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생각] 낙엽 전에 한번 더 간절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단풍의 빛
이 땅, 이 하늘에 붉은 빛이 절정입니다. 단풍 든 나뭇잎을 몇 번이나 이리 간절하게 바라보았는지 가만히 돌아봅니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앞으로는 몇 번이나 저 깊은 붉은 빛을 가슴에 담을 수 있을지요. 역시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하긴 살아가는 동안 알 수 없는 것이 알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걸요. 하릴없이 붉은 단풍 그늘 아래에 오래 머무릅니다. 조금이라도 더 간절하게 이 하늘 이 땅의 단풍 빛을 가슴에 한 잎 한 잎 담으려 애써 눈을 감습니다.
나무 곁을 에워싸고 사람들이 빚어내는 소음 탓에 쫓기듯 돌아나온 은행나무의 노란 잎이 떠오릅니다. 함께 나무를 바라보던 옛 동무들이 생각난 탓이기도 했지만, 은행나무 곁에 조금 더 머무르고, 하나 둘 노란 빛 단풍 끌어 올리는 나뭇잎의 안간힘을 조금 더 바라보아야 했거늘, 조바심 치듯 돌아나온 걸음걸이가 못마땅해집니다. 장수동 은행나무를 돌아나오며 사람들의 발걸음 뜸한 만의골 거리를 걸으며 바라보았던 나무들의 붉거나 노란 잎들을 떠올립니다. 그 길에 무심하게 늘어선 양버즘나무 단풍은 아름다웠습니다.
아직 단풍 물이 온전히 오르지 않아 초록 빛이 그대로 남은 잎도 있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잎들 사이에는 붉은 빛으로 가을을 맞이하며 가지 끝에서 간당이는 마지막 잎새도 있었습니다. 도심 어느 거리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양버즘나무 가로수. 울긋불긋 물든 잎을 모두 떨구고 나면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나뭇가지를 흉측하게 잘라내겠지요. 다시 새 잎이 무성하게 돋아나 나뭇가지에 든 깊은 상처를 가리울 때까지 기괴하게 잘려나간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마음, 또다시 아파 오겠지요.
양버즘나무가 대부분이지만, 그 사이에는 단풍나무도 있습니다. 가을 단풍의 상징이라 해도 될 만큼 빨간 빛이 선명한 단풍나무입니다. 아직 채 빨간 빛이 온전히 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곁의 여느 나무에 비해 붉은 빛이 도드라집니다. 큰 키의 나무들 사이에서 가장 낮은 키로 자란 나무이지만, 이 즈음에만큼은 이 거리의 주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 잎들 가운데에는 더 붉어지는 잎도 찬 바람에 그냥 초록 그대로 낙엽하는 잎도 있겠지요. 지난 일도 앞으로의 일도 채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나무도 제 앞날을 정확히는 알기 어려울 겁니다.
양버즘나무와 함께 이 거리를 든든히 지켜주는 나무로 튤립나무가 있습니다. 양버즘나무의 번잡한 줄기 표면과 달리 미끈한 표면을 가진 튤립나무는 잎사귀가 넓어서 얼핏 보아서는 양버즘나무와 비슷한 나무로 슬쩍 지나칠 수 있습니다. 달라도 참 많이 다르지만 양버즘나무보다는 조금 늦게 이 거리에 들어온 때문에 일쑤 제 이름을 놓치곤 하는 나무입니다. 줄기 표면은 물론이고, 봄에 높은 가지 위에서 바알갛게 피어나는 꽃도 다르고, 튤립 꽃을 닮은 잎사귀의 모양도 분명히 다릅니다. 물론 가을에 드는 단풍 빛깔도 양버즘나무와 조금 다릅니다.
촘촘하게 늘어선 가로수의 대열 한 부분이 휑하게 듬성해진 한가운데에 노랗게 물든 가을 단풍잎을 피워 올린 튤립나무 한 그루가 돋보입니다. 푸른 하늘을 이고 선 노란 튤립나무가 조근조근 이 거리의 지난 계절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등산복 차림으로 산책 나온 중년의 부부들도 나무 곁에 잠시 쉬어 갑니다. 나무와 사람이 하나되어 살아가야 할 이 거리의 가을 풍경입니다. 바람 한 점 없는데, 나무는 가만히 제 잎을 한 잎 땅 위로 내려놓습니다.
붉고 노란 빛은 하늘에만 걸린 게 아닙니다. 나무가 지난 계절 동안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어온 노동의 수고를 접으며 내려놓은 낙엽이 길 위에 쌓였습니다. 나뭇가지와 헤어지자, 단풍든 잎의 빛깔도 천천히 바뀝니다. 노랗거나 붉던 잎들이 갈색으로 하나 되며 길 위에 쌓입니다. 가을이 그렇게 이 땅 깊숙이 스며듭니다.
- 길 위에 쌓인 단풍 낙엽이 지나온 계절을 생각하며 11월 10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