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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감악산(紺岳山) 산행기
감악산(紺岳山)이란 이름의 산은 여러 곳에 있으나 강원도 원주의 감악산(945m)과 경남 거창의 감악산(951m), 그리고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경기도 파주의 감악산(675m)이 유명하다.
파주의 감악산은 행정적으로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과 양주시 남면, 그리고 연천군 전곡읍에 걸쳐 있으나 산문이 서쪽 적성 방향으로 열려 있고, 등산로 또한 적성 쪽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있어서 파주의 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감악산에서 ‘감(紺)’이란 글자는 검푸른 색 혹은 검은 빛을 띤 남색이란 뜻인데, 감악산이란 이름의 산은 모두 바위산으로 바위 사이로 검은 빛과 푸른빛이 함께 쏟아져 나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감악산의 바위 빛깔이 거무티티하고 누르죽죽한 감색을 띠고 있어서 감악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허긴 감악산 바위 빛깔이 북한산이나 도봉산처럼 아름다운 여체를 연상케 할 만큼 밝은 우유 빛 색상은 아니고, 텁텁하고 소박한 색깔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감악산 바위 색깔이 우중충하거나 거무티티하고 누르죽죽한 것은 아니니 바위 색이 그래서 감악산이란 이름이 붙은 건 아니고, 오히려 감악산이란 이름엔 신비로움을 지닌 산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무속인들은 감악산을 신산(神山)으로 섬기고 있으며, 중부지방 열두굿거리 중 삼마누라거리 무가(巫歌)에 ‘감박산 천총대왕’이라는 산신 이름이 나오기까지 하고, 감악산 동쪽 신암저수지 부근에는 무속연구원과 감악산 굿당이 상존하고 있다(감악산을 이 고장 사람들이나 무속인들이 감박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무속인들은 설인귀가 죽어서 감악산 산신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산줄기는 한북정맥의 가지(감악지맥)에 해당한다. 즉 양주시 백석면의 한강봉(530m)에서 한북정맥으로부터 북으로 갈라져 가지를 친 감악지맥이 팔일봉(464m), 노고산(400.9m), 설마치고개를 지나 임진강에 가라앉기 직전 솟구친 산이 감악산이다.
예전엔 서울의 관악산(631m), 개성의 송악산(488m), 포천의 운악산(935.5m), 가평의 화악산(1,468.3m)과 더불어 경기 5악으로 불리었던 아담한 바위산이며, 지금은 산림청에서 지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들어 있다.
그리고 옛 이름이 칠중하(七重河)인 임진강을 끼고 있는 감악산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여서 전쟁의 아픔이 깊이 서려 있다. 삼국시대에는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다투던 곳이어서 산 아래 임진강변의 파주시 적성면 구읍3리 일대에는 칠중성(七重城)이라는 긴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삼국통일을 추진하던 신라가 675년 칠중성 대회전에서 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의 군사를 물리침으로써 명실상부한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졌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발해의 남침 위협으로부터 국경을 수호하겠다는 호국의지로 감악산에서 소사(小祀;제사의 등급)를 지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감악산은 신산이란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시대에도 산마루에 사당이 있어서 매년 봄, 가을에 왕이 향과 축문을 보내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현종 2년(1010년)에 거란군이 침입하여 감악산 아래 임진강가의 장단에 이르렀을 때 감악산 신사에 깃발이 펄럭이고, 정상의 형세가 마치 많은 군마가 늘어서 있는 듯이 보여 더 이상 남침하지 못하고 물러갔다고 하여 조정에서는 더욱 감악산 신사를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고려시대 정중부(鄭仲夫)가 무신난을 일으켰을 때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金敦中)이 감악산에 은신하였으나 종자의 밀고로 발각이 되어 참살되기도 한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도 궁중에서 춘추로 감악산에서 별기은(別祈恩)을 지냈다고 한다. 별기은이란 국가의 안정과 편안을 위해 명산대첩을 찾아 산신제를 지내는 것을 말하는데, 감악산이 그 대상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6.25 때는 격전이 벌어진 곳으로 감악산 서쪽엔 전몰 장병을 위한 충혼탑이 있으며, UN군으로 참전했던 영국군 글로스타샤 연대 소속의 제1대대와 제170독립박격포대대가 1952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중공군 3개 사단을 상대로 감악산 아래 설마리에서 전투를 벌여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감악산 서쪽 설마리에 영국군 전적비가 있다.
사정이 이러하고, 휴전선 인접지역이어서 산 곳곳에 군사시설이 즐비하며, 80년대 초반까지는 등반이 금지되었다가 그 후에 개방이 되어 뒤늦게 사랑을 받게 된 산이다.
산행 들머리는 여러 곳에 있으나 처음 가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가장 보편적인 코스는 범륜사를 기점으로 하여 임꺽정봉을 거쳐 정상에 들렸다가 까치봉을 거쳐 감악산휴게소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이 코스에는 병풍바위-임꺽정봉 부근과 까치봉 부근의 풍광과 조망이 빼어나다.
서울을 기점으로 하여 산행 들머리인 범륜사 입구로 가려면, 1호선 전철을 타고 가능역(과거 의정부 북부역)까지 가서 전철역 맞은편 버스정류소에서 적성행 25번 버스(명진여객)를 타든지, 아니면 1호선 전철 양주역(옛 주내역)까지 가서 거기서 맞은편 버스정류소에서 25번 버스를 타고 범륜사 입구인 설마교(雪馬橋)에 내리면 된다. 다만 덕정역으로는 가면 안 된다. 덕정역 맞은편 버스정류소엔 25번 버스가 들리지 않아서, 다른 버스를 타고 두 구역을 더 가서 덕정 4사거리에 가야 25번 버스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불광동 쪽에서 접근을 하려면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적성행 30번 버스를 타고 적성으로 가서 적성에서 역시 의정부로 가는 25번 버스로 갈아타고 10분이면 범륜사 입구(설마교)에 닿는다.
설마교에 내려 계곡 안으로 3~4분 들어가면 매표소와 거북바위휴게소가 있다. 거북바위휴게소 바로 앞에 범륜사 방향을 가리키는 돌비석이 서 있는 바위가 바로 거북바위이다.
거북바위휴게소에서 시멘트포장의 가파른 왼쪽 능선 길을 휘돌아 12~3분 올라가면 법륜사에 닿는다.
범륜사(梵輪寺)를 어떤 자료엔 법륜사(法輪寺)라 표기하고 있으나 법륜사가 아니라 범륜사가 분명하다. 범륜사는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처음 창건하여 운계사(雲溪寺)라 했다고 하나 그 후 폐사가 되어 당시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예전엔 감악산에 감악사, 운계사, 범륜사, 운림사 등 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나 모두 사라졌으며, 1972년 운계사 터에 범륜사가 새로 복원되어 있다.
태고종인 범륜사에서는 마당 가운데 세워진 백옥으로 조성한 관음상이 볼만하다. 중국 하북성 아미산 백옥으로 현지에서 만들어 1995년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범륜사 앞 이정표엔 ‘정상 2.5km, 임꺽정봉 2.7km, 까치봉 2.3km, 매표소 0.65km’라 적혀 있고, 범륜사 앞까지는 시멘트포장길이나 범륜사부터는 비포장의 넓은 너덜길이 이어진다.
그리하여 12~3분 올라가면 옛날 숯가마가 있었다는 ‘숯가마 터’란 잣나무쉼터에 이르고, 거기서 5분 정도 더 올라가서 ‘묵은 밭’이라는 옛 화전민이 살았던 묵정밭 작은 분지에 닿으면 길이 갈라진다. 왼편 오르막길은 쌍 소나무쉼터를 거쳐 까치봉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편 숲길이 정상과 임꺽정봉으로 바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리고 거기 이정표에 ‘정상 1.7km, 임꺽정봉 1.9km, 까치봉 1.4km, 매표소 1.5km, 범륜사 0.8km’라 적혀 있다.
묵은 밭에서 오른편 숲길로 들어서서 1~2분 올라가면 ‘만남의 숲’이란 쉼터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길이 갈라진다. 바로 직진하는 길은 안골이라는 계곡 길인데, 그쪽으로 똑 바로 올라가서 정상과 임꺽정봉 사이 안부인 어름골재에 이르면, 왼편이 정상이고, 오른편이 임꺽정봉이다. 노약자가 있을 경우 이 길로 올라가면 편하다.
그리고 만남의 숲에서 오른편 길은 임꺽정봉으로 바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다. 다소 힘은 들어도 감악산의 진면목을 보려면 오른편 길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편한 길을 좋아해서 그런지 어름골재로 이어지는 안골 계곡 길 쪽으로 많이 다녀 그쪽 길은 뚜렷한데, 오른편 길은 약간 희미하다. 그러나 길 잃을 정도는 아니므로 안심하고 올라가도 된다.
능선 길에 들어서서 오르막을 올라가면 적당한 경사의 길이어서 기분 좋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런 길을 40여분 올라가면 암봉(620m)에 닿는다. 암봉에 올라서면 장군봉과 임꺽정봉이 바로 앞에 보이고, 오른편 아래로는 부도골과 신암저수지 일대가 절벽 아래에 아찔하게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암봉에서 7~8분, 살짝 내려갔다가 올라가면 잘 생긴 석문을 지나 산행안내판이 있는 장군봉(640m)에 올라선다.
장군봉에서 내려간 안부가 남쪽 봉암사 갈림길이 있는 부도골재이다. 그런데 부도골재 이정표엔 임꺽정봉을 가리키는 방향표시가 없고 정상을 가리키는 방향표시만 있어서 임꺽정봉을 먼저 오르려는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정상을 가리키는 왼편 사면 길은 어름골재로 가는 길이므로 그쪽으로 가도 되지만 임꺽정봉으로 바로 가려고 하면 부도골재에서 병풍바위(일명 신선바위) 아래를 오른편으로 휘돌아 암릉 길로 10여분 올라가서, 마지막 밧줄을 잡고 암릉을 올라서면 임꺽정봉(670m)에 이른다. 산행기점인 매표소에서 3.4km, 1시간 30~40분 걸린다.
임꺽정봉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매처럼 생겼다 해서 매봉 혹은 응봉이라고도 하는데, 정상엔 표지석은 없고, 안내판과 삼각점(문산 22, 1982 재설)이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 시야가 시원히 열려 있어서 신암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 양주 들판과 마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임꺽정봉 바로 아래(매봉재)에 아슬아슬한 절벽에 임꺽정굴이 있다. 굴 상단은 사람 몸통 하나 들어갈 만한 크기로 일명 설인귀굴이라고도 한다. 공교롭게 임꺽정도 이 부근인 양주 불곡산 자락에서 태어났고, 당나라 장수 설인귀는 적성 출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임꺽정과 설인귀에 얽힌 사연들이 이 부근에 많이 전하고 있다. 양주 불곡산(468.7m)에도 임꺽정봉이 있고, 마석 천마산(812.4m)에는 임꺽정바위가 있다.
그리고 설인귀가 고구려를 칠 때 이 굴을 중심으로 진을 쳤다고 하는 전설이 전하고, 임꺽정 역시 한 때 이곳을 근거지로 했다고 하여 임꺽정굴 혹은 설인귀굴이라 한다. 또 다른 설은 고려 말의 충신 남을진(南乙珍)이 고려가 멸망한 후 은신했던 곳이라 하여 남선굴이라고도 한다. ‘남선굴’이란 남을진이 신선처럼 살던 굴이란 말의 줄인 말이다.
임꺽정굴을 출발하여 10분 진행하면 어름골재를 지나 감악산 정상에 닿는다. 감악산 정상은 넓은 헬기장이고, 군 초소 옆에 태극기가 펄럭이며, 한쪽에 고비(古碑)가 한 기 서 있다(향토유적 제8호). 비 높이 170㎝, 두깨 15~19㎝, 너비 77~79㎝이다.
이 고비는 진흥왕 순수비와 비슷하게 생겨서 ‘감악산 신라비’라 하며, 빗면이 마모가 되어 글자가 전혀 없다. 그래서 도교의 영향을 받아 본래부터 문자가 없는 몰자비((沒字碑)라 칭하기도 하고, ‘빗돌대왕비(비뜰대왕비)’라고도 하는데, 세종대왕실록에는 당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의 비석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 중기 허목(許穆)의 문집 ‘미수기언(眉?記言)’에 이 비석에 대해 ‘아주 오래 되어 글자가 마멸되어 알아보기 힘들다’라고 하여 원래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최근엔 신라가 한강변을 차지한 후 세운 제5의 진흥왕 순수비였으나 글자가 마모되어 내용을 알아볼 수 없을 따름이라는 주장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감악산 정상은 사방으로 시야가 열려 있어서 날씨가 청명한 날은 북서쪽 임진강 너머로 개성의 송악산이 보이고, 동북쪽으로 철원의 금학산(947.3m)과 고대산(832m)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양주 시가지 너머 소요산(587m)이 가깝게 보인다. 남쪽으로는 파주 들녘 위에 불곡산(468.7m)이 다가오고, 그 너머 도봉산, 북한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서릉을 따라 까치봉 쪽으로 내려서면 100여m 아래에 팔각정 전망대가 있고, 이후 시종 전망이 트여 있는 편안한 능선 길로 20여분 내려가면 까치봉(560m)에 닿는다.
암릉과 노송이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수려한 까치봉은 시야가 열려 있어서 북쪽으로 적성면 일대와 임진강이 보이고, 저 멀리 북녘 땅이 아스라하다.
그리고 까치봉에서 15분 정도 내려가면 쌍 소나무쉼터(440m)에 닿고, 거기 이정표에 ‘까치봉 1.1km, 팔각정자 1.5km, 범륜사 1.1km, 휴게소(주차장) 2.2km’라 적혀 있다. 이정표에서 휴게소란 감악산휴게소를 뜻하며, 여기서 하산 길이 갈라진다. 왼편 내리막길은 묵은 밭 쪽으로 이어져서 범륜사 쪽으로 하산하게 되고, 계속되는 능선 길은 감악산휴게소로 이어진다.
능선 길을 따라 쌍 소나무쉼터에서 15분 정도 내려가면 헬기장(430m)에 이르고, 거기 이정표에 ‘정상 2.3km, 휴게소(주차장) 1.5km’라 적혀 있다. 그러고 보면 정상에서 감악산휴게소까지 3.8km인 셈이다. 이어서 헬기장에서 10여분 내려가면 선고개에 이른다. 선고개에서 오른편 길은 객현리 쪽으로 이어지고, 왼편으로 꺾어지는 넓은 길로 1km, 15분 정도 내려가면 371번 도로변의 소맷골 입구 감악산휴게소에 닿는다. 정상에서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이렇게 거북바위 매표소를 출발하여 임꺽정봉과 정상을 거쳐 까치봉을 지나 감악산휴게소로 내려오려면, 산행거리 7.6km, 순수 산행시간 3시간 정도 걸리고, 관찰하고 휴식하는 시간 포함하면 5시간 정도 걸리므로 가벼운 하루 산행 일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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