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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개정] '세계연방은행'을 상상한다⑫ ㅡ전쟁을 어렵게 하는 이치: 빼앗을 수 없는 담보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동료들
이 구상의 출발점은 평화였다.
제1부에서 지대본위화폐는 남과 북이 느슨하게 묶이는 단계에서 쓸 '제3의 매개화폐'였다. 어느 한쪽의 통화를 쓰면 그쪽이 상대를 쥐게 되므로, 둘 다 가진 것으로 담보를 세우자는 생각이었다. 땅에서 해마다 생기는 지대 말이다.
그 뒤로 열한 편을 금융 이야기로 썼다. 발행 방정식과 담보와 지분과 의석을 따졌다. 그러는 동안 처음의 물음이 뒤로 밀렸다. 이 화폐는 전쟁과 어떤 관계인가.
마지막 본편을 그 자리에 둔다. 이 회차는 설계도가 아니라 생각의 걸음을 따라가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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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무엇을 가지려 하는가
전쟁을 막는 화폐를 상상하기 전에, 전쟁이 무엇을 가지려 하는지부터 보자.
전쟁은 소유를 가지려 한다. 땅문서와 금고와 유정과 광산이다. 들어가서 차지하면 그 순간 내 것이 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지금의 화폐와 전쟁은 서로 잘 어울린다. 지금 세계의 화폐는 피아트라 불리지만 실질은 소유를 담보로 삼는다. 제1부에서 원화를 두고 '지가본위'라고 불렀던 그것이다. 은행은 땅값을 보고 돈을 빌려주고, 그 대출이 다시 신용을 만든다. 땅을 차지하면 담보가 생기고, 담보가 생기면 돈이 생긴다. 정복과 화폐 사이에 바로 길이 뚫려 있는 것이다.
1931년 일본이 만주로 간 것,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로 간 것, 지금 세계 곳곳에서 광물 산지를 두고 벌어지는 일이 다 같은 셈이다. 전쟁이 대차대조표에서 플러스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전쟁의 가장 오래된 재무 구조다.
기축통화를 쥔 나라에는 길이 하나 더 있다. 전쟁비용을 세금으로 걷지 않고 다른 나라가 보유해줄 부채로 치를 수 있다. 세금이면 국민이 "그 전쟁을 왜 하는가" 하고 묻기 시작하는데, 부채면 묻지 않는다. 그 물음을 건너뛰는 장치를 가진 나라가 세계에 하나 있다.
여기에 한 장면을 얹자. 1971년 8월 15일, 닉슨이 금 창구를 닫았다. 그때까지 달러는 금 1온스를 35달러로 바꿔주겠다는 약속에 묶여 있었는데, 베트남전 지출이 겹치며 달러가 세계에 넘치고 각국이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바꿔줄 금이 모자랐다. 그래서 바꿔주지 않기로 했다.
거꾸로 읽으면 뜻이 달라진다. 담보가 전쟁 지출을 제약하자, 전쟁이 담보를 버린 것이다. 1914년 8월에도 유럽의 교전국들은 전쟁이 시작되자 금 태환을 사실상 정지시켰다. 담보가 전쟁을 막은 것이 아니라 전쟁이 담보를 걷어냈다. "담보가 있으면 전쟁이 어렵다"는 말은 이 역사 앞에서 함부로 할 수 없다.
그런데 지대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보자. 지대는 소유가 아니다. 흐름이다. 땅에서 사람이 일해서 해마다 생겨나는 것이고, 올해 생기고 내년에 다시 생긴다. 금고에 넣어둘 수 없고 한 번에 가져올 수 없다.
정복자는 땅을 차지할 수 있다. 등기부를 바꿀 수 있고 깃발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흐름은 차지할 수 없다. 흐름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승복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일을 나가야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점령이 가장 못하는 일이다.
증서를 얻고 흐름을 얻지 못한다. 이 한 줄이 이 글의 중심이다.
임진왜란이 보여준 것
막연한 추론이 아니다. 우리 역사에 실험이 두 번 있었다. 같은 침략자가 같은 땅에서 300년을 두고 두 가지 방식을 써보았다.
1592년, 일본군은 7년 동안 조선의 넓은 땅을 점령했다. 그런데 그 땅에서 지대를 걷지 못했다.
곳곳에 의병과 승병이 있었고, 백성들은 곡식을 숨기거나 태우고 산으로 들어갔다. 점령군은 먹을 것을 현지에서 구하지 못해 바다로 보급을 받아야 했는데 그 길이 끊겼다. 그래서 남해안에 왜성을 쌓고 거기 갇혔다. 전쟁이 끝났을 때 조선의 경작지는 크게 줄어 있었다. 점령지에 남은 것은 유량이 아니라 폐허였다.
전면전으로 점령하면 이렇게 된다. 땅은 손에 들어오고 그 땅에서 나오던 것은 사라진다. 소유를 얻고 흐름을 잃는 것이다.
강점기가 보여준 것
두 번째가 더 중요하다. 식민지 수탈을 떠올리면 앞의 논지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일제는 조선에서 35년 동안 막대한 것을 가져갔다. 쌀과 노동과 사람까지 가져갔다. 그러면 점령자가 흐름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은 전쟁으로 점령한 것이 아니었다.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서울에 들어왔고, 그 군사적 압력 아래 한일의정서와 을사조약과 정미조약이 차례로 체결되었다. 군대가 쳐들어와 나라를 깨뜨린 것이 아니라, 이미 주둔하고 있던 군대의 힘으로 지배하는 쪽을 갈아치운 것이다. 왕조는 교체되었지만 행정 기구와 조세 기구와 생산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물론 그 전후로 의병이 싸웠다. 그러나 전선이 그어진 전면전은 아니었다.
그래서 수탈이 가능했다. 그리고 일제가 병합 직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보면 이 구조가 분명해진다.
토지조사사업이었다.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의 땅을 측량하고 지적을 만들고 소유권을 확정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총독부가 최대 지주가 되었다. 말하자면 일제는 지대를 힘으로 뺏은 것이 아니다. 지대를 뽑아낼 측량 체계를 먼저 세우고, 그 체계로 걷었다.
강점기 안에서도 같은 법칙이 보인다. 의병전쟁이 격렬했던 지역에서 일제는 초토화에 가까운 토벌을 벌였고, 그런 곳에서는 생산이 무너졌다. 실제 전투가 벌어진 만큼 수취가 어려워진 것이다.
같은 침략자, 같은 땅, 300년 차이. 하나는 전쟁으로 점령했고 하나는 측량으로 점령했다. 지대를 뽑아낸 것은 측량한 쪽이다.
그러니 무서운 것은 침공이 아니다
두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결론이 뒤집힌다.
지대를 담보로 삼는 체제가 취약한 것은 침공이 아니다. 전면전은 흐름을 없애버리므로 정복자에게 남는 것이 없다. 무서운 것은 주민과 장부를 그대로 두고 권력층만 바꾸는 방식이다.
보호국으로 만들거나, 괴뢰 정부를 세우거나, 조약에 도장을 받거나, 초청의 형식으로 들어가거나, 선거를 장악하는 것. 이 경로에서는 지대가 계속 흐르고 장부가 깨끗하다. 그 지역이 스스로 지대를 재서 올리고, 교차검증하는 쪽은 서류에 찍힌 도장을 본다. 을사조약에도 도장은 찍혀 있었다.
그러니 "무력으로 지배가 바뀐 땅의 지대는 셈하지 않는다"고 적어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로 그 조항을 빠져나간 사례가 우리 역사다.
재는(평가하는) 일은 중립이 아니다
여기서 이 연재를 돌아본다.
이 연재가 제안하는 것이 바로 측량이다. 땅의 쓰임을 재서 그것을 화폐의 담보로 삼자는 것. 그런데 일제가 조선에서 제일 먼저 한 일도 땅을 재는 일이었다. 같은 행위가 한쪽에서는 공유부를 드러내는 도구이고 다른 쪽에서는 수탈의 도구였다.
무엇이 둘을 갈랐는가. 기술이 아니다. 정밀도도 아니다. 총독부의 지적은 정확했다. 갈라놓은 것은 그 결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다.
점령의 형식은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그 땅에서 나온 지대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가.
돌아가지 않으면 담보로 셈하지 않는다. 이 한 줄이 두 사례를 다 잡는다. 임진왜란형은 흐름이 없어서 걸리고, 강점기형은 흐름이 있어도 그것이 바다를 건너가므로 걸린다. 측량을 잘했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수취의 증거가 된다.
이것은 새로 만드는 규칙이 아니다. 제1부의 첫 문장부터 지대는 공동체의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 전제를 조항으로 내놓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주권자가 누구인가가 관건이다
여기까지 오면 화폐 이야기가 체제 이야기로 넘어간다. 지가본위에서 담보는 등기부다. 등기부는 누가 통치하든 똑같이 작동한다. 독재든 공화정이든 땅값은 땅값이고 담보는 담보다. 그 화폐는 주권자가 누구인지에 관심이 없다.
지대본위에서 담보는 사람들이 내일 아침에도 일을 나가야 생기는 흐름이다. 그리고 그 흐름이 그들에게 돌아가야 담보로 셈된다. 그러면 이렇게 적을 수 있다.
지가본위 화폐의 담보는 소유권 문서이고, 지대본위 화폐의 담보는 결국 피치자의 동의다.
인민이 주권자인 나라가 담보를 더 잘 만든다. 억지로 걷는 체제는 흐름이 마르거나, 마르지 않더라도 그 흐름이 주민에게 돌아가지 않아 셈에서 빠진다. 바깥의 누구도 그 나라의 체제를 심사하지 않는다. 명령도 제재도 없다. 숫자만 달라진다.
이것은 230년 전에 적혀 있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영구평화의 조건을 조항의 형식으로 적었는데, 그 첫째가 각 나라의 체제에 관한 것이었다. 전쟁을 할지 말지에 시민의 동의가 필요한 체제에서는 시민이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싸우는 것도 자기고, 비용을 내는 것도 자기고, 폐허를 복구하는 것도 자기고, 전쟁이 끝난 뒤 갚아야 할 빚까지 자기 몫이기 때문이다. 반면 군주가 나라의 소유자인 체제에서는 전쟁이 군주에게 사냥 같은 것이어서, 연회나 궁정 행사를 조금도 줄이지 않아도 된다고 그는 적었다.
그리고 둘째 조항이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이었다. 이 연재가 열한 편에 걸쳐 설계해온 것이 그 둘째 조항에 재정을 붙이는 일이었다. 칸트의 셈으로는 첫째와 둘째가 함께 있어야 한다. 인민이 주권자인 나라들이, 서로를 묶는 연방을 세울 때 평화가 선다. 화폐의 담보를 지대로 바꾸는 일이 그 둘을 한 자리에서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단서를 하나 달아야 한다. 인민이 주권자여도 그 인민이 바깥을 향해 제국일 수 있다. 아테네가 민주정이면서 제국을 운영하고 멜로스를 멸했다. 그러니 인민이 주권자이면 전쟁을 덜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인민이 주권자인 나라들 사이에서 전쟁이 어려워진다는 것까지다.
케인스도 이 물음을 만났다
이 설계의 계보에 케인스가 있다. 그가 1941년에 쓴 국제통화동맹 구상이 이 은행의 먼 조상이다.
찾아보니 그는 평화 조항을 직접 넣어두었다. 초안 제10절에서, 동맹 안에 "평화를 보전하고 국제 질서를 유지할 의무를 지는 초국가적 경찰 기구"를 위한 계정을 두자고 했다. 어느 나라가 그 기구의 명령을 어기면, 그 기구가 청산은행에 요청해 그 나라 중앙은행의 계정을 묶어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케인스가 거기 붙인 문장은 이렇다. "이것은 금융 봉쇄를 집행하는 훌륭한 장치가 될 것이다." 그러니 물음의 답은 그렇다, 다. 케인스는 세계 화폐 설계에 평화를 명시적으로 넣었다. 다만 그가 택한 수단이 금융 봉쇄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수단이 실제로 쓰이는 것을 보았다. 2012년에 이란의 은행들이 국제 결제망에서 끊겼고, 2022년에는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이 동결되고 주요 은행이 결제망에서 배제되었다. 그것이 평화를 가져왔는지는 사안마다 다툼이 있다. 그러나 다툼이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장치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를 블록으로 가르고 있다는 것이다. 끊길 수 있는 나라는 끊기지 않을 길을 만들고, 그래서 결제망이 둘로 갈린다. 서로 잃을 것이 많아야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 20세기 후반의 평화가 기댄 전제였는데, 그 전제가 얇아지고 있다.
케인스는 1941년에 이것을 볼 수 없었다. 그에게 금융 봉쇄는 아직 쓰인 적 없는 가능성이었고, 그때 그가 상대하던 것은 진행 중인 세계대전이었다. 우리에게는 그가 갖지 못한 80년의 관찰이 있다.
그런데 이 연재도 한때 그 칼을 들었다. ⑥편에서 군대도 과세권도 없는 기구가 무엇으로 판결을 집행하느냐고 묻고 셋을 들었다.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것, 국제 데이터망 접근을 제한하는 것, 그리고 등록된 지대 지분을 동결하거나 공유부로 돌리는 것이다. 군대를 두지 않겠다는 판단은 지금도 같다. 다만 셋 가운데 첫째를 여기서 내려놓는다.
셋이 같은 종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제망에서 끊는 것은 밖으로 밀어내는 일이고, 지분을 셈에서 빼는 것은 안에 두고 손해를 지우는 일이다. 제재의 목적이 복귀라면 상대를 안에 남겨두어야 한다. 끊어내는 제재는 상대를 체제 밖으로 밀어내므로 자기 목적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2012년 이후에 일어난 일이 그것이다. 끊긴 나라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다른 결제망을 만들었다.
그러니 ⑥편의 칼 가운데 남는 것은 셋째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이 글에 나왔다. 분쟁 중이거나 무력으로 지배가 바뀐 땅의 지대를 검증에서 정지한다는 것이 곧 지분을 셈에서 빼는 일이다. 판결은 장부에 반영되지 결제를 끊지 않는다. 법정이 집행력을 가지려면 은행의 결제망이 있어야 한다고 ⑥편에 적었는데, 한 단어를 고쳐야겠다. 결제망이 아니라 장부다.
그래서 이 설계는 케인스의 목적을 수용하고 그의 수단을 버린다. 흑자가 쌓인 나라에도 조정의 부담을 지우는 조항, 그가 1944년에 끝내 통과시키지 못한 그 조항은 그대로 가져온다. 그러나 그가 동맹의 중앙에 두려 한 무기는 두지 않는다.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를 결제에서 끊을 수 없게 하는 것, 그리고 거부권을 두지 않되 필요한 찬성 비율을 최대 지분국을 뺀 나머지가 모이면 넘길 수 있는 선 아래에 두고 최대 지분국 혼자서는 넘지 못하도록 그 지분보다는 높게 두는 것이 그 자리를 비워두기 위한 장치였다. 혼자 막을 수도 없고 혼자 통과시킬 수도 없는 구간이다.
평화를 위해 끊을 권한을 누군가에게 주는 길이 있고, 아무도 끊을 수 없게 만드는 길이 있다. 앞의 길은 80년 동안 가보았다.
막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여기까지가 전쟁의 수익을 깎는 이야기다. 그런데 깎기만 하면 압력은 사라지지 않고 옮겨간다. 막힌 쪽만 있고 열린 쪽이 없으면 겨루려는 힘은 다른 데서 터져 나온다.
나라들 사이의 겨룸 자체는 없앨 수 없다. 전쟁은 겨룸의 한 형식일 뿐이다. 종목이 하나뿐이고 결과를 되돌릴 수 없는 형식. 그렇다면 전쟁을 막는 길은 겨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종목을 바꾸는 것이다.
유럽이 그 일을 한 번 해본 적이 있다. 서로 수백 년을 싸운 나라들이 지금은 경기장에서 만난다. 그 겨룸이 안전한 이유를 뜯어보면 넷이다. 다음 시즌이 있으므로 한 판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 순위표가 공개되고 양쪽이 그 표를 인정한다. 져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심판을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다.
이 설계에 그 넷이 들어 있다. 지대는 해마다 다시 재고 다시 검증하므로 정복이 한 판 승부인 데 반해 이쪽은 해마다 되풀이된다. 지분표가 순위표이고, 장부를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게 한 조항이 그 표를 공개한다. 결제에서 끊지 않으니 져도 밀려나지 않고, 작은 단위에도 한 자리가 보장된다. 그리고 거부권을 두지 않은 것이 심판을 아무도 가질 수 없게 한 장치다.
축구에 없는 성질도 하나 있다. 우승컵은 하나여서 한 팀이 들면 나머지는 못 드는데, 여기서는 발행 몫이 자기 지대에 비례한다. 남의 지대가 늘어도 내가 받는 양은 줄지 않는다. 줄어드는 것은 의결권 비중뿐이다. 순위는 서로 겨루되 몫은 각자의 것이다. 기축통화 지위든 군사력 순위든 무역흑자든, 지금 나라들이 겨루는 종목에는 이런 성질이 없다.
그리고 무엇으로 겨루는가가 다르다. 이 표가 재는 것은 생산량도 군사비도 아니고 땅을 얼마나 잘 건사했는가다. 그 종목에서는 남의 것을 빼앗아 순위를 올릴 수 없다. 자기 것을 기르는 길밖에 없다.
다만 조심할 것이 있다. 유럽 축구가 적의를 경쟁으로 바꾼 것이 아니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에서는 경기가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1990년 자그레브의 난투는 유고 내전의 한 장면이었다. 같은 그릇에 담겨도 민족주의는 더 끓을 수 있다. 유럽에서 통한 것은 축구가 이미 다른 바탕 위에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가 축구를 만든 것이지 축구가 평화를 만든 것이 아니다.
그 바닥을 깐 것이 1951년의 유럽석탄철강공동체였다. 독일과 프랑스가 백 년을 싸워온 바탕이 석탄과 철강이었으므로 그 바탕을 공동의 장부에 올려 함께 관리하기로 한 것인데, 적대를 없앤 것이 아니라 적대가 전쟁으로 번지는 통로를 끊은 것이다. 유럽이 석탄과 철강으로 한 일을, 지구가 땅으로 하는 셈이다.
그러면 투키디데스의 셋이 이렇게 갈린다. 이익은 깎이고, 명예는 옮겨진다. 땅을 잘 건사한 나라가 표의 위쪽에 선다면 그것이 곧 비폭력의 지위 사다리이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두려움 하나다.
그런데 두려움에 대해서는 더 조심해야 한다. 순위표가 두려움을 가라앉히기는커녕 또렷하게 만들 수도 있다. 누가 언제 추월하는지가 표로 보이면 추월당하는 쪽에 미리 손쓸 유인이 생긴다. 1900년대의 건함 경쟁이 그랬다. 그래서 점수판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함정을 피하지 못하고, 1위 자리가 가진 값을 함께 낮추어야 비로소 피한다. 거부권을 두지 않은 것, 많이 받는 단위가 많이 내게 한 것이 그 일을 한다. 순위가 보여도 순위의 값이 작으면 추월이 덜 무섭다.
그래도 전쟁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여기서 정직해야 한다. 그럼에도 전쟁이 계속될 경우가 넷이다.
첫째, 사람을 바꾸는 경우다. 주민의 승복을 구하지 않고 주민을 교체하는 길이 있다. 만주 개척단이 그랬고 역사의 여러 곳이 그랬다. 교체된 인구는 자발적으로 일하고 지대를 만든다. 다만 그것은 한 세대가 걸린다. 다음 분기에 유정이 돌아가는 것과 30년 뒤에 지대가 잡히는 것은 전혀 다른 계산이고, 30년짜리 투자로 전쟁을 하는 정권은 드물다.
둘째, 땅 아래 있는 것을 노리는 경우다. 여기서는 주민의 승복이 필요 없다. 울타리와 수출로만 있으면 되고 노동은 데려오면 된다. 다만 채굴은 훼손이 크므로 자연 훼손분을 뺀 값은 총지대보다 훨씬 작다. 지대본위가 구조적으로 채굴지대를 낮게 평가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자원 점령의 수익을 깎기는 하지만 없애지는 못한다.
셋째, 체제에서 나가는 경우다. 전쟁을 하려는 나라는 이 체제를 떠나면 된다. 1914년에, 1931년에, 1971년에 각국이 금본위에서 나간 것과 똑같다. 조항이 아무리 정교해도 탈퇴를 막지는 못한다. 붙잡는 것은 그 나라의 교역과 통화가 이 체제에 얼마나 깊이 걸려 있느냐뿐이다. 그러니 이 효과는 조건부다. 쓰는 나라가 늘어나는 만큼만 생긴다.
넷째, 돈과 상관없는 전쟁이다. 포위되었다는 공포로 벌이는 전쟁에는 이 설계가 닿지 않는다. 그런 전쟁에 나서는 지도자는 자기 나라의 발행 한도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20세기의 큰 전쟁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거기서 왔다.
정리하면
전쟁은 소유를 가지려 한다. 지금의 화폐는 소유를 담보로 삼으므로 정복과 어울린다. 땅을 차지하면 담보가 생기고 담보가 생기면 돈이 생긴다.
지대는 소유가 아니라 흐름이다. 정복자는 증서를 얻되 흐름을 얻지 못한다. 임진왜란의 7년이 그것을 보여주고, 강점기는 그 반대쪽을 보여준다. 전쟁이 아니라 측량으로 들어갔을 때 수취가 성립했다. 그러니 이 체제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침공이 아니라 주민을 그대로 두고 권력층만 바꾸는 방식이다.
그것을 막는 기준은 점령의 형식이 아니라 귀속이다. 그 땅에서 나온 지대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담보로 셈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화폐의 담보는 결국 피치자의 동의가 되고, 인민이 주권자인 나라가 담보를 더 잘 만든다. 칸트가 공화적 체제와 국가들의 연방을 함께 요구한 이유가 여기서 다시 보인다.
케인스는 같은 물음에 금융 봉쇄로 답했다. 우리는 그 수단이 쓰이는 것을 보았으므로 목적만 존중하고 수단은 버린다. 아무도 끊을 수 없게 두는 쪽을 택한다.
다만 막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나라들 사이의 겨룸 자체는 없앨 수 없고 전쟁은 그 겨룸의 한 형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설계가 하려는 일은 겨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종목을 바꾸는 것이다. 땅을 얼마나 잘 건사했는가로 겨루는 종목. 거기서는 남의 것을 빼앗아 순위를 올릴 수 없고, 더구나 순위는 서로 겨루되 몫은 각자의 것이다.
그래도 전쟁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이 설계가 하는 일은 전쟁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회수기간을 늘리고 그 수익을 장부에서 지우며 겨룸의 자리를 따로 내주는 것이다. 이익은 깎이고 명예는 옮겨 가지만, 두려움은 남는다.
그런데 이 장부가 한강 하구에서 열린다면, 거기서 시작된 것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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