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낯가림이 좀 있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를 못하죠. 초반에 어색하더라도 조금만 이해해주세요.(웃음)”
수줍은 듯하면서도 당찬 모습이 그가 연기 중인 <레베카>의 ‘나’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극 초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주변 인물들에게 끌려다니지만, 후반에는 단호한 캐릭터로 변모하며 다른 인물들을 리드해나간다.
“비슷한 구석이 많죠. 원작을 읽으면서도 저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소극적인 부분이 특히 닮았죠.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면 저를 많이 숨기거든요. ‘나’도 굉장히 평범하고 순수한 인물이에요. 어떤 부분에서는 자격지심까지 있을 정도죠. 스스로 맨덜리 저택의 안주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또 어떤 면에서는 강단이 있어요. ‘막심’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걸 깨닫고는 행동에 자신감이 생기죠. 저도 친해지고 나면 쾌활한 성격이거든요. 저만의 개그 코드도 좀 있고요.”
김보경만큼 반전 캐릭터를 가진 배우가 또 있을까. 무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청아한 목소리로 소녀 같은 대사를 읊조리다가도, 어느 순간 천장을 뚫을 듯 강렬한 고음을 쏟아낸다. 이런 반전 매력은 공연장에 있는 모든 관객을 숨죽이게 한다. 그를 직접 대하니 작은 체구 어디에 그런 힘이 숨어 있는지 궁금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때 노래의 기본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중학교 때는 발레를 했는데, 노래의 기본은 성악이고 춤의 기본은 발레잖아요? 우연치 않게 제가 그 두 가지를 모두 배운 거죠. 저에겐 그게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노래 못지않게 연기력으로도 이름난 그이지만 연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다. 그에게 연기란 배워서 터득하는 테크닉이 아닌, 캐릭터의 진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이것이 뮤지컬 배우 김보경이 가지고 있는 연기 철학이다.
“성악과 입시준비를 할 때를 제외하곤 정식으로 연기 레슨을 받은 적은 없어요. 2004년 <노트르담의 꼽추> 공연을 준비할 때 연출가 선생님이 제게 물으시더군요. 연기를 배운 적이 있냐고. 배운 적 없다고 했더니 ‘맞다. 연기는 배워서 되는 게 아니다. 그저 지금처럼 진심을 다해서 하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물론 연기를 테크닉적으로 배울 수는 있겠죠. 이론을 배운다면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제가 충분히 그 배역에 빠져든다면 좋은 감정 연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역 맡았을 때도 캐릭터를 만들려 노력했죠
김보경이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것은 지난 2003년 <인어공주>를 통해서였다. 그는 2006년 <미스 사이공>의 주인공으로 발탁될 때까지 3년 동안 앙상블을 했다. 소녀1, 행인2처럼 이름도 없는 배역이었지만 그는 대사 한마디 없는 인물에게도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가 맡은 인물이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연기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상 대본을 받으면 인물에 저만의 이름을 지어주었죠. 캐릭터를 구축하는 건 물론이고요.”
작은 역할에도 혼신의 힘을 다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06년이다. 그해 국내 초연된
<미스 사이공>에서 주연에 발탁됐던 것. 2005년 <아이다>에 앙상블로 출연한 김보경을 <미스 사이공>의 영국 제작진이 눈여겨봤다. 제작진은 김보경이 오디션에 응하도록 소속사에 강력하게 권유했다.
“운이 좋았어요. 조연을 하다가 주인공으로 발탁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아이다>에서 제가 맡은 파트는 딱 한 소절뿐이었는데, 그걸 듣고 저를 캐스팅해주셨으니 하늘이 도운 셈이죠. 무대에 서는 친구들의 실력은 앙상블이나 메인이나 비슷해요. 메인이라고 실력이 뛰어나고, 앙상블이라고 뒤처지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제가 ‘킴’과 이미지가 비슷한 면이 있어서 캐스팅됐던 것 같아요.”
‘킴’으로 열연하면서 그의 인생도 뒤바뀌었다. 많은 언론은 무명 조연배우가 대작 뮤지컬의 주인공 자리를 꿰찬 것에 대해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보경은 작품을 통해 그것이 실력으로 이뤄낸 성과임을 입증해 보였다. 그 역시 ‘킴’이 본인의 인생을 바꿔준 역할이기 때문에 매우 특별하고 소중하다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초연 당시 김보경은 필리핀 출신의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 레아 살롱가와 자주 비견됐다. 레아 살롱가 역시 <미스 사이공>의 ‘킴’으로 발탁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레아 살롱가 이후 ‘킴’을 연기하는 모든 배우에게는 그와 비슷하면서도 달라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했다. 김보경도 이를 피해갈 순 없었다.
“유명 배우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기도 해요. 하지만 레아 살롱가의 ‘킴’과 김보경의 ‘킴’이 같을 순 없어요. 전 그분이 아니니까 아무리 흉내를 내도 기저에 있는 김보경의 모습을 숨길 순 없죠. 그래서 부담을 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연히 차별화되는 것 같고. 연출가가 주는 디렉션을 그대로 소화해야 한다는 생각도 강했기 때문에 연습할 때도 레아 살롱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2006년 <미스 사이공> 초연이 김보경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계기였다면, 2010년 공연은 김보경에게 조금 더 특별한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다. 캐릭터를 연기할 때 ‘내가 그 사람’이라고 최면을 건다. 그런데 배역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다.
“한번은 1막이 끝난 뒤 2막에 서질 못했어요.
<미스 사이공>에서 ‘킴’이 베트콩 청년 ‘투이’를 죽이는 장면을 연기하는데, 숨통이 조이는 듯하면서 숨이 쉬어지질 않았어요. 호흡곤란이 온 거죠. 심리적인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미스 사이공> 연출가가 배우 출신이었는데, 그분이 자신은 그 장면을 연기하다가 배우를 그만뒀다고 하더라고요.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심리적 압박을 크게 느꼈던 거죠. 그 이후로 무대 공포증이 생겨서 연출을 하게 됐대요. 저도 당시 배역에 심하게 몰입했었나 봐요.”
김보경은 <미스 사이공>이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맡은 역할에서 벗어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킴’은 굉장히 아프고 상처가 많은 캐릭터예요. 감정의 극단을 연기해야 하죠. 제가 <미스 사이공>을 처음 한 게 2006년인데, 그땐 뮤지컬 경력이 겨우 3년밖에 안 됐을 때였어요. 배역에 빠져들기 급급해서 벗어나는 법은 생각하지 않았죠. 밤에 잠도 안 오고, 우울의 연속이었어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죠. 그 이후로 밝은 캐릭터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미스 사이공>을 두 번째 마쳤을 때는 ‘킴’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고, 세 번째는 더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했어요. 2011년 세 번째 공연이 끝나고는 일부러 코미디 뮤지컬을 했어요. ‘킴’으로부터 빨리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젠 비교적 여유가 생겼어요.”
결국 ‘킴’을 맡을 때마다 배우 김보경은 한 발짝 한 발짝 성장한 셈이다.
뮤지컬 배우 되기 위해 무작정 상경
김보경이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 건 고등학교 때였다.
“아주 어렸을 때는 가수, 발레를 배우던 중학교 시절에는 발레리나를 꿈꿨어요. 그런데 가수는 생명이 짧을 것 같고, 발레리나를 하자니 뭔가 아쉬웠어요. 그래서 노래와 춤을 같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죠. 그게 바로 뮤지컬이었어요.”
대학 시절 <캣츠> <렌트> <명성황후> 등 대작 뮤지컬들을 보면서는 본격적으로 배우의 꿈을 키웠다. <캣츠>를 보면서는 ‘나도 꼭 저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몸을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 발레에 이어 재즈댄스도 익혔다. 그런데 대학 졸업 이후가 문제였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김보경은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 무작정 서울행을 택했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그였기에 서울에는 연고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서울 건대입구역 근처에 하숙집을 구했다.
“부모님이 고지식한 편이에요. 저한테 힘들 거라고 겁을 많이 주셨죠. 그래도 배우가 되고 싶었고 포기가 안 됐어요. 부모님은 딱 1년만 지원해주겠다고 하셨죠. 처음 얼마간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언니 집에 살면서 서울까지 오디션을 보러 왔다 갔다 했어요. 그러다가 건대입구에 방을 잡은 거예요. 하숙집 환경은 좋지 않았어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자 셋과 마주한 형국이었죠. 근데 저는 마냥 좋기만 하더라고요. 부모님을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1주일쯤 지났을까.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하숙방을 보시더니 충격을 받으셨나 봐요. 제 풀에 지쳐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 딸이 그런 환경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에. 그 길로 바로 선릉역 근처에 방을 구해주셨죠.(웃음)”
어렵게 방은 구했지만 부모님의 생각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약속한 1년간의 지원이 끊기자 당장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졌다.
“뮤지컬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던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그때였어요. 그만둔다기보다 다른 일을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쌀도 떨어져가고, 라면도 많이 먹었죠. 다행히 <미스 사이공>의 ‘킴’으로 무대에 서면서 그런 걱정은 사라졌어요.”
최근 김보경은 심한 몸살을 앓았다. <황태자 루돌프>와 <레베카>를 동시에 소화하느라 목에 염증이 생긴 탓이다. 급기야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동안 <황태자 루돌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무리하니까 면역력이 떨어져서 약이 안 들었나 봐요. 생각보다 공백이 길었죠. 힘들고 창피했어요. 사람들이 괜찮으냐고 묻는 것조차 민망하더라고요. 배우가 무대에 서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절감했어요. 빨리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요.”
김보경은 몸 관리를 잘하기로 이름난 배우다.
<아이다>에 출연하던 당시에도 그는 수백회 분량을 모두 소화해내 특유의 근성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한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했으니 상심이 컸을 것도 같았다.
“아프면서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쉬고 싶지 않아요. 누워 있으면서도 계속 무대에 서고 싶단 생각만 했어요.”
김보경은 <미스 사이공>을 비롯, <캣츠> <맘마미아> 등 굵직굵직한 작품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재 출연 중인 뮤지컬 <레베카>는 데뷔 10년을 맞은 그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레베카>엔 두 가지 사랑이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깨지지 않을 ‘막심’과 ‘나’의 사랑, 그리고 ‘레베카’에 대한 ‘댄버스 부인’의 집착과도 같은 사랑. 그런데 관객들은 ‘댄버스 부인’만 사랑하는 것 같아요. ‘나’와 ‘막심’의 사랑을 더 진하게 연기할 테니, 저희한테도 관심 좀 가져주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