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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진짜와 가짜의 경계
<편린들: 전시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1939-1948(Fragments: Memories of a Wartime Childhood, 1939-1948)>은 빈야민 빌코리르스키(Binjamin Wilomirski)의 홀로코스트 생존 수기로, 나치의 강제수용소 두 곳을 전전하며 살아남은 1939년생 유대인 소년이 기억을 더듬어 쓴 자전적 이야기다. 1995년 이 책을 출판한 유대출판사(Judischer Verlag)는 독일어권의 유대 문화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출판사로서 독일의 저명한 출판사 주어캄프(Suhrkamp)의 자회사이다. 출판사의 명성에도 힘입어, 이 책은 나오자마자 평단과 독서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영어를 비롯한 9개국 언어로 번역되었고, 이후 미국의 '전국 유대인 도서상', 프랑스의 '쇼아기록문학상', 영국의 '유대 계간문학상'등 홀로코스트 관련 문학상을 휩쓸었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일부 비평가들에게는 프리모 레비, 안네 프랑크, 엘리 비젤의 수기에 버금간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빌코미르스키는 전 세계 유대인 공동체와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라디오와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했고, 이런저런 콘퍼런스에 연사로 초청되기도 했다. 빌코미르스키의 수기가 그토록 주목받은 데는 출판사의 지명도가 한몫했지만, 어린이 생존자가 쓴 최초의 수기라는 희소성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억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책이 시장에 풀리기 직전 출판사 편집부에 수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편지가 도착했지만, 편집부는 검토 끝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시판에 들어갔다. 그런데 수기가 널리 회자되면서 여기저기서 내용에 대한 의심이 일기 시작했다. 이 수기는 1939년부터 10년 간의 체험을 다루고 있는데, 1939년생이라면 수용소 일을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등의 의심은 충분히 그럴만했다.
책이 출간된 지 3년째 되던 해인 1998년, 스위스의 저널리스트 다니엘 간츠프리트가 빌코미르스키에 대해 파헤친 스위스판 <그것이 알고싶다>가 그간의 의문에 불을 지폈다. 그에 따르면 빌코미르스키는 본명이 브루노 그로장(Bruno Grosjean)으로, 책 내용과 달리 라트비아가 아니라 스위스의 비엘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뒤 고아원에서 자란 기독교도였다. 따라서 그가 묘사한 아우슈비츠는 관광객이 알고 있는 아우슈비츠일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수기를 극찬했던 평론가들이 빌코미르스키를 옹호하고 나섰다. 수기가 가짜라면 자신들은 실없는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열띤 논쟁 끝에 결국 역사가 개입했다. 스위스의 역사가 스테판 매흘러가 빌코미르스키의 출판 대리인을부터 진실을 밝혀달라는 의뢰를 받고 많은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여 가짜 수기라고 결론지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고아원에서 겪었던 일과 진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인터뷰 내용이나 책에서 얻은 지식을 절묘하게 뒤섞어 독자들을 현혹했다는 것이다. 매흘러의 보고성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빌코미르스키의 고아원 경험이 폴란드 강제수용소 생활을 자신의 경험처럼 묘사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고아원에서의 경험이 어린 시절을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생존자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가짜로 판명되기 전까지 진짜 생존자들이 빌코미르스키에게 보낸 감사 편지들은 흥미를 넘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편지의 요지는 대개 자신들의 기억의 멍에에서 해방시켜주어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가짜였지만, 빌코미르스키의 수기는 다른 사람들이 믿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오랫동안 기억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진짜 생존자들에게 치유 효과를 주었던 것이다. 결국 가짜 소동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과학이었다. 2002년 취리히 검찰청의 지시로 이루어진 DNA 검사에서 빌코미르스키가 그로장과 동일 인물임이 밝혀지면서 논란은 마침표를 찍었다.
가짜의 호소력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 이 소동에서 중요한 것은 진짜와 가짜를 판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날조된 수기가 지닌 호소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실제로 빌코미르스키 이전에도 수기를 날조한 가짜 생존자가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헤르만 로젠블랫(Herman Rosenblat)은 오프라 윈프리의 토크쇼에 초대받아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엔리코 마르코(Enrico Marco)는 자신이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진짜보다 더 잘 대변한다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진짜가 가짜로 오해받은 경우도 있다. 홀로코스트 생존 수기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라고 평가받는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이것이 인간인가(Se questo e un uomo)>가 대표적이다. 레비가 처음 원고를 보낸 이탈리아 출판사 에이나우디(Einaudi)는 그의 원고를 보기 좋게 퇴짜 놓았다. 출판사의 편집진들과 심사위원들이 원고의 진정성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이렇듯 아찔할 정도로 흐릿하다. 평론가들도 '진짜 같은 가짜' 빌코미르스키의 수기에 환호하기까지 객관적 진실과 주관적 진실, 사실과 상상 사이에서 망설이고 주저하며 역사와 문학의 관계를 진지하게 묻고 고민했다. 진짜보다 더 가짜 같은 진짜 수기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과거를 잘 재현하고 있을까? 빌코미르스키의 가짜 수기가 진짜 생존자들이 감사 편지를 보낼 정도로 수용소 어린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빌코미르스키의 서술이 아무리 생생하고 또 그의 의도가 순수하다 할찌라도, 진짜인 양 하는 태도는 실제 생존자들의 증언이 갖는 가치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자전적 수기가 아니라 상상에 기댄 문학작품이라고 선언했다면,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가짜 수기가 불러올 수 있는 문제 때문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문학적 상상이나 재현을 거부해서는 곤란하다. 아우슈비츠와 같은 끔찍한 비극을 문학으로 재현하는 것이 죽은 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야 모를 바 아니지만, 홀로코스트의 문학적 재현이 점점 불가피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49년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가 가능한가"라며 홀라코스트의 문학적 재현에 반대했던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도 이미 자신의 질문이 낡은 것임을 인정한 바 있다. 세월이 흘러 마지막 생존자마저 생을 마감한다면 홀로코스트 재현은 간접 경험이나 문학적 상상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의 경험을 재현하는 과제도 같은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적잖은 수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살아 있는 오늘날에도 이 문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가령 생존자들 가운데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가스실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우슈비츠 생존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가스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묘사는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생존자들이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문학적 상상의 개입이 어느정도 불가피한 것이다. 진짜 수기와 가짜 수기의 경계에는 이처럼 과거의 기억과 문학적 상상력이 뒤엉킨 회색지대가 놓여 있다.
기억의 회색지대
사실이라 알려진 것들의 허와 실을 곰곰이 따지다 보면, 진짜와 가짜 사이에 놓여 있는 그 회색지대는 무한히 확장된다. 진짜 사진과 위조된 사진의 조잡한 이분법이나 '사진은 인간의 개입 없이 기계가 냉정하게 기록한 자료'라는 순진한 리얼리즘이 무릎을 꿇는 것도 이 회색지대에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 육군의 보도부원으로 종군한 야마하타 요스케의 사진들이 대표적이다. 나가사키 피폭 현장에서 포착된 주먹밥을 쥔 아이, 일본의 대중국 전선에서 중국 아이들과 놀고 있는 일본군 병사들, 가정적인 이미지의 전후 히로히토 천황을 촬영한 사진들이 그러하다. 이 사진들은 있는 그대로의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점에서 작위적이거나 위조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이 전달하는 광경의 역사적 해석과 의미에 생각이 미치면, 역사와 허구,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다시 흐려진다. 사진은 애초에 객관적일 수 없다. 보이는 광경을 그대로 담았다고 하지만 사진은 결국 촬영하는 사람의 선택과 배제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마하타의 사진 속 히로히토는 전범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가정적인 가장이 되고, 섬광작전의 끔찍한 살육을 주도한 일본군 병사들은 적국의 아이들과 웃으며 노는 따뜻하고 착한 젊은이들이 된다. 나가사키 피폭 현장의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눈동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배경을 옆으로 제쳐놓고 '희생당한 일본 국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제국 육군의 종군사진사이자 천황가의 전속 사진사였던 야마하타의 시선은 전후 수정주의 역사학의 시선과 놀랄 정도로 닮아 있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를 오가는 시작적 재현의 회색지대는 비단 야마하타 같은 전문사진사뿐만 아니라 아마추어들의 작품에도 벗이 도사리고 있다. 독일의 사진 영상, 전문업체인 폴라필름(PolarFilm)은 나치 독일군 병사들이 찍은 16밀리미터 다큐멘터리 필림들을 모아 2004년에 DVD로 발매했다. <제3제국의 병사들: 일상, 삶, 생존>이라는 제목의 이 DVD는 무성 필름인 원본에 임의로, 사운드트랙을 덧붙였따. 예컨대 나치 병사들이 점령지의 숢속에서 불루베리를 따는 장면에 새소리를 집어넣었다. 여기에 영화배우 마티아스 포니어(Matthias Ponnier)이 유쾨하고 따뜻한 내레이션이 결합되자 나치 병사들은 평화롭고 고요한 숲과 어울리는 순진무구한 청년이 디었고, 끔찍한 전쟁과 나치의 범죄행위는 병영생활의 나른한 평화지로 대체되었다. 제3제국과 침략 전쟁의 폭력성이 슬글머니 지워져 버린 것이다.
사운드트랙이 주는 효과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예는 러시아 점령지에서 상반신을 노출한 채 춤추는 집시 소녀를 촬영한 영상이다. 마치 서구 식민주의자들의 아프리카, 아시아 여행기에 나오는 이국적 취향의 사진과도 같다. 그렇지만 반라로 춤추는 집시소녀와 그녀를 둘러싸고 흥을 돋우는 나치 병사들을 촬영한 이 영상만으로는 당시의 구체적인 정황을 알기 어렵다. 집시 소녀가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이방인들 앞에서 기꺼이 옷을 벗고 춤을 추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우니, 아마도 나치 병사들이 점령지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강제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흥겹게 흘러나오는 집시풍의 음악은 소녀가 병사들의 강요에 의해 춤추는 게 아니라 마치 음악에 도취되어 자발적으로 춤추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미디어 재현에서 시각적 효과뿐만 아니라 청각적 효과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도 이 장면에서이다.
DVD에 추가된 사운드트랙이 영상 자체를 왜곡하거나 조작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운드트랙이 추가된 영상이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고 있다고 믿기에는 무언가 꺼려진다. 폴라필름의 <제3제국의 병사들: 일상, 삶, 생존> DVD 프로젝트는 나중에 더한 음향 효과로 피사체의 이미지를 조작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DVD 재킷 뒷면에는 "다양한 일상생활이 영위되는 틈새의 자유 공간들"이라는 광고 문구가 쓰여 있다. 그러므로 낡은 16밀리미터 롤 카메라 필름을 디지털화한 이 작업은 영상을 더 잘 보존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시각 자료에 청각 효과를 덧입힘으로써 결국 역사적 사실성 자체를 조작한 것이다. 음향이 덧씌워진 이 영상들은 사실인가, 거짓인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역사인가, 허구인가?
재현의 리얼리즘
역사적 현실의 조각은 시각적 재현에서 훨씬 다양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진다. 오른쪽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사진이다. 두 갈래의 철로가 수용소를 향해 달려가다가 정문 바로 앞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듯 보인다.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사진일 것이다. 이 사진만 놓고 보면 누구든 밖에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정문을 향해 찍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수용소 안에서 밖을 향해 찍은 사진이다. 즉, 한 줄기로 계속되던 철로가 정문을 지나 수용소 안으로 들어오면서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다. 아마도 새로 도착한 유대인들을 빠르게 정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와 이어지는 철로 사진이 대부분 안에서 밖을 향하고 있는데도 방향에 대한 설명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두세 갈래로 들어오던 철로가 수용소 안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이미지가 유대인들을 유럽 각지에서 아우슈비츠로 실어 날랐다는 사실에 더 걸맞은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이 사진이 위조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방향의 실체를 알고 나면 조금 속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생생한 느낌을 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영화 촬영용 세트는 수용소에 도착한 유대인들이 기차에서 내리는 플랫폼과 숙소, 시체 소각장 등을 모두 한 장면에 담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덕분에 관객들은 수용소의 전모를 한눈에 볼 수가 있었다 실제 수용소에서 촬영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진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는 너무 넓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시설물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없다. 그러니까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생생한 효과를 준 셈이다. 촬영 기법도 그에 못지않은 생생함을 전달했다.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게토 폐쇄작전 같은 긴박한 장면들을 일부러 미세한 떨림이 있을 수밖에 없는 휴대용 카메라로 촬영했다.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 감독 야누쉬 카민스키(Janusz Kaminski)에 따르면, 전체 촬영분의 40%를 휴대용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한다. 스토리텔링이나 시나리오의 구성도 그렇지만, 카메라가 피사체를 따라다니는 듯한 카메라 워크 또한 관객들에게 영화가 아니라 뉴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였다.
이 모든 게 단순한 트릭이라면 문제는 차라리 쉽다. 문제는 이 트릭조차 우리가 세상의 현실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라는 점이다.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가 <미메시스(Mimeis)>에서 '수사적/형상적 리얼리즘(figural realism)'이라고 이름 붙인 재현의 리얼리즘이 그것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이미지가 긴박한 역사의 한 장면을 훨씬 더 진짜처럼 재현하는 이상, 역사적 사실의 시각적 재현은 더는 무시할 수 없는 논의의 주제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기억도 이미지인 것이다. 나는 포토샵의 특허권이 스탈린이나 북한의 선전매체 일꾼들에게 주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 독자들 생각은 어떠신지? (임지현 / 서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