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신처럼 채웠다 풀었다 할 수 있어 말에서 내렸을 때는 맨발로 다니다가 말위에 오랐을 때 쇠못 신발을 신었다. 이렇게 온몸을 철갑으로 무장한 중기병들은 전면전이 발생하는 경우 탱크와 같이 앞장서서 적진으로 파고 듦으로써 적의 대열을 파괴하고 공격 루트를 형성하는 돌격대 역활을 하거나 퇴각하는 적의 후미에서 섬멸전을 펼칠 때 중심역할을 하였다. 온몸을 갑옷으로 도배하고 긴창을 들고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고구려 군사들은 적군의 입장 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음이 틀림없다. 고구려는 전쟁이 있을 때 마다 이렇게 중무장한 개마무사를 5천에서 1만 기씩 대량으로 동원했다고 하는데 가용 할 수 있는 군사의 수가 몇만에서 몇십만에 불과했던 고대국가에서 이는 얼굴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찰갑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서양에서 유래 됐다는 설도 있지만 그 유래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어쩌면 고구려가 찰갑을 최초로 만들어 입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고구려는 이미 동천왕과 준천왕 때인 3세기에 철기병을 5천 명씩 동원했다는 기록이 있고 4~5세기 광개토대왕 대왕때도 5만이나 되는 철기병과 보병을 파견하여 신라를 도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3세기 이전부터 이러한 찰갑을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좀더 시간이 지난후에는 이러한 찰갑에 금칠을 하며 온몸이 황금색으로 빛나게 하여 위압감을 주는 '명광개明光鎧' 를 착용 하기도 했다. 아뭏든 고구려의 찰갑은 최초이거나 적어도 최초에 준할 정도로 빠른시기에 등장한 것임에 틀림 없다. 고구려 기병들은 등자를 사용하였는데 등자는 안장과 연결하여 말위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발을 걸어 두는 고리형 장치다. 동자에 말을 걸고 있으면 말위에 앉아 몸을 비틀어도 몸이 들리거나 쏠리지 않으므로 말위에서도 자유자재로 몸의 방향을 바꾸어 가여 활을 쏘거나 적을 공격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