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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관리 요령 스크랩 분재예술과 분재미학
솔마을 추천 0 조회 48 12.02.08 09:05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Art & Aesthetics of Bonsai

盆栽 藝術과 盆栽 美學

- 그 뜻깊은 담론을 위한 용감한 시도-

 

 

 

 

 

 

 

 

 

 

 

 

 

 

 

2006 1 14

녹우회 카페 스터디 그룹 소수집단

 

 

 

목차

 

발표자료

1.     학습목표

2.     예술, 예도, 양생의 도 정관영

3.     분재의 묵계 다시보기 정관영

4.     분재의 예술성 오영택

5.     분재예술과 분재미학 오영택

6.     조화 (Harmony) – 안병철

 

참고자료 

1.     크기축소의 원리와 미적 특질 정관영

2.     황금분할에 관하여

 

학습목표

1. 분재의 예술성과 미학적 요소에 대한 탐구는 왜 필요한가? 

2. 예술의 개념과 예술의 원리, 미학의 기초에 대한 이해

3. 예술의 개념, 예술의 원리, 미학의 제 요소를

분재예술, 분재미학으로의 접목

4. 보편적인 분재예술과 분재미학의 토대 구축

5. 한국적인 분재예술과 분재미학의 요소

6. 분재의 예술성과 분재의 미학적 가치를 고양시키는 방법에 대한 탐구

7. 분재입문, 초보 교육에 있어서 분재의 예술성과 미학적 요소에

대한 교육과정의 개발

 

 

 

 

 

 

 

 

 

 

 

<발표자료 1>

예술(藝術) : 예도(藝道) : 양생(養生)의 도()

 

정리 : 정관영

 

예술

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의해서 정신의 충실체험을 추구하는 문화활동

문학·음악·조형미술·연극·무용·영화 등의 총칭이다

예술의 장르를 열거하고 분류하는 생각의 일례로서, 프랑스의 미학자 E. 수리오의 도표를 보면, 원을 7분할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부채꼴은 감각적 소재의 특수성을 나타내고, 이에 대응하는 예술 장르가 외원(재현적 예술)과 내원(비재현적 예술) 2층으로 나뉘어 표시되어 있다.

 

변동하는 예술의 개념

예술현상 자체는 동양·서양을 불문하고 고대부터 존재해 왔는데, 문학·음악·미술 등을 포괄하여 하나의 영역으로 보는 생각, 즉 유개념(類槪念)으로서의 예술은 거의 18세기 중엽의 서유럽에서 성립된 것이다. 이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예술은 먼저 <순수예술>, 즉 영어로는 fine arts, 프랑스어로는 beaux-arts, 독일어로는 schöne Künste로 표현되었다.

<순수예술>는 예술 일반을 가리키며 조형미술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藝術>이라는 한자어는 《후한서(後漢書)》에서도 쓰인 오래된 말로서 학문과

기예(技藝)를 가리켰다. 즉 오늘날 예술이라고 생각되고 있는 것은 그 일부분에 불과하였다. 그 점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18세기 말에는 단적으로 art라 하여 예술을 가리키게 되지만, art는 원래 훨씬 넓은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art는 라틴어의 아르스(ars), 또 그리스어의 테크네(technē)에서 유래하며 이러한 말들이 학문과 기술의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한자어의 <예술>과 매우 비슷하다.

 

이 기술적 학문 또는 학문적 기술의 넓은 영역에서 <예술>이 나타내는 특수성을 근대 서양에서 미()로 인정한 것은 예술의 본질을 미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인데, 이러한 사상도 결코 예로부터 내려온 것은 아니다.

 

  고대의 그리스인은 <미메시스(mimēsis)의 테크네>의 개념에 의해서 거의 예술에 대응하는 영역을 정의(定義)하였다. 미메시스란 현실 사상(事象)의 모방 또는 재현을 말한다(예를 들면 초상화). 이것은 물건을 만드는 일의 양태(樣態)에 의해서 예술을 규정하는 생각이며, 이것에 대하여 근대적인 <순수예술>은 만들어진 작품의 효과면에서 예술의 본질을 보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술 개념 자체가 역사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의미나 결과를 하나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사냥감을 찾아서 행해진 원시시대의 주술적 예술은 현대의 전위예술과는 거리가 멀다. 가까운 과거에도 사진이나 영화가 예술이냐 아니냐는 논쟁거리였으며, 현재는 컴퓨터아트가 그 논쟁거리의 예가 된다. 새로운 가능성의 개척과 더불어 예술의 영역은 변화하고, 동시에 예술의 개념도 바뀌어 간다. 역사적으로 변동한다는 것은, 어느 시점을 두고 보아도 예술의 영역이, 근접하는 학문과 기술의 영역과의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 것

  변동성이나 모호함 가운데서도 예술을 예술답게 하고 있는 것으로 기()·지()·작품의 3가지를 들 수 있다. 이것은 테크네-아르스-아트의 주요 어의(語義)와 대응하는데, 3가지의 종합이 예술이다. 예술작품은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서도 일용품이나 도구·기계 등과는 달리 그 목적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 가능한 한 충실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예술작품의 사명이다. 따라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技;솜씨) 또한 어느 일정한 목적을 만족시키면 된다는 식의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높은 곳을 지향하는 모험정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 예술에 있어서의 지()도 학문적인 지와 같이 개념적 언어로써 설명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고 실제의 창작에 의해서 터득되는 <직감력>이나 <요령> 같은 것, 혹은 <그 작품의 감상에 의해서만 보이는 경지>와 같은 것이다. 전자는 기와 지가 일체화된 능력이고, 후자는 작품이 감상자에 대하여 펼치는 개성적인 세계이다. 이 작품세계는 말로써 파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감상자는 그것을 말로써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단순한 감상(感想)에서 고도의 평론(評論)에 이르는 활동이 여기에서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보아도 여전히 이야기를 못다한 느낌이 걸작 속에는 있다. 따라서 특정한 목적에 갇혀 있지 않은 작품은, 작자나 감상자에게 긴장의 결정(結晶)이며,

 

다양한 의미를 샘솟게 하는 독창적 세계이다. 이 독창적인 세계는 작자의 개성을 각인(刻印)한 <작자의 세계>이지만, 작자의 의도를 초월할 가능성도 품고 있다는 의미에서 작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세계이다. 작자의 의도를 초월한 의미를 캐내는 것은 감상자의 해석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의 세계는 가능한 한 높은 곳을 지향하는 예술가의 모험정신에 의해서 창출되고, 최대한의 의미충실을 구하는 감상자의 본성적인 지향성(志向性)에 의해서 구현된다. 이렇게 하여 보여지는 작품 세계의 의미 충실이 곧 미()이다. 예술미는 진()·선()·성() 등의 온갖 가치를 배제하지 않고 그러한 표현 위에서 달성되는 작품 존재의 질()이며,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만이 미는 예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의 예술 개념의 중심을 차지해 온 것은 작품이며, 단순히 예술이라고 하면 예술작품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대의 전위(前衛) 가운데는 작품 개념을 공격하는 경향도 강하다. 그것은 작품을 정적(靜的)인 대상으로 생각하였을 때의 일이며, 이러한 비판의 밑바닥에는 생생한 정신의 현동성(現動性)을 중요시하는 현대사상 공통의 태도가 있다. 이러한 사조(思潮)작품 개념을 파괴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해석의 가능성이 내포된 작품 세계의 속 깊이를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예술2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

 

  원래는 기술과 같은 의미를 지닌 어휘로서, 어떤 물건을 제작하는 기술능력을 가리켰다.

예술이라는 한자에서 ‘예()에는 본디 ‘심는다(種·樹)’는 뜻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기능(機能)’ ‘기술(技術)을 의미하며 고대 동양에서 사대부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였다. 육예(六藝:禮·樂·射·御·書·數)에서의 ‘예’는 인간적 결실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기초 교양의 씨를 뿌리고 인격의 꽃을 피우는 수단으로 여겼던 만큼 거기에는 인격도야의 의의도 있다.

그리고 ‘술()’은 본디 ‘나라 안의 길[邑中道]’을 의미하며, 이 ‘길[道·途]’은 어떤 곤란한 과제를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실행방도(實行方途)로서 역시 ‘기술’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뜻을 지닌 ‘예술’이라는 말은 고대부터 동양에 존재하였으며, 후한서(後漢書) <안제기(安帝紀)>에 이미 ‘백가예술(百家藝術)’이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한편 예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ē), 라틴어 아르스(ars), 영어 아트(art), 독일어 쿤스트(Kunst), 프랑스어 아르(art) 등도 일반적으로 일정한 과제를 해결해낼 수 있는 숙련된 능력 또는 활동으로서의 ‘기술’을 의미하였던 말로서, 오늘날 미적(美的) 의미에서의 예술이라는 뜻과 함께 ‘수공(手工)’ 또는 ‘효용적 기술’의 의미를 포괄한 말이었다. 이러한 기술로서의 예술의 의미가 예술활동의 특수성 때문에 미적 의미로 한정되어 기술일반과 예술을 구별해서 ‘미적 기술(fine art)’이라는 뜻을 지니게 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예술은 주체적인 개물(個物)을 통하여 보편적인 표현을 하고자 하는 기술인 동시에 지적(知的) 활동이다. 예술가는 보편적인 것을 직관(直觀)하여 그것을 종이·그림물감·돌·소리·기호 따위 물질적 재료에 의하여 표현하고, 이것을 관상자(觀賞者)에게 직관시키고자 한다. 예술작품으로부터 관상자가 향수(享受)하는 것은 단순히 관능적 쾌감에서 그치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작품을 통해서 ()를 추창조(追創造)하는 과정이다. 개성적인 가운데도 보편성이 나타난 예술작품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까닭에서이다.

  학문적 인식은 원래 일반적인 것을 대상으로 삼고 있으므로 개성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예술은 개성이 그 본질적 요소를 이룸으로써 극히 개성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표현을 실현한 것이 뛰어난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학문이 현실적인 사실을 통하여 진리를 파악하려는 데 반하여 예술작품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독립된 세계를 형성하고 현실세계에서 어떤 의미의 한계적 상황을 구체화시킨다.

 

예도(藝道)

 

기원 :

육예-중국 주대(周代)에 행해지던 교육과목

()·악()·사()·어()·서()·수() 6종류의 기술이다. 예는 예용(禮容), 악은 음악, 사는 궁술(弓術), ()는 마술(馬術), 서는 서도(書道), 수는 수학(數學)이다. 육덕(六德:知·仁·聖·義·忠·和), 육행(六行:孝·友·睦·婣·任·恤)과 합쳐 경삼물(卿三物)이라고 하는데 경대부(卿大夫)가 인물을 선발할 때 표준으로 삼았으며, 덕행에 뛰어난 사람을 현자(賢者)라고 하는 데 대해 이것에 뛰어난 사람을 능자(能者)라고 했다. 기술이기는 하지만 예로써 중()을 가르치고 악으로써 화()를 가르치듯 덕행에도 관계를 가지고 있다. 육예는 또한 육경(六經)을 가리키기도 한다.

‘예’는 인간적 결실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기초 교양의 씨를 뿌리고 인격의 꽃을 피우는 수단으로 여겼던 만큼 거기에는 인격도야의 의의도 있다.

 

예도의 현대적 의미(일본)

-예능의 도, 기예의 도

-예능이 추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나 경지

-예능의 수행 과정에 지키고 익혀야 하는 특수한 육체적 정신적 법도

-예능이란

①훌륭한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각종의 재예, 기예. 예악사어서수, 문학예술, 가무음곡, 유예(遊藝)

②꽃꽂이 차도, 가무 음곡 등의 예사(藝事) ③영화, 연극 가요 음악 무용 민속예능 등 대중연예의 총칭

 

양생(養生)의 도()

 

  양화소록 자서

정통(正統) 기사(己巳) 중추에 나는 이부랑(吏部郞)으로 있다가 승급되어 부지돈령(副知敦寧)을 제수받았다. 돈령은 한직이라 정사를 다스리는 소임이 아니므로 날마다 조회에 참여만 하고 나와서는 어버이를 봉양하는 여가에 다른 일은 모두 제쳐놓고 꽃가꾸기를 일삼았다. 친구들이 간혹 색다른 화초를 얻으면 반드시 나에게 분양하여 주었으므로 나는 화초를 제법 골고루 갖추게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살펴 보면 화초 하나하나가 성질이 각각 달라서 습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건조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찬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따스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어, 가꾸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쬘 때 한결같이 옛법을 따랐고 옛법에 없는 것은 견문을 살려서 하였다. 날씨가 추워져서 얼음이 얼면 추위에 약한 화초는 토굴 속에 넣어 동상을 방지했다. 이런 뒤에야 화초는 하나하나가 잎이 탐스럽고 꽃도 활짝 펴서 제 참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화초의 천성을 저마다 잘 알아서 거기 맞추었기 때문이요 처음부터 지혜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 화초는 한낱 식물이니 지각도 없고 운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양하는 이치와 거두어 들이는 법을 모르면 안 된다. 건습과 한난을 알맞게 맞추지 못하고 그 천성을 어기면 반드시 시들어 죽을 것이니 어찌 싱싱하게 피어난 참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랴? 하찮은 식물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랴! 어찌 그 마음을 애타게 하고 그 몸을 괴롭혀 천성을 어기고 해칠 수 있겠는가? 내 이제야 양생(養生)하는 법을 알았다. 이로 미루어 이치를 넓혀 간다면 무엇을 하든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내 이제 보고들은 바에 따라 화초의 성품과 재배하는 법을 기록해서 <청천양화소록>이라 이름하였다. 이는 산중에 묻혀 소일하는 일거리를 삼음이요, 한편으로는 이를 즐기는 사람들과 취미를 함께 하고자 함이다.

모란이나 작약과 같이 노지(露地)에다 기르는 꽃은 분에 담아 기르는 화초와 그 재배 방법이 각각 다르다. 또 진귀한 고급 화초는 모름지기 구양수(歐陽修), 유공부(劉貢父), 왕관(王觀) <화보(花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내가 구태여 말하지 않겠다.

천지의 기운이 서로 어리고 서려서 만물이 화생(化生)하니 만물은 양육이 있어야 살고 양육을 잃으면 병들어 죽는다. 이는 오직 성인이 만물을 재성(栽成)하고 보상(補相)하는 직분을 다할 뿐이요, 천지의 힘만으로도 화생의 공을 다하지 못하며, 조물주의 힘만으로도 그 능력을 다하지 못함과 같다. 큰덕을 갖춘 선비기 있어 구오(九五)② 의 때를 만나, 지니고 있는 포부를 펴 나갈 수 있어 천하 국가가 다 나의 품 안에 들어와서 마침내 하늘과 땅이 제자리에 위치하고 만물이 저절로 발육하게 될 것이니, 그 거룩한 공화(功化)의 극치를 어찌 다 말로 형용할 것인가?

그러나 불행히도 때를 얻지 못하면 부질없이 이상만을 가슴에 품고 있을 뿐 세상에 펴지 못하고, 교화가 한 집안에서만 그칠 뿐 널리 펴 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대혜(大惠)를 혼자만 간직하고 펴 볼 수 없을 때 사람들은 흔히 하잘것 없고 작은 일에다가 전체 대용(代用 )의 묘법을 시험해 보기도 하니, 이는 곧 선비로서 크게 불행한 노릇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작은 일로 미루어 큰 일을 시험해 봄이니 이 또한 해볼 만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옛날 동릉(東陵)③이 오이 가꾸기를 좋아했고, 탁타④가 나무 심기를 잘했던 것은 그들이 다만 오이나 나무의 성장만을 바랐던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생장의 이치를 자세히 궁리하는 것으로써 낙을 삼았음에 있다. 우리 선형(先兄) 인재(仁齋)⑤선생은 재주와 덕을 온전히 갖추신 분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큰 인물이라” 하여 크게 기대했었는데, 끝내 채 펴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선생이 일찌기 청천양화소록(菁川養花小錄)을 지어 평생의 나라일을 다스리고 교화를 협찬할 뜻이 은연히 담겨 있으니, 실로 천지조화(天地造化)의 미묘한 힘과 이치를 마음으로 체득한 사람이 아니면 능히 할 수 없는 일이다.

! 꽃은 한낱 식물이니 지식과 언어만으로는 느끼지도 못하고 통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굽고 펴고 바로잡히고 꺽어지고 무성함이 다 나에게 달려 있고, 그것들이 어김없이 잘 자라는 것은 그 성질에 따라 천성을 온전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만일 인재선생으로 하여금 오래 살게 하여 꽃가꾸는 솜씨로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더라면 그 사랑과 은혜와 이로움이 널리 인민에게 미쳤을 것이다. 어찌 다만 꽃가꾸기의 조그만 일에 가탁하여 신기한 조화의 오묘한 운용을 궁리케 하였으랴?

공이 세상을 떠나신 지 아홉 해 계사년 봄에 그의 옛 집을 찾았더니 전원은 온통 묵어 버렸고, 꽃나무도 모두 부러지고 없어졌다. 한참 동안 배회하며 여기저기 둘러보는 동안에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누를 길이 없었다. 소록(小錄)과 유고를 찾아 세고(世槁)의 끝에 붙이니 이는 후세사람으로 하여금 공의 덕을 아깝게 생각하여 느끼는 바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용집(龍集) 갑오 맹춘상한에 사제(舍弟) 진산 강희맹 경순(景醇)⑥은 삼가 쓰다.

 

① 이글은 양화소록에 포함된 글이 아니며 진산세고 권4의 양화소록앞에 수록된 것임.

② 구()는 주역(周易)에서 양()이고 오()는 괘() 가운데 효()의 위치로서 왕위의 상이다. 즉 정권을 잡아서 무엇이든 자기 소신껏 할 수 있음을 말한다.

③ 중국 진()나라에 동릉후(東陵侯)였던 소평(召平)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진나라가 멸망한 후 평민이 되었다. 가난했으므로 오이를 심었는데 매우 달아서 사람들이 동릉과(東陵瓜) 또는 청문과(靑門瓜)라 불렀다.

④ 탁타는 낙타를 지칭하며 곽탁타는 곱사병을 앓아 낙타처럼 등이 굽었으며 나무를 잘가꾸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가 옮겨 심은 나무는 모두 살아나고 무성히 자라 많은 열매가 열렸다고 한다.

⑤ 강희안의 호

⑥ 강희맹의 자() 이며 강희안의 아우임

 

2006. 1. 13

 

 

 

 

 

 

 

 

 

 

 

 

 

 

 

 

<발표자료2>

분재의 묵계() 다시 보기

 

: 정관영

 

  모든 예술은 그것이 예술인 한, 환영(幻影;illusion)을 만들어낸다. 사실상 물리적으로는 물감의 덧칠 덩어리에 불과한 미술품에서 사물과 흡사한 형상을 보게 되고, 또 사물 자체를  넘어 작자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 사물에 대한 해석된 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환영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각 예술은 자신의 갈래에 특유한 묵계(;convention)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미술은 평면 공간에 ‘앞과 뒤’라는 거리감을 부여하기 위해 ‘원근법(遠近法)’이라는 묵계를 만들었고, 연극은 배우를 등장인물과 동일시하고 무대장치로 만들어진 오늘의 무대공간을 연극 속의 공간으로 생각하기로 약속하고 있다. 그래서 햄릿을 공연하면 대학로의 어느 연극무대는 중세 덴마크의 크론보리성이 된다.

 

  이 묵계는 허위인가? 허위이다. 그러나 어느 예술도 자신이 바탕한 이 묵계가 가짜라 하여 사기(詐欺)라는 대접을 받지는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아리스토텔레스 당대에서 ‘시()’란 오늘날의 문학 전반을 가리키는 것이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상(以上)에서 명백한 것은 시인의 임무는 실제로 일어난 것을 말하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 곧 개연성과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것을 말하는 점에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점은 역사가는 실제로 일어난 것을 말하고 시인은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을 말하는 점에 있다. 따라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많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문학의 특징인 ‘허구(虛構)’를 예술 일반의 차원에서 말하면 환영(illusion)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모든 예술에 통한다. 환영은 사실(역사)보다 진실하다. 무의미한 것들을 떨어버리고 의미 있는 요소들만을 추려 담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마치 동양의 분재인들을 위해서 한 말인 것처럼 분재예술에도 그대로 부합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분재작가의 임무는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나무를 그대로 옮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나무가 가질 수 있는 가능한 이상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어떤 점에서는 분재()는 자연()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분재는 나무에 대해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진리를 말하고자 하지만 자연의 나무는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형상에 대해서만 말하기 때문이다.

  간략히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과 논법을 빌리면 분재()는 자연()보다 진실하고 보편적이다. 자연 상태에서 한 나무가 모두 갖기 어려운 장점들(미적 특질들)을 고루 갖추어, 나무가 가질 수 있는 진면목(현실태가 아니라 가능태)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때 진면목이란 '미적' 측면과 '자연(그리고 나무)에 대한 진정한 이해'라는 인지적 측면을 아우른다. 이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분재를 이해할 때, 우리는 분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분재를 옹호할 가장 중요한 논거 하나를 확보할 수 있다. (예술에 있어 인간의 정신이 작용하는 방식에서도 분재를 옹호할 논변의 중요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모든 예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개연성과 필연성을 바탕으로 현실태를 넘어 가능태를 추구하기 위해 고유의 묵계와 기법을 갖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분재도 이 묵계와 묵계를 실현하기 위한 기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흔히 분재의 배양 과정이나 수련 과정에서 묵계는 가벼이 여기고 기법을 중시하지만, 분재의 묵계는 분재를 존립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자 목표이다. 묵계 없는 기법이란 목표 없는 수단일 뿐이다. 분재사의 전개란 이 묵계의 창조와 변화 및 파괴의 과정이라 할 것이다.(곰솔이 단엽법의 발견에 의해 분재수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은 단엽법에 의해 묵계가 가능해졌다는 의미인 것이다. 철쭉으로 송백류의 모든 수형을 만든다는 것은 초기에는 옛묵계의 파괴이자 새로운 묵계의 창조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재인은 이 묵계에 대해 늘상 자각적일 필요가 있다. 대체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연성과 필연성은 분재에 있어 분재의 묵계와 기법에 각기 대응한다.

 

놀랍게도 분재는 그 정의에서부터 분재가 묵계임을 그리고 그 묵계로 추구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있다.

 

분재란 초목을 얕고 작은 분에 심어 적절한 배양관리와 정형 정자를 하여 반영구적으로 그 생명을 지속시켜 가며 노수 거목의 이상적인 자연 수형미를 창출하는 것으로 이 분재 작품을 통하여 감동적으로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감상케 하는 자연 조형 예술 작품이다. (자료:경암분재  유창희)

 

  이 정의(대부분의 분재의 정의)는 축소한 초목에서 노수거목의 모습을 보고, 이상적인 자연수형을 본다는 묵계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노수거목의 모습은 1차 환영(幻影)이요, 이상적인 자연수형이나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이란 궁극적 환영(幻影)이며, 그 환영은 현실적 존재가 아니라 가능한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적절한 정형 정자, 생명 지속 방법은 기법에 해당한다.)

 

  이러한 분재의 묵계는 분재를 관상하는 경우나 배양하는 경우 언제 어디서나 마주치게 된다. 단지 그것이 뼈대에 해당하는 것이냐 세부에 해당하는 것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분을 예로 들어 본다.

 

  분재의 화분은 자연에서 그 나무가 살고 있는 입지조건을 나타낸다. 자연의 넓은 경치 경관을 연출할 때는 얕으면서 타원형 화분을 선택한다. 사각 화분은 긴장감을 나타내며 바위틈에 자생하는 문인목은 얕으면서 둥근(원형)분이 좋다. 사각의 귀가 반듯하게 된 화분은 자연에서 웅장하고 무게가 있고 마을 한 복판에 심어진 정자나무처럼 평지에 있는 반듯한 나무를 표현 할 때 사용한다. 평지에 있는 나무 중 에서도 줄기가 곧으면서 굵은 나무는 사각에 깊은 화분, 줄기가 가늘면서 곧은 나무는 사각이면서 얕은 화분이 좋다. 줄기에 곡이 들어간 모양목은 사각이면서도 귀가 둥근 화분을 사용하고 경사지에 있는 나무인 사간은 타원분을 사용한다. 현애는 좁고 깊은 분을 사용한다.

 

  개연성을 바탕으로 한 묵계가 아닌가!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예술이란 고유의 묵계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기법으로 이상적 미적 가능태를 실현하는 인간 활동이다.

그러므로 분재의 묵계란 분재 예술의 존립 바탕이며 동시에 그 목표와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분재의 묵계를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5. 12. 02.

 

 

 

 

 

 

 

 

 

 

 

 

 

 

 

 

 

 

<발료자료 3>


분재의 예술성  
:오영택


일본의 문헌과 기록들을 보다 보면분재예술이란 표현과 매우 빈번하게  마주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영어권 국가에서도 ‘art of bonsai’ 라는 개념은 이미 정착된 것으로 보일만큼 자주 사용되며 관련된 간행물 또한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 분재계와 분재인들에게는 어떨까
?
분재예술이란 말이 낯설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분재작품’ ‘작품’ ‘작품분재등의 표현이 자주 쓰이는 만큼  ‘분재예술이란 표현은 그다지 상용되는 것 같지 않다
.

필자는 분재의 구성요소를 크게 예술적 범주 (artistic) 와 과학적 범주 (scientific) 로 구분하여 접근할 때, 분재의 각 요소에 대한 이해가 빨라지고, 배양 및 관리 능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으며, 분재를 보는 포괄적 시각의 형성에도 유익하리라 생각해 왔다
.  

그러나 우리 분재계의 현실은 분재의 예술적 범주에 속하는 수형, 연출, 진열과 감상 등에 대한 논의가 수종, 배양/관리/창작에 관한 기법과 기술, 병충해, 시비(施肥), 용토 등 과학적 범주에 비해 턱없이 드물다
.

아마도 과학적 범주에 속하는 요소들은 사실과 경험, 번역, 인용 등 논의의 근거를 찾기가 용이하여, 자료를 생성하는 필자들이 많은데 비해, 예술적 범주의 요소들은 주관성의 위험과 이로 인한 논란의 소지가 크기 때문에 기피해온 까닭이 아닌가 싶다
.

시각을 바꾸어 분재를 모르거나 분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반인들 중에서 분재를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식하고 분재 작품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일까? 필자는 그 결과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생각을 갖고 있다
.

그와 더불어 우리 분재인들에게 분재가 하나의 예술행위요 예술작품인 까닭을 질문하였을 때, 충분한 논리적 배경과 근거를 갖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분재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본고1절 분재란 무엇인가에서 인용한 여럿의 분재의 정의에는 공통적으로예술이란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재예술에 관하여 명확한 소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분재인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

이에 필자는 예술철학과 예술평론에서 제기된 관점들을 차용하여 분재의 예술성 논의를 위한 단초들을 제공해 보고자 한다
.
  
1)
예술과 예술작품


예술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창작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산물을 의미하지만창작 행위의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예술작품은미학적 반응을 유도하는 대상을 말하며, ‘자연물이 아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지칭한다.

예술을 분류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본고와 연관지어 우선 '순수 예술'(fine art) '실용 예술'(useful art) 의 구분을 보기로 하자. '순수 예술'이란  ‘아름다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예술(작품)’을 뜻하는데 비해 '실용 예술'은 실용성이 일차적인 목적이 되는 예술(작품)’을 가리킨다. 즉 미술음악문학이 순수예술의 영역에 속한다면 공예, 도예 등은 실용예술의 영역에 속한다 하겠다. 한편 이 두 영역의 경계에 놓여있는 예술분야로 건축을 들 수 있다
.

다음은 예술을 존재케하는 예술의 매개요인에 관한 기술이다
.
첫째는 예술작품의 창작 당시 작가의 정신상황, 의도, 이러한 상황과 의도에 영향을 주는

모든 외재적, 내재적 요인이다. 둘째는 물리적 실체들로 색채 (회화), 나무와 돌(조각), 소리

(
음악), 언어(문학) 등이다. 셋째는 작품을 체험한 관객 또는 감상자에게 작품이 미친 영향
즉 미학적 체험과 비미학적 체험이 있다. 예술은 곧 이와 같은 요소들이 상호 작용함으로써 생성되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예술의 매개요인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물리적 매개요인으로 이는 예술분류의 기준으로도 작용한다.   시각예술 (회화, 조각, 건축 등- 시각적 자료)과 청각예술 (음악-소리), 언어예술(문학-언어)과 혼합예술 (연극, 오페라) 로 예술을 분류하는 기준은 시각적 자료, 소리, 언어와 같은 물리적 매개요인이다
.

다음으로 시대와 사조에 따라 변해온 대표적인 예술론을 간략히 살펴보자
.
가장 오랜 전통은예술은 외적 세계의 모방(Iimitation)과 묘사(representation)’ 라는 입장의 모방주의적 예술론이나 현대에는 더 이상의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이에 대비되는 것으로 예술은 예술가의 내적세계를 반영한다는 입장의 표현주의 예술론이다. 이들 입장에 반대되는 것으로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는 형식주의 예술론이 있다. 즉 예술은 즐기고 감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예술 감상은  ,  색채,  음조, 언어 등의 복잡하고 미묘한 배열과 조합 즉 매개요인의 재구성을 감식하는 가운데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
끝으로 실용주의 예술론이 있는데 예술작품이란 외적이든, 내적이든 무언가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시각이다
.
2)
분재예술의 한계
  

매우 제한적이긴 하지만 위의 내용들을 참고하여 먼저 하나의 예술로서 분재를 논함에 있어 제기될 수 있는 한계점이 무엇인가를 고찰해 보기로 한다
.

우선 분재는 인간이 창작과정을 통해 만들어 낸 산물이며, 미학적 반응을 유도하는 하나의

대상이란 개념을 적용한다면 하나의 예술과 예술작품의 필요조건을 갖추고 있다 할 것이다
.
그렇다면 분재는 기존의 다양한 예술분류를 기준으로,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

분재는 실용성을 찾기가 어렵고 단지 아름다움의 창조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에  순수예술의 영역에 속한다 할 수 있을까? 목적만 놓고 볼 때는 분재를 예술로 주장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음악, 미술, 문학 등의 순수예술 장르와 같은 반열에 놓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

아마도 그것은 물리적 매개 요인의 속성에서 기인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색채, 소리, 언어 등의 물리적 매개요인들은 화가, 작곡가 또는 소설가나 시인등 작가의 의도에 따라 완전 통제가 가능한 대상들이다. 또한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 경우, 동일한 규격과 성질의 매개요인(재료)을 구할 수 있다 (음악이나 문학에서는 지우고 다시 쓰면 된다). 즉 창작 행위의

과정에서 작가는 의도에 따라 매개 요인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지만 매개요인이 작가 또는 작품의 결과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그러나 분재작가에게 있어서 물리적 매개요인, 즉 소재가 되는 나무는하나의 생명체인 까닭에 사실상 완전 통제가 불가능하다. 뛰어난 분재작가라 하더라도 결함이 많은 소재를 갖고서는 예술성이 높이 작품을 창작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결국 매개요인인 소재가 작가의 창작 방향과 결과에 더 많은 통제를 가하는 것이 분재가 갖는 속성인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분재가 갖는 한계가 노정되며, 예술로서의 분재에 대한 반론이 제기될 것이다.
    

공간예술, 시간예술의 개념 속에서도 분재는 다시 한번 그 한계를 드러낸다
.
분재는 회화, 건축 등의 공간예술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매개 요인 전체를 한꺼번에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공간예술적 성향이 강하다. 부분을 연속적으로 살펴가며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전체가 동시에 주어져 있어 어떤 부분을 먼저 보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

그러나 다른 공간예술 장르에서는 한꺼번에 제시된 매개요인들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변화하지 않고 영구적 또는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 그러나 분재는 매개요인인 나무 자체가 생명을 갖고 있어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제 스스로 변화함은 물론,  소장하는 사람이 바뀜에 따라  본래의 모습과 현격히 달라질 수도 있다. 예술로서의 분재, 예술작품으로서의 분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두 번째 문제이며 한계점이다.

다음으로 시대에 따라 변해온 예술론을 분재에 적용할 경우에도 우리는 한계에 부딪힌다. 즉 모방주의 예술론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적지만, 표현주의적 예술의 관점에서 볼 때 분재의 예술적 조건은 매우 취약해진다.  즉 분재 작품이 과연 작가의 의도 즉내적 감정의 외적 표출이 가능한 대상인가 하는 점이다.

 

중국의 펜징(盆景, Penjing)에서는 삶의 희로애락과 작가의 감정이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된 작품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한국과 일본의 경우 소수의 작가와 작품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정통 분재작품들 속에서 작가의 의도와 감정을 읽어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관객 또는 감상자들이 다른 장르의 예술에서 경험하는 미적 체험의 영역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며, 작가 또한예술가적 체험에 있어 일정한 한계와 제한을 갖게 만들 것이다. 이는 예술로서의 분재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이며 한계가 될 수 있다는 반론을 피할 길 없다
.

다만 형식주의 예술론의 주요 논점들을 적용할 때는 분재의 예술적 요소들을 부각시킬 수 있음이 발견된다.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 항목에서 다룰 것이다
.

이상을 요약하자면 분재는 개념상 예술 또는 예술작품의 조건은 갖추고 있으나 물리적 매개요인 즉 소재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문제로 인해, 기존의 다른 예술장르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요소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다양한 예술론적 시각을 적용할 때, 예술 또는 예술작품으로서의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다른 예술장르의 이론적 기준들을 적용하여, 분재를 예술로 파악하고 정의하려는 시도는 많은 문제와 극복하기 힘든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   

3)
분재의 예술성


미적 반응을 유도하는 대상 또는 미적 체험의 대상으로서 분재, 즉 분재를 통해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분재예술, 분재의 예술성이 보다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학술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분재에 내재된 독특하고 고유한 예술적 속성들이 보다 명쾌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타 예술장르가 그래왔듯 객관성과 논리적 체계를 갖춘 비평과 평론, 그리고 일반화된 기준(fact) 들을 중심으로 한 이론 정립의 필요성이 분재계와 분재인들로부터 높이 인식되고, 다양한 필자들로부터 다양한 관점에서 분재의 예술성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  

필자는 분재의 예술적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구체적인 시도는 우선명확한 목적이 설정되어야만 장려될 수 있을 것이며, 어떠한 목적을 갖는 기술일지라도  객관성을 방어할 수 있는방법론이 뒷받침되어야만 폭넓게 수용될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면 분재를 하나의 예술로 고양시킬 수 있는 분재만의 고유한 특성에는 어떠한 것들이 존재할까
?

첫째는 물리적 매개요인, 즉 소재가 생명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생명체라는 사실은 분재의 예술적 속성에 한계로 작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는 어떤 예술장르의 매개요인과도 차별되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

어떠한 예술작품도 제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며,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건축과 같은 공간예술 작품이 주위 환경과의 조화, 빛의 양, 보는 각도 등 외재적 변수에 따라 서로 상이한 미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듯, 보다 적극적인 개념을 도입한다면 살아있는 생명체인 분재작품의 변화는 분재예술만이 갖는 독특한 미적 체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매우 강력한 요인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이는 분재작품의 예술성을 논하는 기준이 어느 한 시점, 한 계절에 국한되지 않고 사계절의 변화, 세월의 흐름을 전제하여 설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며, 우리가 이를  가칭생명예술이라 개념하여 객관화, 일반화 할 수 있다면 예술로서의 분재의 한계점은 오히려 예술로서의 차원과 지평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작가의 의도가 강력한 메시지로 표현된 문학이나 미술작품들은
단순한 미학적 체험을 넘어서는
2, 3의 체험을관객이나 감상자에게 유발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 이러한 속성이 평론가들에 의해 그 작품의 예술성을 높이는 요인들로 평가된다
.

그렇듯 분재 또한 '하나의 생명체를 다루는 예술'이라는 차별성이 다른 어떤 예술작품도 유발할 수 없는 힘을 갖고 감상자들로 하여금 단순한 미학적 체험을 넘어서는2, 3의 체험을 가능케 한다면 이러한 속성들 또한 반드시 정리되고 구명되어 분재가 하나의 예술로, 예술작품으로보다 더 폭넓고 깊이있게
이해되고 즐길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  

둘째는 분재미를 구성하는 핵심적 기준 또는 요소들이다
.
분재미를 구성하는 요소중 안정감, 통일감, 균형과 조화 등은 다른 많은 예술장르의 작품들에서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고태미, 자연미 등의 분재미를 구성하는 몇몇 요소들은 다른 예술장르에서는 없거나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어 분재만의 차별적인 예술적 요소라 해도 무방한 것들이다
.

그러나 단순히 차별적 요소라 하여 그것이 분재의 예술성을 담보하는 객관적 근거로 작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고태미, 자연미의 정의와 기준, 작가 또는 외재적 변수에 의해 이들이 표현되는 과정 등이 특정의 틀 속에서 분석되고 기술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  
여기서 형식주의 예술론에서 논의되는 중점적 기준들을 통해 분재의 예술적 속성을 논하는 도구로서의 차용 가능성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

첫째, 유기적 통일성이다.

형식론자들이 말하는 유기적 통일성이란 고등의 생명체가 지닌 것과 동일한 유기적 통일성으로 부분과 부분이 서로 유기적 관계를 이루고 있어 어느 한 부분을 제거하는 경우 전체가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

구태여 부언하지 않더라도 유기적 통일성은 분재미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밑둥(근장)과 주간과 가지의 유기적 통일성, 열매 또는 꽃과 가지의 배열, 엽성과 수형, 목질의 속성과 수형, 왜성/속성 등 나무의 성장성과 수형 등과 같은 몇몇 가지의 예만으로도 유기적 통일성이란 기준이 분재작품의 창작과정과 완성 단계에 있는 분재작품의 평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란 것은 바로 드러난다이들 요소중 어느 한가지가 제거될 때, 분재작품이 표현하는 아름다움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복합성 혹은 다양성이다

예술작품이란 단조롭고 일률적인 부분들이 모여 형성된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들이 모여 통일체를 이룬 것이란 가정을 전제하는 것으로 '다양성 속의 통일성' '통일성 속의 다양성'이라는 예술작품의 평가 기준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

이 또한 분재작품의 예술성을 논하는 기준으로 부족함이 없다. 혹자는 분재를 일컬어한 가마니의 참깨 알만큼이나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는 창작 활동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전형적인 기준과 일탈된 부분이 많은 분재작품이 때로국풍상을 수상하는 경우가 있다. 다양하고 복잡한 것에 보태 살아있기까지 한 분재는 무수히 복잡하고 복합적인 요소들이 창작의 과정에서 반영되어야 하고, 그 결과로 보여지는 작품들 또한 해석의 폭과 깊이에서 폭넓은 유연성이 적용되어야 하는 예술적 대상이 아닐까 한다
.

셋째, 주제와 주제의 변조다

작품 안에 존재하는 가장 지배적 요소를 주제라고 할 때, 주제는 작품의 각 부분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변조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 부분은 사고와 연구가 많이 필요한 부분으로 판단된다. 송백이나 상엽이나 상화, 상과와

같은 분재의 구분은 그 자체의 중요성이 매우 높은 하나의 주제일 것이다. 또한 근장의 역동감이 분재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주제가 될 수도 있고, 주간의 섬세하고 연약한 빨림이 문인목을 구성하는 지배적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소재를 작수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갖게 되는 주제와, 완성된 작품을 통해 감상자가 느낄  주제는 다를 수도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창작 과정과 감상 과정, 비평과 평론의 과정에서 공히 주제를 찾아내고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을 어떻게 전개할 것이고 전개 되었는가 하는 요소는 분재작품의 예술적 정체성을 강화해 줄 것이 틀림없다
.    

넷째, 전개다.

시간예술 작품의 경우 여러 요소들이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되는 것을 의미한다. 순서가 바뀌면 작품 자체의 미학적 완성도가 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개념은 중시된다
.
이 요소는 시간예술의 속성을 갖지 못하는 분재의 속성상 적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

다섯째, 균형이다.

예술작품의 성공도는 다양한 부분들이 얼마만큼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는가에 따라 평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균형의 첫 번째 요소인 유기적 통일성을 뒷받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가지의 숫자와 위치,  근경과 수고의 비율, 수고와 수폭의 비율, 주간과 가지의 굵기, 1지와 2지의 비중, 수심의 위치와 비중, 분재수와 화분의 색조와 크기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부분과 부분의 조화들이 분재작품의 균형, 안정감을 표현하는 요소들일 것이다
.

간략하지만 형식주의 예술론에서 중점적으로 거론되는 요소들을 분재의 예술적 속성을 기술하는데 커다란 무리는 발견되지 않으며, 향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리라 판단된다.


분재의 예술적 속성을 분석하고 기술하는 사례가 누적되는 과정을 통해 다른 예술 장르에서 기왕에 적용되고 있는 분석 툴들의 무리한 부분들과 개념들은 수정되고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도구가 확보된다면 창작에 몰두하는 작가의 창작 세계와 감상자들의 미적 체험의 세계 모두에 제공하는 폭과 깊이가 깊고 넓어질 것이다.

4)
분재 비평과 분재 평론


예술비평과 예술철학이란 것이 있다. 예술비평의 목적은특정의 예술작품을 보다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즐기는 데 있으며’, 예술철학의 목적은비평가들에게 예술비평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개념적 기초를 마련해 주는데 있다고 한다. 요컨대 예술철학자들은 비평 활동에 근거가 되는 기본 개념들을 검토하거나, '예술', '미학적 가치', '표현' 또는 비평가들이 사용하는 그 밖의 개념들을 규정하고 정립함으로써 비평가들이 보다 더 조리있고 명료하게 예술작품에 대해 논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필자는 분재비평 또는 분재평론이 분재 발전을 위한 불가결의 요소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 목적이 분재작품을 보다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즐기는 데 있기에 분재 작가에게는 분재의 예술적 속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어 분재의 예술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할 것이며, 감상자에게는 보다 많은 앎을 제공함으로써 감상의 안목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것이 없어도 나무는 죽지 않는다거나 분재를 잘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무지와 몽매에서 오는 매우 소아적인 발상일 뿐이다
.  

필자는 또한 어느새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만 한국 분재가 세계적인 분재 선진국에 진입하고 궁극적으로 일본 분재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서둘러 분재비평, 분재평론의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신념을 아울러 갖고 있다
.

다양한 논객들의 비평과 평론을 통해 한국적 분재론을 정립하려는 시도를 계속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한국분재 고유의 예술적 특성을 창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적인 분재작가들은 부정적인 작품 평가조차 작가 정신을 고양하고 보다 치열하게 작품 창작에 몰입하는 동기로 삼아야 할 것이며, 취미인들 또한 다양한 시각의 비평과 평론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안목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상호 유기적 연관성을 갖출 때, 보다 수준 높은 비평과 평론에 필요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연구활동이 자극되고 유도될 것은 자명하다
.

그러나 웹 상에서 분재원 실명거론조차 논쟁을 일으키고 문제시되는 현실에서 파괴력이 보다 큰 비평과 평론이 과연 가능한 일이며 가능하다 전제할 때는 어떠한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것일까
?

우선은 분재평론가가 양성되어야 할 것이다. 분재에 관한 이론(분재의 이론이 존재하는지 의문시 되지만) 과 지식으로 탄탄히 무장된 평론가의 등장은 예술성과 작품성이 높은 분재작가와 분재작품의 발굴을 단축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분재작가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의 작품을 평가 받을 수 있는 채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평론가의 등장을 통해 우회적이고 간접적으로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재 평론가의 양성과 관련하여 우리 분재계가 경계해야 할 점은 경력 중시 풍조이다
.
분재가 하나의 예술로 분재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면 경력은

하나의 고려사항일 뿐 전부가 되어서도 안되며 될 수도 없다는 것에도 동의해야 할 것이다
.

평론가가 분재 작가일 이유도 없다는 점도 동의를 필요로 한다. 평론과 작품창작은 관련이

있을 뿐 기본적으로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

한 움큼도 안 되는 지식과 깨달음으로 평생을 노력한다고 해서,

시대를 더디 읽고 사조를 더디 이해하는 감각을 갖고 평생을 매달린다고 해서

예술성이 탁월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우연일 것이다.  

경력의 장단에 상관없이 탁월한 재능을 갖는 분재작가와 분재 평론가의 등장을 환영하고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작가와 평론가에 의해 창작된 작품과 평론의 가치 또한 온전히 수용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

평생을 해도 예술적 차원에 접근하지 못할 가능성과, 불과 수년의 경력만으로 탁월한 작품을 창작할 가능성 모두가 똑같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

다음으로 분재 비평과 평론의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

비평 또는 평론이란어떤 특정한 작품에 대해 '서술'(敍述)하고 '평가'(評價)하는것이다
.
(
필자주:평가란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

우리 분재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누가 평가할 것인가를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평가의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누가가 아니라무엇과 어떻게라는 점이다. 즉 객관적 지표들과 객관성을 방어하는 방법론이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다
.

일반적으로 가치판단(評價)이란 특정의 대상에 대해 무언가를 서술하는 가운데 만들어진다. 가치판단을 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은 자신의 취향, 선호, 좋고 싫음 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

그러나 개인적인 취향에 의존하는 가치판단은 '감상적(鑑賞的) 판단'이라고 하여 비평과 평론에서는 이를 핵심으로 여기지 않는다. 비평과 평론의 핵심은 기준과 법칙에 의거하여 가치를 판단하는 '규범적 판단' 이다. 특정의 작품에 대한 규범적 판단의 중요한 원칙은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

이 작품은 주간의 빨림이 양호하며, 수고와 수폭의 비례가 좋고, 1 2지를 비롯한 가지의

위치와 굵기가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주간 밑동의 직경이 4.5cm 로 수고 12cm 의 수심에 이르기까지 일률적인

가늘어짐과, 수고의 1/5 위치에 직경 1.3cm 주간으로부터 78도의 하방 기울기를 가진 제1지와
,
수고의 1/3 위치에, 직경 1cm 로 제1지와 같은 기울기의 제2지가 주간의 일률적인 가늘어짐과 더불어 작품의 안정성을 구성하는 제1의 요인이다. 수폭은 18cm 로 수고와 4:6의 비율로 배양하여 불과 5개의 가지를 갖고 있는 소품이면서도 잔가지의 영역을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노거수의 수격을 표출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  

두 글 모두 개인적 취향은 담겨있지 않지만 전자가 직관적인데 반해 후자는 전자에 비해 객관적이며 검증 가능하도록 기술한 차이를 볼 수 있다. 규범적 판단에 의한 평론이란 아마도 후자에 가까운 서술방식을 취할 것이다
.

물론 기준과 법칙 자체에 대한 논쟁의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으며, 가치의 상대성이나 다양성의 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근장, 주간, 가지와 연관하여 모든 분재작품에 적용되는 정석적인 기준들과, 상처의 유무, 수종 별로 적용될 수 있는 꽃의 숫자와 크기와 색조, 열매의 충실도, 고태미를 표현하는 요소, 화분과 수목의 형태, 색상, 크기의 조화 등 이미 분재의 역사를 통해 입증되고 객관화된 기준들이 적지 않음에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다
.

논쟁의 소지가 있어 객관화가 필요한 기준 또한 적지 않음에 주의한다면 분재 비평과 평론의 방법론은 점차적으로 세련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규범적 판단에 준거하여 기술된 비평과 평론들이 수종 별, 규격 별로 누적되었을 때, 이에 대한 통계적 분석이 후속된다면 명품으로 평가되는 작품에 내재된 공통 요인을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며, 그렇지 못한 작품들의 결격 요소들 또한 무엇인지도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이 점차적으로 분재 비평의 기준들을 확대하고 분재 비평의 영역과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  

5)
우리 모두가 소중한 자산


필자는분재작품을 보다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즐기는 위한분재비평과 분재평론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주지할 것을 요청한다.

경험이 깊고 안목이 높은 분재인들과, 명품 소장가들과, 우량한 소재를 배양 중인 분재인과
,
, 량을 떠나 분재 행위 그 자체를 즐기는 취미인과, 분재 기술자들과, 이제 막 분재 세상을 기웃거리는 입문자들과, 열정을 갖고 작품 창작에 몰두하는 분재작가들과 분재 관련 용품을 취급하는 유통업자들까지…. 모두가 한국 분재발전을 위한 소중한 자산들이다
.
선각자와 개혁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한국 분재를 우물 안에서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일차적인 동력이 될 것이요, 원로와 중진과 중견들의 지지는 이차적인 동력이 될 것이며, 숫적 다수이며 광범위한 계층으로 구성된 초보와 입문자들은 미래를 위한 동력이 될 것이다
.

우리에게도 뛰어난 분재작가와 작품들이 있으나,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기 보다 감춰져 있다는 점도 시급한 개선의 과제다. 고가의 애장품이나 창작의 열정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거나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난도되는 것은 소장자에게나 작가에게나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

우리는 논쟁을 우려하기에 앞서 가깝고 먼 미래 모두를 위해, 먼저 많은 것을 버리고 변화의 길 위로 나서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껄끄럽지만 겉 멋을 버리고, 자존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도 높다 여겨진다
.  

기무라라는 일본 분재계의 대가 뒤에는 근대분재라는 미디어가 있었고, 역으로 근대분재의 지속적 발전은 분재계의 대가들이 지속적으로 육성된데 기인했다는 일본 분재계의 선순환적 가치사슬 (value chain)’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

필자주
)
예술비평과 예술철학에 문외한인 필자는 본 절의 기술을 위해, Jo. Hospers | 張敬烈

참조 집필의예술철학의 내용에 상당 부분을 의존했음을 밝힙니다.

 

2005. 8. 11.

 

 

 

 

 

 

 

 

 

 

 

 

 

 

<발료자료 4>

분재의 예술과 미학 (Art & Aesthetics of Bonsai)

 

번역: 오영택

 

1. 목표

 

본장의 학습목표는 다음과 같다.

 

1. 예술과 미학이란 용어의 뜻을 정의하고 분재와 이 두 개념의 관계 이해하기

2. 분재가 원예의 예술적 형태인지를 설명하기

3. 분재의 고태감을 높이는 요소를 기술하기

4. 리듬감이 분재의 예술적 미학적 부분을 어떻게 상승시키는지 설명하기

5. visual speed를 규정하고 분재의 질감이 시선의 속도에 어떻게 영향하는지 설명하기

6. 적절한 비율과 균형이 분재의 모습을 어떻게 향상시키는지 설명하기

7. 분재의 진열이 미학적 가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설명하기

 

2. 개요

 

A. 예술적 구성을 이해하는 것은 미학적으로 뛰어난 분재를 창조함에 있어 불가결하다.

 

1. 분재작가의 책임은 건강한 분재수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학적으로 뛰어난, 즉 아름다운 나무를 보여주는데 있다.

 

2. 예술의 기능은 형식과 아름다움을 갖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구성(composition)

이란 여러 요소를 조합하는 것이다아름다운 것들을 조합하는 것은 예술적 구성의

목적이다.

 

3. 하나의 예술작품이 특별한 것은 작가가 그의 감정을 관객 또는 감상자와 그의 작품을

통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의 소통이 바로 예술의 미학이다.

 

4. 미학이란 말은 '감정의 인지'라는 뜻의 그리스어로부터 유래한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미학을 '순수예술이론, 순수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관한 이론, 아름다움을

다루는 학문 또는 철학의 한 부분, 취향의 원칙' 등으로 정의한다.

 

B. 미학적인 요소를 갖춘 분재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다양한 원예 이론과 예술의

원칙들이 필요하다.

 

1. 원예학적 원리들은 식물학 분야에 잘 정립되어 있다. 수분, 적당한 온도의 범위,

특정 pH 농도의 토양시비와 병충해 등.

2. 분재에 적용할 수 있는 예술적 원리들은 회화, 조각 및 기타의 예술장르와 다르지 않다.

       비율, 균형, 통일감, 리듬, 촛점, 구조, 질감, 색감, 시선의 흐름, 진열과 분재의 질적인

       측면에 영향을 주는 환경적 요소 등.

3. 분재는 나무를 살아가게 하는 원예학적 요소와 나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예술적 요소의 총합이다. 따라서 분재는 원예의 예술적 형태인 것이다.

 

C. 원예와 예술의 다양한 원칙들이 잘 조합된 수준높은 분재는 감상자로 하여금 감정, 직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는 기법들은 고태감리듬감있는 시선의 흐름, 만족스런 구성, 질감, 그리고 진열법 들이 포함된다.

 

3. 분재의 미학을 구성하는 요소들

 

A. 고태감

사람들은 어떤 사물의 고태감에 대한 선입관을 갖고 있다. 분재는 나이먹은 나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나무로 보이도록 가꾸는 것이다. 감상자로 하여금 저 분재수가 정말 오래된 나무로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태감과 연관된 시각적 요소들을 세심하게 만들어 내야 한다. 뿌리, 주간, 가지 와 특수 효과와 관련된 다양한 기법들이 분재의 고태감을 표현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1. 뿌리

부분적으로 보이는 크고 오래된 뿌리는 고태감을 느끼게 한다. 나무가 완성목에 이를수록 수피와 마찬가지로 고태감이 있는 뿌리가 지표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잘 만들어진 나무일수록 팔방으로 대지를 움켜쥐고 있는 듯한 근장을 갖는다.  

 

2. 주간

a. 주간의 직경주간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현저히 굵어져야 한다. 반대로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야 한다. 전체적인 주간의 직경은 수고와 적당한 비율을 갖고 있어야 한다.

b. 주간의 형태 : 주간의 형태는 감상자로 하여금 수령을 추측케 하는 많은 시각적

요소를 담고 있다. 지상으로부터 솟아오른 주간은 일련의 곡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 곡으로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요소를 넘어서는 고태감을 느끼게 한다.

c. 주간의 외형 : 주간의 수피가 상처 없이 곱기만 하면 어린 나무의 느낌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질감이 거칠고 아물어 든 흉터도 있어야 고태감을 준다.

오래된 나무들은 부러진 가지도 있고 어떤 요인으로 인해 상처 난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3. 가지

a. 가지의 각도 :

분재수의 연령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다. 어린 나무의 가지는 하늘을 향해 강하게 뻗어있지만, 나이가 들고 성숙할수록 무게와 나이에 의해 점차로 대지를 향해 처지게 된다

b. 아래에 위치한 가지일수록 굵어야 한다. 나이가 먹었기 때문이다. 또한 햇빛을 받기 위해 길이도 길어진다.

c. 오래된 나무일수록 가지의 숫자가 많아진다또한 날아가는 새가 날개를 펴듯 작고 많은 가지들이 펼쳐진 형태를 띈다.  

d. 수심은 수령의 또 다른 지표이다. 어린 나무는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뻗어 있지만 나이든 나무는 보다 둥근 형태를 띈다. 수고가 이미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위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펼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4. 고태감을 상승시키는 특수효과

    a. 사리와 신

    b. 화분의 색 : 밝고 광택이 있는 것보다 무광의 녹청색 화분과 같은 것

    c. 자연스런 분토의 표면. 이끼를 덮는 등.

 

B. Visual Speed

만약에 시선이 너무 빠른 속도로 대상으로부터 움직인다면 그 사람은 불안함을 느낄 것이다. 두리번 거리게 하거나, 무엇인가를 찾아내거나, 흥미로운 지점에서 멈추게 하는 것이 시선을 보다 편안하게 한다. 시선의 흐름에는 몇 가지의 요소들이 작용한다.

 

1. 화분, 수피, 잎의 질감

우리의 시선이 각각의 구성을 보는 시선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시선은 표면이 부드러운 화분, 수피, 잎에서 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질감은 시선이 흐르는 속도를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킨다. 질감이 흥미로울수록 사람의 시선이 더 오래 그 위에 머물 것이다.

 

2. 리듬

쭉 뻗었는가 아니면 곡을 가졌는가도 시선이 흐르는 속도에 영향을 준다. 사람의 눈은 부드럽게 형성된 곡을 가진 주간보다 쭉 뻗은 주간에서 보다 빠르게 위로, 또는 아래로 움직이려 할 것이다.   

a. 주간은 전체 나무의 주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가지와 잎은 주간에 의해 만들어진 리듬에 따라 그 역할이 정해진다.

b. 주간이 곡을 갖고 있다면 가지도 곡들 가져야 한다.

c. 반대로 주간이 직선이면, 가지도 직선이어야 한다.

d. 주간이 어느 한 방향으로 기울었으면 가지는 그 반대방향으로 기울어

균형을 잡아야 한다.

e. 곡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각지고 날카로운 곡에 의해 만들어진 느낌은 덜 부드럽다.

 

3. 가지의 위치는 시선의 흐름을 늦춰준다.

a.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적당한 위치에 있는 가지는  흥미롭고 여유 있어 보인다. 각 가지는 주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의 시선을 멈추게 하여 그 가지를 살피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시선이 가지를 살피느라 잠시 멈추고 다시 움직여가며 얼마나  편안하게 주간을 따라 움직이는지 주목하라.

 

b. 잘못된 위치에 있는 가지는 시선의 흐름을 늦추거나 아니면 중단시켜 버린다.

주간의 동일한 지점에서 좌우로 마주난 두 가지(맞가지) 시선의 흐름에 장애가 된다. 시선이 두 가지가 맞물린 부분에서 멈춰지고 그 다음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워지며, 결국 수직의 시선의 흐름을 이어가는데 문제를 야기시킨다.

 

C. 구조 (척도)

 

1. 비례, 척도는 각 부분들의 비교 관계를 의미한다.

2. 분재의 비례는 균형을 갖춰야 한다. 각 요소들은 정해진 크기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감상자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비율은 감상자들이 자연에 있는 완성목으로부터 형성된 관념들을 반영해야만 한다.

     

a. 아래쪽으로 갈수록 가지가 굵어져야 하며, 1지는 주간과 비례가 적당해야 한다.

b. 또한 나무 전체의 크기와 주간의 크기와 분의 크기 간에는 논리적 비율이 필요하다. 이 세가지중 어느 하나가 작거나 너무 크다면 불균형적이며 부조화를 이루는 구조를 갖게 되며 그 경우 미학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발표자료 5>

조화 (Harmony)  

번역 : 안병철

 

. 목적(Objectives)

 

 1.조화(harmony) 정의

 2.논의 내용

  a.절제(understatement)

  b.원근법(perspective)

  c.(line)

  d.균형(balance)

  e.(soul and spirit)

  f.자연과 자연스런 모습(nature and natural appearance)

  g.전시(display of bonsai)

 

. 총론(General)

 

A.정의(Definitions)

 

1.조화(Harmony) 

 

 조화는 눈을 즐겁게 해주는 색, 크기, 형태 등의 어울림(fitting together), 일치(agreement), 부분들이 질서 정연하고 비례적인 전체로의 결합(combination of parts into an orderly or proportionate whole), 적합성(congruity) 등을 의미함.

 

2.분재 

 

  분재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노목(mature tree) 또는 나무군(group)에 대한 축경(miniature replica)을 창조하는 예술이다. 분재작가는 정상적인 식물소재(normal plant material)를 노목으로 바꾸어 환영을 창조하려고 시도한다.

 

. 조화의 요소(Elements of Harmony)

 

A. 절제, 원근법, 선 그리고 선의 연속성, 리듬, 균형, 작가의 혼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요소와 개념 그리고 조건이 어떤 구성체(composition)에 대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B. 절제(Understatement)

 

   분재가 조화롭게 보이는 것은 바로 잘 어울리는 형태(a concerted fashion) 속에서 눈을 즐겁게 하는 원예 예술적인 형식과 통일된 구조를 제공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화에 이바지하는 이들 요소 중 하나는 절제(understatement)이다. 동양에는 ‘덜 강렬할수록, 더 효과적일 수 있다(the less powerful a thing may be, the more effective it can be)’라는 기초적인 미학적 전제가 있다.

 

1. 묵언과 절제의 힘(the power of quietness and understatement)은 건축, interior design, 꽃꽂이, 분재 또는 자연 자체의 미에 대한 동양의 예술적 접근방식의 핵심이다

 

2. 절제는 배경이 중립적이거나 부드러울 경우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한 배경은 나무를 돋보이게 한다.

 

3. 공간의 중요성은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질(mass)의 반대 개념인 공간은 존재하지 않지만 무언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것이 동양예술과 서양예술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물질 또한 중요하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으로 공간과 대체될 수 있어야 한다.

 

C. 원근법(Perspective)

 

   분재의 조화에 이바지하는 또 다른 요소는 원근법이다. 원근법은 2차원 표면에서 깊이감

있는 형태를(illusion)창조하거나, 3차원에서 보다 더 깊이 있는 형태를 창조하기 위하여 공간에서 형태를 구성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분재에서 원근법은 분재가 더 큰 매스(mass) 및 고태감(greater age and maturity)을 갖고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이도록 하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다.

 

1. 서양 원근법의 개념은 소위 말하는 ‘소실점(single point) 원근법‘을 사용한다. 이것은 마치 어떤 형상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도록 하나의 중심점에 선들을 모아 형상의 크기를 축소하는 방식의 선형 원근법(linear perspective)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그림의 모든 선은 예수의 머리로 모아진다. 이 소실점 원근법은 하나의 초점을 제공하여 시각적으로 작품의 모든 면을 하나의 조화된 전체로 통합한다.

 

2. 동양예술에서는 깊이와 공간의 느낌을 창조하기 위해서 다른 유형의 원근법을 종종 사용한다. 그 중에서 하나가 ‘분위기 환영(atmosphere illusion)'이다. 분위기 환영은 부드럽게 그림의 부분들을 공간으로 융합한다. 많은 일본의 초기 목판화에서 안개나 눈이 공허 속으로 사라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속으로 있는 것(what is there)과 없는 것(what is not)을 창조하게 만든다.

 

3. 원근법을 보여주는 다른 시각적 장치는 ‘비교’이다. 작은 사람이나 다른 인지할 수 있는 물체를 바닥 근처와 산에 비례적으로 사용하여 거대한 높이의 느낌을 주는 산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보라. 이러한 장치는 물을 담은 원반에 돌을 수직으로 세워 놓고 작은 사람이나 배로 장식한 중국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원근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않고서는 오브제(object)에 깊이가 없고, 구성물들 간에 상호관계가 혼란스럽고 조화롭지 못하다.

 

D. (Line)

 

   예술에서 선은 사람의 시야가 특정 방향을 따라 가도록 유도하는 점의 연속을 말한다. 이 길은 사람이 특정 구성체(composition)를 감상하는 방법을 통제한다. 이러한 흥미 점(points of interest)에 의해 창조된 길을 따라 가는 시야의 흐름(visual movement)은 시야가 혼란스럽거나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부드럽고 상당히 연속적이어야 한다. 분재 작품을 평가할 때 고려해야 될 특정 선은 바로 주간의 흐름(trunk line)이다.

 

1. 주간의 흐름은 분재 수형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될 사항이다.

 

  a. 주간의 선은 이어지는 점의 연속이며, 이는 보는 사람의 시야를 유도한다.

  b. 주간의 선은 상당부분 시선의 흐름의 길을 미리 결정지어 버린다. 이것은 나무가 어떻게 보여 지는가를 결정한다. 주간의 흐름은 작품의 전체 구조와 균형에 영향을 준다.

  c. 직간 수형의 분재에서 주간의 선은 직선이며 수직적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시야를 근장에서부터 주간을 거쳐 수관부까지 빠르게 유도한다. 가지에 대한 시야의 흐름은 최소화된다. 불규칙한 가지(untoward interruptions)는 조화를 방해한다.

  d. 반대로, 반현애 수형에서 주간의 선은 반대 방향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한쪽 방향으로 박진감 있게 쭉 뻗었다. 감상자의 시야의 흐름을 유도하는 점의 연속은 반현애의 근장에서부터 주간을 거쳐 수관부까지 가는 것은 물론이고 부족한 부분의 균형을 메우는 가지를 볼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해야 한다. 이러한 가지에 대한 시야의 분산(side trip)이 쉽게 이루지지 않으면, 부조화가 발생한다.

 

2. 주간의 흐름은 논리적이어야 한다. 통일된 구조를 갖기 위해서 분재는 논리적인 주간과 가지의 방향을 가져야 하며, 적절한 비례를 가져야 한다. 분재는 이해가 가능해야 하고,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노목(truly mature tree)처럼 보여야 한다.

 

   a. 주간은 애초 의도했던 방향에서 예측하지 못하거나 비논리적(illogical)인 각도로 급작스레 바뀌어서는 안 된다.

   b. 가지의 방향은 주간의 흐름을 조화롭고 자연스럽게 보완해야 한다.

   c. 분재의 비례감은 균형이 잡혀야 되고, 보는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품의 조화가 형편없게 된다.

   d. 또한 나무와 분 사이에 논리적인 비율이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비율이 어긋나 너무 작거나 너무 크다면, 균형이 깨지고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e. 분재를 디자인하고 평가할 때, ‘삼등분법칙(rule of thirds)‘은 비율을 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무의 아래 1/3은 근장에서 줄기로 비례적으로 가늘어져 가고, 중간의 1/3은 가지를 강조하고, 1/3은 작은 가지와 수관부를 구성한다.

 

분재수형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노목의 형태라야 한다.

 

3. 흐름의 연속성(continuity of line)이 있어야 한다. 감상자의 시선은 무의식적이지만 미리 정해진 형태로 주간의 흐름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

 

   a. 대부분의 경우 시야가 근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수관부로 이동한다.

   b. 시야의 흐름이 연속되고 시선이 자연스레 주간으로 되돌아오는 경우, 가지로 시선에서 분산되는 것은 괜찮으며 오히려 더 나은 경우도 있다. 주간의 흐름을 따라 상향으로 시선의 흐름이 다소 방해받는 것은 수용할 만하고, 시선이 흐르는 속도를 제어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한 경우도 있다. 주간 앞을 가로지르는 잎이 시선을 방해하는 것은 시선을 잃게 하지는 않을지라도 멈추게는 할 수 있다. 흐름의 연속성이 있고 시선이 따라갈 방향이 분명하다면, 주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시선의 흐름은 방해받지 않고 조화를 유지할 것이다.

    c. 그러나 시선이 “V", "T"형 또는 빗장형 가지에 의해 흐름의 연속성이 깨질 경우 시야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되어 시선의 긴장을 유발하게 된다.

 

4. 주간의 흐름에 더하여, 분재 전체에 흐르는 시각 운동을 통제하는 또 다른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은 나무 전체의 모습을 한 눈에 보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That line involves the visual mass of the tree.)

 

   a. 한눈에 본다는 것은 나무 전체의 윤곽과 개별 가지의 윤곽을 따르는 시선의 흐름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이것은 시선이 나무에서 떠나가는 것을 억제하는 경계 또는 범위이며, 또한 시선이 흐르는 방향을 외곽 경계에서 안으로 바꿔준다

   b. 분재를 보다 조화롭게 하기 위해서 한눈에 들어오는 나무의 윤곽은 - 잎이든 굵은 가지든 간에 - 는 주간의 흐름과 상충되기 보다는 보완적이어야 한다.

    (1) 직간 수형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시각적 흐름은 측면으로 골고루 분산되어야 하고, 수관부 보다는 근장부쪽이 먼저 들어와야 한다.

    (2) 그러나 줄기의 선이 일방적으로 한 쪽으로 흐른 사간 수형에서는 한눈에 들어오는 나무의 윤곽은 시선이 흐르는 방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측면이 더 무거워야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조화로운 상대균형(counterbalance)을 이룰 수 있다.(the visual mass of the tree should be heavier on the side away from the direction of visual movement on order to provide a harmonious counter balance.)

 

훌륭한 분재작품은 조화로운 흐름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흐름은 주간과 가지를 나타내며, 일부는 한눈에 들어오는 나무의 외각 경계를 제공한다

 

5. 분재의 흐름은 분에 나무가 심겨지는 위치에 영향을 준다.

 

  a. 시선의 흐름이 한 쪽으로 편중된 나무는 분의 중심에서 빗겨 심는다.

  b. 시선의 흐름이 왼쪽을 향한 사간의 경우 분의 중심에서 오른쪽에 심는다. 이것은 시각적 균형, 나무의 흐름과 분공간 사이의 통일감을 제공하여 결국 조화로운 시선의 흐름을 유도한다.

 

6. 팔방근과 (surface roots)와 주간의 가늘어짐은 시선의 흐름에 효과적이다.

 

  a. 선이 너무 불규칙하여 시선이 흐름을 자연스럽게 쫒아가지 못하면 시각적 긴장이 발생한다.

  b. 팔방근과 주간의 가늘어짐이 없을 때, 시각적 긴장감이 분명해진다. 팔방근과 주간 하단으로 가면서 굵어지는 (lower trunk taper)것은 수평적인 표토의 선으로부터 수직적인 주간의 흐름으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해준다.

 

7. 나무의 흐름과 분의 선 사이에 상호관계 및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a.      나무의 흐름이 부드럽고 곡이 있다면, 분은 모서리가 부드러운 원형 곡선을 가져야 한다. 나무의 흐름이 시선의 흐름을 보완하기 위해서 분 표면이 원형으로 연출되어야 한다.

  b. 분의 색깔 역시 나무와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분이 나무를 보완함으로써 작품에 균형과 조화를 제공하는 반복적인 리듬이 만들어 진다.

 

8. 이러한 모든 요소는 리듬감 (rhythm of movement)을 얻는 데 중요하다.

 

  a. 리듬감은 줄기에서 수관 방향으로 율동적(rhythmic)이지만 다양한 곡을 반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b. 리듬은 단순한 반복을 방지하기 위해서 다른 요소들(values)을 사용함으로써 다양화시켜야 한다. 근장부 주간의 곡은 넓어야 하고 위로 갈수록 점차 좁아져야 한다.

b.      리듬감은 가지가 일정한 간격을 갖고 밑으로 처지게 함으로써 분명히 나타내야 한다.

 

    (1) 주간의 리듬이 곡에 변화를 주기 때문에 리듬이 가지의 배치와 각도에도 영향을 주어야 한다

    (2) 낮은 가지는 윗 가지 보다 넓게 간격을 두어야 하고, 큰 각도로 밑을 향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이는 높이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흐름의 리듬을 만든다.

  d. 리듬감은 단(foliage masses)을 반복함으로써도 연출할 수 있다.  단이 구름형태로 다듬어질 수 있다. 구름 같은 단은 리듬을 만들기 위해서 반복하나 지루한 반복을 방지하기 위해서 크기와 위치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

 

E. 균형(Balance)

   균형은 조화를 촉진한다. 그러나 서양예술과 달리 분재의 기본이 되는 동양예술은 대칭적 균형보다는 비대칭적 균형에 의존한다.

 

1. 부등변 삼각형은 부등과 비대칭으로 인해 균형의 특이한 형태를 얻을 수 있는 개념이다.

2. 동양화, 꽃꽂이, 정원관리 그리고 분재는 모두 구성체에 재미있는 균형과 조화를 주기 위해 부등변 삼각형에 의존한다.

3. 분재에서 비대칭 삼각형의 세 꼭지점은 일반적으로 수관, 옆가지 그리고 반대편 가지 또는 분의 모서리에 접한다.  

 

F. 작가의 혼(the soul and the spirit)

   수년전 한 중국 예술비평가가 풍경화를 심사하는 기준을 세우고자 시도하였다.

 

1. 어떤 예술작품이 기술적 완성도와 완벽한 기량을 보이며 모든 법칙을 따라 제대로 했다고 할지라도, 작가의 혼이 없다면 그 작품은 "신성한 영감(divinely inspired)"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 작가의 혼은 위대한 분재의 걸작을 다른 것과 구분 짓게 한다.

 

2. 일본말 "wabi" "sabi"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주로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인 인지와 소통에 영향을 주는 조용한 의식(a quiet consciousness)과 정신상태(state of mind)와 관련이 있다. wabi, sabi를 연상시키는 “신성한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잘 알려진 두 작품은 다음과 같다.

 

   a.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단순하고 작은 그림이다. 그러나 그 작품은 다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바로 수수께끼 같은 미소이다.  

   b. John Naka Ghoshin. 이 작품은 High Sierra에서 채취한 향나무로 만든 모아심기 분재인데 각 나무의 합보다 더 큰 “특별한 것(something extra)"이 있으며, 이는 최고 중에 최고를 만든다.

3. 나무가 혼을 갖기 위해서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 위엄을 가지려면 기형처럼 보이지 않고 나무처럼 보여야 한다. 작가는 자기 나무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놓고 자기 자신도 나무처럼 긍지가 있어 보이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 자연에서 분재의 조화를 배운다

    (Natures place in bonsai harmony)

 

A. 자연은 조화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교훈을 준다. 위대한 예술가 중에서 몇몇은  자연을 공부하며 그들의 일생을 보냈다. 자연 환경에 있는 산, 시내, 바위, 나무는 서로서로 그리고 주변 환경과 가장 단순한 조화를 이루면 존재한다. 분재작가는 자연을 관찰하며 배운다.

 

1. 동양예술의 초기 대가들은 자연의 구조적 관계를 연구하며 자연의 단순하지만 오묘한 조화의 진수를 뽑아내려고 노력하였다.

 

   a. 그들은 나무의 가지와 주간 사이의 관계를 연구했다.

   b. 그들은 나무들, 바위 무리 그리고 나무들과 바위들 사이에서 상대적인 비례감과 어떻게 위치해 있는가를 스케치 했다.

   c. 그들은 자연에서 요소들의 오묘하지만 단순하고 조화로운 상호관계를 이해하고, 기록하고, 재창조했다.

 

2. 바위들과 나무들은 바위나 나무의 부분 부분과 인접한 나무와 바위 사이에 율동적으로 흐르는 힘을 갖는 오브제처럼 보여 진다.

 

B. 일본의 정원은 오묘한 조화 속에서 자연을 재창조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제대로 만들어내기 가장 어려운 원예적인 풍경이다.

 

C. 자연 수형(Natural style)

 

1. 분재의 수형을 잡는 것은 주로 의사결정에 관한 것이다. 주간의 모양과 각도를 어떻게 잡고, 어떤 가지를 남기고, 어떤 것을 자를 것인가, 가지의 모양을 어떻게 잡고 위치는 어디에 잡을 것인가.

 

2. 수형을 정하는데 고려해야 할 기본적인 요소는 그 종류의 나무가 자연에서 자라는 수형이다.

  

   a. 자연환경에서 각각의 나무 종류는 환경적 제약 속에서 가지의 형태와 수관부의 모습이 유전적으로 프로그램 되어있다.

   b. 분재의 수형은 자연수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인위적으로 낯선 수형으로 만들지 말라. 예를 들면, 너도밤나무를 소나무인양 만들거나 소나무를 너도밤나무처럼 만들지 말라.

 

 

 

 

 

 

 

 

 

 

 

 

 

 

 

 

 

 

 

 

 

 

 

 

 

 

 

 

 

 

 

 

 

 

<참고자료 1>

크기 축소의 원리와 미적 특질

 

: 관영

  분재에 있어 크기 축소의 원리와 그것이 갖는 미적 특질은 무엇인가. 달리 말해 분재에서 크기의 축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혹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미적 특질은 어떤 것인가. 완숙한 작가는 이에 대한 자각이 없이도 자신의 예술적 감각으로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나, 이에 대한 방법론적 이해는 목적과 방법에 대한 명료한 사고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적 의도를 보다 분명히 표현할 수 있게 하는 한편, 표현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나 그 극복에 대한 의도적 접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분재에 있어 크기 축소의 원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1. 분재수는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자연수와 대비되는 분재수의 가장 큰 특질이다. 미적 대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 우리의 시야각(視野角)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연수를 바라보는 우리의 상하(上下) 시야각(視野角)이 나무의 수관부(樹冠部)를 넘어 퍼져가는 확산적 시각이라면, 분재수를 바라보는 시야각은 분재수로 응집되는 수렴적 시각이다.

  이는 분재수의 미적 범주와 감상자의 심리적 반응 양상에 중요한 차이를 가져온다.

  한 눈에 볼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미의식은 전통적 범주로 나누면 숭고미에 가까운 것이나, 한 눈에 인지할 수 있는 대상이 가진 아름다움은 우아미의 범주에서 인식된다. 자연수의 경우 거대한 고목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경외감이며 그 앞에서 인간은 축소되다 무화(無化)된다. 그것이 지닌 크기와 시간이 우리의 일상적 인지(認知)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재수는 ‘한 눈에 볼 수 있다’. 분재수의 아름다움은 인지(認知) 가능하다는, 인지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무정형(無定形)의 그 어떤 것을 어떤 형상이나 형식을 통해 인지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 그것을 인지하는 데서 오는 쾌감은 모든 예술에 공통되는 것이다.

  모든 예술 작품 속에 그것을 만든 인간의 정신이 함께 존재하듯이, 분재수 속에는 자연과 더불어 인간이 함께 존재한다. 분재수의 감상자는 분재수 앞에서 자연수 앞에서처럼 축소되다 사라지지 않고 분재수 속의 인간, 분재수를 만들 수 있는 인간, 분재수 속에 드러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표현능력에 경탄하고 미적 쾌감을 느낀다.(이 점이 자연수에 대해 분재()를 옹호하여야 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논거이다. 분재가 예술이라는 것은 식물학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며 식물학의 견지에서 분재를 판단하고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2. 크기의 분류(분류된 크기)에 따라 구현하고자 하는 미적 특질과 원리가 달라진다.

 

  한 눈에 들어오는 크기란 어떤 크기를 말하는가. 그것을 분재에서는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크기에 따른 분재의 분류에 있어서도 용어와 그 크기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중품이라는 말이 관례화되어 있어, 내적 통일성을 기하기 위하여, 중품이라는 용어와 그 크기를 기준하여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분류를 따른다.)

 

대품분재 : 수고 91~150cm(여럿이 들어야 옮길 수 있다.)

대물분재 : 수고 61~90cm(혼자서 들어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중품부재 : 수고 30~60센티

귀풍분재 : 수고 25~35센티

아풍분재 : 수고 13~25센티 

           (소형이되 오랜 세월의 분생활로 가지의 분할이 갖추어진 품격을 갖춘 분재)

소품분재 : 수고 25센티까지

두분재   : 10센티 이하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분재로 

           수고 7.1cm 이상 10cm 까지와 수고 7.0cm 이하로 구분된다

 

  크기에 따른 분류라는 것을 단순히 그 크기의 구별만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크기의 축소가 단순히 크기의 축소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구조 및 질과 기능에 걸치는 문제라는 것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단순히 자연수를 줄여 놓은 것이 분재수가 아니듯이, 대품을 줄인 것이 중품이고 중품을 줄인 것이 소품인 것은 아닌 것이다.

  “혁신적인 기술 소개에는 생각하지 않은 함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대품 분재의 혁신적인 기술은, 소품 분재에 대부분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혼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어느 일본인의 진술은 이 점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대품, 중품 소품은 저마다 표현하고자 하는 미적 특질이 다르고 그것을 표현하는 원리나 방식이 다른 것이다. 일본에서 대품과 중품 사이에 대물을 두고, 특히 중품과 소품 사이에 귀풍과 아풍을 두고, 소품 아래 두분재를 두고 있다는 것은 그것들이 가지는 차이에 대한 인식 때문이고, 이것이 상당히 널리 양해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크기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을 듯한 귀풍과 아풍을 독립시키고 있다는 것은 이 차이가 크기의 측면만이 아닌 뚜렷이 다른 미적 특질과 표현 방식에 기인하는 차이일 것임을 보여준다.

  이런 견지에서 각 분류에 해당하는 분재수들이 갖는 미적 특질과 원리 및 표현방식상의 특성을 공통점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그 차이에 있어 세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이는 앞으로 많은 분재인들의 노력과 논의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크기에 따른 미적 특질의 차이>에 대해 우선 언급할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대물과 대품은 자연수에 가장 가까운 특질을 갖기에 주로 근장과 줄기의 위용(偉容)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중품 그 중에서도 귀풍은 나무의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가장 잘 조화된 상태를 지향한다. 일본에서 25~35센티의 크기의 분재를 귀풍이라 이름한 것은 이러한 특질에 기인하는 것이라 추정된다. 아풍의 특질은 좀더 상세히 살펴야 할 것이나, 소품의 특질은 ‘표현하고자 하는 포인트를 살리는 간결성’에 있는 것일 듯하다. 이에 관련한 논의는 분재미학의 중요한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3. 크기의 축소는 분재수의 특질을 인지 가능할 수 있는 정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1m 50cm 정도의 여성은 1m 50cm를 넘는 나무를 인지적 즐거움을 느끼며 편안히 감상할 수 없다. 이것이 대품 분재의 크기를 1m 50cm 정도로 잡은 ‘숨은 이유’이다.

  또 한편으로 꽃뱀을 2cm 정도로 축소하면 꽃뱀인지 굼벵이인지 구별이 가능할 것인가. 물리적으로는 꽃뱀이겠지만, 경험적 시각상으로는 꽃뱀으로 인지할 수 없다. 꽃뱀을 꽃뱀으로 알 수 있는 길이 내에서 축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인지 가능할 수 있는 정도의 축소’는 ‘분재수의 크기’와 ‘분재수가 표현하고자 하는 특정 미적 특질’과 관련이 있다.

  크기 축소의 일반적 한계와 관련하여서는 대품 분재가 경계의 상한(上限)이고 콩분재가 그 하한(下限)이다. 대품 분재를 넘어서면 즐거운 인지(認知)의 범위를 넘어서고, 콩분재의 단계를 넘어서면 배양 기법의 숙련도를 시험하는 의미를 가질 뿐 감상과 누림의 대상이 될 수없다. 이미 콩분재는 감상자에게 물음(숙제)을 던지고 있다.

  축소할 수 있는 한계는 수종마다, 혹은 그 수종에서 중점을 두어 표현하고자 하는 미적 특질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넓고 성긴 맛을 가진 수종을 표현하고자 할 경우나 어떤 수종을 넓고 성긴 맛의 측면에서 표현하고자 할 경우 어떤 한계 이하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수종별 특질이 허용하는 한계를 찾아내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수종이 콩분재에 적합하리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위 사진의 매화는 크기97cm로 줄기와 가지의 기굴(奇屈), 줄기와 줄기, 줄기와 가지 사이의 여백, 수양형으로 늘어진 하향지가 갖는 운치가 주요한 미적 특질인데, 이를 그대로 축소하여 소품이나 콩분재를 만들면 이러한 미적 특질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불가능하다.이것이 소품에서는 간결의 미학을 추구하게 되는 이유이다.

 

4. 크기의 축소란 반드시 일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분재수가 자연수를 축소한 것이라 할 때, 일반적으로는 그 축소를, 전 구성 요소를 일률적 비례적으로 축소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크기의 축소는 단순히 크기의 축소만이 아니라 구조와 질과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크기가 변할 경우 작용하는 미감이나 이를 표현하기 위한 원리도 달라진다.

  특정의 아름다움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해당 구성 요소가 특정한 크기를 요구하는 경우, 전체를 일률적으로 줄이면 그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마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과 일본의 매화 수형 및 배양 방식을 살펴 본다.

  중국 송나라 임포가 그의 시 <산원소매(山園小梅)>에서 “소영횡사수청천(疏影 橫斜水淸淺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 )-성긴 그림자 맑고 앝은 물 위에 비스듬히 드리웠네/그윽한 향기 황혼의 으스름 달빛에 그윽히 떠도누나 ”를 언급한 이래 <성근 가지가 풍기는 운치>는 동양삼국의 매화 관상의 주요한 전통이었다.

 

  오늘과 같은 일본의 매화 배양 방식 이전에는 동양 삼국이 매화의 성긴 가지(에 핀 꽃)를 으뜸으로 쳤고 이를 관상하기 위하여 매화 분재를 애호하였다.

  중국 현대 분재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햇가지(전년에 돋은 가지)를 줄기(혹은 둥치)의 길이에 맞먹을 만큼 길고 힘차게 받는다. 일률적 비례에 충실해서는 성근 가지의 운치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같은 관상 전통을 가졌으나, 일본 현대 매화분재의 주류는 ‘두 번 자르기’에 의한 ‘가지의 밀생과 그에 따른 꽃의 밀생, 햇가지 까지에도 추구하는 기굴(奇屈)’이다(여백은 줄기와 가지, 가지와 가지 사이의 여백으로 대체된다.) 이는 전통적 감상관의 계승이라기보다 배양기법의 진전이나, 분재의 독자성 추구에 기인하는 새롭게 대두한 수형과 배양방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근 가지는 그 성긂의 표현을  위해서 비례적 축소를 넘는 길이와 여백을 필요로 한다. 줄기 혹은 1차가지까지는 일률적, 비례적으로 축소하더라도 마지막의 햇가지는 그 비례를 벗어나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매화 분재수에서 줄기나 1차 가지에 대한 햇가지의 길이 비율은 매화 자연수에서의 그것보다 크다.

  이러한 사례에서 우리가 일반화할 수 있는 깨달음(분재미학의 원리)은 ‘분재에 있어 크기 축소의 원리’는 한 나무의 크기를 일률적으로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종의 특질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특질에 따라 그 비율이 달리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6. 1. 3

 

<참고자료 2>

황금분할에 관하여

이국봉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물 중 황금분할을 적용한 가장 최고의 예는 기원전 4700여년 전에 건설된 피라미드에서 찾을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인류가 황금분할의 개념과 효용가치를 안 것은 훨씬 그 이전부터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집트인들이 발견한 황금분할의 개념과 효용가치는 그 뒤 그리스로 전해져 그리스의 조각, 회화, 건축 등에 철저히 적용된다. 결국황금분할(Golden Section)’ 또는황금비율(Golden Ration)’이라는 명칭도 그리스의 수학자 에우독소스에 의해 붙여지게 되고 황금비율을 나타내는 파이(Ø, 1.6781)도 이 비율을 조각에 이용하였던 피디아스의 그리스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피보나치의 수열에서 5 A라 하고 8 B라 하자. 5 8 0.6에 가깝고 또 8 13(=5+8)도 역시 0.6이 된다. 반대로 8 5, 138로 나누면 1.6이 된다. 등식의 형태로 나타내면 A:B=B:(A+B)가 되며 이것이 바로 황금분할 또는 황금비율의 등식이며 일반적으로 황금비율을 말할 때는 0.618 또는 1.618을 의미한다. 어떤 주어진 선이 있다고 하자. 이 직선 상에서 A:B=B:(A+B)의 등식이 충족되게 나눌 수 있는 점은 오직 한 점이며 이 점을 황금분할의 점(전체의 61.8%에 해당하는 점)이라 한다.(그림1 참조)

그러므로 황금분할이라 함은 전체 속에서 두 개의 크기가 다른 부분 사이의 독특한 상호관계이며 황금분할이란 용어는 이 비율관계의 절묘함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의 시각에서 볼 때 파이(Ø, 1.618)의 비율을 응용하여 만든 물건, 건축물 등은 다른 비율을 사용해 만든 것에 비해 가장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꽃의 꽃잎 속에서도 파이의 비율을 발견할 수 있으며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운 화음에서도 이 비율이 적용된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몸매를 가진 팔등신의 여인들도 확인해 보면 그들의 몸 전체에서 배꼽의 위치가 발바닥에서부터 정확히 몸 전체의 61.8%에 해당된다. 더불어 주식시장에서도 황금분할의 법칙에 의해 행동하는 인간의 행태가 나타난다. 파이가 인간에게 호감과 조화감을 준다는 사실은 고대부터 인정된 사실이었으며 지난 세기말 이래로 많은 과학적 실험으로도 증명되어 왔다.

그렇다면 왜 파이가 인간에게 호감과 조화감을 줄까? 그 이유는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히 설명이 안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숨겨진 현상을 자연적인 우연이라고 믿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이 규칙성을 갖고 반복한다면 그 우연은 평범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파이는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다. 이러한 인식은모든 것의 근원은 수라고 생각했던 고대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에게는 경이적인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으며 파이(61.8%) 안에서 우주질서의 비밀을 느꼈다. 그들은 파이를 단순한 숫자로 생각하기 보다는 신성한 하나의 상징으로 인식했고 파이로 말미암아 숫자의 신비스러움에 대한 그들의 신뢰를 높여 주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황금분할의 비율이 내재된 오각형 별(그림 2)을 피타고라스 학파의 상징으로 삼고 자신의 특성을 보존하면서 전체의 더 큰 형태에 융화되는 황금분할의 특징처럼 구성원들이 모든 사치를 금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사회적으로 의료시술 등의 봉사활동을 하는 등 전체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조화시켜 나갔다.



황금분할의 구도가 내재된 직사각형

황금분할이 나타내는 현상과 그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황금분할 구도가 내재된 직사각형을 이해하여야 한다.

황금분할의 구도가 내재된 직사각형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구할 수 있다.

첫째 그림3과 같이 길이가 각각 2단위의 정사각형 ABCD를 작성한 후 밑변 CD의 중간지점을 E라고 정하고 BE를 이으면 밑변 1, 높이 2인 직각삼각형 BCE가 형성된다.

삼각형 BCE의 빗변 BE의 길이는빗변의 곱은 다른 두변의 각각의 제곱의 합과 일치한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의해 √ 5 단위의 길이를 갖게 된다. 다음 단계는 그림3 같이 EG의 길이가 삼각형의 빗변 BE의 길이 √ 5 와 같도록 연장한다. 모두 완성이 되면 (그림 3)에서는 다음과 같은 황금분할의 관계가 형성된다.



DG=√ 5 +1 CG= √ 5 - 1

FG=2 FG=2

DG/FG = (√ 5 +1)/2 CG/FG = (√ 5 -1)/2

= (2.236+1)/2 = (2.236-1)/2

= 3.236/2 = 1.236/2

= 1.618 = 0.618

위 두 식의 답은 모두 황금분할의 수 파이(Ø) 1.618 0.618임을 알 수 있으며 직사각형 ADGF황금직사각형(Golden Rectangle)’이라 말하며 직사각형 BCGF도 역시황금직사각형이다.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여러 가지의 사각형 모형을 제시하고 그중에서 그들의 눈에 가장 안정적으로 느껴지거나 또는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사각형을 고르라면 문화권, 인종,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대개의 사람들은 황금비율을 내재한 직사각형을 고른다.



또한 두 개의 막대기를 주고 십자가를 만들어 보라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황금분할의 점에 근사한 곳을 교차해 십자가를 만든다.

이러한 인간들의 황금분할에 대한 선호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이를 이용한 상품들에 널리 사용되는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그 예로 액자, 창문, , 십자가, 신용카드 등의 가로, 세로 비율 등에 황금분할의 비율이 적용된다. 특히 신용카드의 비율을 예로 들면 신용카드의 가로와 세로 비율은 각각 8.6cm 5.35cm로 이 둘의 비율은 8.6/5.35=1.607로 황금비율에 의해 카드가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미 열거한 예와 앞으로 설명할 예를 통해 느끼겠지만 황금분할의 비율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안정적이며, 편하게 느껴지는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행위 또는 행동양식은 그것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며 그것들을 규정하는 요소가 황금분할의 파이(Ø)에 내재되어 있다고 결론 지을 수도 있다.

인간 개개인의 행동양식에 황금분할의 비율이 영향을 미친다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인간들의 집단적인 행동에도 황금분할의 비율이 영향을 미친다고 추론하여 말할 수도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 인간들이 날마다 집단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보기인 주식시장에서도 황금분할의 비율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황금분할의 비율에 의해 이루어지는 구도가 가장 안정적이고 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황금분할의 비율이 가장 안정적이고 편하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비율이라고 교육 받아와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져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꽃을 보면 아름답고 뱀이나 벌레를 보면 공포심 또는 혐오감을 느끼는 감정이 교육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나 똑같은 것이다.

우리 인간이 최초의 직립원인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지구상에 나타난 250만 년 전 이전부터 진화되면서 살아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화과정 중에 인간은 철저히 우주가 만들어낸 자연에 순응해 왔으며 거기에 역행하는 종()은 도태되어 사라져 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연은 무엇인가? 자연은 혼돈이 아닌 통일된 하나의 질서이며 그 질서 안에서의 순환이다. 하루는 24시간, 일년은 365.25일이며,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반드시 오고 또 가을, 겨울이 온다. 즉 밝으면 다음은 어둡고, 높으면 다음은 낮고, 강하면 다음은 약하고 하는 상반된 두 에너지 사 이에서 우리 인간은 수백만 년, 아니 그 이상의 유장한 세월을 살아 왔다. 결국 인간은 자연계의 상반된 두 에너지 사이에서 살아 오면서 자연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생존의 방법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몸에 익혔을 것이다. 그 익혀진 방법들은 유장한 세월 동안 인간의 DNA 코드에 축적돼 오면서 유전되고 더욱 발전하여 현재의 우리 자신에게까지 이르렀다.

그 생존의 방법은 여러 가지이며 그 중의 하나는 두 상반된 에너지 속에서 0.618(파이(Ø))의 비율로 두 에너지를 공유하거나 분리하는 것이 아닐까? 또 그 비율의 공유 또는 분리야말로 이 세상의 질서를 주관하는 창조주의 뜻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이러한 황금분할의 신비한 요소로 인해 고대 희랍 철학자 플라톤은 황금비율 파이(Ø)이 세상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힘의 비밀을 푸는 열쇠라 했으며 시인 단테는신이 만든 예술품’, 16세기 천체 물리학의 거성 케플러는 황금분할을()스러운 분할(Divine Section)’이라 했으며 신의 형상을 따라 지어내진 신의 피조물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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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2.12 00:23

    첫댓글 목사님! 넘 어려워요.그래서 넘 먼길 같애요

  • 작성자 12.02.17 07:26

    위에 글은 대학 수준 입니다. 손에 잡히는 쉬운것 부터 하다가 보면 터득 할 수 있지요 (가끔 쓰라린 실패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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