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1434)
프라 안젤리코
1420년대 말에는 피렌체 회화의 세 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로렌조 모나코(Lorenzo Monaco,1370-1425),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 1370-1427),
마사초(Masaccio, 1401-1428)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 대가들의 유산을 이해하고 이를 계승할 수 있는 화가는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로 알려진 요한 수사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프라 필리포 리피, 우첼로, 도메니코 베네치아노 등이
피렌체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1430년대 후반까지 이어져,
이 기간 피렌체의 주요 회화 주문은 모두 요한 수사에게 몰렸다.
그에게 작품을 의뢰한 곳과 사람은 피렌체의 교회와 길드, 귀족과 부호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당시 피렌체의 최고 부자 중 하나인
팔라 스트로치(Palla Strozzi)도 있었다.
그는 산타 트리나타(Santa Trinita, 성삼위) 교회의 스트로치 경당 제단화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로렌초 모나코에게 주문을 했으며,
모나코는 국제고딕양식의 형태로 틀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는데,
그가 1425년에 갑작스럽게 죽게 되자,
요한 수사가 이를 인계 받아 1434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제자들이 두 개의 사다리를 십자가에 세우고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리고 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리는 제자들은 모두 네 명인데,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발을 잡고 있는 제자는 베드로이고,
예수님의 허리를 받치고 있는 제자는 요한이며,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내리는 제자는 안드레아와 야고보로 추정된다.
그리고 축복하는 손짓을 하며 베드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검은 모자를 쓴 이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일 것이다.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달라고 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사가 바사리는 그를 피렌체 산마르코 수도원을 재건한 건축가인
미켈로초(Michelozzo di Bartolomeo, 1396-1472)의 초상이라고 주장했다.
아무튼 중앙에 있는 예수님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서는 선혈이 흐른다.
왼쪽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배경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거둘 준비를 하며 애도하는 여인들이 있다.
이들 한가운데 푸른 망토를 두른 성모 마리아가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고,
붉은 옷을 입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회개하며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있으며,
다른 여인들은 성모 앞에 수의를 펼치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시신을 거기에 모시기 위함이다.
왼쪽 끝에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등을 보이고 선 여인이 있는데,
이는 관람자들을 그림 속의 사건에 참여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오른쪽에는 토스카나 언덕을 배경으로 당대 피렌체의 중요한 인물들이 그려졌는데,
이들은 붉은 모자를 쓴 이가 내민 가시관과 못을 바라보며
그리스도 수난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있다.
오른쪽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은
14세기말에 돌아가신 스트로치 가문의 선조 알렉시오이다.
그는 가슴에 댄 오른손으로 참회를,
내민 왼손으로 관람자들을 수난에 대한 묵상에로 초대하고 있다.
이로써 화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 뒤로 이어질 구원이 펼쳐질 장소가
관람자들이 생활하는 곳과 멀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피렌체에서 제단화에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가 등장한 것은
이 그림이 처음이다.
그는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로 슬픈 사건을 그려내면서,
특유의 바란 듯한 빛이 스며들어 진동하는 듯한 색채와
인물들 간의 시선과 표정으로 그윽한 교류의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팔라 스트로치는 이 그림 속 예수님처럼 평온하게 이 경당에 묻히고 싶어 했지만
제단화가 설치된 지 2년도 안 되어,
유배지에서 되돌아온 코시모 데 메디치에 의해 반역 협의로 추방되어
다시는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했다.
코시모의 복수로 스트로치 가문이 제거되자,
피렌체의 부와 권력은 메디치 가문이 차지하게 되었고,
메디치 가문도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을 원하게 되었다.
왼쪽과 오른쪽 배경 하늘에 있는 세 천사는 사랑, 희망, 믿음을 상징하는
빨강색, 녹색, 흰색 옷을 입고 합장하며
서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또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묵상에로 초대하는 장치이다.
그림 상부 첨단에는 부활에 대한 세 개의 주제가 있는데,
왼쪽부터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부활>,
<무덤의 세 마리아>이다.
죽음 뒤에 오게 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배경에 담은 것이다.
오른쪽과 왼쪽 틀 안에는 성인들의 입상이 있는데,
오른쪽에는 사도 성 베드로와 사도 성 바오로, 그리고 성 도미니코가 있고,
왼쪽에는 대천사 성 미카엘과 성 베네딕토,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가 있다.
또 반신상의 틀에는 위로는 예언자들과
아래로는 프란치스칸 성인과 도미니칸 성인이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