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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구룡구곡(九龍九谷)
구룡계곡의 아홉 절경을 구룡구곡이라 하는데 구룡폭포는 그중 제9곡으로 구룡구곡의 백미로 꼽힌다.
가파른 절벽에서 급하게 낙하하는 폭포가 아니라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바위를 타고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두 갈래래 폭포이다.
폭포 아래쪽에 형성된 작은 소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용 두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듯한 모습이라 하여 교룡담이라고도 한다.
구룡계곡은 지리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구룡분소가 있는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에서부터 구룡폭포가 있는 덕치리까지 펼쳐지는 협곡으로 곳곳에 기암절벽과 반석, 그리고 소가 있어 경관이 뛰어나다.
-내송마을~개미정지~구룡치~삼거리~둘레길이정표~구룡사~구룡폭포~비폭등~육모정~주차장 ( 약 9.8km )
내송마을에서 출발을 한다.
마을을 벗어나니 길 양쪽으로 보라색과 흰색의 도라지 꽃이 피어있다.
호흡기질환에 좋다는 도라지의 꽃이 유난히 곱다.
개미정지
개미정지의 유래
개미정지 라는 특이한 이름은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활약한 조경남 장군과 관련된 것이다. 내송마을에서 태어난 조경남 장군은 임진왜란이 나자 의병을 모아 왜군에 대항해 싸웠는데 능력이 출중하여 왜군들 에게는 큰 장애물 이었다고 한다. 당시 구례쪽에서 운봉 황산으로 넘어가던 유일한 고개길이 구룡치였는데 왜군들이 밀어닥치고 있던 어느 날, 조경남 장군은 정지에 활을 걸어 놓고 고단한 몸을 잠시 쉬다 깜빡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잠이들던중 개미가 발뒤꿈치를 물어 깨어나 보니 왜군이 내송마을 서어나무숲 근처까지 오고 있었다고 한다. 개미들 덕택에 왜군이 진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여 이곳을 개미정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솔정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잠시 휴식 정지 라는 말은 정자의 사투리가 분명한데... 훔...
솔정지의 전설
솔정지 한 곳엔 꼬막장수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해안 꼬막을 남원장에서 받아 주천을 지나 등구재를 넘어 운봉과 달궁 등 산간마을에 전하던 꼬막장수가 있었는데 어느 추운 겨울날 이 고개를 넘다가 얼어 죽었다고 한다. 장보러 가던 사람들이 얼어 죽은 꼬막장수를 발견해 묻어주었는데, 꼬막장수 무덤이 소나무가 있던 자리라 하여 솔정지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솔정지를 지나서도 오름길은 계속 되는데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평탄한 길을 담아 보았다.
똥재를 지나며... 먼 고개 이름이 똥재 인지... 고개 넘다 힘들어서 똥을 쌌다는 소리인지... 그 유래는 알수가 없다.
구룡치로 가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
구룡치를 향하여 한참을 오른다.
구룡치
산행시작 한시간, 이정목을 살펴보니 해발 525m 이다. 길은 편하지만 이정도 높이면 둘레길이라고 무시했다가 혼이 날만 하다. 오늘의 최고점 구룡치를 지나면서 이제 남은건 내려가서 계곡으로 가는 편안한 길이다.
구룡치를 넘어서 편안하게 내려가는 둘레길 1구간
갈림길... 왼쪽은 구룡봉과 덕운봉을 넘어 노치마을에서 돌아오는 A코스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구룡계곡으로 바로 빠지는 구룡계곡 순환코스 구간이다.
갈림길에서 구룡계곡 순환길 루트를 택해 덕치리 쪽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소나무 향기 가득한 숲길인데, 길이 완만하고 편안하여 걸어가는 사람들 모두다 걷고 싶은 길이라고 한다.
사무락다무락
사무락다무락은 사망(事望)(일이 잘풀리기를 기원) 다무락(담벼락의 남원말)이 운율에 맞춰 변천된 것이라고 한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무사함을 빌고 액운을 막아 화를 없애고자 지날 때마다 돌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구룡치와 사무락다무락을 지나 덕치마을까지는 걷기 좋은 산길이다.
사무락다무락을 지나 덕치마을로 내려가는 피톤치트 가득한 참~편안한 숲길
숲길이 끝나는 곳에 우측으로 검은색 비닐하우스로 된 휴게소가 나오고 우리는 징검다리를 건너 개울을 건너면 운봉으로 가는 둘레길과 구룡폭포로 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구룡폭포 쪽으로 걸어간다.
잠시 도로를 따라 걷다가 구룡사 갈림길에서 도로를 버리고 구룡사쪽으로 들어선다
한동안 초록의 논 사이로난 길을 걷다가 숲속으로 접어들면서 구룡사가 슬쩍 보인다. 구룡사에 들러볼까 했는데 대충 보니 돌탑이 두어개 보이고 현대식 건축물이 보이는걸로 보아 전통사찰이 아닌듯 하여 다들 그냥 지나쳐 간다.
다시 숲으로 들어서 구룡폭포를 향해 간다.
가파른 산죽밭길을 내려서니 우렁찬 폭포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육모정 쪽에서 구룡계곡 왕복 트레킹을 하는 분들이다. 구룡폭포에서 계곡 끝지점인 삼곡교 까지 40분이 걸린다고 하니 널널 하게 왕복해도 2시간이면 충분한 코스다.
갈림길 출렁다리에 서서 폭포를 구경하는 사람들 왼쪽으로 가면 계단을 올라 구룡폭포 상단부를 볼수가 있고, 직진하면 내려가는 길이다.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구룡폭포 하단부
폭포의 높이가 30m 라고 하던데 대충 하단부의 높이만 봐도 30미터는 넘어 보인다.
구룡폭포
출렁다리에 서서 구룡폭포를 구경하는 일행들
구룡폭포 풍경
계단을 올라서 만나는 상단부 폭포 왼쪽 바위에 누군가 '방장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이라고 음각해 놓았다.
교룡담
구룡구곡중 제9곡인 교룡담(蛟龍潭) 은 구룡폭포 상단부의 두개의 용소로 마치 용 두마리가 어울렸다가 양쪽 못 하나씩을 차지하고 물속에 잠겨 구름이 일며 다시 나타나 서로 꿈틀 거린 듯하므로 교룡담이라 한다. 만복대와 정령치에서 흘러내린 물은 구룡폭포에 이르러 용트림을 하며 층층이 교룡담을 만들어 내고 아래로 길게 떨어지며 구룡폭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구룡계곡의 유래
구룡계곡은 용호구곡 또는 구룡구곡 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남원 8경중 제1경 이라는 구룡폭포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구룡폭포는 옛날 음력 4월 초파일이면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군데 폭포에서 한 마리씩 자리잡고 노닐다가 다시 승천했다는 전설 때문에 구룡계곡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편제와 구룡폭포
구룡폭포는 동편제 소리꾼들에게는 성지와 다름없는 곳이라고 한다. 폭포에서 수년간 외로이 독공(獨功)의 노력 끝에 득음을 하여 통달명랑(通達明朗)한 소리를 얻어내는 수행의 폭포로, 송만갑, 박초월, 강도근 등 당대 최고의 국창, 명창 들이 웅장한 폭포 소리에 맞서 절세의 소리를 다듬어 냈다고 한다.
상단부를 거쳐 출렁다리쪽으로 쏟아져 내리는 구룡폭포의 하단부 와폭부분
구룡폭포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
구룡폭포 밑으로 이어진 구룡계곡은 좁은 협곡 사이로 폭포와 소를 이루며 이어진다.
내려다본 계곡
구룡구곡중 제8곡인 석문추가 이 아래 어디 있을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다.
구룡구곡중 가장 보고 싶은 곳으로 석문추는 비폭동에서 600m쯤 올라가면 거대한 암석층이 계곡을 가로질러 물 가운데 우뚝 서 있고, 바위 가운데가 대문처럼 뚫려 물이 그 곳을 통과한다 해서 석문추라 한다. 양쪽 계곡의 가파른 바위를 경천벽 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웃기는것은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도 말뿐이지 석문추 사진은 한장도 없다는 것이다. 남원시청 홈페이지를 비롯해 어디를 찾아봐도 석문추가 어떻다는 글뿐이지 어찌된게 사진한장 찾을수 없는게 이해가 안된다. 보고싶다 계곡을 가로막은 큰 암석층과 가운데 구멍이 뚫려서 물이 흐른다는 석문추의 모습을...
비폭동
구룡구곡중 제7곡 으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반월봉인데, 거기서부터 흘러내린 계곡 물이 이곳 폭포에서 떨어지며 아름다운 물보라가 생기는데 이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담았다고 해서 비폭동 이라고 부른다.
또 다시 출렁다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다른 계곡이 흐르고 있다. 그런데 수질을 보니 이 계곡은 산에서 바로 이어지는지 물이 맑고 깨끗해 보인다.
구름다리를 건너오니 구룡구곡중 제6곡 이라는 지주대 안내판이 서있다. 기암절벽이 하늘을 떠받치듯 서있다는데, 안내판과 비교하며 아무리 봐도 하늘을 떠받치듯 서있는 바위봉우리는 없다. 계곡 건너편으로 잡목에 가려진 작은 바위가 하나 있기는 했다.
계곡따라 아름다운 소들이 계속 나온다. 물이 조금만 더 깨끗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룡계곡 이란 이름이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군데 폭포에서 한 마리씩 자리 잡아 노닐다가 승천했다는 전설 때문 이라는데 정말 용소가 최소한 아홉개는 될듯 하다.
유선대 앞의 계곡 풍경
유선대
제5곡 유선대는 반반한 바위에 금이 많이 그어져 있어 선인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에서 유선대라 불리운다는데 유선대 자체가 등로상에 있어서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인지 아무리 찾아봐도 금은 보이지 않는다.
등로는 계곡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이루어 진다는 사랑의다리
구룡계곡의 아름다운 풍경 군데군데 물 웅덩이가 많이 있어 시원한 물에 뛰어 들고픈 충동을 일으킨다.
챙이소
챙이란 '키'를 말하는 전라도의 방언인데, 키는 수확한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를 말하는데 빠른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챙이'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챙이소라 부른다고 한다. 이 챙이소는 또한 많은 소리꾼들이 우렁찬 폭포소리를 이기도 득음을 하기 위해 수련했던 장소 이기도 하다.
구시소
물살에 패인 바위 모양이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유통 처럼 생겼다고 해서 사투리를 써서 구시소라 부르는데 예전에는 길쭉한 모양으로 구유통 처럼 생긴것이 1960년 홍수로 인해 바위가 떠내려와 이와 같은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구시소 폭포 아래 소 안에도 홍수로 인해 떠내려온 바위들이 가득히 메워져 있다.
새로 설치한 듯한 전망대가 나오는데.... 굳이 전망대가 아니라도 구룡계곡을 잘 볼수가 있으니 만큼 특별한 별도의 용도는 없는듯 하다.
계곡트레킹은 삼곡교를 만나면서 끝이 난다. (15시)
삼곡교 위로 올라오면 한국
1987년는 한국자연보호협회와 경향신문사가 공동으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수 기념비 계곡은 그림같은 소와 아름다운 폭포들로 참 아름다운데... 지리산 정령치와 만복대에서 내려온 물이 구룡폭포에 이르기 전에 수질을 관리할 방법은 없을까..오히려 계곡 하류의 물이 더 깨끗해 보이니 말이다.
육모정
삼곡교에서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지리산 구룡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내려오면 육모정이 있다. 이 육모정은 약 400여년 전 지역의 선비들이 용소 앞 넓은 바위위에 육각형 모양의 정자를 짓고 지역의 향교 역할을 하며 후진 양성을 했다고 한다. 여섯 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을 여섯 모가 되도록 지었는데, 육각정이라고도 하고 또 배움의 날개를 편다하여 학모정 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그 육모정은 1961년 홍수 때 유실되었고 지금 보이는 육모정은 1997년에 현재의 자리에 복원해 놓은 것이다.
춘향묘
육모정 건너편으로 춘향묘가 있다.
춘향은 실존 인물인가?
춘향이 실존 인물 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남원시에서는 춘향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고 춘향의 사당도 지어 제도 지내고 있다. 1962년 사매면 도로공사 중에 '성옹녀지묘' 라는 비석을 발견하였는데, 당시 남원에서는 이 비가 성춘향의 비일 것이라 생각하고 어디에 묘를 쓰면 좋을지 많은 고심과 의논 끝에 판소리 춘향가에서 춘향전이 나온만큼 춘향가가 수련되고 완성되어진 이 곳 구룡계곡이 곧 춘향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옥녀봉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묘를 쓰게 되었다.
육모정 아래 계곡에는 용호정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있고, 계곡건너편에 취사공간이 있는지 '임시취사허용구간' 이라는 플래카드가 크게 불어 있다. 많은 피서객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고, 일부는 고기를 굽고 있는지 계곡 건너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다.
구룡계곡 인근 마을은 우물을 파지 않는다?
육모정 인근 마을이 호경리 인데, 주민의 말에 의하면 구룡계곡이 배(船)의 형국을 닮았다 하며, 가정집에 우물을 파면 물이 솟아나 배가 가라앉는다 하여 지금도 이 마을엔 우물을 팔 생각도 않고 또 파지도 않는다 한다. 대신 산 위쪽의 풍부한 자연수를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찾아 볼수 있었다.
옥룡추(용소)
구룡구곡중 제2곡 으로 이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닥이 비단처럼 아롱거려 보여 옛날에는 이 못을 불영추(不影湫) 라고도 했다고 한다. 또는 물이 옥같이 맑아 용이 살았다하여 옛날에는 이곳을 옥용추(玉龍秋) 라 불렸다고 한다. 이 용소의 북쪽에는 5m위 암벽에는 용호석문(龍湖石門)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 글씨는 조선후기 서예대가 창암 이삼만이 쓴 글씨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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