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목 :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 본 문 : 시 편 23장 1절 - 6절 (구약성경 818쪽)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오늘 본문 시편 23편 2절 말씀을 다 함께 큰소리로 선포하겠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아멘!
2절 말씀은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신, 쉼에 대한 주님의 음성입니다.
현대인들은 무엇엔가 쫓기듯이, 너무나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늘 피곤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쁘다는 말이 입에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늘 피곤하다.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본래 먼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일해야 성과가 있는데,
너무 바빠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먼저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과가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목적이 즐거운 쉼인데, 쉼보다는 바쁘게 일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 그러면 여기서 내가 일만 아는 사람은 아닌가를 알아보는 방법을 시험해보겠습니다.
① 나는 항상 서두르며 사는가? / ② 항상 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은가?
③ 휴가를 내서 밀린 일들을 처리하는가? ④ 좀 쉬면서 일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⑤ 편히 쉴 때에 게으르다는 죄의식을 느끼는가? / ⑥ 병들기 전에는 결코 쉬지 않는가?
여러분!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나는 일만 아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형태의 삶을 사는 것도, 절대로 원하시지 않습니다.
- 모든 축하문자나, 모든 애경사의 알림이 사업에 관계된 사람들로부터 온다.
- 자녀의 사정을 알기 위해 학교에 가지만, 자녀가 무슨 과목들을 공부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 교회에 와서도 핸드폰을 열어놓고, 문자나 SNS를 확인하고, 전화가 오면 기어코 받는다.
- 가족들이 나를 집에서 밥만 먹고, 잠만 자는 하숙생 정도로 생각한다.
- 사업에 관계된 자료를 화장실에서 읽거나, 자나 깨나 사업에 관한 생각만을 한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형태의 삶을 사는 것을 절대로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시편 127편 2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일을 시작하고,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수면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바쁘게 일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이 수고의 떡을,
먹는 것이 헛되다고 말씀합니다. 하기야 할 일 없이 밤새 텔레비전 보는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본문 시편 23편 2절 말씀을, 다 함께 큰소리로 선포하겠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아멘!
저를 따라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 나의 / 선한 목자입니다. / 나는 / 그의 양입니다.”
“예수님은 / 나의 / 선한 목자입니다. / 나는 / 그의 양입니다.” / 아멘! 아멘!
이 믿음과 함께 여러분들이 “나는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이라.” 는 믿음을 가지셨다면,
오늘 본문인 시편 23편을 아주 잘 이해하실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2절 말씀에 나오는,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의 양들에게는, 완전히 천국에 있는 것과도 같은 행복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편히 쉬는 것과, 즐거움을 가지고 사는 것에 대하여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하고 균형 잡힌 멋있는 삶,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만 하는 것을 원치 않고, 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루의 안식일은 잠 자는 시간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한 주일의 안식일은 주일입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쉼을 얻게 됩니다.
한 달의 안식일인 월삭이 있습니다. 한 달의 첫 날에 예물을 드리며 시작하는 특별한 날입니다.
일 년의 안식일이 있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위해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한 해의 첫 달입니다.
평생의 안식일이 있습니다. 7년마다 가지는 안식년입니다. 그리고 노년이 평생의 안식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안식일을 가지되, 하나님 방법대로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일과 자신의 가치를 함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열심히 일해서 얻는 것이 많이 있으면, 우리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일과, 내가 누구인가를 혼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를,
가지고 사람의 가치관을 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먼저 이름을 묻습니다.
그 다음에 묻는 것이 무엇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로 그를 평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내가 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은 불평불만이 가득한 부정적인 세상에 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사귀던 친구가 그런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형제나 자매가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일해서 달성한 업적들을 보여 줌으로,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적을 달성해도 만족이 없습니다.
“너는 안 돼. 될 놈은 떡잎부터 알아보는데 너는 안 돼. 네가? 너는 안 돼.” 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려고 더 열심히 일합니다. 계속 일합니다. 죽을둥 살둥 모르고 일합니다.
자신의 위대함과 중요함을, 자신의 성공을 증명하기 위하여 더 열심히 지나치게 일을 합니다.
쉬지 않고 계속 일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깨닫게 하시려고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 말씀입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아멘! 아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 중에서, 우리 사람이 제일 중요한 존재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사람들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나는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시한 것들을 만드시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나는 최고입니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에게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믿는다면, 내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좋아하시고 내가 나를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내 삶을 소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께 가치 사람인가를 알고 믿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26절 말씀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도,
다 아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돌보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결코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느냐?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아낌없이 내어 주시기까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렇게 사랑하시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실적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열심히 일하고 성공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이 우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냥 좋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무조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손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셨다.” 고 하실 만큼 사랑하십니다.
어떻게 새기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그 손에 못 박히시므로 새기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이름을 새기시므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새긴 자신의 손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아멘!
다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쉬기 위해서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즐기십시오.
솔로몬 왕의 인생 지혜서라고 말하는 전도서 3장 13절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강권합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더 가지려고 애쓰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즐기지 못하며 삽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집을 즐기지 못하고 밖에서 즐기기에 바쁩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얻고자 쉴 틈 없이 일하다가, 병에 걸린 후에야 병원에서 쉬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도 가져야 한다고 뭔가를 사들입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으시대려고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올라가면 나도 올라가려고 애쓰다가, 거기서 떨어지면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렇게 사들이고, 그렇게 올라가려다가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됩니다. 빚을 갚기 위해 또 일합니다.
그렇게 일하느라 모든 시간을 다 소비하다 보면, 가족 간에 함께 할 시간이 없어 불행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절대로 아닙니다.
조금 가지고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 항상 바쁜 것보다 낫습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저는 목사로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마지막 임종을 참 많이 지켜보았습니다.
“죽기 전에 더 많이 일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말하고 죽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들하고 시간을 더 보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땡전 한 푼 없이 가난하게 죽는 것을,
우린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 때가 세상을 떠나기에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쓰면서 마음껏 즐기시고, 더욱 더 가지려고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쉬기 위해서는 일하는 것을 제한하십시오.
나는 자기 자신을 위해 보내는 시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
돈을 벌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일하는 시간보다, 내 삶에 더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일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활을 늘 잡아당기기만 하면 그 힘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여 성도님이 매우 화가 나서,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월요일 종일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도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월요일은 제가 쉬는 날입니다.
그러자 그 여 성도님이 목사님에 한방 먹입니다. 사단은 하루도 쉬는 때가 없는 것을 아십니까?
그러자 이 번에는 목사님이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사단처럼 일하기 싫습니다.”
출애굽기 20장 9절 말씀입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입니다.
이 계명이 너무나 중요해서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들보다도 앞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쉬는 것을 이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칠일마다 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게 되면, 몸 자체가 병에 걸려 병원에서 쉬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시간을 내어 쉬셨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바쁘십니까? 더 중요한 일입니까?
여러분! 몸도 쉬어야 하지만, 마음도 감정도 쉼을 통해서 치유되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의 병중에 우울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마음과 감정이 병들어서 생긴 질병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감정의 쉼을 통해서, 우울증이라는 병에서 치유되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적당한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통해서 마음의 쉼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몸도 마음도 감정도 쉬어야 하지만, 영혼도 쉼을 통해 치유되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쉼을 통한 영혼의 치유와 회복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몸도 마음도 영혼도 원상태로 회복시켜 주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세상에서의 모든 문제를 안고 교회로 나오면, 예배를 통해서 그 문제들을 바로 보게 됩니다.
내 삶의 모든 문제들을 예배를 통해서 바로 보게 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를 잘 드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그가 바로 인생성공자입니다.
마가복음 8장 36절, 37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그렇습니다. 목숨이 중요합니다.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현재 돈을 아주 많이 벌지만 부부가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자녀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부부간에는 대화가 사라지고 맙니다.
자녀들은 다 집을 떠납니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다 떠나고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피곤함에는 세 종류의 피곤함이 있습니다.
첫째로, 몸의 피곤함을 느낍니다. 이런 몸의 피로는 쉼을 통해 속히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마음이 피곤함을 느낍니다. 이런 마음의 피로는 좋은 일이 생기면 금방 풀립니다.
셋째로, 영적으로 피곤함을 느낍니다. 영혼 메말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영적 갈증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혼이 강건해야 합니다. 영혼이 피곤하면 모든 게 잘못됩니다.
사도 요한도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도 잘 되고 몸도 강건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영적인 강건함은, 시간을 내서 몸이 쉰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영혼의 치유와 회복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내 삶의 모든 문제들을 예배를 통해서 바로 보게 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를 잘 드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그가 바로 인생성공자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이것은 예배입니다.
우리가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 말씀의 풀밭에 누워 있는 시간은 바로 예배드리는 시간입니다.
쉴만한 물가 – 성령의 임재와 그의 생수가 흐르는 시간은 바로 우리가 예배드리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삶의 속도를 올바르게 맞추기 위해, 예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시간이 예배시간입니다.
내가 너무 빨리 가거나 더디게 가지 않도록,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내 속도를 조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예배의 자리로 초대해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8~29)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무겁게 더 얹어주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해주십니다.
지치셨습니까?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에 있으십니까?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지금 주님께로 마음 문 열고 나오시면 삶의 참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쉬는 법을 주님께서 보여 주실 것입니다. 참 평안을 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육신의 강건함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