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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13 실크로드 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청계산인(홍석경)
소크라테스 이전의 서양철학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600년전 이곳 에페소스의 왕실 집안 출신이다. 그의 철학사상을 나타내는 어록 가운데 유명한 "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디딜 수는 없다. (You cannot step twice into the same river.) " 는 ' 이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뜻이며 변화야말로 이 세상(우주) 만물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는 거의 동시대의 동양철학인 노장철학과 상통하는 면이 많다고 하며 후대 19세기에 이르러 정치경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인 유물론을 창시한 칼 마르크스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주었다.
동.서양 철학이 근본적으로 갈리게 된 것은 헤라클레이토스 사후 100년경 (기원전 500 년경)에 등장한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부터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우리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변화는 사물의 본질이 아니며 변화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고 그것이 사물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는데, 변화하는 것을 현상 (Phenomena)이라 부르고, 변화하지 않은 것을 실체 (Substance)라고 했으며 이 실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사상은 플라톤에 이르러 형이상학적 이데아 (Idea) 사상으로 정립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이나 기하학이 고도로 발달했던 이유도 사물(현상)의 이면에 변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 (이데아)를 밝혀내려는 플라톤 철학이 그 바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17세기 이후 자연과학이 크게 발전하게 된 것도 겉보기 자연현상 뒤에 숨겨져 있는 이데아를 찾아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예를 들면, 아이작 뉴튼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 것도 눈에 보이는 자연현상 (자유낙하)의 이면에 존재하는 불변의 자연법칙 (이데아; 중력의 법칙)을 찾고자 하는 플라톤 이후 유럽인의 사상을 지배했던 현상과 실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덕분이었다. 동양철학에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없었기에 경험과학 (종이, 화약, 인쇄술, 도자기의 발명)은 서양에 비해 앞섰지만 자연과학이 태동하지 않아 결국 18세기 중반-19세기 초반 유럽에서 일어난 산업혁명 이후 서구열강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또한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 (현실 세계와 이상적 세계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상)은 수백년 후에 등장한 기독교 종교철학 (로고스와 천국 사상)의 토대를 제공하였다.
나는 이번 터키 여행의 하일라이트이며 '만물의 변화'를 긍정한 헤라클레이토스의 고향인 에페스를 찾아가기 위해 9월12일(토) 아침 9시에 파묵칼레를 출발하여, 데니즐리 오토가르에서 셀축행 버스로 갈아타고, 3시간 정도를 달려 셀축 오토가르에 도착하였다. 셀축 오토가르에서 호텔 (Nilya Hotel) 까지는 길을 물어가며 찾아갔는데, 마침 같은 버스를 타고 내린 한국인 청년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구글지도를 열고 내 호텔 위치를 찾아주었다. 눈대중으로 대충 호텔 위치를 파악하고 대로변을 따라 걷다가 어느 골목길 입구에 이르러 어느쪽으로 가야할지 몰라 망설였다. 이때서야 비로소 나도 이스탄불에서 구입한 USIM 칩이 작동하기 시작한 내 휴대폰의 구글지도를 열어 볼 생각을 하였고, 검색창에 호텔 이름을 입력하니 내 위치랑 호텔 위치가 확인되는 것이었다. ^^ 숙소는 성요한 교회 근처에 있었는데, 좁은 골목길을 세번 꺾어 들어갔기에 만약 구글지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숙소를 찾느라 한참 헤맸을 것 같다. (스마트폰이 아라비안나이트의 마술램프의 거인 '지니'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묵었던 호텔, Nilya Hotel (성요한 교회 코앞에 있었고 에페소스 박물관까지 5분거리에 있었다.)
셀축과 고대 에페스의 주요 유적지 지도
셀축 시내 언저리에 아야술룩 성채, 성요한 교회, 이사베이 자미, 아르테미스 신전, 박물관이 있고, 이곳에서 3-5 km 떨어진 산등성이 너머에 에페스 고대 유적지가 있다. 에페스 출입구는 시내에서 가까운 북문과 산등성이 너머 남문 두 곳이 있다.
에페소스 박물관은 셀축 오토가르 길건너 맞은편에 있는 식당가와 공원의 뒤켠에 있었다. 이곳엔 에페소스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중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9월12일(토) 셀축에 도착한 오후, 숙소에 짐을 풀고 이곳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관람하였다. (입장료: 10 리라)
남자 생식기를 큼지막하게 묘사한 아래 자그마한 석상은 터키에서는 '베스' 신상으로 부르며, 그리스에서는 '프리아포스 (Priapus)'라 부르는 신상이며 풍요의 신이다. 프리아포스는 아프로디테 (비너스)와 디오뉘소스 (바카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괴상한 몰골과 큰 생식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아 숲에 버려졌는데 목동들에게 발견되어 이들에게 키워지다가 성장하고나서는 아버지인 디오뉘소스를 보좌하는 역을 맡았다. 프리아포스는 로마시대(신화의 시대)가 지나고 기독교 시대가 왔을 때도 건강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프리아포스'가 풍요의 신이었음을 증언하는 또 다른 프리아포스 신상이 이 곳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역시 프리아포스를 상징하는 발끈한 거시기 위에 온갖 과일이 풍성하게 놓여 있는데,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라고 볼 수 있다. - 참조: 길위에서 듣는 그리스.로마 신화 (이윤기), 위키피디아, 신화위키
지중해 연안 박물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돌고래와 소년' 석상
그리스인에게 돌고래는 안전한 항해를 예언하는 바다 동물이었고, 바닷물에 빠졌을 때 목숨을 구해줄 수도 있는 고마운 동물로 여겼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Aesculapius)와 그의 딸 히게이아 (Hygieia)가 사용했음직한 각종 의료 및 제약 도구
제우스 신
제우스 신의 상징물인 독수리가 그의 발 옆에 앉아 있다.
아래 사진: (왼쪽) 달의 여신이자 야생동물의 수호신인 아르테미스 여신상, (오른쪽) 또 다른 아르테미스 여신상,
여기선 다산과 풍요의 여신으로 묘사된다. 이곳 에페스는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던 폴리스였다
아래 사진: 셀축 에페소스 박물관의 단독 전시실에 전시된 간판 스타인 아르테미스 여신상
(왼쪽) 거대한 아르테미스 (The great Artemis), (오른쪽) 예쁜 아르테미스 (The beauty Artemis)
다산과 풍요의 신, 아르테미스 여신상에 대해서는 터키여행기 [8편] 쓸쓸한 황성옛터: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 잡글을 연재하였다.
박물관에서 나오니 현관 출입구 옆에 글레디에이터 (검투사)가 새겨진 기단 위에 고양이들이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터키는 고양이가 행복한 나라였다.
9월13일(월)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전 9시경에 묵었던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15인승 승합차를 타고 이곳에서 5 km 정도 떨어진 에페스 고대유적지를 향하였다. (셀축 오토가르에서 출발하는 돌무쉬 (2.5 리라)를 이용해도 되는데 도착지가 북문 (대극장 쪽)이라 한다.)
우리는 남문 매표소 앞에 도착해서 티켓을 구입했다. 아래 에페스 유적지 지도에서 '두번째 출입구 (28)'라고 표시된 곳으로 들어가서 헤라클레스 문(17)을 지나, 대리석재가 바닥에 깔린 큐레테스 거리(16)를 지나면서, 이곳 에페소스를 대표하는 건축인 '셀수스 도서관 (켈수스 도서관: Celsus Library) (4)를 정면에서 바라보면서 다가가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800 여년 전 (A.D 135년)에 건축된 도서관 건물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감동의 물결이 일어난다.
입장료는 다른 유적지보다 비싼 30 리라였고 (1년전에 비해 5 리라가 올랐다.), 아래 지도에서 언덕위의 집 (또는 테라스 하우스) (8) 관람료는 별도로 15 리라를 받았다. 이곳 테라스 하우스는 고대 로마시대 귀족들이 살던 집으로 두께가 얇은 대리석판으로 사방 벽면을 장식한 홀을 볼수가 있고, 또 동양의 수묵화와 같이 새, 물고기, 또는 아름다운 여인상이 채색된 벽화와 거실 바닥의 모자이크화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고대 로마 귀족의 생활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둘러보는 것도 좋다. 입장 티겟을 구입할 때, 통합티켓 (combined ticket)으로 달라고 하면 약간 할인된 가격으로 볼 수 있다.
고대 에페소스 폴리스의 모형도
이곳의 주요 유물이나 유적을 빠뜨리지 않고 보려면, 미리 이곳에 대한 안내책자를 읽어보는 것이 좋다. 나는 이곳에서 판매하는 에페스 안내서(한글판)을 구입하고도 딴 곳에 정신파느라 셀수스 도서관 앞에 있는 화장실을 놓쳤다. ㅠㅠ
매표소에 들어가자 마자 왼쪽의 발굴지 (아고라?)에서 본 하수관 시설.
하수도관이 요즘에 사용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생겨서 감탄을 했다.
입구에 있는 오데온 (소극장) 위에서 본 에페스 풍경
시청사 내지는 공관이라고 불리는 프리타네움 (Prytaneum). 이 지역에서 에페스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발굴된 듯하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바친 도미티안 신전의 잔해 (왼쪽 사진). 신전의 일부인 기둥 2개만 남았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로마제국 11번째 황제로 재위기간은 A.D 81-96년이며, 황제가 된후 귀족들의 미움을 받았다. 황제의 우상화가 심했고 우상화를 반대한 기독교인을 탄압하고 말년에는 철권통치를 하다 근위대장에게 암살을 당했는데 원로원은 그의 죽음을 기뻐하며 생전에 남긴 모든 업적을 지워버리는 '기록말살형'에 처했다. - 출처: 위키피디아 (한글판)
고구려 적석총 역시 커다란 돌덩이를 계단처럼 쌓아올리고, 하늘의 아들(天子)답게 분묘의 윗부분에 관을 안치한 현실을 두고 맨 꼭대기에 평평한 공간을 두어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사당을 세운 흔적이 있는데 위의 도미티안 신전이 바로 그런 구조인 듯하다.
도미티안 신전 바로 옆에 꽃문양이 새겨진 돌기둥.
신전의 아치 부분을 장식한 부재로 보이는데, 여기에 새겨진 꽃잎이 5개인 꽃은 마치 무궁화처럼 생겨서 유심히 살펴봤다. 또 꽃잎이 6개 짜리 꽃문양은 우리나라 고구려, 백제 와당에서 볼 수 있는 연꽃 문양과 흡사하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최근에 출간한 '도올의 중국일기'에서 와당에 새겨진 꽃문양이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도입된 연꽃 문양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바로 이 꽃 문양을 보면 도올의 주장이 얼토당토한 얘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승리의 여신, 니케상 (나이키 상표인 "V" 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헤라클레스 문 (대리석 보도블럭이 깔린 큐레테스 거리가 시작되는 입구에 있다.)
에궁, 나도 모르게 석상에 손을 댔네... 지송. --;;
큐레테스 거리 (저 멀리 셀수스 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큐레테스 거리를 따라 셀수스 도서관쪽으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하드리안 신전.
로마 제14대 황제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친 신전이다. 앞쪽 아치엔 행운의 여신인 '티케' 두상이 있고, 뒤쪽 아치 부분엔 액막이용 부적 역할을 하는 '메두사' 반신상이 있다. 신전 기둥과 박공이 만나는 부분에 돌덩어리를 띠 모양으로 둘러치고 이곳에 신화나 역사적 사실을 부조로 장식하는데, 이를 프리즈(Frieze)라고 부른다. 이곳 신전의 프리즈는 에페소스 박물관에 진품이 보관되어 있으니 박물관에 들르게 되면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하드리아누스: 로마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5현제 가운데 3번째 황제 (재위기간: 117-138년)
하드리안 신전 뒤켠으로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셀수스 도서관이 잘 보였다. 사진의 오른쪽에 돌기둥이 일정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길은 '대리석 거리'로 불리는 곳이며 오른쪽 끝의 대극장까지 연결되어 있다.
셀수스 도서관이 보이는 아래 사진에서, 가까운 곳 오른쪽 부분이 그 유명한 로마의 화장실과 유곽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듯하다. 테라스 하우스 맞은편 쪽이다.
언덕 위의 집 (테라스 하우스) 내부.
로마시대 귀족이 살던 거주지인데, 지금도 발굴과 복원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 이 지역을 통째로 지붕을 씌웠다.
아래 사진은 벽체의 대리석 판석 복원을 위해 산산조각이 난 파편을 이리 저리 맞춰보고 있는 현장이다.
홀 (Hall)이라고 하며, 두께 1 cm 정도의 얇은 대리석 판석으로 벽체를 덮었다고 한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나는 이곳을 '별 것 없네...' 하고 사진만 한방 찍고 지나쳤는데, 5년 전에 이곳을 방문한 동생의 여행기를 다시 읽어보니 고대 로마시대에 커다란 대리석 덩어리를 1cm 두께로 톱으로 켜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신기술이었다.
대리석재를 1 cm 두께로 썰기 위해 로마인은 물레방아에 증기기관차처럼 피스톤을 달아 쇠톱을 왕복운동시킬 수 있는 Gang saw 라는 것을 발명했다.
자료출처: Litosonline.com
마치 동양의 수묵 산수화같은 느낌이 든 물고기와 비둘기 채색화
이 곳엔 이런 채색 벽화 이외에도 거실 바닥이나 벽면을 장식한 화려한 모자이크도 있었다.
이렇게 테라스 하우스를 구경하고, 셀수스 도서관쪽으로 난 출구로 빠져 나오는 바람에, 테라스하우스 맞은편에 위치한 로마의 수세식 화장실과 유곽 지대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ㅠㅠ
셀수스 도서관은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이자 원로원 의원이었던 티베리우스 줄리우스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Tiberius Julius Celsus Polemaeanus)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가이우스 줄리우스 아퀼라 (Gaius Julius Aquila)에 의해 지어졌는데 완공시기는 기원후 135년이었다. 나무 발코니로 나뉜 2개 층의 벽감에는 두루마리로 된 양피지 필사본 (최대 12,000 개)이 소장되어 있었다. 소장본 규모로는 알렉산드리아, 페르가몬에 이은 세번째였다. 기원후 262년에 이 지역을 강타한 엄청난 위력의 지진으로 인해 불이 일어나 도서관 내부와 모든 책이 불에 탔고 오직 건물의 정면만 살아남았다. 4세기 무렵엔 이 앞에 분수대가 설치되어 셀수스 도서관 정면은 분수대의 기념물로 바뀌었는데 이 정면 출입구조차 10-11세기에 발생한 지진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건물의 정면이 복구된 것은 1970-1978년에 독일인 고고학자 폴커 미카엘 스트록카가 이끈 재건 캠페인 덕분이었다.
이 도서관에는 세개의 출입문이 있고, 각각의 출입문 옆에는 지혜 (Sophia), 덕행(Arete), 사고(Ennoia), 지식(Episteme)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오리지날 석상은 1903-1904년 이곳을 발굴한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반출되어 오스트리아 비엔나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으며, 이곳의 석상은 복제품이다. 셀수스의 무덤은 중앙 적소 아래 지하에 위치해 있다. 또한 에페소는 사도바울이 서기 53년부터 이곳에서 2년간 전도활동을 하며 강론을 펼친 곳으로도 유명한데, 셀수스 도서관이 건축되기 이전이었다. - 자료 출처: 위키피디아
천정에는 마치 무궁화 꽃처럼 보이는 꽃잎이 5개인 꽃 문양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는데, 이 무궁화처럼 보이는 꽃에 대한 감상을 주제로 터키 여행기 [5 편] : 셀수스 도서관의 마시맬로 에 잡글을 연재하였다.
셀수스 도서관 건물의 최상단부 삼각형 모양의 박공 (페디먼트: Pediment)에는 메두사 얼굴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스.로마시대에 메두사는 우리나라 도깨비처럼 액막이용 부적 역할을 하였고 도서관이나 신전의 상단을 흔히 장식했다.
덕행의 여신 (Arete, Virtue)
도서관 옆 마제우스-미트리다테스 문을 나서면 아고라가 나온다.
아고라 전경
대극장 방향으로 가는 길.
오른쪽 축대 위에 '대리석 길' 이 있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이길을 따라서 대극장으로 향했다.
대극장 가는 길에서 셀수스 도서관을 바라본 풍경
대극장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누구나 마치 고대 로마인이 된 듯한 감흥을 느끼는 듯, 몇몇 관광객은 대극장 중앙에 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큰소리로 웅변을 하였고 주변의 관광객은 힘차게 박수를 쳐주었다.
대극장 앞에서 항구까지 이어진 항구대로 (아카디안 거리)
출구로 나가는 길 옆에 성처녀 마리아 교회로 가는 길이 있었는데 초입에는 이렇게 석관이 놓여 있었다.
이곳의 석관 측면에 장식된 풍요의 뿔(코르누코피아)은 매우 단순하게 묘사되어 그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안탈리아 박물관 뒷뜰에 전시된 A.D 2세기 석관의 섬세하게 조각된 풍요의 뿔 조각과 비교하면 조형수준이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모던하다는 느낌도 든다. ^^) 짐작하건데는 그리스.로마 석관 양식이 퇴조하는 거의 말기 때 석관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이곳에 묻힌 에페스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풍요의 신 하데스(플루토스)가 지배하는 지하세계로 내려가기 보다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올라가길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1. 에페소스 유적지- 성처녀 마리아의 교회로 가는 길 초입에 놓인 석관
2. 안탈리아 박물관 뒤뜰에 놓인 석관: A.D 2세기 무렵의 화려했던 석관 장식을 보여준다. (아기가 풍요의 뿔을 들고 있고, 사이 사이에 액막이용 메두사 얼굴이 새겨져 있다.) 여기엔 고대 그리스인의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신화적 인식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터키 여행기 [ 7편 ] 서양 도깨비: 메두사 편에 언급하였다.
북문이라고 부르는 출(입)구로 나가는 길 옆엔 소나무가 줄지어 있어 마치 우리나라 산사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3 시간 동안 에페소스 고대 폴리스를 주마간산으로 구경했다. 북문 주차장에는 우리 일행이 타고 왔던 15인승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어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승합차 탑승을 포기하고 왔던 길을 다시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지만, 여기서 멀지 않은 산등성이에 있는 성처녀 마리아의 집이랑 숙소 근처에 있는 성요한 교회, 아르테미스 신전 답사도 있고 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첫댓글 감사^^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