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류귀종(萬流歸宗)1-통권85화
앙신성에서 조정의 20만 대군이 후선군에 대패(大敗)한 것과 흑막에서 웅랑교가 거병하여 천하칠대도(天下七大都) 오방상제(五方上齊) 중 하나인 제평을 약탈하고 불살랐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원주(元州) 중경 천인성과 상경 황진성의 백성들의 민심이 크게 술렁였다. 혹자는 말하길, 수인 조정(獸人朝廷) 400년 사직(社稷)이 무너지는 전조가 아니냐며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흉흉하기 그지없는 소문과 더불어 남례성에서의 반란이 토벌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남례성의 반란 토벌에서 큰 공(功)을 세워 서해수군통제사(西海水軍統制使)에 제수된 라혼(喇混)이란 이름이 크게 회자(膾炙)되었다. 그리고 라혼이란 장수가 바로 민간에 회자되는 상경의 보물이었던 천하제일미 천상천화를 아내로 가지고 있는 천하제일의 행운아 백호나한(白虎羅漢)이란 것이 알려지며 거기에서 갖가지 풍문이 나돌았다. 천상천화가 전장에 나간 남편을 걱정하는 마음에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하늘에 빌고 있을 것이라느니, 하는 지고지순하고 숭고한 이야기에서부터 백호나한이 예쁜 마누라가 바람이 날까 봐 철갑으로 속옷을 만들어 천상천화에게 입혔다는 다소 짓궂은 이야기도 함께 나돌았는데 그것은 사실에 관계없이 천자가 징병령을 내리자 불안하기 그지없는 백성들이 백호나한과 천상천화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었다. 이제까지는 자신이 스스로 원하는 자만이 군졸(軍卒)이 되었지만 이제는 관(官)에 기록된 각 가문에서 의무적으로 한 명씩 군역을 치를 사람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새삼스럽게 과거 천하가 열국(列國)으로 나뉘어 쟁패(爭覇)하던 시기 모든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1년은 농사를, 1년은 군졸이 되어 타국을 침략하던 이야기 또한 많이 나돌았다.
“캬악~ 퉤! 빌어먹을 세상!”
상경 백호대로(白虎大路)에서 떡을 파는 작은 노상(路商)을 하는 조삼(造蔘)은 관리에게 군역 해당자라는 통보를 받았다. 조삼의 가문은 정식으로 상경 황진성부(黃辰城府)에 적을 두고 있었기에 징병령이 떨어지면 군역을 치를 남자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조삼에겐 늙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 그리고 딸들뿐이었기에 군역엔 조삼 자신이 직접 나서야 했다. 그러나 조삼이 노상에서 벌어들이는 적은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조삼의 집안에서 징병령은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조삼이 장사를 하지 않으면 식구가 쫄쫄 굶는 마당이니 절로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민심이 흉흉하여 장사도 되지 않는 마당에 장사를 한다는 사람이 연방 욕지거리를 해대니 장사는 더욱 될 리 없었다.
“어이, 조형!”
조삼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이웃에 사는 원웅자(願雄仔)였다.
“뭐여? 떡 팔아줄 생각 없으면 말 시키지 마! 장사도 안 되고 심사가 복잡해 죽겠으니까!”
“거, 사람하고는…. 떡 두 전어치만 줘봐!”
“겨우 두 전어치?”
조삼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수걸이에 두 전어치를 팔아 그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나뭇잎으로 포장한 떡을 건네고는 부러운 눈으로 원가 놈의 면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원웅자의 형은 하남천원군의 무장으로, 그전에는 백호문의 금군이었다. 이번에 남례성에서 큰 공을 세운 하남천원군 출신을 가족으로 가지고 있는 집안은 모두 조정에서 내린 큰 상을 받았다. 안다 하는 사람들이 말하길, 징병령이 떨어지면서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정을 위해 공을 세우면 보상이 있다는 본(本)을 보이기 위해 그런다고 하지만 부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미 집안에 군졸이 있으니 천자가 내린 징병령에도 별반 흔들리지 않고 이처럼 점심(點心)을 챙겨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점심은 원래 마음에 불을 켠다는 의미인데 한가롭게 공부나 하는 한량들이 정오께 먹는 간식이었다. 고관대작(高官大爵)이나 거부대상(巨富大商)의 높으신 양반들이나 점심을 챙겨 먹을 뿐이지 대부분의 백성들은 점심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원우자의 집안은 5년 전 백호나한이 백호문의 수장이 되자 이듬해부터 생활이 펴지더니 지금은 조삼 주변에서는 가장 넉넉한 집안이 되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냐?”
“차라리 그때 원복 형님이 금군이 되라고 했을 때 백호금군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원웅자는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불알친구인 조삼의 말에 짚이는 바가 있었다.
“난 또? 가만, 혹시…?”
“오늘 오전에 우리 집안에 징병령이 떨어졌어.”
“에? 조형의 집안에서 군졸이 될 수 있는 장정은 조형뿐이잖아?”
“그러니 걱정이다. 마누라는 세상 물정 모르고 아들은 아직 나이가 어리니, 그렇다고 몇 년 후면 시집갈 나이가 되는 큰딸에게 장사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앞으로 우리 식구 살길이 막막해졌으니 마음이 답답하다.”
“그렇겠군.”
“그래서 자네가 부럽다고 하는 거야! 이번에 나온 자네 형의 봉록이 넉넉하다지?”
“넉넉하긴 뭘, 우리 식구 배 안 곯고 살 정도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백호둔에서 나온 소출은 참으로 엄청났다. 백호금군을 가족으로 둔 집안에 한해 먹을 양식을 충당하고도 남아 대부분 백호둔을 맡아 관리하는 토금전장에 팔려나갔고 나머지 봉록은 은자(銀子)로 대신하여 지급되었다. 거기다 원래 받은 군인전을 팔아 마련한 가게에서도 얼마간의 수입이 있었기에 이렇듯 점심을 챙겨 먹는 여유까지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조정에서 면포와 함께 목화솜이 하사품으로 내려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금군이 되는 건데.”
“그럼 지금이라도 금군이 되면 되지 않나?”
“?”
조삼은 원웅자의 말에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원웅자의 얘기는 조삼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에 우리 백호대장님이 수군 제독이 되었지 않나?”
“그건 익히 들은 바 있지?”
“이번 봄께 남상 토벌에 수군이 동원되는데 그 군사를 원주 상경에서도 뽑는다네.”
“에? 그건 금시초문(今始初聞)인걸.”
“곧 조정에서 그런 포고문을 방으로 써서 붙일 게야. 원래는 상경 출신 하남천원군들의 집안에 먼저 소식이 들어왔는데, 곧 싸워야 하는 수군에 가문에서 이미 병부에 속한 장정이 있어 징병령과 상관없는지라 수군이 되겠다고 나서는 자가 없어 유야무야(有耶無耶)되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묻더군.”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게야?”
“수군이 되면 봉록이 나오네.”
“뭐야? 그게 참말인가?”
“그렇지 우리 백호대장이 책임지고 하는 일인데, 참말이지 않고? 다만 멀고 먼 남상까지 가서 싸워야 하는데 그것이 문제지.”
“과연 그렇군.”
징병령에 의해 군역을 치르는 것은 세금과 같은 것이라 당연히 봉록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병졸이 되면 먹고 입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기는 했지만 집안에는 쌀 한 톨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원주에서 군역을 치르면 전쟁터에 나가 싸울 일이 없었다. 다른 곳에서도 징병령에 의해 군사들이 모이는 마당에 원주에 모인 군사들을 소란스런 앙신성이나 북지성으로 보낼 리 없었다. 그러니 웬만해선 원주에서 군역을 치르는 것이 만수무강(萬壽無疆)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서해수군이 된다 함은 바로 싸움터에 나가 싸워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군역을 치르는 동안 봉록이 나온다는 말은 조삼의 경우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었다.
“일단 수군이 되는 시험에 합격하면 1년 치 봉록의 반을 미리 받을 수 있네. 거기다 매달 원주의 가족에게 나머지 반이 지급되지.”
“시험? 무슨 시험?”
“이봐 수군이 되면 수개월 내에 남상의 반란군과 싸워야 하는데, 많은 돈을 들여 싸움터에서 오줌이나 지릴 허약한 사람들 데려가 뭘 하겠는가?”
“하긴 그렇군. 그럼 봉록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나?”
“백호금군의 금군들이 받는 정도겠지. 난 이만 가겠네.”
조삼은 멀어지는 원가의 모습을 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빠듯한 살림에 요새는 장사까지 되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징병령이 떨어졌으니…. 그러나 백호금군들이 받는 봉록이면 조삼이 건사해야 하는 다섯 식구의 호구지책(糊口之策)이 마련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군이 되기가 뭣한 것이 원주에서 군역을 치르면 전장(戰場)에 나갈 가능성은 낮았지만 수군이 되면 필히 멀고 먼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싸우다 시체도 찾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라혼이 하남천원군 부원수에 직급이 참장(參將)에서 대장(大將)으로 정장(正將)을 건너뛰어 두 단계나 승급하여 서해수군통제사에 제수되자 서해수군의 제독 자리를 넘보던 기주의 양제가, 무주의 우제가, 계주의 돈제가는 당초 수군으로 편성하려던 군사들을 자신들의 방군(方軍)에 그대로 잔류시키고 새로 건조된 전선(戰船)들만 내놓았다. 그렇게 되자 서해수군을 차지하게 된 라혼이 조정에서 받은 것이라곤 서해수군통제사라는 관작(官爵)과 200여 척의 전선들뿐이었다. 정작 중요한 배를 운용할 선원과 수군(水軍)은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바다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려던 라혼에게 서해수군통제사라는 관작은 원주 조정의 간섭을 피할 도리가 없게 하는 목줄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서해수군의 지분을 노리는 세 진가문(眞家門)의 벌인 수작은 라혼에게 새로운 빌미를 제공했다. 다름 아닌 서해수군이 원주의 중경과 상경, 북경, 서경에서 수군을 모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기왕 서해수군의 제독이 된 이상 다른 세력의 입김이 있는 군사들보다 직접 뽑은 군사들과 선원을 가지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라혼에게는 이미 남례성의 경험 있는 수군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더불어 토금전장의 이름으로 미리 고용한 경험 많은 선원들도 있었기에 서해수군통제사 라혼에게 양보를 얻어내려 약속이나 한 듯 수군을 내놓지 않은 세 진가문은 서해수군에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
“휴, 20만이나 되는데 흩어놓고 보니 흔적조차 없군.”
“나는 라혼 대장군이 굳이 남례성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의도를 모르겠소.”
초로역방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하남천원군 전 장령들의 직급이 한 단계씩 승급하여 전 주작대장인 상초와 금영월의 친위군 성격이 강했던 현무대의 작도인은 소장(少將)으로 장군의 반열에 들었다. 그리하여 하남천원군은 금영월 상장, 라혼 대장, 모석 등 총 다섯 명의 장군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남례성의 진토인 전사들까지 하남천원군으로 흡수하여 일개 군부로 20만 대군을 거느리게 되자 두 장군은 무척 바빠졌다. 상장 금영월은 남례성을 통괄하느라 군부의 일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 그것은 라혼 대장군의 존재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작 라혼 대장군은 서해수군통제사에 제수되어 남상의 반란을 토벌하는 수군을 꾸리는 데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소장 모석 또한 그런 백호나한을 보좌하고 있었으니 20만에 육박하는 대군을 맡아 관리하게 된 상초와 작도인은 연일 함께 모여 의논했다.
“전환이라… 참으로 신통한 물건이로군. 아무튼 서해와 남해, 남례성의 모든 해안이 전부 우리의 통제하에 들었으니 이제부터 천천히 그물을 당기듯 내륙을 공략하면 되겠군.”
“그렇소. 그보다 앞으로가 문제요.”
“크흠!”
하남천원군의 모든 주도권이 일시에 라혼의 손에 넘어가자 노골적으로 그를 견제하던 상초와 작도인은 입지가 무척 애매해졌다. 지금은 일들이 너무 경황없이 몰아치는 바람에 과거를 묻지 않았고 라혼 대장군 또한 그 일에 대해선 잊은 듯 행동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속담처럼 라혼 대장군을 볼 때마다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빨 빠진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상장군 금영월에게 기대기에는 그들의 야망이 컸다.
“당분간 자중하며 대장군의 신임을 얻는 수밖에요.”
“상 소장, 하남천원군에서 눈칫밥을 먹느니 차라리 원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소? 징병령이 내려진 마당인데다 하남천원군에서 나름대로 공을 쌓았으니 홀대하진 않을 것인데….”
“원주로 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겠소? 소장의 지위를 받아 장수의 반열에 있기는 하지만 조정에 줄이 없으니 한직이나 전전하고 말 테지.”
“그럼 결국 백호나한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수밖에 없나?”
“백호나한이 사라지면 두 분은 어찌하실 것이오?”
“헉!”
“웬 놈이냐!”
―촹! 탁!
상초와 작도인은 평생 무술을 연마한 무장답게 조정에서 하사받은 보검을 뽑아 천장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천장에선 먼지만 흘러나올 뿐 괴한은 없었다. 그리고 괴한의 목소리는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대들이 한 이야기는 잘 들었소. 그리고 본인은 그대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용의와 능력이 있소.”
상초와 작도인은 자신들이 남례성 전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일을 의논하던 남례성 전도(全圖)가 펼쳐진 탁자 옆에 서 있는 호리호리한 진토인 사내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은 누구냐?”
“자객이오.”
“…!”
상초와 작도인은 스스로 자객이라 말한 진토인 사내를 침중한 얼굴로 바라보며 그가 스스로 종적을 드러내지 않고 손을 썼다면 둘 중 하나 피를 뿌렸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며 침중한 안색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내의 말은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그대들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자객이란 사실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 거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그게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요. 본인은 그대들을 노리고 왔지만 생각이 바뀌었다는 거요.”
“….”
“본인은 그대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소.”
“….”
스스로 자객이라고 밝힌 사내는 상초와 작도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백호나한을 공적인 자리에 나타나게 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