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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일월 간 일시지 재충 대발 |
일간월간(日干月干) 일지시지(日支時支) 충출궁재(冲出宮財) 발재대발(發財大發) |
「일간과 월간이 일지와 시지가 상대궁의 재를 충하면 발재한다.」
39. 재고무상 금옥만당 |
재고무상(財庫無傷) 퇴금적옥(堆金積玉) 관다불영(官多不榮) |
「금은보석이 창고에 가득한 것은 재고가 손상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이 강하면 영화를 누리지 못한다.」
신왕하고 관이 왕하여야 좋은 경우가 있는데 庚金 일주는 무쇠에 해당하여 강한 火로 달구어야 무쇠가 단단해지고 예리하여 유용한 기구와 그릇이 된다.
벽연부 |
『金旺得火 方成器皿 금왕득화 방성기명』 |
「金이 왕성하면 火의 극을 받아야 유용한 그릇이 된다.」
▲ 실례 1. 남자 1921. 10. 4 입동 9. 29
(롯데 신격호 회장)
편인 일주 편인 겁재
戊 庚 戊 辛
寅 午 戌 酉
편재 정관 ∘편인 겁재
삼합 火국
78 68 58 48 38 28 18 8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丁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 격국용신: 귀록격으로 상관생재하여 木,火 희신, 水, 木 기신
甲木 일주가 亥월에 출생하여 연주에 壬水 편인이 투출하여 편인격으로 월주 辛金 정관이 관인상생하여 관인상생으로 귀기가 흐른다.
일지에 午火 상관이 임하여 寅午戌 삼합 火국을 이루어 강한 상관이 기가 상관생재하여 무든 기가 재로 흐르고, 강한 재가 다시 월주 辛金 관으로 흐르고 金생水하고 水생木하여 오행의 기가 상생하여 길하다.
甲木 일주가 亥월에 득령하여 시지 寅에 록을 놓아 金생水 水생木하고 寅亥 합하여 일주가 왕상하여 상관생재하여 木,火 희신, 水, 木 기신
▪ 부모궁에 인수가 강하여 형제가 많다.
월주 부모궁에 戊戌 土 인수가 9월에 임하여戊土 편인이 간여지동이 되어 土생金하여 형제가 많다.
경남 울주군 상남면 둔기리에서 5남 5녀의 장남으로 태어 낳다.
울산 농업보통학교를 나와 경남도립 종축장에 기사보로 취업하였으나 박봉의 삶이 싫어 18세에 단돈 83엔을 가지고 일본 행 여객선에 몸을 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丙申(18세~27세) 대운에 일본으로 건너간다.
丙火 관이 申 역마위에 앉아 직업의 변화가 발생하여 다니던 직장을 구만 두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1940년 20세 庚辰년에 결혼
대운 丙申과 申辰 합水하여 辰 중의 乙木이 辰戌 충하여 월지 혼인궁을 충하여 결혼이 이루어지나 辰戌 충으로 해로하지 못한다.
대식구를 둔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두 차례 결혼했다. 같은 마을에 살던 노순화씨를 아내로 맞아들인 게 초혼이다. 이들 사이에 딸 영자씨(롯데백화점 부사장)를 낳았다.
하지만 당시 울산농고를 졸업하고 종축기사로 일하던 그는 9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부모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어 현해탄을 건너기로 마음먹고 일본행 배편에 몸을 실었다.
반면 신 회장의 일본행으로 1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낸 조강지처 노순화씨는 롯데가문의 장녀인 영자씨(1942년생)를 홀로 키웠다. 그러다가 신 회장이 완전 귀국하기 전인 지난 1960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당시 울산농고를 졸업하고 종축기사로 일하던 그는 9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부모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어 현해탄을 건너기로 마음먹고 일본행 배편에 몸을 실었다. 신혼생활은 신 회장이 일본으로 가출하여 1년여 만에 끝났다.
노 여사는 남편의 금의환향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51년 辛卯 년에 요절하였다.
반면 신 회장의 일본행으로 1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낸 조강지처 노순화씨는 롯데가문의 장녀인 영자씨(1942년생)를 홀로 키웠다. 그러다가 신 회장이 완전 귀국하기 전인 지난 1960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1941년 21세 辛巳년에 도일
연지 酉를 기준하여 세운 巳 지살이 巳火 관에 임하여 새로운 직장을 찾아 일본으로 단돈 83원을 가지고 일본으로 떠난다.
그러나 대운과 원국이 申酉戌 金 국을 이루어 고향 친구의 자취방에 머물며 우유배달 신문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
돈이 모여지면 헌 책방으로 달려가 문학 작가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현실이 받쳐주지를 못하였다. 먹고살기 위하여 기술을 배워야 하였다.
와세다 고등공업부 화학과에 입하여 고학을 하였다.
1944년 24세 甲申년에 파재
甲木 편재가 천간에 나타나서 비겁의 록 위에 앉아 壬水의 생을 받고 있으나 申,酉,戌 金국이 되어 손재를 당한다.
대운 丙火에 천덕귀인과 월덕귀인이 임하여 火극金하여 재를 호재하고 있으나 丙火가 운지 申에 병이 들고 연주 辛金이 丙辛 합극하여 호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파재를 당한다.
일본의 패전이 짖어갈 무렵에 신격호 청년의 성실함에 감동을 받아 일본 노인이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사업을 해보라며 선뜻 60,000엔을 내놓았다.
1945년 25세 乙酉년에 파재
명운세가 申,酉,戌 金국을 이루고, 연주가 乙辛 충하여 乙木 재가 전부 극을 당하여 午월에 공장에 폭격을 당하여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하여 파산하였다.
그러나 첫 사업은 공습을 맞아 완전히 파산하고 빚더미에 앉았다
친구들은 귀국을 종용하였으나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산다는 것을 그는 용납할 수 없었다.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1946년 26세 丙戌년에
丙火 관이 대운과 연합하여 火극金하고 호재하며 살인상생이 되고, 戌월에 출생하여 丙火에 천덕귀인과, 월덕귀인이 임하여 사업이 불같이 일어난다.
벽연부 |
『金旺得火 方成器皿 금왕득화 방성기명』 |
「金이 왕성하면 火의 극을 받아야 유용한 그릇이 된다.」
35.46. 희기편 |
『庚値寅而遇丙 土旺 無危 경치인이우병 토왕무위 』 |
「庚金이 지지 寅에 자리를 잡고 丙火를 만나도 土가 왕하면 위태로움이 없다.」
丙戌 火가 寅午戌 삼합 火국을 이루어 삼합 火국은 각기 다른 성질의 물질이 모여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니 이것은 화학작용이다.
丙戌 년에 간단한 화학의 원리를 이용하여 비누 세제와 크림을 만들어 생활에 유용한 기구를 만들어 내어 사주의 분수 모양을 따라서 대박을 보게 된 것이다.
1946년 5월 도쿄 스키나미 區(구)의 낡은 창고를 빌려 가마솥을 걸었다. 그리고 그럴듯하게 히카리특수 화학 연구소라는 간판도 내 걸었다.
그는 심기일전하여 그전 보다 심기일전하여 열심히 일을 하였다.
커팅 오일을 응용하여 비누와 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대박이 나서 일 년 반 만에 노인에게 빚진 6만 엔을 모두 갚았다.
1947년 27세 丁亥년에 식신 생재하여 국수사업 성공
亥水 식신에 甲木이 장생이 되어 식신생재하여 식신은 음식의 신이 되고, 재는 양명지원으로 사람이 먹고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음식물이 된다. 음식 중에서 甲木은 길이가 긴 것으로 국수가 된다. 국수가 亥에서 장생이 되어 국수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여 팔면 사주팔자의 분수를 따르게 되어 대박이 난다. 천간에 있는 丁火의 천을귀인은 亥가 되어 亥에 재가 장생이 되어 국수사업을 하면 성공한다.
내친김에 비누를 만들던 가마솥에서 국수 만들기 시작하여 판매 하였는데 불티 난 듯이 팔려 많은 돈을 벌었다.
乙未(28세~37세) 대운에 未戌 형으로 치부
乙木 정재가 未土 묘고에 통근하여 천을 귀인의 도움을 받아 월주 戌과 未戌 형하여 공업으로 치부한다.
비누를 만들던 공장에서 국수를 빼내서 팔아 대박이 났다.
1948년 28세 戊子년에 식신 생재하여 껌 사업
庚金의 강한 기운을 상관 子水로 설기하여 대운 乙未 木을 생하여 상관생재하고 대운 未에 천을귀인이 임하여 대길하다.
戊子 년의 상관 子가 대운 未와 子未 상천살이 되어 子와 未가 서로 부딪치고 마주 총을 쏘는 형태가 상천살이다. 子 상관은 내가 생하는 것으로 생재하여 未 묘고에 들어있는 죽은 재 음식이 되어 아무리 상천살로 아무리 씹어도 씹히지 않고, 먹을 수 도 없는 껌을 만들게 된다.
껌 사업이 대박이 나서 껌을 사러 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1948년 6월 28일에 신주쿠 허허 벌판에 종업원 10명의 롯데가 태어나게 되었다.
문학청년으로 문학의 뜻을 펼치지는 못하였으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샤롯데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껌 업계에서 최고였던 해리스를 제치고 64년에는 그토록 바라던 초콜릿 시장에 뛰어 들었다.
이렇게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고국에 진출한 그는 한국 롯데를 국내 재계서열 5위의 유통명가로 키웠다.
현재 자신이 29조 7000억원 계열사수 41개, 종업원수 3만 5000명이다. 일본 롯데에 비교도 안 될 매출액 26조원이다.
1983년 癸亥년에 미스 롯데 선발
본명 서승희씨는 미스 롯데로 선발되어 롯데제과 광고 등에 나오다가
1980년 유학길에 오르고 삼년 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딸 신유미를 낳는다.
서 미경 씨는 두 딸과 함께 롯데그룹과 관련이 있는 회사에 주주로 혹은 임원으로 참여하였고, 친인척이 롯데관련 기업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99년 80세 己卯년에 木극土 인수를 극하여 부모 묘 도굴
己土 인수를 卯木이 극하고, 월주 戊戌 부모궁을 卯戌 합으로 합극하여 돈에 눈이 멀 은 도굴꾼에 의하여 부모의 묘를 도굴 당한다.
▪ 신격호 회장의 약력과 계열사 (인테넷에서 발취)
1944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화공학과를 졸업했다.
1949년 일본에서 (주)롯데를 설립하여 사업을 시작한 후
1959년 롯데상사,
1961년 롯데부동산,
1967년 롯데아도,
1968년 롯데물산·(주)훼밀리,
1970년 롯데회관,
1971년 롯데전자·롯데오리온즈구단, 1972년 롯데리아,
1978년 롯데리스,
1985년 롯데데이타센타,
1987년 롯데엔지니어링 등을 설립하는 등 계속적으로 사세를 확장하여 세계 10대 재벌이 되었으며,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1948년 이후부터 1992년 현재까지 재일(在日) 롯데그룹 회장으로 있다.
1966년 이후에는 사업을 한국에까지 확장,
1966년 롯데알미늄,
1967년 롯데제과,
1973년 호텔롯데·롯데전자·롯데기공,
1974년 롯데산업·롯데상사·롯데칠성음료,
1978년 롯데크리스탈호텔·롯데삼강·롯데건설·롯데햄·롯데우유,
1979년 롯데쇼핑,
1980년 한국후지필름,
1982년 롯데자이언츠·롯데캐논·대홍기획 등을 설립했다.
1992년 현재 롯데그룹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으며, 국내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동탑산업훈장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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