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탄생들로, 즉 윤회의 삶으로 되돌아감이 없는 그 상태를 깨달으려고 노력하십시오. 눈에 보이는 활동의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모든 것의 원천, 원천이라고 하든가, 신이라고 하든가, 절대자라고 하든가, 하여튼 그 무엇이 여러분들의 집입니다. 이제 쉴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임시 거처에 자꾸 살아야 됩니다.
임시 거처에 살아봤습니까? 전셋집에 살아봤냐는 말입니다.
예. 살아봤습니다.
살만합니까?
아니요.
살아봤는데 안 좋은 점 제일 큰 것 하나 이야기해 보십시오.
주인이 나가라 하면 나가야
(웃으시며) 나가라 하면 나가야... 언제 나가라 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전셋집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됩니다. 불안, 초초합니다. 불안 안 한 것처럼 전부 앉아 있지마는 속으로는 불안합니다. 언제 나가라 할지 모릅니다. 나가라는 날이 자기 죽음의 날입니다. 그럼 어디갑니까? 모르겠습니다. 또 집 찾아 봐야 됩니다. 집 구하려 온 천지를 돌아다니다가 하나 어디 구했습니다. 그것도 전셋집입니다. (다 같이 웃음) 그러니까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 전세 살이하는 사람들의 꿈이 뭡니까?
‘하, 이제 내 집을 하나 얻었으면...’ 그것이 자신의 꿈 아닙니까? 내 집이 바로 신의 집입니다. ‘야, 전세살이 이제 그만 해야지.’ 저는 앞에 앉아서 “전셋집에 그만 살아요”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그만 사십시오,
자신의 멋진 집이 있습니다. 멋진 집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쉽게 말하자면, 마음이 없어야 됩니다. 그것은 아마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요가에서는 칫타 브릿티 니로다 즉 마음 파동의 정지입니다. 불교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 마음 없애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끊길 것 같으면 뭐가 보이나? 그것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나오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마음이 가난하다는 뜻 모르겠습니까? 마음은 생각입니다.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이 최고로 가난한 것 아닙니까? 마음이 없는 자 아니겠습니까? 마음이 없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같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그것이 도래합니다. 마음이 없는 분을 신이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별로 없습니다. 명상을 하든, 무엇을 하든 간에 자기를 지키려고 하지 말고, 내 생각을 내어놓으면, 점점 가까이 갑니다. 마음을 없애는 것, 물결을 정지시키는 것이 어려운 길은 아닙니다. 그냥 욕심내지 마십시오. 자존심 차리지 마십시오. 그냥 내 것 주십시오. 있는 것에서 만족하십시오.
첫댓글 스승님 말씀을 다시 새겨보니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자존심 차리지 않겠습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