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람 브라만들의 생애에는 임서기(林棲期)가 있다 . 수행하고 배우다가 결혼하여 자녀를 두고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기간이 지나면 숲으로 들어가 명상과 고행을 하며 마지막 초탈의 경지로 가는 편력으로 이어진다. 숲걷기는 내 삶의 여정이 임서기에 맞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너 나 없이 차가 삶에 들어와 절대적인데 시외버스타고 기다렸다가 군내버스로 가고 도시락을 챙겨 지고 가는 것이 좋다 싶어 동행하기로 했다.
우리를 안내하는 녹색연합 회원이자 광주 전남 숲 해설사회 고문인 박계순 선생은 오늘은 "움직이는 숲"을 체험한다는 모두 발언을 하며 숲안으로 들어 걷기 시작했다. 숲이라면 늘 당산나무가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줘서 그 아래 모여 놀던 마을이 떠오르고 오감이 열린다. 뜰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전원으로 돌아왔다는 도연명의 시와 큰 뽕나무가 누각처럼 보였다는 유비의 고향 누상촌이 생각 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페리파토스의 산책길 대화는 무엇이었을까 듣고 싶고, 「월든」의 HD 소로우와 스코트와 헬렌 니어링 부부도 생각난다. 오늘 하루 잠시라도 참가자들이랑 이런 공감을 하는 시간이 된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사람이라는 동물들은 가장 자기중심적이라 나무나 풀은 그저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한생애를 산다고 믿어 버리는 통념에 잡혀지낸다. 농사를 하면서 겨울 나는 뿌리 채소인 도라지나 더덕이 지표에서 더 깊이 움직였다는 것을 볼 수 있어 숲이 겨울 준비를 앞서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냉이는 잎을 납작하게 벌려 최대한 땅에 바짝 붙어 지내다 봄햇볕이 올라오면 마디를 늘리고 잎의 색갈도 초록으로 바꾸면서 꽃대를 높인다. 가끔 풀과 나무도 학습을 한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진화로 말하면 지상의 막내인 사람이 수억년을 먼저 살아오면서 적응을 터득한 이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 태양이 극의 아래쪽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그들은 벌써 다르다. 로제트 식물들 뿐만아니라 모든 숲친구들의 움직임이 바뀐다. 동물들은 아직도 춥다고 싸고 감고 웅숭크리고 있을 때다.
그네들의 면밀한 동선을 걷고 뛰고 차로 달리고 비행기로 날아다니는 사람이 알바 없다.나무와 숲은 늘상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라는 고정된 관념은 바꿀 줄 모른다.
우리땅 남단인 이곳 미황사 숲은 이미 난온대림으로 바뀌는 움직임을 조용하게 진행시키고 있다고 박선생은 말했다. 과연 소나무가 드물다. 숲이 움직인다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잎을 틔우는 낙엽수들, 높이 자란 큰키나무, 그보다 낮게 자리한 떨기나무, 땅에서 더낮게 사는 풀들과 기는 줄기를 가진 애들과 같이 살면서 서로의 삶에 걸림을 주는 일은 없다고 한다. 내줄만큼 내주고 차지해도 좋을만큼은 점유한다 . 비켜서는 방법도 알고 나아가야 할 길도 아니 그래서 숲이 '움직인다'가 옳다. 내려오면서 은진씨는 "움직이는 숲"이라는 말이 눈뜸 ( 開眼)처럼 다가왔다고 감동을 표했다. 오늘 숲 공부는 깨달음으로 이어질 철학 강의였나 보다.
숲이라는 공동체는 우리가 보지 않아도 미처 깨닫지 않아도 일하고 있다. 발아래 민들레는 하얀 홀씨를 바람에 날렸으니 할일을 마쳤다. 숲이 먼셀의 색상표에도 없는 400가지가 넘는 초록을 펼치는 계절이다. 숲의 나라가 바뀌고 있음처럼 사람 사는 세상도 이래야 한다는 것을 소원하며 노자의 道法自然에 대해 생각했다.
일곱 아줌니들이 가져온 먹을거리들로 차린 점심을 승미씨는 한정식 집에서 먹는 기분이라고 좋아했다. 행복한 하루였다 .2015.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