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청 누리집의 '대구12경'
1970년 9월 27일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 헌장’이 채택되었다. 그로부터 9년 지난 1979년 에스파냐에서 열린 세계관광기구 총회는 그 일을 기념해 9월 27일을 ‘세계 관광의 날’로 지정했다.
다음백과는 세계 관광의 날이 “관광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으며, “관광은 각국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 유산,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한 큰 부가가치의 창출을 이룰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문화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소통의 통로가 되기도 하는 중요한 산업이므로 이를 장려하기 위한 기념일”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예전에는 대구광역시 시내 한복판이 대구은행 중앙로지점 네거리 주변이었다. 지금은 반월당 일대로 대체되었다. 타지인들은 삼성빌딩과 현대백화점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겠네!’ 싶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삼성빌딩 옆 인도에 ‘대구 12경’이라는 제목을 단 현수막이 붙어 있다. 내용을 보니 “1 팔공산, 2 비슬산, 3 낙동강 강정고령보, 4 신천, 5 수성못, 6 달성토성, 7 경상감영과 옛골목, 8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9 동성로, 10 서문시장, 11 대구타워(83타워), 12 대구 스타디움”이라 적혀 있다.
‘대구 12경’이 “관광은 각국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 유산,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관광 산업”이라는 해설과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생각해본다. 이 문장의 핵심은 ‘고유’에 있다.
‘1 팔공산’은 무수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100여 등산로를 거느린 천혜의 자연유산이다. ‘2 비슬산’은 지구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 유적을 자랑하는 천연기념물이다. ‘4 신천’은 인구 250만이나 되는 대도시 한복판을 흐르는 희귀 물길이다.
‘6 달성토성’은 서울 풍납토성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대 축성술을 증언하는 2대 사적이다. ‘7 경상감영과 옛골목’은 600년 이상 영남 지역 전체의 정치 군사 행정 경제의 중심지였던 대구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이다. ‘8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세계적 시민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근대유적이다. ‘10 서문시장’은 조선 시대 3대 시장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는 전통적 명소이다.
반면 ‘3 낙동강 강정고령보’, ‘9 동성로’, ‘11 대구타워’, ‘12 대구 스타디움’은 전혀 ‘고유’하지 않다. ‘5 수성못’은 너무 작은데다 일본제국주의 냄새가 풍긴다.
3을 넣으려면 세계적으로 대도시를 관통하여 평화롭게 흐르는 보기드문 하천 금호강을 넣고 그 대신 고령강정보를 없앤 ‘3 금호강과 낙동강’으로 격상시키면 된다. 9를 넣으려면 외국과 타지에서는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약령시를 넣어 ‘약전골목과 동성로’로 그 내용을 충실하게 채우면 된다. 단, 소멸되어가는 대구약령시 보전이 선결 과제이다.
5를 넣으려면 들안길을 보태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수성못’ 정도로 환골탈태를 시키면 된다. 그렇게 하면 일제 잔재에서 독립운동 유적으로 일신되고, 자랑거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식당이 한곳에 운집해 있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들안길을 포괄할 수 있다.
12경은 너무 많다. 이름난 관광지는 대체로 8경, 9경, 10경이다. 덩치 큰 건축물에 불과한 ‘11 대구타워’와 ‘12 대구 스타디움’을 제외하면 10경이 된다. 9경으로 하려면 7과 9를 합쳐 ‘근대와 현대의 대구’로 제시하면 된다. (그렇게 만든 9경에 녹동서원을 넣으면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10경이 되고, 육신사와 도동서원을 다시 보태면 국내 타지인을 부르는 데 도움이 되는 12경이 된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고유성이 없는 것을 지역 특유의 상징으로 내세워서는 옳지 않다. ‘고유’의 극치는 예술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보면 알 수 있지만, 고유한 것을 촬영하면 거의 그대로 ‘작품’이 된다. 고유한 것을 전면에 내세워야 관광산업이다. (*)
이 글은 현진건학교가 펴내는 월간 '빼앗긴 고향'에 수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투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