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영주가 뽑히든지 통치기간 동안엔 그가 명령하는 대로 따랐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 임기가
끝나면 모든 것을 빼앗고, 발가벗겨서 무인도에 홀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각있는 어떤 사람이 영주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일 년이 지나면 앞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무인도로 쫓겨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임기가 지나기 전에
자신이 가서 기거해야 할 그 섬을 아름답고 완벽하게 꾸미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과
생활필수품들을 갖추라고 은밀하게 명령했습니다.
그의 통치기간이 끝나자 사람들은 영지를 다시 거두어들이고, 그를 발가벗겨 섬으로
내쫓았습니다. 앞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어놓은 좋은 집에 가서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백작님께서 제게 더 좋은 충고를 원하시면 이걸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백작님께서 발가벗고
떠나시기 전에, 즉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 백작님께서 떠나 살게 될 영원한 집을 찾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삶은 영원하기 때문이죠. 영혼의 삶은 정신적인 것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라 실패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사시는 동안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에 좋은 집을 갖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명예나 지위 때문에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원하고 확실한 것을 잃지 않도록 하십시오. 으시대거나 자만심을 갖지 말고
좋은 일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삶에서 백작님께서 이루지 못한 것을 백작님의 영혼에
보탬이 되도록 대신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두십시오. 그리고 비록 알려지지 않더라도
선행을 계속하시면 백작님께서는 훌륭한 명예와 지위를 오래도록 지킬실 수 있을 것입니다.
* 곧 사라질 이 세상을 위해 영원한 것을 잃지 말라.@ff
(옮긴이의 말)
산문의 대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기도 했던 돈 후안 마누엘의 모든 작품들 중에서 후세에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역시 이 책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이다. 이 작품이 오랜 세월
동안 스페인 민중들의 고전으로 자리잡아온 가장 큰 이유는 시대를 초월한 삶의 지혜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작품은 기독교 세계, 아랍 세계, 동양 세계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권의 전통에 뿌리를 둔 예화들을 통해서 지리적, 종교적 경계를 초월하는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이 지닌 또다른 중요성은 문학사적 가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독창적이고 대중적인 문체를 모색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라틴어로 써야만
저서의 권위가 인정되던 시기였으나 저자는 라틴어를 습득하지 못한 대중들을 위해서 스페인어를
사용해 명확하고 간결한 문체를 구사함으로써, 귀족이었던 자신의 신분을 극복함과 동시에 당시
속어에 불과했던 스페인어를 좀더 세련된 언어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그 후에 나온 많은 작품들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스페인 황금 세게 극작가인
깔데론 데 라바르까(Calderon de la Barca)의 '인생은 꿈 La vida es sueno', 세르반테스의
'기적의 재단 El retablo de las maravillas',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리'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이 작품의 예화에서 소재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대학원 수업 시간에 강독한 작품으로 수업에 참가한
사람들이 우리 독자들에게 스페인의 고전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해서
일반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예화들을 공동번역하고 새롭게 편집하였다.
출처: 철학과 삶 자료실(http://sang1475.com.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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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빛나는 보석 2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2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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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31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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