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서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강연을 하나 들었다. 제목은 삶에 이유가 꼭 있어야 하나였다. 시큰둥한 고미숙 선생의 강연이었다. 잘 들었고, 흐뭇했다.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것은 자의식 과잉에 관한 거다. 우리는 거창한 이미지 속에서 산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입하기 때문이다. 멋있어야 하고, 잘 생겨야 하고, 키도 커야 하고, 게다가 말도 잘해야 한다. 평범한 우리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모습을, 세상은 우리에게 강요한다. 그걸 쫓아가지 못하면 꼭 실패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여기에서 불행이 시작된다.
이것은 심리치료에서도 다루는 부분이다. 어려서 상처를 많이 받으면 왜곡된 자기 이미지를 만들게 된다. 이것을 신경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진짜 자기는 상처받아 숨기고, 이상화된 자기를 만들어 그 속에 자기를 감춘다.
나의 경우에도 한 때 상처를 크게 받아 세상을 왜곡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상처로부터 나를 분리시켰다. 결과는 자의식 과잉과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내가 소설 속의 영웅이 된 것처럼 느껴졌고, 세상을 구해야 하는 사람처럼 생각됐다. 이런 생각을 꽤 오랫동안 하게 됐다. 상처가 심할수록 그 기간은 길어지는 것 같다. 다행이 나의 경우에는 좋은 상담가 선생님과 꾸준히 심리상담을 통해 거짓 자기를 조금씩 없애갈 수 있었다.
사람은 현재 자기 진짜 모습대로 살아야 편하고 행복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거대한 자의식에 눌려 진짜 자기는 왜소한 상태가 된다. 진짜 자기가 소외되고 지독한 공허와 고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벗어나려면 비우기를 잘해야 한다. 현대 물질문명 사회는 사람들에게 계속 무언가를 채우게 하고, 성공을 향해 나아가길 재촉한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멈출 줄 알아야 한다.
현대 서구 사회도 비대해진 사회 속에서 치유하기 위해 동양의 정신에서 그 해법을 찾고 있다. 법정스님을 위시한 동양의 승려와 현자들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비움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실제의 우리 삶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미 찔 대로 찐 비대함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곧 정신적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기이다.
현대인들은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듣고, 또 너무 많이 말을 한다. 이 속에서는 자연히 정신이 들뜰 수밖에 없다. 법정스님이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려는 뜻을 품은 이유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함이다. 나조차 가만히 있는 걸 어려워한다. 원인은 자의식 과잉에 있을 것이라, 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비대해진 자기 이미지에 맞게 하려면, 계속 무언가를 보고, 들으며 끊임없이 채우지 않으면 허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빠져 있는 문명의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세상은 갖가지 화려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유행을 따르길 유혹한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끊임없이 성공한 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이미 지나치게 양극화되어 있고, 누구도 현재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한다.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왜소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세상의 요구에 짓눌려 작아진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받아들이자. 자신의 아름답지 않은 모습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멋진 나로 가는 첫 발걸음이라고 했다. 정말 끔찍한 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잊은 체 왕자병, 공주병에 걸려 살아가는 삶이다. 그동안 자의식이 비대해져 그런 모습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는가? 그 삶의 무기력과 끔찍함에 질려 빠져나오고 싶은 게 아니었는가?
내 생각에 이 작업은 혼자서는 힘들다고 본다. 정신적 작업을 도와주는 트레이너, 그러니까 심리상담전문가나 책 읽기를 통해, 그동안 가득했던 욕심을 비워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