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동무들과 대구파티를 열다
최 화 웅
대한(大寒) 절기였던 지난 20일 부산에 사는 초등학교 동기 여덟이 갯마을 용원을 찾았다. 대구파티를 열기로 한 날이었다. 해마다 대구가 올라올 때면 용원시장은 파시(波市)를 이룬다. 대한을 흔히 ‘큰 추위’나 ‘매우 심한 추위‘로 일컫지만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는 말처럼 온 땅을 꽁꽁 얼게 했던 강추위도 어느 틈에 한고비를 넘겼다. 녹산에 사는 문제가 호스트가 되어 우일, 영호, 무광, 창대, 태용, 종두, 그리고 나를 점심자리에 초대했다. 두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정례모임에는 전국에서 15~6명이 모이는데 그 사이 사이에 번개가 치면 적게는 4~5명, 많게는 7~8명이 얼굴을 내민다. 동무들은 고맙게도 나의 투석치료가 없는 날을 택해서 날을 잡는다. 우정 어린 배려다. 영도에서 무광이 차에 편승한 영호가 동무들에게 후식으로 먹이려고 맛있는 도너츠와 고르개를 넉넉히 사왔다. 모두가 칠십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만나면 개구쟁이 동심으로 돌아가 웃음과 이야기꽃을 피위 그 울림과 공감이 널찍한 우정의 숲을 이루었다.
한겨울에 찬물을 호흡하는 대구(大口)는 그 맛이 빼어나다. 대구(大口)는 입이 크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몸의 앞부분은 크고 원통형이지만 뒤로 갈수록 작고 꼬리부분은 납작하다. 몸은 담황색 바탕에 적갈색 구름무늬가 얼룩얼룩 하고 배는 밝은 색을 띤다. 주둥이는 뭉툭하고 양턱에 빗살 모양의 이가 있다. 특히 주둥이 아래턱에는 길이가 눈 지름과 비슷한 한 개의 턱수염을 얌체처럼 달았다. 제1뒷지느러미는 제2등지느러미 뒤에 이어진다. 측선은 희미하고 비늘은 작다. 대구가 5년 정도 자라 성어가 되면 약 1.2m 정도 까지 자란다. 대구는 냉수대의 검푸른 바다 밑 수심 10~500m에 이르는 깊은 바다의 대륙붕을 떼 지어 헤엄쳐 다니며 작은 물고기나 갑각류를 잡아먹고 산다. 산란기인 12월 중순이 되면 진해만의 길목, 수심이 얕은 개펄이나 모래바닥에 알을 낳으러 회귀하는 어종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집집마다 대구를 말리는 장대를 높이 세운 섬마을, 명지에서 자랐다. 그 때는 명태와 비슷한 운명의 생선, 대구가 지천에 깔렸던 시대였다. 그 이후 바다 밑바닥을 훓는 저인망어법의 욕망에 의한 남획으로 멸종 위기를 맞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 마당 한편에 높이 세운 장대에 매달려 하늘을 향한 외로운 이집트의 왕처럼 미라가 되어가는 풍경을 보며 자랐다. 보통 가정에서는 한두 마리를 말렸지만 땅이 넓고 산다는 집에서는 여남은 마리의 대구를 말렸다. 대구의 크기와 마리 수가 그 집안의 형편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대구는 남해안의 진해만을 사이에 둔 가덕도와 거제도에서 잡힌다. 그 중 한곳은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항이고 다른 곳은 거제시 장목면 외포항으로 해마다 동지 때면 대구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가덕도는 일제가 한반도와 만주침략에 앞서 삼각측량을 했던 기점이자 대륙진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벌인 러일전쟁의 격전지였다. 가덕도와 거제도는 진해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오른쪽인 가덕에서 잡으면 가덕 대구요 왼쪽 해역인 거제에서 잡으면 거제 대구다. 겨울 새벽 찬바람이 드센 선창에는 “북소리 울려라. 대구가 돌아왔다.”는 함성이 추위를 떨치고 포구에 메아리치면 대구장이 선다. 그때의 어항에는 대구 반 물 반에 동네 똥개들이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 가덕도 대항항과 거제도 외포항에서는 대구경매로 섬마을의 새벽이 열리면 부산, 통영, 창원을 비롯한 전국에서 찾아온 상인들이 대구를 사들인다. 거제 외포항의 대구는 통영 수산시장을 거쳐 창원과 진주 등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가덕 대항항의 대구는 용원시장과 자갈치시장을 거쳐 전국으로 공급된다.
진해만에 대구가 다시 나타난 것은 10여 년 전부터의 일이다. 어민들이 지난 1980년대부터 해마다 수십억 개 내지 수백억 개의 인공수정란과 부화된 치어를 꾸준히 방류한 결과 북태평양으로 나가서 자란 대구가 2005년부터 회귀하기 시작했다. 대구는 해마다 동지를 전후한 12월 20일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수온이 내려가는 12월말까지 하루 평균 3000마리 내지 4000마리 이상이 잡혀 파시를 이룬다. 거제 외포항에서는 올해로 10회째 대구축제가 열렸고 거제수협외포출장소 제1호 중매인이 경영하는 효진수산횟집에는 찾아오는 손님들로 빈자리가 없다. 효진수산횟집에서 내놓는 대구탕 위에는 바다에서 방금 따온 싱그러운 해초를 얹어주는 게 특이하게 입맛을 돋운다. 가덕도 대구축제는 2회째를 치러 지자체가 브랜드화에 앞장서고 있다. 거가대교 개통 이후 접근성이 편리해지면서 축제 기간인 12월 세 번 째 주말에는 차량행렬이 줄을 잇는다. 식전 행사로 풍물패 길놀이와 풍어제가 열리고 대구떡국 시식회와 맨손으로 대구잡기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진다. ‘옛날 임금님 진상에 올랐다.’는 대구는 요즘 들어서는 ‘사돈댁에도 안 보낸다.’는 말로 바뀌었단다.
초딩 동기들을 초청한 문제 친구는 새벽 같이 용원시장의 경매 현장에서 살아 있는 대구를 사서 횟집에 맡겨 미리 회를 떠서 숙성시키는 한편 대구탕을 끓이는 현장을 지키는 정성을 다 하며 동무들을 맞았다. 우리는 그 덕에 신선하고 담백한 육질의 그 쫄깃한 대구회를 맛보았다. 용원에 모여 우리가 '곤니'라고 잘못 쓰는 '이리'라는 숫컷의 정액덩어리를 충분히 넣은 감칠맛 나는 대구탕을 배불리 먹은 자리에서 하나같은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지난 가을 나는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마크 쿨란스키가 쓴『대구(Cod)』를 읽고 ‘물고기가 세계의 역사와 지도를 바꾸었다.’는 새로운 세계사의 이면을 공부할 수 있었고 20세기에 들어와 남획으로 멸종 위기로까지 내몰린 대구의 논픽션『대구 이야기』를 통해 ‘호모사피엔스의 진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또한 영국 환경전문 저널리스트 찰스 클로버 역시 남획으로 파괴된 해양생태계와 생선의 종말을 경고한『텅 빈 바다』를 통해 우리에게도 머지않아 이름만 남긴 채 사라지리라는 예언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 같았다.
첫댓글 비오님 정유년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이소! 이맘 때면 저도 가덕 대구를 어김없이 떠 올리지요.
그래서 주말 산행 코스를 일부러 진해 시루봉으로 잡고, 산꾼들 돌아오는 길에 용원 어시장에 들려 대구회에다 대구탕을 포식했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마크 쿨란스키의 cod 이야기는 처음듣는 말이네요. 한번 찾아 읽어 볼께요. 고맙습니다.
회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마크 쿨란스키의 역작이 많습니다. '대두', '물고기가 사라진 세상', '대구 이야기', '바스크의 역사', '소금' 등입니다.
올한해도 건겅하시고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