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사리 재배로 통일 마을을 꿈꾸다
- 귀농 전 이미 고사리 전문가
- 2010년 3월 강원도 횡성군으로 귀농해 현재 총 면적 약 26,000㎡에서 고사리를 재배하고 있 는 김승철 씨는 귀농 전부터 고사리에 대해서만큼은 이미 전문가였다. 산채류에 관심이 많던 그는 6년 전부터 고사리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고 직접 키워보면서 고사리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지를 연구했다.
"고사리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어보기도 하고 밭, 산, 화분 등 이곳저곳에서 직접 길러봤어요. 화분에서는 잘 안되더라고요."
고사리에 재미를 느끼고 많은 관련지식을 쌓아온 김씨는 고사리 재배 만큼은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여기에 실제 고사리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재배 노하우를 전수받으려는 적극적인 노력들이 더해져 김씨의 고사리는 벌써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 헌집 줄게, 새집 다오
- 귀농의 시작과 함께 김 씨는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고사리밭이 있는 강원도 횡성에 살 집을 마련해야 하는데, 마땅한 집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당장에 땅을 사서 새집을 지을 형편은 더더욱 안됐고, 그나마 빈집을 구해 수리를 해서 사는 방법이 보통인데 이마저도 당시에 빈집 수리비 지원이 중단된 상태여서 쉽지가 않았다.
여관을 거처삼아 귀농생활을 시작하다가 횡성군 마옥리에 48년 된 빈집을 겨우 얻을 수 있었다. 쓰러질 듯 위태로운 이 집은 아궁이에 불을 때는 온돌식으로 틈틈이 땔감을 준비해 놔야 했다.
그렇게 열악한 집에서 1년 반을 살았을 때 통일부의 새집 지어주기 시범사업으로 2,200만 원을 지원받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새로 지은 집 주변에는 김 씨가 직접 만들고 있는 황토방과 고사리 종근장의 모습이 보였다. 김 씨 부부는 그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키워가고 있었다. - 농촌에서 일하며 3년간 귀농 준비
- 김 씨가 귀농을 결심하고 준비한 기간은 3년에 이른다. 새터민에게도 귀농은 한국의 도시생활과는 또 다른 변화이자 도전이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귀농정착자금을 마련하면서 남한의 농촌과 농업을 배우기 위해 김 씨가 선택한 방법은 직접 농사일을 해보는 것이었다. 용역회사를 통해 강원도 홍천 등지의 농사일을 찾아 인삼, 감자, 기장 등 여러작물의 재배와 관련된 일을 직접 경험해봤다.
"농촌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외국인 근로자였어요. 종종 한국인들과 잘 어울리려 하지 않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있을 때면 중국 교포인척 하면서 그들과 어울려 일하기도 했었어요."
김 씨는 농촌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 중에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면서 한국인에 대한 반감이 많았던 외국인들 사이에서 일하기 위해 신분을 감춰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의 이러한 노력들은 농촌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혈연·지연관계로 이루어진 그 끈끈한 관계 속에 끼어들어가는 과정에는 텃세가 있을 수도 있고, 큰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김 씨는 잘 알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먼저 인사하고, 배려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곧 마음의 문이 열리더라고요."
마을의 일원으로 함께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일단 친해진 이후부터는 마을 사람들이 김씨가 처한 여러 가지 상황을 잘 이해해줬고, 농사일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등 든든한 지원자가 돼주고 있다. - 첫 수확의 기쁨
- 올해 4월 김 씨는 귀농 후 첫 고사리 수확을 했다. 올해 수확 한 고사리는 대부분 다음해 계약을 위해 가락시장, 경동시장 등에 샘플로 납품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고사리의 대부분은 중국산이고 국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7%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산 고사리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올해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고사리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 씨 역시 안정적인 생산만 지속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정착을 넘어 고소득 농가로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김 씨의 집 바로 옆쪽으로는 1,300㎡의 논이 있다. 김 씨는 올해 이 논에서 쌀을 첫 수확한 기쁨을 만끽했다.
"당연히 뿌듯하지요. 가족들과 1년 내내 먹고도 훨씬 남을 만큼은 됩니다." 북한에서의 배고픔을 피해 찾아온 남한. 하지만 이곳 역시 김 씨에게는 배고프고 외로운 곳이었다. 참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이제 가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 는 쌀을 직접 생산한 김 씨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 김 씨가 말하는 고사리 재배 노하우
- 김 씨는 올해 고사리 종근 30만 주를 포트식으로 도입해 재배했다. 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 강원도 지역 고사리의 상당수가 동해를 입었지만 김 씨의 고사리는 대부분 무사했다.
"비결은 다름 아닌 낙엽입니다. 40일간 하루도 안 쉬고 낙엽을 실어다 날랐죠." 김 씨는 지난겨울 매서웠던 추위로부터 고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산속의 낙엽을 손수레로 실어와 부식토와 섞어 고사리 위에 덮어줬다. 낙엽과 부식토는 겨울에는 고사리를 추위 로부터 보호하고 날이 따뜻해져 고사리의 새순이 자랄 때는 좋은 영양원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김 씨의 가장 중요한 노하우 중 하나는 적지적기 재배이다. 그가 횡성군을 귀농지로 선택한 이유도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횡성이 고사리재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씨는 고사리를 4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수확하는데, 이 기간 동안 총 7번의 수확이 가능해 단위 면적당 수익이 인삼보다도 높다고 한다.
한편, 김 씨는 시중에 유통되는 중국산 고사리 중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고사리 외에 고사리와 유사한 것을 섞어 팔기도 하고 심지어는 좋은 빛깔을 내기 위해 염색을 해서 팔기도 한다며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른 봄과 여름에는 고사리가 장관을 이룹니다. 그때 한 번 놀러 오시지요." - 귀농으로 새터민 희망의 마을 만들 것
- 김 씨에게 있어 귀농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절박한 과제였다. 2003년 남한으로 넘어온 이후 중소기업 근로자, 건강원 사업, 막일 등 갖가지 일을 해봤지만 어떤 일을 해봐도 제대로 정착이 어려웠고, 어디를 가도 인정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김 씨에게는 큰 꿈이 있다. 앞으로 강원도에 100ha 규모의 고사리 재배단지를 만들어 새터민들의 성공적인 귀농·귀촌을 지원하는 통일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다.
"올해만 전국적으로 20명의 새터민이 귀농을 했습니다. 새터민 1,000명 이상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 바로 귀농입니다."
북한과 남한은 경제, 생활, 문화 전반에 있어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기업에 들어가서도 정착하기가 힘들었다. 새터민 정착의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는 귀농을 정부차원에서 지원해줬으면 하는 것이 김 씨의 바램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계획서를 농림수산식품부에 제출하고 귀농 정착금을 담보 없이 지원받을 수 있는 방안 등 현실적인 지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 < 자료 출처 : 농림수산식품부, 새싹농부! 희망을 노래하다,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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