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63코스 5부 구간은 태백산맥 문학공원 ㅡ 채동선생가 ㅡ 홍교(횡계다리) ㅡ 김범우의집 ㅡ
소화다리 ㅡ 철다리 ㅡ 벌교상업고등학교 ㅡ 현부자네집 ㅡ 소화의집 ㅡ 태백산문학관
태백산맥 문학공원
존재산 또는 징광산이라 합니다
태백산맥문학공원에서 청년단이 있었던 곳으로 이동 합니다
염상구
대하소설 태백산멕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270여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 염상구이다. 태백산맥이 영화로 만들어질 때에도 서로 염상구 배역을 맡으려고 했을 정도다.
소설에서 염상구는 악한 듯 하면서도 선하고, 잔인한 듯 하면서도 인정이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할 수만은 없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인물인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많이 들끓는 교통 중심지에는 상업이 범성하고, 거기에 기생하는 주먹패도 있게
마련이다. 형 염상진과 대비되면서 민족상잔의 분단과 갈등이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빨치산인 형은 자기 손으로 잡겠다고 벼르지만 정작 그가 형을 보게된 것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다.
그는 처참하게 죽은 자기 형의 목을 거두면서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라는 말로
형의 주검 거둔다
염상진
벌교 출신의 이성적이면서도 행동적인 지식인 빨치산으로, 우익 행동대장격인 염상구의 형이다.
타고난 낮은 신분과는 달리 총명하고 사리 분명한 인물이다.
가난을 면하고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했던 숯장수인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사범학교를 졸업하지만
교편을 잡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그는 자신의 출신기반과 같은 소작민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적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의 길에 나선다. 일제강점기에 소작회를 이끌면서 일본인
나카시마를 상대로 소작쟁의를 벌었다가 2년의 징역살이를 한다. 출감 후 징집영장이
날아들지만 자취를 감춰 3년 후 해방이 되기가 무섭게 모습을 드러낸 그는 공산당 활동을 시작한다.
여순사건이후 남로당 군당위원장으로 한국전쟁 중에는 도당 조직부장 도당 총사령부 부사령관으로 활동한다.
휴전 후 국군과 경찰 토벌대의 대공세에 몰리자 자신을 따르던 빨치산들과 함께 지리산에서 비장한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그의 목은 '악질 빨갱이 염상진 사살'이라 적흰 글과 함께 벌교역 광장에 내걸린다
청년단 건물이 있었던 이곳에서 홍교는 도롯길 따라 곧바로 가도록 이정표는 안내하고 있지만
남파랑길 63코스는 데크계단을 올라 체육공원 충혼탑을 거처 채동선생가를 지나 홍교로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채동선음악당이 내려다 보이네요
벌교읍행정복지센터와 채동선음악당
중도파 지식인 서민영이 야학을 열었던 회정리교회(현, 보성군청소년문화의집)
(야학(夜學) : 민간단체나 학생 등이
근로 청소년이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 등을 대상으로 야간에 운영하는 비정규적 교육 기관)
벌교읍사무소
1937년 벌교읍 승격으로 건물(2층) 건립
당시 건물은 화재로 소실하여 다른 장소에
현재의 건물 신축(위 벌교읍행정복지센터 사진)
체육공원
체육공원
체육공원
충혼탑
횡계다리
김사용의 아들 김범우의 집
송광사포교당
김범우의집에서 백아산쪽으로 낙안벌이 바라보이며, 하대치의 안해 친정인 들몰(평촌마을)도 고읍들녘 중앙에 있군요
하대치(下大治)
빨치산이었던 그는 휴전 후에도 ㅍ끝까지 살아남는 주인공 가운데 주인공이다. 대지주의 가복으로 대물려 살다
동학에 가담해 죽은 할아버지가 생전에 품었던 한을 담아 붙여준 이름이 대치(大治)이고,
화전을 하던 아버지(하판석)가 중도 방죽을 막는 노동을 하게 되면서부터 벌교에 살게 된다
키는작았지만 뼈대가 굵었고,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거들며 단련된 몸은 옆으로 딱 바라ㅈ져 씨름에 남다른
장기를 보였는데 특히 허리치기는 일품이였다. 끝도 한정도 없이 고달프고 목마르고 허기진
소작농의 길을 벗어나기 위해 일본인 지주 나카시마를 상대로 소작쟁의를 벌이다 결국 징용을 간다.
그가 속한 소작회를 이끌었던 사람이 염상진이었고, 마음과 뜻이 하나같이 맞아든 염상진을 그는 우러러
볼 수밖에 없었다. 북해도 탄광으로 여기저기 비행장 닦는 데 5년여를 끌려다니다 해방과 함께 돌아온
그는 이미 사회주의사상에 깊이 물둘어 있었고, 타고난 머리에 건강한 몸과 용기까지 지닌
하대치는 민중의 표상으로서, 끝없이 진화해가면서 태백산맥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불사의 길을 간다
들몰댁
하대치의 안해로 배움은 없어도 속이 깊다. 시아버지 하판석 영감이 하대치에게 숙청당한 지주들과 부자들의 아들들에게
테러를 당해서 죽자, 효심이 깊은 들몰댁이 시아버지가 좋은 곳에 갈 수 있도록 굿을 부탁하러 왔는데,
들몰댁 남편이 좌파라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낀 소화가 집안살림을 돌보는 식모로 고용하게 된다.
그날 이후 들몰댁은 정하섭과 힘겨운 사랑을 하는 소화를 옆에서 지켜주는 든든한 사람이 된다.
체육공원 곁의 충혼탑에서 채동선생가로 가고 있습니다
채동선선생 생가
채동선생가 삽작걸은 자물통으로 잠겨 있고~
우물가 표지판을 줌하여 볼까
아하~
채동선 생가에서 홍교로 이동 합니다
홍교(횡계다리)
홍교란 다리 밑이 무지개같이 반원형이 되도록 쌓은 다리를 말하며, 아치교·홍예교·무지개다리라고도 한다.
이 다리는 현재 남아 있는 홍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한국에 남아있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대표적인 돌다리이다. 홍교가 놓이기 이전에는 뗏목다리를
놓아 건너 다녔다고 하는데 벌교(筏뗏목 벌, 橋다리 교)하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조선 영조 5년(1729)에 순천 선암사의 승려인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후 영조 영조 13년(1737년)과, 다시 헌종 10년(1844년)에 고친 바 있다.
지금의 모습은 1981∼1984년까지의 4년에 걸친 보수공사를 통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불교에서는 다리를 놓아 사람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하는 월천공덕을 중요한 보시로 꼽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무지개 모양을 한 다리밑의 천장 한 가운데 마다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돌출되어 아래를 향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물과 용의 관계에서 오는 민간신앙의 표현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이 용의 코끝에 풍경을 매달아 은은한 방울소리가 울려퍼지도록 하였다고 한다.
다리가 놓여진 강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데, 썰물 때에는 다리 밑바닥이 거의 드러나고,
밀물 때에는 대부분이 물속에 잠긴다.
건너온 홍교를 뒤돌아 보고~
홍교(횡계다리)를 건너와 김사용의 아들 김범우의 집으로 갑니다
김범우의집 담장 입니다. 일부 담장이 무너진 곳은 보수가되었군요
김범우
유학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강단과 지조를 지닌 선비이자 양심적 지주인 김사용의 아들이다.
독립운둥을 하다가 한국전쟁 중 전남 서남지구사령관이 되어 나타난 형 김범준과는 열 살 터울이다.
훤칠한 키에 균현 잡흰 체격을 가진 그는 해방 전 학병으로 입대하지만 미군의 포로가 되어
OSS 훈련을 받고 뒤늦게 귀향해 순천중학의 선생이 된다.
한때 이상적 평등사회를 위해 봉건적 계급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인식과 민족주의 통일 노선을 지향한다.
그는 믿고 따랐던 염상진의 극렬한 좌경을 체념하면서 정치 폭력화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혐오한다.
그는 정치적 택일보다는 민족의 발견과 단합을 역설한다. 그러나 한국전쟁 중에는 좌익에 가담해
도당 문화선전부에서 일하기도 하고 미군의 통역요원 노릇을 하다가 탈출해 인민군 통역관으로도 활동한다.
서부전선으로 후퇴하던 중 총상을 입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분단으로 남겨진 숙제를 풀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진다
7~8년 전부터 관리가 되고 있지를 않는 2021년 12월 현재의 모습니다
동편 마당
동편 마당
김범우의 집 바깥에서 홍교로 갑니다
홍교로 되돌아 왔습니다
외서댁
소작인 강동식의 안해이다. 외서에서 벌교로 시집온 탓에 택호를 외서댁으로 불렀다.
하대치 따라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그녀는 소설에서 여자들을 대표하는 주인공이다.
남다른 육감적 외모에 손가락마다 봉숭아꽃 물들이기를 좋아하고, 하얀 치자꽃을 한없이 좋아할 만큼
섬세하고 여성스러웠다. 그러나 그녀가 지닌 육체적 매력 때문에 염상구의 눈에 띄게 되면서
결국 남편을 죽게 하고 자신은 빨치산이되는 기구한 삶의 역정을 걷게 된다.
야성적이며 토속적이고 육감적인 매력을 지닌 그녀는 또 하나의 여주인공 소화와 대칭적인 자리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는 것도 소설 이해의 묘미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개성들이 하대치의
특이함과 어떻게 대비되고 조화되는가를 파악하는 것은태백산맥의 핵심을 꿰뚫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토벌대가 빨갱이들을 잡아다가 북초등핵꼬와 남초등핵꼬 운동장에서
좌익은 우익을~ 우익은 좌익을 잡아다가 인민재판을 하고는
소화다리 이곳으로데꼬와 총으로 탕 쏴~ 죽이고, 몽둥이로 퍽퍽 두들겨 패 죽이고, 죽창으로 쿡쿡 찔러 죽~
벌교읍사무소(행정복지센터) 앞 측면에는 청년단 터가 있다. 청년단 터를 출발하여 충혼탑 ▶ 부용정(팔각정)
▶ 부용산 정상으로 오를 수 있는 등산로 따라 오르다 부용정에서 잠시 지난 역사의 숨결을 음미해 보자
부용정을 M-1 고지(벌교공원)라 한다. 소설 속 벌교, 보성지구 심재모 중위가 계엄군사령관으로 부임한 후 벌교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종합사령소를 세우고 자신이 쓰는 M1 총 이름을 따서 M1고지라고 명명하였다 한다
왜정시대 땐 일본인의 신사가 있던 자리였다 한다
1999년 부용정(팔각정)을 건립하였다
남파랑길 63코스 6부로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