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건국 전쟁」신드롬
“그가 살았던 시대는 한반도의 남쪽 지역이 ‘대륙문명권’에서 ‘해양문명권’으로 이행되는 ‘문명의 전환기’였다. 따라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다”
약 10년 전 2014년에 이주영 전 역사학회 회장은 이승만 평전을 출간했다. 142쪽의 비교적 적은 분량의 평전을 펴낸 이 전 회장은『이승만과 그의 시대』를 집필하기도 했다.
또한『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을 출간하면서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교수이기도 했다. 이 전 교수는『이승만 평전』을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를 조명하면서 역사적 의미를 담았다.
“19세기 후반 조선왕조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의 후손으로 태어난 이승만은 당대의 사람들과 아주 다른 특별한 인생을 살았다. 당시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를 거쳐 박사학위를 받은 최고의 학력 보유자였다”
이 교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우리 근현대사에 너무나 많은 흔적을 남겼는데, 첫째 독립협회를 통한 애국계몽운동, 둘째 미국 망명과 독립운동, 셋째 해방 후의 건국 운동, 넷째 6.25남침을 막은 전쟁 지도력, 다섯째 대통령으로서의 통치 등으로 분류했다.
분류된 핵심적 내용으로는 독립협회 활동으로 구속되어 5년 7개월간 옥살이를 하면서 집필한 ‘독립정신’ 계몽서를 비롯해서 대한제국 고종의 밀사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후 1910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상해 통합 임시정부의 초대 임시 대통령을 맡은 일, 그리고 해방 이후 1946년 그 유명한 ‘정읍발언’으로 남한 과도정부 수립을 주창한 일과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후 1950년 6.25 한국 전쟁을 맞아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미국과 함께 번영의 자유주의를 지킨 일 등은 그의 노련한 정치 외교적 덕택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자유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을 놓는 의무교육 실시와 엘리트 육성을 위한 ‘인하공대’ 설립 및 원자력 기술 도입 그리고 독도 보호를 위한 ‘평화선’ 선포 등은 대한민국에서의 문명의 전환을 주도한 것으로 특정했다.
물론 권좌에서 물러날 때를 놓친 업보로 인해 그에대한 공과가 부정적으로 기울며 아직까지 논란적이지만 이주영 교수는 ‘이승만 평전’에서 “오늘날의 자유대한민국을 있게 한 것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문명사적 전환의 주도가 가장 큰 공로라고 결론짓는다.
이른바 이승만 대통령이 놓은 철길 위에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책이 달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시점에서 최근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이 열렸고,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5명이 고문으로 참석한 가운데 여.야 원로 및 4.19 학생시위 주도자들까지 처음으로 모여서 향후 추진 계획 등이 논의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설날 전후로 불어 닥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 전쟁」이 장안에 화제를 일으키면서 개봉 3주 만에 80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건국 전쟁」의 이러한 기록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야한 지 64년이나 지났기에 정치적 영화라기보다는 역사 영화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그래서 나이 많은 노년층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우파 지지층에게 크게 어필되면서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정평인데,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위시해서 그 추종 세력들이 대거 몰려드는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비교적 우호 세력인 기독교 신자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단체 관람이 이뤄지면서 그 여파가 청소년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면서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 역사에 새로운 진기록을 이루는 형세인데 조만간 관람객 100만 명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사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객관적 사실에 방점을 두고 있다. 1945년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을 맞은 한반도는 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이 38선 일대에서 분리되면서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 그 원인이다. 38선 북쪽은 소년 공산 진영의 영향을 받으며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며 주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공산주의 독재국가 북한으로 전락했고, 반면 38선 남쪽은 자유 진영 국가 미국의 영향을 받으며 자유민주주의의 시장경제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며 글로벌 선진국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형세다.
이처럼 같은 역사와 언어를 공유하며 가족과 형제자매를 이루던 민족 공동체가 극단적인 두 나라로 갈라져 전쟁까지 겪는 시련 속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어떻게 나라를 지키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는지에 대한 희생과 투쟁이 새롭게 조명되는 영화가 바로 「건국 전쟁」이다. 그래서 원제는 ‘THE BIRTH OF KOREA’이기도 하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1926-1984)는 “역사는 객관적 과학의 사실이라기보다는 한 세력의 이데올로기 투쟁 도구”라고 역설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으로 연출된 「건국 전쟁」에 대한 평가는 영화가 끝난 후 관람객들의 우레와 같은 자발적 박수 소리가 말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