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호에 임파샬을 잘 쓰면서 탁구실력이 쑥쑥 늘고
스펙톨21을 붙여 고생하기도 하면서
슬슬 돌출러버에 익숙해지고 또 궁금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홍콩 대표선수였던 로첸충의 플레이를 TV로 보게 됩니다.
당시엔 TV에서 탁구 참 많이 해줬었고 MBC 탁구 최강전 등 굵직한 대회도 많았죠.
80년대는 탁구의 증흥기였지요.
로첸충은 모던 디펜더 스타일의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는데 백핸드에 롱핌플OX를 썼습니다.
전진에서는 블록 뿐아니라 긁으며 밀어대는 와이퍼스트록이나 기타 잔기술에 능했고 중진으로 밀리면 춉 수비를 했는데 결코 뚫리지 않는 철벽 백핸드였습니다.
백핸드와 돌출러버에 관심이 높던 제가 그걸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겠죠?ㅋㅋ
어, 저사람 뭐야?
바로 비디오 테이프를 넣고 녹화에 들어갑니다.
그 테이프가 다 늘어나도록 돌려보면서 처음 보는 그 롱핌플이란 요물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파워탁구의 대명사였던 박*익선수가 그 롱핌플의 변화에 꼼짝못하고 당하는 걸 보면서 펜홀더 한방 파워드라이버에게 늘 약하던 제겐 그 전형이 마치 구원의 불빛처럼 다가왔습니다.
실은 악마의 유혹이었지만요..ㅠㅠ
하하~
그래서 또 당장 동대문에 달려나가 롱핌플 러버를 삽니다.
급하기도 하지..
용품에 관심이 꽂히면 참지를 못했습니다.
동대문에 늘 가던 매장에 또 불쑥 들어가니 늘 있던 청년 직원은 없고 저 안 테이블에서 사무보던 사장님이 불쾌한 듯 쳐다봅니다.
뭐야?
어랏, 손님한테 반말이야.. 우씨..
속으로 기분나빠하며 롱핌플러버 사러 왔다고 했습니다.
유리 진열장에서 그분이 꺼내준 건 '페인트 롱 SOFT'.
스펀지 달린 롱이었죠.
값을 치르고 돌아나오는 제 뒤로 문에 크게 박힌 버터플라이 로고가 있고.
나중에 알게 됩니다.
매장으로 알고 늘 당당하게 찾아가 용품을 샀던 그 곳은 버터플라이 본사였습니다.
그 반말하던 사장님은 그 유명한 천회장님..ㅋㅋ
츄리닝 차림으로 들어간 저를 본사에 찾아간 탁구선수 중 하나로 보셨겠지요.
신남과 시넥틱스가 성남 복정동으로 이전할 때 화분들고 찾아가 인사드렸었는데 옛날 생각이 문득 나서 혼자 웃었었네요.
소매는 안 하던 본사 사무실에 늘 제집처럼 쳐들어가 러버 한 장, 공 몇 개 사가지고 나오곤 했으니.. 참 무식이 용감하죠.ㅋㅋ
그렇게 롱핌플과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롱을 붙이려면 아무래도 다시 셰이크를 들어야지요.
파워드라이브는 옛날에 벌써 일중호 형태로 잘라서 펜홀더로 개조해 코르크 그립 달고 평면러버를 붙여놓았기에ㅋㅋ 동대문 나간 김에 둘러보며 셰이크를 하나 사기로 했습니다.
버터플라이 목판은 뻔했기에 다른 매장들 돌며 뭔가 특별한 것을 찾고 싶었지요.
뭔가 특별한 것..
이 욕망 덕분에 안티러버도 한 때 썼었지요.^^
버터플라이의 공격용 안티 압소버.
지금은 수비용 수퍼안티만 남아 있지요.
수퍼안티는 당시 국가대표 수비수 홍순화선수가 쓰던 러버이기도 했구요.
안티러버는 오래 쓰지는 못했습니다.
승률은 무척 높았지만 상대가 너무 재미없어 했고 저도 재미 없었거든요.
늘 같은 각으로 같은 스윙을 하는 건..
아무튼 롱핌플을 붙일 새 셰이크 블레이드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어느 매장에서 예쁜 애를 만났습니다.
'TSP 오펜시브'라고 써있는 오겹합판이었는데 둥글고 가는 ST그립이 무엇보다도 맘에 들었습니다.
파워드라이브의 굵은 FL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립감은 바로 제 맘을 사로잡았지요.
걔의 백핸드에 페인트 롱 SOFT 1.5밀리를 붙이고 다 외우도록 봤던 로첸충의 플레이를 해보는데..
어럽쇼? 전혀 아닌 겁니다.
도저히 컨트롤 불가.ㅠㅠ
며칠 몇 주를 씨름하다가 문득 생각난 해설자의 멘트 한 마디.
로첸충선수가 쓰는 롱핌플러버는 스펀지가 없는 거라 변화가 심합니다..
그랬구나~
당장 스펀지를 뜯어냈습니다.
억지로 OX를 만든 후 다시 글루 칠해서 부착.
와우~ 이건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전진을 고수하던 제겐 역시 OX가 맞았던 거겠죠.
롱핌플 쓰는 사람이 거의 없던 그 시절, 혼자 끙끙거리며 온갖 기술과 감각들을 체험으로 독학했습니다.
혼자 깨달아가며 배우려니 꽤나 오래 걸렸지만 1년이 넘어가면서는 맘대로 온갖 변화구를 조절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걸 들고 제가 다니던 대학교 탁구대회에서 준우승도 했습니다.
우승은 체육과의 탁구 선수..ㅎㅎ
그런데 그 대회 준결승에서 만난 학생(타과의 복학생 선배였습니다)의 게임 후 반응이 저로 하여금 다음날 롱핌플을 뜯어버리게 했습니다.
ㅅㅂ! 내가 다시는 이질러버랑 탁구치면 사람이 아니다! 이질 덕에 게임 이기는 꽁수들.. 더럽다!
제 앞에서 라켓을 뽀개더군요.
그 선배는 오픈 1부 실력자였고 우승한 선수 출신 체육과 학생과 함께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답니다.
그런 사람이 처음 만나는 롱핌플에 하프로 졌으니 화가 났겠죠.
그 사람의 그 반응은 지금 생각히면 참 우스운 거지만 당시의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답니다.
어쩔 줄 모르고 서있는 제게 탁구부원 여럿이 와서 달래며 얘기해줬습니다.
이질러버 잘 다루는 것도 실력이에요. 개의치 마세요.
하지만 제 모토는 그때나 지금이나 실력향상보다는 즐탁이었기에..
제게는 재미있는 롱핌플이 상대에겐 괴로울 수 있다는 걸 그 일을 통해 알고 나서는 도저히 계속 쓸 수가 없었지요.
게다가 롱핌플을 타지 않던 선수 출신 체육과 학생에게 결승에서 하프로 진 후에 든 생각,
아하, 아는 사람에겐 이 변화도 별 쓸모 없구나~
당장 다음날 떼어냅니다.
일중호로 돌아갔지요.
2년 가까운 얼리어댑터 롱핌플 OX 유저의 힘들었던 여정이 자의 반 타의 반 마무리되던 사건이었습니다.
첫댓글 정말 용품계의 프론티어셨군요~~| 지금 처럼 정보도 없던 시절 대단하세요~
얼마전에 너무 급해서 본사가서 제품 사오는 사람 봤는데... 이게 오랜기간 이어져온 거군요...ㅎㅎㅎ
점점더 재밌네요.... 공룡님은 알던것보다 더 고수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혹시 대학대회 오비로 나오시는지요?ㅎㅎ
ㅎㅎㅎ 글이 점점 흥ㅁ미로워 계속 들어오게 만드네요 ㅎㅎ 감사합니다.인기 웹툰보다 더 재미있다는 ㅋ
앗! 저도 대학교때 공룡님과 거의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다른 점은 롱핌플 대신 안티러버 (슈퍼안티) 사용. 준결승에 서 우승후보 물리치고 결승에서 형편없이 깨졌는데, 똑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