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서 가지고 오신 것 같은 쪽파, 상추, 콩나물, 시금치와 집에서 쑤어온 도토리묵과 따끈따끈한 두부를 파는 할머니와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나오는 학생들을 위해서 어묵이며 떡볶이를 만들어 파는 간이포장 마차가 있고 여러 가지 과일을 놓고 파는 과일 아저씨들이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시장을 보기 때문에 과일도 마켓에서 사다 먹는데 딸애를 기다리던 시간이 남아 노점에 펼쳐놓은 과일바구니 앞에 섰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훨씬 반들반들하고 생기 있어 보이는 참외와 토마토, 파인애플, 수박등. 낮에 보는 과일보다 밤에 불빛으로 보는 과일의 색깔이 훨씬 예쁘고 먹음직 스럽게 보인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한, 두 걸음을 사이에 두고 과일가게가 있었지만 유독 싱싱하고 먹음직 스럽게 보여지는 노점으로 발길이 갔다. 같은 과일을 놓고 파는데도 그 집 앞에만 손님이 많았다. 이것저것 둘러보며 노랗게 반들반들 윤이 나는 참외 바구니를 가리키니 넉살 좋은 주인 아저씨는 대뜸, “손님 ! 참외 드릴까요?” “거기 흐뭇해 보이는 놈들은 만원이고 저기 저쪽에 시무룩한 놈들은 칠 천원입니다. 손님한테는 아무래도 흐뭇한 요놈이 어울릴 것 같은데 드릴까요?“한다.
참외를 가지고 흐뭇한 놈과 시무룩한 놈이라 하다니, 웃으면서 말하는 과일아저씨의 발상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또 한번 나를 기분좋게 한다. “여기서 매일 과일이나 팔지만 우리도 사람 볼 줄 알아요. 아무한테나 흐뭇한 참외를 권하지는 않는 답니다. 흐뭇한 참외 먹을 사람이 있고 같은 참외를 먹어도 평생 시무룩한 참외 밖에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지요”하면서 달라지도 않았는데 은근슬쩍 흐뭇한 참외 한 바구니를 검정 비닐봉지에 담는다.
손님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서 장사를 하는 판매수단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고객의 기분을 업시켜 주면서 팔아서 인지 내가 서있는 동안에도 서너 명의 사람들이 와서 과일을 사 가지고 갔다. 과일 아저씨 말처럼 누구에게나 흐뭇한 과일을 권하면서 같은 말을 하리라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은 과일 한 바구니를 사면서도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그 아저씨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 같았다.
그 날 과일아저씨가 권해준 흐뭇한 참외를 가지고 와서 남편과 딸한테 이야기했더니 정말 장사 수단이 좋은 사람이라며 칭찬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유능한 과일 아저씨도 때론 실수를 하는 때가 있나보다. 한번 사다먹은 참외가 맛이 있어 일부러 다시 사러 갔는데 이번에도 역시 지난번 처럼 흐뭇한 참외와 토마토를 권했지만 어쩐일인지 이번에 다시 사온 참외는 무늬만 참외이지 거의 오이수준이었다.
맛이 없다며 남편도 딸애도 먹지 않는 그 참외를 깍아 먹을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같은 참외이지만 전날 들여와 하루 묵은 참외와 오늘 새로 들어온 참외의 차이가 흐뭇하고 시무룩함의 차이일거라고, 그리고 사는 사람의 첫인상이 과일가게 아저씨의 머리를 약게 만들어 버린다고.
두 번째 참외를 사러 간 날 난 목욕탕에서 금방 목욕을 하고 젖은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한 맨얼굴이었으니 과일 아저씨 눈에도 영락없이 집안에만 박혀있다 나간 아줌마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참외로 치자면 시무룩한 참외인 내 모습을 과일 아저씨는 놓칠리 없이 재빠르게 머리에 입력을 했던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한번 흐뭇한 참외를 사러 갈 생각이다. 그땐 처음처럼 다시 옷을 챙겨입고 화장을 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마주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