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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詩, poetry]
문학의 한 부문. 시는 운문으로 씌어진 것이라는 것이 통념이며, 독일어에서 시는 <응축하다(dichten)>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시는 응축된 감정표현, 간단히 말하면 고양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S.T. 콜리지는 시와 산문의 구별을 운(韻)의 유무에 따르지 않고, <산문은 적당한 말의 훌륭한 구성이며, 시는 가장 적당한 말의 가장 훌륭한 구성이다>라고 하였다. 특히 산문시라는 형식이 성립한 19세기 중반 이후, 시의 정의는 운율과 같은 외면적인 것이 아니고 한층 내면적인 요소에 의했다. 따라서 콜리지도 <시작품은 진실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적 작품과 달리 미를 직접 목적으로 한다>고 하였다. 즉 일반 과학 논문이나 보도 문장은 단순히 사실의 정확한 전달을 목적으로 씌어지므로 일단 전달이 끝나면 필요없게 되지만, 시 작품은 전달 내용보다도 표현 자체가 목적이다. P. 발레리가 산문을 보행(步行)에 비유하고, 시를 무용에 비유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물론 시에서도 내용은 중요하며 삶에 대한 인식도 깊게 관계되어 있다. 지식이 철학·역사·천문학과 같이 나누어져 있지 않았던 시대의 시는 종합적 인식의 양식이었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지식이 세분화된 오늘날에도 P.B. 셸리가 말했듯이 시는 지식의 중심이며, 시는 모든 학문을 내포하고 모든 학문은 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과학은 부분적인 인식을 주지만 시는 전체적 인식을 주기 때문이다. 시는 음악·회화·조각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전체성에 대하여 인식을 전달하는 감정표현의 한 양식이며, 말을 그 표현의 고유 수단으로 삼고 있다. 언어의 기능면에서 보면 시는 지시작용보다도 암시작용이 본질이므로 주로 음과 비유적 표현에 의존하고 있다. W.H. 페이터가 <모든 예술의 상태는 음악에 가깝다>고 한 것과 같이 시에서도 음악의 역할은 크다. 외면적인 운율을 쓰면 운문시가 되고 내재적인 음조를 쓰면 산문시 또는 자유시가 된다. 한편 산문시나 자유시운동이 일어난 뒤부터 시의 중심은 음악보다도 이미지로 옮겨졌으나 음악성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시의 비유적 표현은 고양된 말의 특징이며 어떤 시도 주지(主旨)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비유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실은 습관이라는 잠 속에 묻혀 있으므로 끊임없는 새로운 비유에 의해 일깨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W. 워즈워스는 이것을 <일상의 사물에 상상의 빛을 부어 신선한 의식을 회복한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유란 2개의 서로 닮지 않은 사물 사이에서 비슷함을 발견하는 것인데, 그 일반적인 방법에는 직유와 은유가 있다. 직유란 R. 번스가 <나의 연인은 붉은 장미와 같다>고 한 것과 같이 비유의 관계가 명시되어 있는 것을 말하며, 은유는 R.M. 릴케가 장미를 <순수한 모순이여>라고 표현한 것같이 암시하고 있는 어떤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일괄적인 구별이어서 형식상으로는 <…와 같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어도 T.S. 엘리엇의 <수술대 위의 마취당한 환자와 같이 황혼이 온 하늘에 퍼질 때>와 같은 비유는 직유라기보다 은유에 가깝다. 이와 같은 불명료한 직유는 길게 늘인 은유에 지나지 않는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명료한 비유, 즉 직유가 널리 쓰였으나, 낭만주의 시대에는 불명료한 비유가 즐겨 쓰여졌다. W. 셰익스피어는 곡예사처럼 시에서 대담한 비유를 구사한 시인이다. 시는 일률적으로 미를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그것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자연적인 것을 되도록 그대로 묘사하는 낭만파시는 조화된 미를 목적으로 하는 <자연파> 시이며, 상징적 수법으로 형이상학적·신비적 내용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상징파 시 및 초현실파 시는 <초자연파> 시에 속한다. 초자연파 시는 부조화의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미를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근대시의 미는 그로테스크한 미이며, 이것에 대하여 E.A. 포는 <워즈워스와 같이 아름다운 자연을 단지 아름답게 모사(模寫)하는 것만으로는 시가 되지 않는다>라고 대변하였다. C.P. 보들레르도 <문학의 2대 요소는 아이러니와 초자연이다>라고 하였다. 즉 동떨어진 사물을 비유한 다음 연결하는 것이 아이러니가 되어 초자연을 낳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낭만주의는 항상 초자연이나 괴기를 추구하여 <부조화>의 미로 기울었으며 고전주의는 자연을 중요시하여 조화의 미로 복귀하는 경향이 있다.
시의 종류는 크게 구별하면 서정시(lyric)·서사시(epic)·극시(dramatic poetry)로 나누어진다. 서정시는 개인을 주체로 하여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매우 주관적이며 짧다. 서사시는 민족을 주체로 하고 그 공동의 감정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야기 형태를 취한 것으로 객관적이며 길다. 극시는 복수의 화자를 가지는 표현 형식으로 주로 운문으로 씌어진 극을 뜻하는데, 셰익스피어나 J.W. 괴테 이후 거의 쇠퇴하여 오늘날에는 P.L.C.M. 클로델·엘리엇 등이 쓴 몇몇 작품이 전할 뿐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씌어지고 있는 시는 거의가 서정시에 속하며, 내용에 따라 연애서정시·애가(哀歌)·송가(頌歌)·풍자시·목가(牧歌) 등으로 나누어진다. 장르의 뜻도 시대에 따라 변천되었는데, 오늘날의 통념으로 애가는 추도시이고 송가는 장중한 주제에 대한 명상시이며 목가는 전원생활을 찬미한 시이다. 풍자시에는 인물을 풍자, 사회의 모순을 풍자한 것을 비롯하여 벌레스크시·패러디시 등이 포함된다. 이른바 골계시(滑稽詩)·넌센스시·경시(輕詩, light verse)는 풍자시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서간체의 시나 경구(警句)·명시(銘詩) 등이 넓은 뜻으로 서정시에 포함된다.
오늘날 시의 형태는 정형시·자유시·산문시로 나누어진다. 포가 시를 <미의 운율적 창조>라고 정의했을 때에는 일정한 각운구성(脚韻構成)을 갖추고 몇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정형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규칙적인 운율은 시의 격조를 높이거나 뜻을 효과있게 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정형시가 장시(長詩)나 극(劇)에서는 단조로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일정한 율격(律格;弱强五步格)에 바탕을 두면서 각운을 불규칙하게 쓰는 무운시(無韻詩)의 형식이 영시(英詩)에서 생겼다. 셰익스피어의 극이나 J. 밀턴의 《실락원》은 이 무운시를 구사한 것이다. 한편 다시 산문이 발달함에 따라 종래의 운율적 요소를 전혀 지니지 않은 산문형식으로 시적 효과를 얻으려는 산문시가 나오게 되었다. 자유시도 역시 운율로부터는 자유로우나 대화체의 리듬을 바탕으로 장단이 불규칙한 시행(詩行)을 갖고 있다. 20세기 초에 <운문은 죽은 기법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오늘날 운문은 아주 쇠퇴해버린 것이 아니고 자유시·산문시와 나란히 쓰여지고 있다.
시는 발생적으로 볼 때 주술(呪術)의 한 종류였다. 그리스어에서는 시를 <가다> 또는 <만들다>라는 뜻의 <포이에시스(poi
sis)>로 나타내는데, 이것은 시인이 원시사회에서 주문을 외워 병을 치료하거나 곡물을 잘 자라게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와 같은 예는 J.G. 프레이저의 《황금가지(1890∼1915)》에 수록된 소아시아나 이집트의 풍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 시는 넓은 뜻의 제례에 결부되어 발달해 왔는데, 이집트에서 오시리스신을 숭상하는 노래가 만들어졌듯이 고대 그리스에서도 아폴론신이나 디오니소스신을 기리는 노래가 만들어졌다. 이들 노래에서 파생된 서정시에는 합창과 독창의 두 종류가 있다. 합창은 공통의 흥미나 숭배의 목표를 대상으로 한 공동의 환상을 노래한 것이고, 독창은 독창자 자신의 감정 표현에 중점을 둔 것이다. 합창용의 서정시는 주로 도리아파 그리스인 사이에서 발달하였는데, BC 7세기의 탈레타스는 아폴론에게 바치는 <찬가>를 지었다. 피타고라스도 아폴론이나 제우스에게 바치는 <송가>를 비롯하여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합창무용가>나 올림피아경기를 찬미한 <경기승리가> 등을 만들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송가의 기초가 되었다. 독창용 서정시는 주로 아이올리스파 그리스인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시인 사포는 정열적인 사랑의 노래를 썼다. 이 서정시들은 모두 리라 등의 악기 반주에 맞추어 낭송되었는데, 이로 보아 서정시와 음악이 본질적으로 결부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세의 음유시인이나 셰익스피어극의 노래들도 모두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였다. 근대의 서정시도 음악성을 버린 것이 아니며, 포가 시를 <미의 운율적 창조>라고 말했듯이 운문형식에 깊이 의존하여 소네트·발라드·대구(對句) 등의 정형시를 낳았다. 시는 원래 대화체와 달리 입에서 나올 때부터 규칙적인 리듬의 반복으로 쾌감을 추구하여 왔는데, 이로 보아 정형에 대한 지향은 발생 시초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정형도 시대의 문화와 함께 다양하게 변천되어 왔다. 그리스·로마의 시는 장단의 음량을 각운으로 하는 음량률(音量律)에 의해 씌어져 왔으나, 강세(强勢)가 있는 영어나 독일어에서는 강세율에 의해 두운시(頭韻詩)가 발달되어 왔다. 영시는 G. 초서의 시대에 프랑스의 음절수율(音節數律)과 각운 형식을 도입하여 강세율과 음절수율을 함께 한 운문구성으로 이행하였다. 이로써 오늘날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정형이 생겨났다. 그 결과 페트라르카식 소네트, 셰익스피어식 소네트, 스펜서연(9행연), 초서연(7행연) 및 그 밖에 복잡한 송가 등이 서정시의 음악적인 다양성에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프랑스 고전주의 시의 12음절수율 규칙성을 거부한 보들레르는 리듬이나 운율 없이도 마음의 서정적 움직임, 몽상의 파동, 의식의 비약을 표현하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한 산문시를 시도하였다. 또한 이 시기는 운문이 아니면 시가 아니라고 믿었던 사람들도 시의 음악성을 운율에서 분리시켜 재고찰하던 시기였다. 강세에 의한 리듬이 있는 영어에서는 프랑스시만큼 산문시의 시도가 많지 않았으나, 메트로놈과 같은 전통적인 운율로부터 시의 음악성을 해방하려는 이미지즘의 운동이 제1차세계대전을 전후로 일어났다. 이들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자유 시인들이 쓴 시에서 보이는 엄격한 전통적 운율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것을 추구하였다. 현대 시인은 이미지의 조형성(造型性)에만 치우쳐 시의 음악성을 무시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현대시의 빈곤이라는 비난을 자주 듣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스트들도 <메트로놈에 의하지 않고 음악의 악구(樂句)에 따라 시를 쓴다>고 말하고 있고, 이미지의 사상성을 방해하지 않는 새로운 음악성을 추구하고 있다. 본래 시의 음악은 말이 지니는 의미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말의 표면적인 음악성보다 이미지스트들과 같이 말에 내재하는 음악성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엘리엇은 <음절이나 리듬에 대한 감각은, 단순히 사상이나 감정이라는 의식적인 면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침투하여, 먼 과거에 잊혀진 가장 원시적인 것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그 근원으로 돌아가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돌아오는 기능을 가지는 것이며, 그것은 뜻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포는 《시의 원리》에서 서사시를 부정하며 <장시는 말의 모순이다> <서정시 외에 시는 없다>고 단정하였으나, 이는 순수시의 입장에서 말한 것 뿐이며 서사시가 역사적으로 담당해 온 역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포는 형해화(形骸化)한 서사시의 효용을 부정하였으나, 민족이 대두되었던 시대의 사람들은 서정시보다 서사시 쪽에서 공동의 동경·분노·슬픔·운명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영웅시대가 먼 과거로 되어버렸던 중세 이후 서사시의 제재는 초자연적 영웅에서 여러 사람의 정신적 규범이 되는 인물로 옮겨졌다. 예를 들면 A.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주인공 단테는 시대정신의 반향판(反響板) 같은 존재였다. 그와 같은 인물의 이야기는 운문에 의하지 않고 산문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므로 오늘날에는 서사시의 역할을 거의 소설에 전가해 버렸다. 또한 서사시가 지닌 전체성이나 신화적 수법도 오늘날에는 소설의 성질이 되었다. 이것은 극시가 쇠퇴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대하여 <인간행위의 전체성에 관계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리스 비극은 도시국가가 발달했을 때 번영하여 인간존재에 대한 날카로운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도시국가의 쇠퇴와 함께 소멸하였다. 비극은 그 뒤 르네상스기에도 셰익스피어·J.B. 라신 등에 의해 씌어졌으나, 다시 시대와 함께 쇠퇴하였다. 특히 18세기에는 산문이 융성하여 시는 극에서 후퇴하게 되었고, 괴테·J.C.F. 실러 이후에는 H. 입센·A.P. 체호프의 산문극이 근대극의 주류를 이루었다. 서정시도 19세기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급격하게 과학에 밀려 상징파 시인들처럼 극단적인 개인환상의 양상을 보였다. 이 무렵 시를 순수한 마술로 환원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운동은 S. 말라르메에서 W.B. 예이츠까지 이어졌다. 현대 시인인 W. 스티븐스가 시적 상상력을 <외부의 폭력에 대한 내부(정신)의 저항>이라고 했듯이 시는 앞으로도 외부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귀중한 개인 환상으로서 계속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