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숙소는 우리가 묵었던 곳 중에서 두 번째로 열악했다. 이곳엔 도마뱀도 없는지, 아침에 일어나보니 양쪽 다리에 빼곡히 온통 벌레 물린 흔적이다.
해돋이의 감동마저 없었다면 이번 숙소(바양블락)를 아마도 최악으로 기억했을 것이다.
해돋이만큼은 엊그제 차강소브라가 해넘이에 버금갈 정도의 장관이었다. 이시백 작가는 이런 일출은 처음 본다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몽골에 15번째 왔다는 분이 처음 보는 풍광이라면 나같은 사람에게는 행운의 아침이 아닐 수 없다.




초원에서 마지막 짐을 싸서 숙소를 나서다가 문기둥이 희한하다 싶어 자세히 보니, 세상에! 규화목이었다. 나무가 그대로 굳어 돌이 되었다는, 1억 년을 헤아리는 규화목이 숙소의 문지기로 서 있었다. 천년 된 은행나무로 집을 짰느니 하는 소리는 몽골에선 꺼내지도 말아야 한다.



울란바타르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도로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
덜컹거리는 흙길을 벗어나 이제는 거의 대부분 포장도로다.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지은 지 채 5년이 안 돼 보이는 깔끔한 집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전원주택 수요가 점점 많아지는지 산중턱 곳곳에 시멘트와 모래 야적 그리고 포크레인이 올라 앉아 있다. 주변이 어수선해도 풀을 뜯는 가축떼는 여전하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이 대부분 소떼라는 것. 도시에서는 아마도 소고기의 수요가 많은가보다. 포장도로에서는 자동차의 속력도 올라간다. 로드킬을 당해 하늘로 네 다리를 뻗고 누워있는 소가 자주 눈에 띈다. 사진 보고 오해하지 마시라. 우리 차에 치인 건 아니다.


도로가에 널린 페트병과 유리병과 각종 쓰레기가 점점 더 많아진다. 쓰레기 너머에 어워(Овоо)까지 공존하는 이 다이내믹한 풍경은 마치 지금 몽골이 가는 길을 상징하고 있는 듯했다.

울란바타르의 일정은 쇼핑, 점심, 쇼핑, 박물관, 쇼핑, 공연, 저녁, 쇼핑, 취침의 순이다. 이시백 작가의 말처럼 울란바타르는 몽골보다는 러시아에 가까운 도시이다.
이 도시의 쇼핑 리스트 1번은 단연 캐시미어다. 몽골의 캐시미어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캐시미어를 생산하기 위해 양보다 염소 사육을 늘이게 되었을 정도로 유목민들에게는 부가가치도 높다. 쇼핑 리스트 2번은 딱히 없지만 굳이 고르자면 보드카 정도?

세계 어느 지역을 여행하든지 일정표의 한 칸은 구색 맞추듯 박물관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복드한궁전박물관(Богд хаан ордон музей)에 대한 기대도 애초부터 그리 크지 않았지만, 실제 관람 만족도는 모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내가 인솔했거든 ^^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공연은 투멘 이흐(Түмэн эх)다. 차강소브라가에서 오디오로 들었던 흐미를 실제로 들으며, 한 목에서 두 소리가 나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머링호르(마두금)로 말울음 소리를 재현할 때는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몽골 초원에서 전래되는 노래와 춤이 릴레이로 1시간 동안 이어지는데 전통공연답지(?) 않게 조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공연의 수준이 상당히 높고 입장료도 저렴한 편이다. 가성비가 좋다는 얘기 ^^ 아무 때나 관객을 입장시키는 점은 상당히 아쉽다. 공연이 후반부로 접어들었지만 이따금씩 문이 열리고 지각 관객들의 종종걸음은 계속 이어진다.
울란바타르의 일정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출국 준비에 가깝다. 여권 확인하고 짐 챙기고 돈 세어보고 샤워하고 한잔 하고 잠잔다.
몽골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저문다. 8시 20분 비행기를 타려면 내일은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