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2:10-22:20
찬송가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瓜田不納履(과전불납이) 李下不正冠(이하부정관), 줄여서 ‘과전이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남의 오얏(자두)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이가 익은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고 있으면 마치 오이를 따는 것 같이 보이고, 오얏 즉 자두가 익은 나무 아래서 손을 들어 갓을 고쳐 쓰려고 하면 오얏을 따는 것같이 보이니 곧 남에게 의심받을 행동, 오해 살만한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그러나 오해를 살만한 행동이 있다 할지라도 오해에서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사실인지 확인해 보아야 하고, 또 오해받은 사람은 그것을 해명하려고 할 때 문제가 커지지 않고, 갈등으로 나아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일상 속에서 가끔 사소한 오해로 인해 갈등과 불화가 생기기도 하고 나아가 관계가 깨어지는 일도 있음을 봅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공동체가 그러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이러한 오해들을 막을 수 있고, 오해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 있었던 오해의 사건을 살펴보면서 우리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여호수아와 요단 서편 지파들은 그동안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함께 수고했던 동편 군사들을 축복하며 떠나보냈습니다. 동편 지파 사람들은 분배받았던 땅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해 살만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오해로 인한 위기(10-14)
(10-1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요단 동편 두 지파 반 군사들이 서편 지파 사람들과 인사하고 동편으로 돌아갔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누군가가 말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강을 건너가면 앞으로 요단 서편 지파들과는 점점 사이가 멀어질 수 있을 것이고, 실로의 중앙 성소에서 제사하는 사람들이 볼 때 요단 동편에서는 제대로 제사하는지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기념 제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 언덕 위에 커다란 제단을 쌓았습니다.
인간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인 고민과 위기의식이었다면 그 자체로는 나무랄 데가 없는 모습입니다. 다만 이들이 놓친 것은 이것을 한민족이자 이웃인 서편 지파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었고, 그로 인해 오해를 낳게 했다는 것입니다. 곧 소통의 노력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서편 사람들은 그 제단이 우상에게 제사하는 단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들은 서쪽 지파 사람들은 분노했습니다.
(12)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제단이 쌓인 것을 보고 누군가 이스라엘 나머지 아홉 지파 반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곧바로 성소가 있던 실로에 모여서 그들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준비합니다. 서로 인사하고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의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동쪽 지파가 쌓은 것이 우상 숭배를 위한 제단일 거라는 섣부른 판단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어쩌면 당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홉지파 반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반대 의견을 냈을 수 있습니다. 진상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은 섣부르기에, 그들에게 가서 이유를 들어보고 사실을 확인한 후에 싸움을 해도 늦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중한 자세로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보기로 합니다.
(13-14)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지도자씩 열 지도자들을 그와 함께 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그들의 조상들의 가문의 수령으로서 이스라엘 중에서 천부장들이라
동편 지파 사람들이 쌓은 단이 어떠한 목적인지, 정말로 우상 숭배를 위한 단이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조사단의 대표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천부장들을 각 지파별로 한 명씩 뽑았습니다. 과거 비느하스는 바알브올 사건 때 주범이었던 시므리와 고스비를 창으로 찔러 죽임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멈추게 했던 사람입니다. 비느하스를 중심으로 한 조사단은 길르앗 땅으로 출발합니다.
오해를 풀기 위한 노력(15-20)
(15-16)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러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아가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조사단이 길르앗 땅에 이르렀다는 표현을 보면 동편 사람들이 이미 요단 서쪽에 제단을 쌓고 강을 건너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길르앗 땅에 도착해서 당사자들에게 진의를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편 사람들 온 회중을 대표하여 왜 제단을 쌓아 하나님을 거역하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의 사례를 언급합니다.
(17-18)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오늘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고 하느냐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바알브올 사건을 언급한 것은 동편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을 걱정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온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오늘까지 정결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당시의 죄로 인한 영향력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트라우마가 지금까지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켰지만, 그 죄로 인해 받은 심판으로 관계가 있는 지인들이 죽음을 겪었습니다. 그 아픔과 상처는 마음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도 아직까지 마음에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막기 위해 그들은 다른 해결 방법까지 제안합니다.
(19)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다른 제단을 쌓아 우상 숭배를 하지 말고 소유지를 서편 가까운 곳에 차지하라고까지 말합니다. 비느하스와 조사단은 양보와 희생까지 각오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지파별로 땅 분배가 끝났기에 동편 지파를 위해서 자신들의 기업을 포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공동체 의식이 있을 때 오해가 더 이상 갈등으로 가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을 봅니다. 인간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오해가 있을 때 이처럼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내 몫을 양보하겠다는 공동체 의식이 있다면, 보다 쉽게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일을 중단하고 서로 소통하고 공동체를 위해서 나누려는 넉넉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조사단은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시키기 위해 또 하나의 사례를 이야기합니다.
(20)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느니라 하니라
여호수아 7장에서 아간은 여리고성에서 하나님께서 금한 물건을 훔쳐서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합니다. 그 사건으로 결국 아간의 일가족과 짐승들은 모두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아간의 사건은 그들의 기억에 좀 더 생생히 남아 있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동편 사람들이 쌓은 제단은 이처럼 하나님을 배반하는 심각한 우상숭배와도 같은 일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조사단의 진심 어린 걱정이 요단 동편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본문 이후 동편 사람들의 본래 의도 역시 잘 전달이 되어 오해는 풀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오해의 일들이 우리 삶에도 종종 일어납니다. 먼저는 오해하지 않도록 충분히 먼저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남을 판단하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상대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관계는 좀 더 생산적이고 아름답게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을 허락하시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실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 아니신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더욱 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선용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심을 깨닫게 됩니다. 특별히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소망을 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더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기독교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렌지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씹을 때 쓴맛으로 오해하고 알맹이까지 버린다면 참 아깝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잘못과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여 기독교의 참 진리를 맛보지 못하고 포기해버린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닮은 모습과 선한 행실을 통해,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맛보게 하는, 오해를 풀어주는 역할을 성실히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증거하는 증인의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역자 사이에도 오해로 인해 갈등이 찾아올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 안에서도 사단의 공격으로 갈등과 분열과 영적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늘 인식하며, 대화와 소통과 상대를 향한 넓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가도록 힘쓰는 우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기독교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그들에게 진리를 나눌 수 있는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함으로 승리를 경험하는 복된 하루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섣부른 판단이 오해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평소 자주 범하는 오해는 무엇이 있으며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겠습니까?
2. 영적인 ‘열심’이 때로는 누군가를 지적하며 공격할 수 있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신앙을 바라볼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오해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은 소통과 대화입니다. 요즘 소통이 필요한 대상은 누구이며 어떠한 방법으로 다가가시겠습니까?
4. 오늘 하루 이기신 주님과 동행하며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어떠한 결단을 하시겠습니까?
(작성: 최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