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지금 어디 계시나이까? 어머니와 근 65년 함께 하시다가 먼 길 가시고 지금은 어디에 계시나이까? 재작년 6월 2일 아침 6시 돌아가시기 한달 전부터 곡기 식음을 끊어시다가 돌아가시기 삼일전 제가 집에 가서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내 펜티까지 팔아서 너를 학자로 만들겠다' 하시던 동하가 왔습니다. 아버지, 대산상사께옵서 죽을 드시랍니다"고 하니 드시기 시작하시던 모습이 생전에 뵈온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후 마치도 고비사막의 수도승처럼 돌아가시었습니다. 장례식장에 조문 온 어느 친구 두어 명이 이를 알아 보더군요.
1981년 11월 선경 그룹에 입사한 후, 좋은 인연들을 만나서 철모르던 저는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았던 것은 아버지의 음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제 때 부산상고 나오시어 잠시 초등학교(울산 웅촌초등학교) 교사로 지내시다가 국제고무신의 경리부장 재직 시에 롯데제과가 생기면서 초대 경리부장으로 스카웃되시면서 1967년 저희 가족은 서울로 이사왔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대전 현충원에 잠들고 계십니다. 6.25 때 부산 조병창에서 근무하실 적에 군수물자의 낭비와 손실이 없이 부정부패를 예방할 수 있는 회계시스템을 정립한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어느 경영단체로부터 이병철 회장 다음으로 경영자상을 수상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하신 아버지의 후광으로 어린아이 같았던 제가 살아 온 것입니다.
선경연수원에 입소하던 1982년 1월초 아침, 중도 포기한 대학원 공부를 계속하려고 망설이던 저에게 아버님께서는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은 사업가이시면서도 실학자이시니 내 말 믿고 마음을 굳혀라. 내가 너의 아버지고 누구보다 너를 잘 아니 내 말을 믿어라"고 하시며 철부지 저에게 희망을 주시었지요. 1980년 선경그룹이 1980년 당시 국내최대기업이었던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자, "새우가 고래를 삼키었다"는 신문기사가 났습니다.
'새우의 위력'은 선경연수원 교육 중 알게 되었습니다. 기업경영의 실천이념과 방법론을 원불교 경전처럼 알기 쉽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SKMS(SK Management System: 선경경영관리체계)를 만난 것입니다. 해피 스프라이즈 Happy Surprise! 故 최종현 회장님께서는 '신입사원과의 대화시간' 중 신입사원들의 질문을 묵묵히 미소지으며 경청하신 후에 기업가의 혼을 담아서 새내기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시었습니다. 그 바쁘신 분이 근 4~5시간 동안이나 자리를 떠지 아니 하시는 모습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포용력은 물론 오줌보가 크야 함도 알았습니다. 지금도 이따금 아침이면 "새 역사 새 물결 파도치는 세계에 드높히 기를 세워 인류 복지 앞장서..."라는 선경사가가 마치도 환청처럼 들리어 올 때가 있습니다.
입사후 저는 20대에 원불교에 미쳐 지냈듯이 SKMS의 응용연구와 실천에 미쳐서 28년을 한 일터에서 푹 빠져서 살았습니다. IMF가 나서 나라나 기업이 한창 힘들 때에도 미국 보스톤에서 MBA 연수를 계속하게 된 것은 선배님들 지원도 있었지만, 회장님의 음덕이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월급은 물론 보너스, 주거비, 도서비, 통신비조차 전액 지원하시었습니다. 저는 물론 집사람도, 특히 저의 두 딸은 케네디 대통령이 태어나 자란 동네에서 그가 어릴 적 다닌 디보우션 스쿨 Devotion School 에서 공부했으니 그 은혜를 어찌 다 갚으리요!
저의 삶, 가족의 삶이 이러하니 제가 선대 회장님과 기업에 대한 신의와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사옵니까? 잘 났건 못 났건 큰 아드님이 잘 되기를 회사를 떠나서도 힘닿는대로 노력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저의 선친의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주위의 오해도 있겠지요.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Truth will out). 두더기 무서워 장 못 담아서야 되갰습니까?
아버지! 오늘은 어버이날, 덕산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동하야! 여의도교당에 계신 덕산 선생께서 너를 알아주실거다”고 부촉 말씀 계시었기에 오늘도 뵈러 간 것입니다. 댁으로 찾아가니 글쎄 책상 서랍에서 뭔가 꺼내시어 "동하 어머니는 내 어머니시다"며 뭘 주시었는데, 어머니는 뭐라고 하실지? 인연 아니 숙명적 만남의 숙연이다 보니, 우리 덕산 선사님은 저의 외증조부님, 큰 외삼촌과도 무척이나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니 우리 어머니하고도 닮았습니다. 조금전 점심으로 시원한 바지락 칼국수에 만두 그리고 쇠주 두어잔 마시고 덕산님 댁 근처 일산의 어느 길가 가로수 아래서 스마트폰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웬지 눈물이 우러나옵니다. 초안을 쓴 후 백석역에서 마두역까지 가서 830번 버스 타고 홀어머니 뵈러 가려고 합니다. 어머니와 덕산님은 12살 차이, 용띠 띠동갑이십니다. 아버지는 호랑이띠이시죠.
제가 여섯살 이후에 한문의 이치와 인간 신체의 원리를 스스로 깨우치도록 환경과 분위기를 조성하시며 품어주시고 귀여워해 주신 분은 문화 류씨 집안의 외증조부님이시었습니다. 서울역전앞 세브란스 의전을 나오시어 이십대에 미국 유학 가신 큰 외삼촌이 외증조부님처럼 속깊은 미남이시니, 결국 덕산님은 인생 선배이신 저의 큰 외삼촌님처럼 호쾌남, 미남이십니다. 오늘은 어버이날! 아버지 사랑은 공기와도 같고, 어머니 사랑은 햇볕과도 같음이 다시금 느끼어져 와서 뼈속에서부터 진한 속눈물이 저미어옵니다. 아버지 떠나신 재작년 6월 2일 이후 아직도 철이 덜 든 어린 저는 존재의 이유와도 같은 아버지의 공기가 사라지니 이따금 질식할 듯 하여서 몸에서 마음이 이탈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기도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잔 나무가지와 같은 저의 여린 감성을 기도의 힘으로 영혼의 뿌리를 더욱 내리서 다지며 살아갑니다. 별님도, 달님도 이런 저를 지켜보며 어두운 마음을 밝혀 주십니다.
덕화만발에 올리는 저의 글들은 그 태반이 아버지를 추모하는 마음에서 쓴 글, 그림들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적 1965년경 대구 구두닦이 소년 이 쓴 일기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책을 사 주신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1학년 적 여름방학 그림일기에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풍경을 그리는 걸 거들어 주신 추억에 이따금 이 곳 덕화만발에 아버님을 그리워하면서 이런 저런 그림을 그려 올립니다. 미술 실기는 '다'를 받았던 제가 그림을 즐겨 그리게 되다니...
아버지! 학자는 교수가 아니라도 될 수 있다고 하시었지요.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님도 비록 대학교수는 아니었으나 1930대 발표하신 '조선 나비 분포도'는 지금까지도 영국왕립도서관에서 소중히 보관중이랍니다. 아마도 한국인 논문으로는 아직까지 유일본일지도 모릅니다. 당시 나비 채집을 제주도에서 백두산까지 60여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해서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통계적 처리를 하시어 정규분포도로 조선 나비의 변이과정을 밝히었으니, 석주명 선생님은 나비연구에서는 세계적 학자로 우뚝 서신 것입니다. 역시 10년 이상을 정진해야 하나 봅니다.
언젠가 석주명 선생님의 누이동생이시던 석주선 여사님를 우리 가족 모두가 찾아 뵈오니, 저보고 "오라버니를 많이 닮았다" 하시며, 지갑에서 소중히 간직해오신 석주명 선생님의 일본유학 시절 흑백사진을 주시던 생각이 납니다. 저의 두 딸에게는 석주명 선생님의 전기 등 여러 책을 주시었지요. '조선복식사의 대가' 석주선 여사님은 성남 모란공원에 영면해 계십니다.
아버지께옵서 채 다 못다 한 뜻을 '덕화만발'에 향후 삼십년간은 글로써 이어가려 합니다. 제 나이 만으로 58세, 향후 십이년 지나 이른 살 이후에는, 뼈로써 붓대, 피로써 먹물, 살로써 종이를 만들어 한 획 한 획,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을 절차탁마, 연구연마궁리하여 집필하려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졸작, 졸고, 졸필 소리를 비록 듣더라도 연습, 실습을 계속 우직하게 할 것입니다. '마보십리 우보천리(馬步十里 牛步千里)란 말을 입증하렵니다.
아버지! 아버님께서 다하지 못하신 뜻을 이어받는 일과 우리 덕산 방장님께서 가꾸시고 챙기시는 '덕화만발'의 창업정신과는 일맥상통하니 결국 하나의 일, 하나의 길입니다. 언젠가는 외국인을 위한 글을 영어로도 쓸 날도 반드시 올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버지! 하늘에서 잠시 깊은 휴양하시고 이 세상에 새 몸 받아 다시 오시어, 금생에 다 하지 못하신 '실사구시 실용학문 실학'의 꽃을 피우시기 바랍니다. 하늘이시여! 하감하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조감하소서♧
첫댓글하하하! 이동하님은 정말 요술쟁이시네요! 점심먹고 헤어진지가 얼마 되였다고 아버님 추모담 까지 쓰셨나요?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아버지는 공기같고, 어머니는 햇볕같음을 다시금 뼈눈물로 저미어옵니다> 그 심정 정말 폐부를 울린네요! 부족한 이 사람을 이렇게 평가해주시니 정녕 몸 둘바가 없습니다. 부디 어머님 찾아 뵙고 효도하소서! 함께 뵈러 가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오자가 많아요! 다시 다듬으시고 큰 글씨로 바꿔 주시면 안 될까요? 하하하!
제가 어릴 적 아버지는 돌투성이 산비탈 과수원을 일구며 '땅은 거짓말을 안한다' 고 하셨습니다. 정말 땅은 거짓말 안하고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크고 맛있는 복숭아, 포도, 배, 수박, 딸기를 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땅값이 거짓말을 하더군요. 열심히 일군 땅보다 버려 두었다 고속도로에 수용된 땅값이 더 나가는 세상 ~ 어버이날이네요. 막내가 아침에 준 카네이션이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펄벅 여사가 자선재단을 만든 것은 굶는 아이들을 먹이느라 교회 기금을 음식물을 나르는 배를 사는데 쓰고 교회 운영진으로부터 비난 받은 선교사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데 ...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
첫댓글 하하하! 이동하님은 정말 요술쟁이시네요!
점심먹고 헤어진지가 얼마 되였다고 아버님 추모담 까지 쓰셨나요?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아버지는 공기같고, 어머니는 햇볕같음을 다시금 뼈눈물로 저미어옵니다>
그 심정 정말 폐부를 울린네요!
부족한 이 사람을 이렇게 평가해주시니 정녕 몸 둘바가 없습니다.
부디 어머님 찾아 뵙고 효도하소서! 함께 뵈러 가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오자가 많아요! 다시 다듬으시고 큰 글씨로 바꿔 주시면 안 될까요? 하하하!
덕산님... 백석역 근처서 초안 잡고, 지금 마두역 나와서 1차 교정을 보았습니다.
제 스마트폰이 초기 모델이라 작습니다.
깨알같은 글씨로 쓰다 보니 오타가 많이 납니다. 혜량하여 주옵소서. 만세! 만세!
만만세! 덕화만발 무궁화! 덕산선사 사랑초♡
23년전 아버님
연세 65세 때,
고조부 증조부
추석 성묘하고,
아버지 20대초반
부산상고 나오신 후
잠시 접장하시던
울산 웅촌초등학교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버님을 그리며 뜻을 받들려는 강한 의지에 감동이 됩니다.
원불교와의 인연, 덕산선생님과의 인연이 아름답습니다.
저는 실사구시 실학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아버님과 함께 좋은뜻 이루시기 바랍니다.
신난다님께서
5윌 25일 자축연에
오신다고 오늘
덕산 방장님으로부터
말씀을 전해듣고
제가 참 신났습니다.
그날 뵙겠습니다.
가슴까지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철쭉도 한풀 꺽이고 있네요.
대신에 좀 더 늦게 피어대는 하얀철쭉이 마음을 순백으로 물들여 줍니다.
저도 좋으신 분들을 뵙게 되니 신나는 날이 되겠습니다. 하는일마다 가는곳마다 신납니다.
제가 어릴 적 아버지는 돌투성이 산비탈 과수원을 일구며 '땅은 거짓말을 안한다' 고 하셨습니다.
정말 땅은 거짓말 안하고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크고 맛있는 복숭아, 포도, 배, 수박, 딸기를 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땅값이 거짓말을 하더군요.
열심히 일군 땅보다 버려 두었다 고속도로에 수용된 땅값이 더 나가는 세상 ~
어버이날이네요. 막내가 아침에 준 카네이션이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펄벅 여사가 자선재단을 만든 것은 굶는 아이들을 먹이느라 교회 기금을 음식물을 나르는 배를 사는데 쓰고 교회 운영진으로부터 비난 받은 선교사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데 ...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
땀 흘려 번 돈은
우주 어딘가
씨앗 내리옵고,
조상 잘 만나서
땅값 올라 공돈
번 돈은 흥청망청
하다가 그 돈들은
어디론가 가버리죠.
아버지
홍성남 시인
아버지 불러 놓고 보니
회한이 사무칩니다
예순 앞 둔 겨울 날
추위 무릅쓰고 가셨습니다
그 충격 못 이겨
정진하던 학업 뒤로 하고
그해 겨울 가기 전 추운 날
최전방 전선에 섰습니다
훈련병 시절 꿈속에
단 한번 얼굴 보여주시더니
뵙고 싶은 마음 사무쳐
아버지 다시 부릅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초등 때 소낙비 오던 날
우산 들고 오셔 건네며
앞서 걷던 아버지 뒷모습
생전에 막내아들 잘한 일
돌이켜 찾아봐도
농약 친 후 냇가에 나가
등 밀어 드린 일 뿐 입니다
말없이 남긴 아버지 유훈
보여 드리며 칭찬 받고 싶은데
사람의 마음잡는 일이라
조금 시간이 걸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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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을 그리는 마당바위님의 마음에 그저 눈물이 ~~~
장무상망 홍성남 선생님...
체험어린 시로써 화답하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뜻 이루소서!
마당바위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훌륭하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네요.
아버지께서 생전 원하시던 마음처럼
열심히 정진하시는 마당바위님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원심님...
저는 아버지만 못한
불효자식입니다.
아버지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자란 저입니다.
메아리에 항상
고맙습니다^^
ㅜ.ㅜ
馬步十里, 牛步千里.
요란한 말굽소리 십리밖에 못가나,
소리없는 소걸음 천리길에 벗이로다...
아... 제가 미국 연수
다녀 온 이듬해,
제 양력 생일날 우리
김환 후배님 뵈옵고
이름풀이 한 것을 아직도
소장하고 계시군요...
14년전 그 모습 그대로!
5월 11일 익산총부성지서
경산 종법사님 알현하시는
것에 경하드립니다.
바위 아우님..감사합니다. 덕분에 모친 발인 잘했습니다. 저역시 미천하지만 제 심경을 제 그림방에 남겼답니다. 아무쪼록 덕화만발의 좋은 기둥이 오셔서 제 발 걸음은 깃털처럼 너무 가볍습니다.()
자당님 살아 생전에 하실 수 있는 효도를 다 하시었습니다. 자당님의 완전해탈
천도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