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 단경왕후 신씨
(+) 장경왕후 윤씨
- 효혜공주(1511~1531) : 이름은 옥하. 1521년(중종 16년) 연성희 김희(김안로 아들)와 길례를 올렸고, 1528년(중종 23년) 병을 앓기 시작해 1531년 4월 20일에 죽었다. 그녀의 남편 김희는 1531년 10월 10일에 죽었다. 딸 1명을 낳았다.
- 인종(1515~1545)
(+) 문정왕후 윤씨
- 의혜공주(1521~?) : 이름은 옥란. 1530년(중종 26년) 청원위 한경록과 길례를 올려 1남 1녀를 낳았으나 1녀는 일찍 죽었다. 그녀의 사가는 웬만한 궁궐 못지않게 크고 화려하여 명종이 궁궐보다도 훌륭한 정원을 가졌다고 감탄했으며, 문정왕후는 그곳에서 피정을 즐겼다.
- 효순공주(1522~?) : 이름은 옥련. 능원위 구사안과 길례를 올렸으나 자녀는 없다. 화려한 저택을 가졌고 집을 수리할 때 수백 명의 인부를 동원해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 구사안은 성격이 음흉하고 거칠어 당시 사람들이 물귀신이나 불여우처럼 여겼다고 한다.
- 경현공주(1530~?) : 이름은 옥현. 영천위 신의와 길례를 올려 아들 1명을 낳았다. 언니들처럼 화려한 저택에 살면서 자주 신축해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 신의는 윤원로(문정왕후의 오빠)와 친했는데, 문정왕후가 윤원로를 제거하자, 신의는 공주, 문정왕후와 사이가 나빠졌다. 이후 문정왕후가 죽었을 때 기뻐 날뛰며, 저자에서 문정왕후와 공주를 욕하기도 했다. 명종이 죽었을 때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가 1568년(선조 원년) 유배되었다.
- 인순공주(1531~?) : 일찍 사망.
- 명종(1534~1567)
(+) 경빈 박씨
- 복성군(1509~1533) : 이름은 미. 인종보다 나이가 많아 왕위를 위협하는 인물로 간주되어 여러차례 어려움을 겪었으며, 작서의 변에 연루되어 경빈 박씨가 쫓겨날 때 유배되었다가 1533년 5월 26일 사약을 받았다. 아들이 없어 훗날 신원된 뒤에 선조의 서4남 신성군이 후사를 이었다.
- 혜순옹주(1512~?) : 이름은 철환. 광천위 김민경과 길례를 올렸다. 작서의 변 때에 서인으로 전락했다.
- 혜정옹주(1528~?) : 이름은 석환. 당성위 홍려와 길례를 올렸다. 작서의 변 때에 서인으로 전락했다.
(+) 희빈 홍씨
- 금원군(1513~1562) : 이름은 영. 명종 대에 불교를 섬기며 승려들을 집에 출입시키다가 적발되어 탄핵받았으나 왕의 배려로 무사했다. 후사가 없어 덕흥대원군의 아들 하릉군이 양자로 입적되었다.
- 봉성군(1528~1547) : 이름은 완. 중종 대에 종들을 시켜 지방의 땅을 차지하려다가 탄핵당한 일이 있다. 하지만 중종은 문제삼지 않았다.
(+) 창빈 안씨
- 영양군(1521~1561) : 이름은 거. 후사가 없어 양자 입적했다.
- 정신옹주(1526~?) : 이름은 선환. 청천위 한경우와 길례를 올렸다.
- 덕흥대원군(1530~1559) : 이름은 초. 아들 선조가 왕위에 올라 대원군으로 추존되었다.
(+) 숙의 홍씨
- 해안군(1511~1532) : 이름은 희.
(+) 숙의 이씨
- 덕양군(1524~1581) : 이름은 기. 선조 대에 종부시 도제조를 지내다가 뇌물을 받아 탄핵받았다. 그러나 선조는 그를 용서해 주엇다.
(+) 숙원 이씨
- 정순옹주(1517~?) : 이름은 정환. 여성위 송인과 길례를 올렸다.
(+) 숙원 김씨
- 숙정옹주(1525~?) : 이름은 수환. 능창위 구한과 길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