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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꽃을 사랑하는 남자
정 숙 인
오수를 즐기는 고양이처럼 한나절을 늘어지다 허기만 더하는 가을날이다. 맥없이 밖으로 나가 아파트 산책로를 걷는다. 그저 땅만 보고 걷는다. 주위에는 온통 가을로 나온 사람들로 북적대도 사람이 그리운 날이다.
땅이래야 흙 한 점 보이지 않는 시멘트 블록을, 백주대낮에 힘없이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라면 그 보다 더 한심하고 측은할까. 누가 볼 새라 나도 모르게 단지 내 공원으로 접어들어 구석진 나무 그늘 벤치에 앉는다. 은사실 햇살에 반 쯤 감겼던 동공이 그제야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 열린다. 쪽빛 하늘이 떨어진 그 끝으로 밥알 같은 미려함이 숨어있다. 다가가 자세히 보니 냉이꽃 이다. 꼭 두 포기가 부둥켜안고 있다. 저무는 이 가을에 가죽 창 못 지 않을 잔디발치로 왼 냉이꽃이랴? 문득 스치는 한 남자가 있어 무릎을 땅에 대고 코끝에 힘을 준다. 나는 아무 향도 느낄 수 없으나 그를 만난 듯 반갑다. 사계절 냉이꽃을 지켜보며 은은한 그 향을 아끼며 사는 남자, 초(超)암(岩) 선배다.
그는 내 고향 충북 음성군 금왕읍에 있는 무극중학교 동문으로 1년 선배이자 함께 수필문학의 길을 가고 있는 동인이기도 하다. 사실 초암이라는 아(雅)호(號)보다는 재경금왕읍민회 이승래 회장으로 더 익숙하고 친숙하다. 그를 만난지가 벌써 2년 반이다. 그동안 회장님이란 존칭 외에는 선배님 소리도 한 번 못 해봤다. 고향 선후배의 정(情)속에 산술이 있을까마는 선배님이 아닌 회장님이란 호칭은 그를 향해 한 발 더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고향 어귀의 장승같았다. 하지만 오늘 내가 반기는 그는 여인의 가슴에 드리운 한 남자며 선배다. 오늘 같이 사람이 그리운 날, 이만한 호사가 또 있겠는가.
만남의 길목, 2년 반이란 세월은 짧다면 짧은 세월이다. 그러나 초암선배가 내게 보여준 세월은 범부의 10년 세월과 맞먹는다. 내가 보는 초암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평범하지 않으면서 평범함의 본질에 겸허히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 그 기쁨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길 즐기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없이 질박하나 가볍지 않고 당당하며 기품이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단면은 한 세기를 담아 낸 바위 같기도 하고 삿갓 쓰고 구두 신은 중처럼 까마득하다. 초암의 수필 ‘포기 먼저 한다’의 작품에서, 가족사랑에 깨가 쏟아질 30대부터 40세에 사장자리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는 단 한 번도 가족과 함께하는 레저여행의 시간을 갖지 않은 위인이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의 곁, 어린자식들의 재롱 즐기는 시간조차를 포기한 남자다.
한 순간이지만 여인 안에 비친 그의 위상은 ‘미련곰탱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그 곰도 내게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우연히 접한 수필집에서 그의 작품 ‘냉이꽃 같은 아내’를 읽고는 조용히 서걱대는 갈대의 울음이 들리는 듯 했다. 사실, 울음이 날 만큼의 감동적인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많은 꽃 중에 장미도, 백합도 모란도 아닌, 들녘에 지천으로 널려 눈에도 들지 않는 냉이꽃이 ‘미련곰탱이’의 가슴에서 숨어 피다니... 냉이를 보자면 ‘강인한 인내심과, 소박한 인심, 구수하고 은은한 향, 더 거슬러 오른다면 조상의 혼과 민족정신까지 헤아려야 할까?’ 아내가 냉이꽃이기 이전에 먼저 초암의 가슴에 핀 냉이꽃을 보게 된다. 내가 그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흠모하는 그의 천성이다.
그를 처음 만나던 날은 늦은 봄, 외대 부근의 일식집에서다. 1년 선배라지만 중학교 때의 기억은 전무하고라도 그가 재경금왕읍민회 회장을 맡기 전까지는 서로 이름도 알지 못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침체 된 재경금왕읍민회의 활성화를 위해 총대를 멘 투사였다. 그는 재경산하에 산악회와 봉사단을 두고자 했는데 나에게 봉사단의 회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의 자리였다. 그를 만나기 전, 급히 습득한 그의 이력서는 화려했다. 전 아이템플 대표이사, 경영학박사, 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경영학 교수, 재경금왕읍민회 회장, 등등... 그의 외모도 그러리라 했다. 그러나 내 상상과는 거리가 먼, 고향 읍사무소 아저씨였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만은 유달리 야릇한 힘을 달고 해바라기 같은 미소로 검고 두둑한 손을 내밀었다.
그의 부탁에 단호 하리라던 나는 어느 순간 흔들리기 시작했다. 1시간 여 그와의 대화에서 내 감성이 주는 직관은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듯 편안하고 반가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필연과 우연의 만남이 시작 되고, 나는 여성으로 주축이 된 봉사단 ‘연리지나눔회’의 회장을 맡으며 그를 ‘연리지나눔회’ 명예회장으로 모셨다. 좀 더 가까이에서 그를 알게 되었고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전업주부에서 갑자기 얻은 회장이라는 직함은 철갑을 쓴 듯 무거웠지만 그가 “아ㅡ정회장!” 하고 부를 때면 잠자던 세포도 다 깨어나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앉은뱅이도 세울 수 있을 것 같은 신비로운 힘이 있었다. 그의 원동력인 명쾌함과 자신감의 보고다.
그는 참 보기 드문 호남이다. 강자 보다는 약자의 편에서는 휴머니스트인가 하면 어떤 경우라도 적을 만들지 않는 인간경영에도 만능이다. 그의 사유는 언제나 원을 그린다. 모가 나지 않는다. 남을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의 사유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사람이다. 대를 위해서는 소를 과감히 버리는 칼을 가졌음에도 동시에, 끝까지 소를 잃지 않는 인격과 넓은 품을 가졌다. 그의 이런 모든 성품은 내가 ‘연리지나눔회’를 위해 도움을 요청 할 때마다 이끌어 주며 내 부족함을 위로해 주던 충언과 그의 생활 모습이었다. 가끔 그의 수필을 읽어 보며 내 삶을 돌아보고 뒤늦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기도 했다.
고작 1년 선배인 그가 나에겐 늘 하늘만큼 높은 선배였다. 그의 인격과 사회활동의 범위가 그랬고 그의 명쾌한 판단력은 어디서든 그를 당당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도 내 앞에서 무너지던 날이 있었다. 지난 봄, 배꽃이 피는 무렵 재경금왕읍민회의 산행행사가 있던 날이다. 80여명 회원들이 불암산 산행을 마치고 태릉 갈비촌으로 내려와 식사와 여흥의 시간을 가졌다. 회장으로써 많은 선후배님들과 동기들이 동참해 주시어 기쁨도 컸겠지만 앵두꽃 만발하고 배꽃 터지는 화사한 봄날도 한 목 했으리라. 그는 보기 드물게 건한 취기가 있어 보였다. 회원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뜨기 시작하고 나도 일어섰다. 마당에 서서 그와 작별인사를 하며 “회장님, 피곤하실 텐데 일찍 들어가세요.”했더니 저-만치 뒤쪽에 앉아 여흥을 즐기고 있는 동기들을 가리키며 “난 또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봐야 해요. 정회장, 난 오늘 개가 되는 거야.”하며 수줍은 듯 해맑게 웃었다.
여자의 감성은 때로 극과 극을 달린다. 하늘같던 그도 개가 되고 싶은 날이 있는 것이다.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숨이 막힐 듯 짜여진 그의 일상과 한 치의 착오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그의 생활 모태를 전후좌우에서 보고 알기에다. 숙명적으로 지고 가는 그 많은 짐을 이날만큼은 친구들 앞에 내려놓고 그들과 맘껏 뒹굴고 싶은 게다. 한없이 애처롭기도 하고 함께 엉켜 놀아 주고도 싶은 연민의 정이 일렁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앞에서 항상 부동자세 일 수밖에 없던 내 감성이 봄바람 속을 자유롭게 날며 허공에 대고 한 마디 던졌다. “선배! 오늘 만큼은 그리 해 보시오. 군자도 말에서 떨어져 봐야 다리에 힘을 기르지요. 사람 냄새가 풀-나네요.”
때로 건방지고 천방지축 유치할 만큼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다. 심지어는 울컥 울음을 올릴 때가 있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해 떨어지는 순수, 창조주가 빚은 원형에 가까운 숨결을 느꼈을 때다. 농군의 자식을 빼면 지금 그가 가진 모든 것은 분명 상류층의 계보인데 그의 모습 그의 행동거지가 남다르게 순수해 보이는 그 이유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의 남다름은 민족애에서 종지부를 찍는다. 섣불리 그 흔한 애국심이라는 포장을 씌우고 싶진 않다. 얕은 여자의 심지로 일축하자면, 단군의 뿌리를 존중하며 내 것을 내 힘으로 지키고자 하는 자긍심과 누군가는 민족선열들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 나의 이런 생각은 타국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의 순수한 민족애를 보고 왔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그가 중국 연변 조선문화발전추진회에서 주최하는 글짓기대회를 후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글짓기 후원 외에 오래전부터 우리 조선족들을 위해 그가 도와주고 실천해온 일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감동은 늘 낮은 곳, 들어나지 않은 곳에서 더 크다. 지난 8월 그와 함께 5박6일 중국 여행을 하게 되면서 그간 내가 알지 못 했던 그의 새로운 면을 보며 참 행복해 했다. 내 가까이에 저렇게 훌륭한 고향선배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뿌듯했다. 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닌, 우리 조선족들의 입을 통해, 또는 그가 심혈을 쏟아 다시 세운 용정에 있는 일송정과 푸른 솔, 그 아래 조선족들이 세워준 감사의 기념비 비문 속에서 ‘이승래’란 세 글자를 보며, 그가 씨를 뿌려 피워 놓은 연변부터 백두산 천지를 향해 피어 있는 별바라기꽃이, 8월의 햇볕보다 더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중국의 이념체계가 개방되기 이 전부터 그가 중국에 흩어진 우리 민족을 위해 쏟아낸 열정과 사랑을 말로 대신하는 찬사가 오히려 부끄럽다.
그는 아직도 꿈 많은 청년 같다. 15년 전부터 수십 회 다녀간 곳이지만 5박6일의 여정에서 보았던 그의 눈빛은 늘 새로운 이상을 향해 도전하는 개척자 같았다. 두만강 발원지와 두만강을 따라 이어지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를 달리며 곳곳마다 세세히 설명을 해 주던 그는, 이미 여행객이 아닌 5천년 역사 속의 한 사람이었다. 바로 내 옆에 앉아 있는 자상한 선배건만 홀로 그 넓은 중국 벌판을 달리고 있구나 하는 안쓰러움이 5시간 내내 국경지대를 따라 달렸다. 어쩌면 그는 지금도 또 다른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거친 광야를 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와 내가 서있는 정점은 멀리 아득하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 숨어 있는 냉이꽃을 나는 언제고 볼 수 있다. 내가 오늘 반기는 한 남자는 전, 아이템플 대표이사도, 교수도, 회장님도 아니다. 그의 민족정신도 동포애도 아니다. 일상이 지루하고 내 안이 비어 있을 때, 내 자아의 촉수를 높이는 숨결이 되는 선배일 뿐. 그 뿐이다. 갈수록 각박해져 바스락 소리 나는 하루의 면면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허리를 굽혀,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이 순수의 행복은 초암선배의 선물이다. 오늘 같이 늘어지는 날은 그의 목소리가 그립다.
“아!-정 회장...!”
“네, 회장님..”
늘어졌던 내 세포가 순식간에 화들짝 깨어날 터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