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여러분 이용벽입니다.
지난 토요일인 11/2에 공릉동에서 동기들 모임이 있었습니다.
윤금중, 김영준, 이병옥, 김효섭, 김형종, 고범석 그리고 저 이렇게 일곱명이 모였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와서 모이는 데 지장이 없을까 걱정을 했는데 큰 지장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비가 아닌 다른 이유로 참석 못한 동기들은 있었습니다.
강철구는 제주도 학회에서 올라오다가 다른 일정이 급히 생기고, 김영일이는 중국 출장을 가게 되었고, 류병우는 아침에 일어나니 감기가 심해졌고, 이수훈이는 수술 후 회복 중이고, 김문기는 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회사일로 운동을 나가게 되었고. 그렇게 동기들이 참석 못한 아쉬움을 전해 왔습니다. 수훈이와 병우가 잘 회복되어야 할 텐데요. 문기는 참석 못 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대신하기 위해 그날 식사비를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모처럼 참가비 없는 모임이 이루어졌습니다. 문기에게 감사를…
공릉동에 내려서 모임장소를 찾아오는 도중에 너무나 변한 그 곳의 모습에 다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군요.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천방지축 돌아다니던 그 동네의 모습이 어땠던가요? 너무나 다르게 변해버린 그 공릉동의 모습을 보면서 옛날 모습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더군요.
그 시절 잘 가던 그 전주집이 있던 자리는 어디였던가, 칼국수가 맛있던 밀밭집 자리는 또 어디인가. 이 문제를 풀려고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만 확실한 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학교 앞 그 골목길이 큰 길로 변하고 작은 개천은 다 복개되고 해서 우리의 기억자체가 실종된 기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모임에 나온 윤금중이는 현대자동차를 떠나서 보쉬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글로벌메이커이고 워낙 규모가 큰 회사라서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일하는 속도에는 답답한 부분이 있다고 하네요.
고범석이는 지금 계명대학교에 특임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기업체 경력을 인정받아 교수로 채용된 케이스죠. 집이 서울에 있는데 대구까지 오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대전과는 또 다르겠지요) 학생들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은 데 시험 문제 내고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다고 합니다.
김영준이는 양명호의 도움을 받아 대우건설에 재취업한지 2년이 넘었죠. 처음엔 많이 어려웠지만지금은 상당히 안정된 위치를 잡았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어느덧 우리의 남은 세월에 대한 서로간의 공감대 속으로 흘러 들어 갔습니다. 우리 세대의 평균수명으로 보면 우리 앞에 놓인 세월이 30년이 넘을 것입니다. 그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모두의 마음속에 다같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직도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는 우리 동기들이 나이 들어 은퇴라는 것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 이전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 이른바 경력 단절이 생기는데 그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외로움이 소외감이 되고 심해지면 무기력감을 거쳐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질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 시기를 최대한 늦추려면 지금 있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선 지금의 우리가 할일 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전 정권에서 고위공직자로 퇴임하면 대학에 초빙교수로 가는 절차를 법으로 준비해놨다고 하는데 그런 길을 알아볼 필요도 있겠죠.
나이 들면 또 하나 염려되는 것이 혼자되는 것이죠. 혼자서 아이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혼자 생활을 꾸려간다는 것.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는 일이죠. 그 때 가장 어려운 일은 역시 먹는 음식을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그 때를 위해서 요리를 배우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라면도 스스로 끓여먹은 적이 별로 없다고 인정하는 동기들은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우리의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모임 다음날인 11/3 일요일은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마라톤 풀코스 경기에 단체로 참가했습니다. 잠실에서 열리는 중앙마라톤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것이죠. 저도 당연히 참가신청을 했고 지난 몇 개월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동기들이 한결같이 말리는 것이었어요. 무릎 다친다고. 김형종이는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뛰었다가 무릎이 상해서 한동안 앉아서 강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날 메뉴는 오리고기 백숙이었습니다. 시간 절약을 위해 사전에 예약을 했던 메뉴였는데 다행히 모두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찰밥도 함께 나와서 말아먹기도 했구요. 방 넓이나 메뉴가 괜찮아서 송년회도 그 장소에서 여는 것이 어떨까 의논을 했는데 너무 멀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더군요. 송년회장소는 별도로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장장 2시간 반에 걸친 대화를 끝내고 식당 밖으로 나왔을 때는 비가 말끔히 그쳐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공항에 가야 하는 김효섭이를 먼저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안 해도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캠퍼스로 향했죠. 우리가 그 캠퍼스를 뒤로 한 것이 1979년 12월이었으니까 그 동안 무려 34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 캠퍼스는 지금 서울과학기술대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있던 동기들은 그 동안에 혼자서 캠퍼스를 방문할 일이 더러 있었던 모양이지만 동기들이 모여 이렇게 함께 와보게 된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죠. 모두들 그 옛날 우리 젊은 날을 회상하며 추억에 흠뻑 빠져들어 갔습니다.
공대 진입로는 옛날 위치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 나무가 그렇게 많았던가요? 낙엽과 단풍으로 둘러 쌓인 그 길이 마치 터널을 지나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길을 지나 1호관으로먼저 갔습니다. 우리가 단체사진을 찍었던 1호관은 시계가 없는 상태이지만 그대로 서있었습니다. 지금은 2호관으로 이름 지어졌더군요. 옛날의 그 총탄자욱은 다 없어지고 겉면이 다 깨끗하게 보수되었더군요. 내부 벽도 다 새로운 내장으로 덮였구요. 3층 대형 강의실(304호실이던가요?)에도 가 보았습니다. 옛날의 나무의자는 없어지고 2인용 플라스틱 의자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조금 좁아 보이던데 학생들에게는 괜찮은 모양입니다. 우리가 그만큼 날씬하지 않게 된 것일까요?
진입로 왼쪽으로는 매년 체육대회가 열리고 매일 우리가 축구 야구 농구를 했던 운동장이 있었죠. 그런데 거기에는 건물이 잔뜩 들어서서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운동장은 옛날 예비군 훈련장으로 옮겨갔는데 여러 시설이 함께 있어서 산만한 느낌이었습니다. 옛날 그 운동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습니다.
1호관 뒤쪽의 연못은 주변이 깨끗하게 단장이 되었더군요. 우리에게는 대형 연잎이 가득한 모습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큰 연잎은 없고 가운데 작은 연잎들이 떠있는 모습이었습니다. 1호관과 진입로 그리고 연못 주변은 온통 단풍 든 나무로 덮여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장관이었어요. 김형종이가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그 장관을 일면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절 첨단 컴퓨터 FACOM이 있던 전산실 건물은 그 모습 그대로 있었습니다. 지금도 전산실이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컴퓨터를 처음 배우던 그 때를 회상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들고 다니는 노트북 성능에도 못 미치던 컴퓨터였지만 그래도 그때는 컴퓨터 배운다고 어깨에 힘 꽤나 주고 다녔죠. 일부러 OCR카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보여주기도 하고 말이죠. 그 전산실에서 OCR카드를 타이핑 치던 그 아가씨들은 지금 다 우리 나이가 되어 어디선가 살고 있겠죠.
그 시절 교양강좌가 열렸던 7호관도 가보았습니다. 미대가 있었던 건물, 그 때 그 캠퍼스에서 가장 새것으로 보였던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새 건물들 사이에 묻혀서 찾기도 쉽지 않더군요. 7호관을 찾아서 모두들 맞다고 인정할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7호관에서 정문으로 돌아오는 길에 옛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에 도서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 못하는 동기들이 있더군요. (영준이었던가?) 레포트 제출하기 전에 마지막 정리(?)를 위해서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의 지식을 나눠주고 나눠받던 그런 곳이었죠. 아마 스스로 모든 과제를 해결하던 동기들에게는 갈 필요가 없던 장소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도서관은 건물은 있고 들어가는 계단은 있는데 정문은 벽으로 막혀 있더군요. 뭔가 추억이 단절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을빛과 회상에 물든 캠퍼스를 한 바퀴 돌고 우리의 모임이 끝났습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올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서로 악수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더 많은 동기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은 용량문제가 있을 듯해서 몇 장만 첨부하고 나머지는 Daum 홈페이지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추가로 송년회 모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12월이 되면 연말로 갈수록 바쁜 일이 생기기 때문에 12월 첫째 주에 모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12/4(수), 12/5(목) 12/6(금)에서 하루를 선택해서 저녁에 모이는 것을 제안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의견을 보내주세요. 날자 변경에 대해서도 의견 있으면 보내주시구요. 언제나 그랬듯이 많은 동기들이 참석할 수 있는 날자로 정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모임 다음날에 있었던 마라톤 결과도 이야기 해야겠네요. 마라톤이 시작되어서 일단 출발한 후에는 동기들의 충고는 머리 속에서 어느새 다 사라져버렸고, 체력과 끈기와 오기로 벌인 사투 끝에 5시간 15분의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다행히 무릎에도 별 이상이 없구요. 난생 처음 겪은 일이었는데 새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년에도 또 도전할 생각입니다. 5시간 이내라는 목표를 갖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