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할애비 (콩트)
작가: 백화 문상희
*낭독을 위한 최종 수정본 입니다*
백화산 상상봉 933미터 아래 500 고지 용호리
열 가구도 채 안 되는 산간마을이 있었다.
1970년 8월 일요일 어느 날이었다.
아랫마을에 사는 국민학교 3학년 민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탑골 종조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민수는 할아버지께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그래 민수 왔구나,
놀다가 점심 먹고 가거라!"
"예,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재민이 아재는 어디 있나요?"
"저기 뒷마당에 있나 보다 가서 찾아보거라!"
"예,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아재야~~~!"
목소리 우렁찬 민수는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서
재민이 아재를 불렀다.
다섯 살 아래 재민이 아재가 반가워서 뛰어왔다.
"응, 형아 왔네?"
형아 우리 가재잡으로 가자!"
그래, 알았어 아재야!
"그래 주전자는 어디에 있냐?"
"엉, 두지(헛간)에 있을 거라!
종조할아버지 댁 막내 재민이 아재는 언제나 민수를
형으로 불렀다,
민수와 재민이 아재는 찌그러진 주전자 한 개씩을
들고 도랑으로 향했다.
둘이는 형제처럼 손을 잡고 언제나 같은 동요를 불렀다.
"무궁~ 화 무궁~ 화 우리나라 꽃...
도랑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개울에 도착했다,
천혜적인 산간마을이라 오염도 환경파괴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피라미 튀김을 먹고 싶을 땐 족대질을 하면 되었다.
송사리 피라미를 두 시간이면 한 주전자 가득 잡았고
고소한 메뚜기볶음을 먹고 싶을 땐 빈 소주병을
들고 나가서 한나절이면 한 병 가득 잡았다.
오늘은 재민이 아재가 가재를 잡자고 해서 나왔다.
가재를 둘이서 잡을 땐 같이 있으면 안 된다
가재는 돌덩이 아래에 숨어있어서
돌을 들추면 흙탕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재민이 아재는 여기서 가재를 잡아~!
나는 저 아래 가서 잡고 있을 테니까 알았지!"
"응, 알았어 형아!"
민수는 열두 살이었고 재민이 아재는 일곱 살이었다.
그러니까 당연지사 민수가 많이 잡을 수밖에 없었다.
민수는 두어 시간 만에 거의 한 주전자를 잡았다.
그 시점에 재민이 아재가 민수에게 내려왔다.
"형아, 가재가 너무 빨리 도망가서 못 잡겠어!
나 조금만 주라!"
"안되여!
나는 어머니에게 같다 드릴 거야!
올 때 가재잡으로 간다고 말씀을 드리고 왔어!"
"그래도 힝,
나 조금만 주라 형아야!"
"안된다고 내가 그랬잖아!"
"알았어 형아, 배고프다 집에 가자~!"
"그래 나도 이제 갈 거다!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아재야!"
민수는 조금 전에 모래에 홈을 파서 가재를 가둬놓고
주전자를 가지로 갔다.
그런데 주전자에 가재가 절반밖에 없었다.
재민이 아재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니 가재가 가득했다.
"재민아!
내가 잡은 가재 네가 훔쳐갔잖아!"
"히이잉...
나는 세 마리밖에 못 잡아서 조금 덜어갔어 형아야!"
"안돼, 이리 줘!
실랑이를 하다가 주전자가 도랑에 엎질러졌다.
"인마!
왜 내 가재를 훔쳐가여!"
민수는 화가 나서 꿀밤을 몇 대 쥐어박았다.
"엉 엉 엉...
재민이 아재는 할아버지 댁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울음보가 터졌다.
"아버지!
형아가 가재 훔쳐갔다고 나를 때렸어 엉 엉 엉!"
"민수 네이놈!
어디 감히 아재비를 때려!
이런 천하에 못된 놈!
니 아비에게 말해서 단단히 교육을 시켜야겠다!
야 이놈아!
뱃속에 할아비도 있는데 감히 아재비를 때려!
"재민아!
"예, 아버지!"
"너도 똑같다 이놈아!
예전에 내가 가르쳐 줬잖아 이놈아!
민수가 나이가 더 많아도 조카라고 불러야지!
형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했잖아 이놈아!"
잠시 후 한숨을 내쉰 후 진정을 한 할아버지 말씀이었다.
"이놈들아 내 말 잘 알아 들었느냐?"
친척간에도 촌수가 있는 법이다 이놈들아!
니 아비와 나는 사촌 간이고
재민이는 나이가 적어도 너의 오촌 당숙이다 이놈아!
이다음부터는 꼭 아재와 조카 이렇게 부르거라!
알았느냐 이놈들아!"
"예 할아버지 잘 알겠습니다!"
민수는 집에 돌아와 엄마와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지만
돌아온 것은 무릎 꿇고 또 따끔한 훈계를 들어야했다.
"배고프지 민수야!
그렇게 말씀하시며 어머니는 늦은 점심을 차려주셨다.
민수는 그날 이후로 촌수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