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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향기 짙은 날 여린 듯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보여 꽃잎이 휘날리는 것만 보아도 시상이 떠오를 것 같은
이승하 시인을 만났다. 현재 시인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우리 시의 앞날을 위해
심각한 지경에 이른 병세를 진단하고 나름대로 처방을 내려 통시적 안목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이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남부러울 것 없이 온갖 것을 누리고 있지만 시 쓰는 것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두려워져 걱정이라는 시인과의 만남은 고즈넉한 찻집의 풍경같이 시작되었다.
시인은 어린 시절 집안 환경이 평화롭지 못해 한때는 방황도 많이 했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지쳐 있는
어머니의 사이에서 어려서부터 정신적 균열이 심해졌으며, 고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집안 갈등에서 도피하기 위한 가출을 했고, 고등학교는 1년도 다니지 못하고 자퇴해야만 했다.
이후 집을 떠나 형님의 자취방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오직 문학만을 곁에 두고 불면의 밤을 견뎌냈다.
검정고시를 통해 어렵게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진학했고, 대학에 다니면서도 불면증과 신경쇠약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서 휴학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를 쓰는 열정만큼은 식을 줄 몰랐다.
말더듬이가 심해져 말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이를 이겨내려고 대학시절 발표수업을 도맡아 하였고,
강단에 서면서부터 말 더듬는 것을 극복했다.
대학시절 서정주(미당) 선생님과 구상 선생님께 직접 시에 대해 배웠다는 시인은 대학 4학년 가을 어느 날,
그동안 쓴 시를 가지고 집으로 방문하라는 말을 듣는다. 정성스럽게 쓴 60편을 가져가니 동그라미 두 개와 한 개,
가위 표시를 구분하길래 이유를 묻자 동그라미 두 개는 신춘문예에 내 보아도 손색이 없을 듯하고 한 개는
그보다 부족한 작품, 가위 표시는 영 아닌 작품이라며 손수 표시했다고 미당 선생님에 대해 회상했다.
그렇게 꾸준히 시를 써오던 중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畵家 뭉크와 함께」가 당선되면서 시인으로서의 인생이 시작된다.
어디서 우 울음소리가 드 들려
겨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
토 토하고 싶어 울음소리가
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
드 들려와
야 양팔을 벌리고 과 과녁에 서 있는
그런 부 불안의 생김새들
우우 그런 치욕적인
과 광경을 보면 소 소름 끼쳐
다 다 달아나고 싶어
도 同化야 도 童話의 세계야
저놈의 소리 저 우 울음소리
세 세기말의 배후에서 무 무수한 학살극
바 발이 잘 떼어지지 않아 그런데
자 자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
소 소름 끼쳐 터 텅 빈 도시
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
끝내는 미 미쳐버릴지 모른다
우우 보트 피플이여 텅 빈 세계여
나는 부 부 부인할 것이다.
-畵家 뭉크와 함께(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인의 삶과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도스토옙스키’를 꼽는다. “가난한 사람들,
백치, 죄와 벌 등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모두 보았다.”라면서 “악에 전염되는 인간의 속성, 복수욕과
질투심에 시달리고, 폭력과 기아에 노출된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라고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곡도 많이 읽었다.”라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권모술수, 욕망과 증오심 등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문학은 허구지만 시공을 초월해서
감명을 주는 것이며, 작가 스스로 자신을 점검하고, 성찰하고, 반성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중국 '두보'의 시는 꼭 읽어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두보는 자신이
집에 없는 동안 어린 딸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전쟁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을 걱정하며 눈물을 지었다.”
라면서 “이 일화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뭉클하다.”라고 말했다. “영국 낭만파 시인들 윌리엄 블레이크,
셸리, 키츠, 바이런 등의 시를 읽어야 한다.”라면서 “그들의 문학세계뿐 아니라 생애가 파란만장해 깊은
울림을 준다.”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보르헤르트는 독일 전후 문학사 시작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표작으로
희곡 「문 밖에서」, 소설집 『이별 없는 세대』가 있으며,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은 인간 의지의
승리를 잘 보여준 작품이다. 보르헤르트 작품은 콩트 형식으로 된 소설로 분량이 많지 않아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내포하는 뜻은 깊고 선명하다. 볼프강 보르헤르트 작품도 꼭 읽었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시인은 젊었을 때는 방황 끝에 쥐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결국 자살이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한 자의 비겁함이라고 냉정하게 자살에 대해 부정하며, 대학생활은 자신을 만드는 과도기로
그 원동력은 책이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문학의 공부란 가장 원시적이고 우직한 방법이 최선이며,
무엇보다도 기본기가 중요함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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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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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보는 문학의 역할은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시적 삶을 알게 함으로써 인류의
파괴를 늦추는 것, 인간성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표면에 비추어지지 않는 것들을 시로써 다룬다.
그 표현이 매우 직접적이고, 시가 가진 애매성, 즉 독자의 영역을 축소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시인은 “내가 평생토록 추구해 나가야 할 문학세계, 즉 내 문학의 화두는 무엇일까. 사랑과 유토피아에
대한 탐구도 욥의 신앙심도 아닌 ‘폭력과 광기’, 그리고 ‘생명체에 대한 연민의 정’ 정도일 것이다.”라고
[시집-폭력과 광기의 나날]에 대해 밝히고 있다. 또한, 현재의 시인의 시는 고통과 상처의 시다.
고통과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고통과 파괴의 에너지에 집중력을 가지고 시를 쓴다. 그러나
고통에 침몰하지 않고, 고통을 통한 성찰을 작품 속에 담아 내어 점차 거대해져 ‘시간’과 ‘우주’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시인은 “내 고통의 원인은 부모님에게 있다. 그러나 부모님들에게도 이런 저런 상황의 원인이
있고, 그 원인 위에는 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커다란 시각에서 바라보면 시공을 초월한 우주적 불행이
있으며, 그것을 탐구하는 것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몫이다.”라고 한다.
오후의 햇살이 비쳐들면
세상은 졸음에 겨워 노랗게 되곤 했습니다
가게 한 귀퉁이에서 어린 저는 졸고
어머니 이맛살에는 깊은 골이 패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괭이질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누르고
나중에는 손등으로 이마를 때리고 때립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포 나중에는 하루에 다섯 포
머릿속에 거머리가 기어다니는 것 같구나
약의 양이 느는 동안 어머니는 늙어갔습니다
노란 셀로판지 하늘 붉은 색으로 바뀌면
어머니는 마침내 저를 깨우고
저는 약국에 가 뇌신을 사오곤 했습니다
한 사발 물과 함께 이맛살이 평평해지면
어머니는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약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가시면서
아이고, 머리가 안 아프니 살 것 같다
아들 보며 희미하게 웃으시는 어머니
어느 날은 뇌신 한 포 몰래 먹어 봤더니
세상이 금방 노랗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곁에서 오래오래 잠들고 싶었을 따름이었지요.
-어머니의 두통약 뇌신-
좋은 시란 읽을수록 음미할 맛이 나고 은은한 향기를 품어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다.
각박한 시대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깨달음과 충격을 줄 수 있는 시만이 100년이 지나도 남을 시다.
시인의 희망은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에 누군가의 삶을 엿보며 각박한 생에 굴하지 않고 노래하길 바란다.
비판의식으로 보면 우리 사회는 아름답지 못하고 그래서 더욱 시가 필요함을 느낀다. 매일 아침
신문을 볼 때마다 폭력기사가 없는 날이 단 하루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는 이 교수의 마음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꿈이 있었다.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시대에 시는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을 베푸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함이다.
시인은 “시를 쓰기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삼는 것,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를 그려보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수험생으로서 입시 시험을 치르려고 배워서인지
그렇지 시는 말과 말 사이에 꽃이 피고, 샘물이 흐르고……. 말에 양념을 쳐서 맛을 내고 멋을 보여주며
때로는 절대적인 숭고한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시는 짧은 몇 마디 말에 상징적, 은유적, 함축적,
다의적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요즘 시나리오 작가나 만화 스토리 텔러, 광고 카피라이터 등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는 모든 분야의 바탕이 된다.
시를 쓰면 문장 구사력이 높아지고 좋은 산문도 쓸 수 있다.”라고 한다.
그리 멀지도 않건만
고향으로 가는 일이 참으로 힘들구나
허나, 세상의 모든 길은
저마다의 고향으로 나 있는 법
그대 태어난 곳 자라난 곳
꿈을 키웠던 그곳
사춘기 시절엔 줄곧 떠나고 싶었던 곳이어서
그대 고향을 버리고 비로소 어른이 되었지
연어도 때가 되면 모천으로 회귀하는데
한가위로다
타향의 하늘에서도 이국의 하늘에서도
두둥실 떠 있는 원반형의 달
어머니 등에 업혀 쳐다보았던 달
사랑을 잃고 술에 취해서 쳐다보았던 달
오늘밤 저 달은 한껏 발그레해지리라
인생행로 걸어도 달려도
어느 길 할 것 없이 험하기만 했다
망망대해 달려도 멈추어도
어느 뱃길 할 것 없이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나 있는 길에서는
지친 새도 날개를 접을 수 있다
그대 탯줄이 거기 묻혀 있기에
그대만을 기다리는 노모가 있기에
싸늘히 식은 가슴 지닌 이들이
고향에 돌아온 날은 왁자지껄하리라
따뜻한 고봉밥 넘치는 술잔
사투리가 갑자기 입에서 튀어나오고
잊어버린 친척 아이 이름을 묻는다
잃어버린 내 별명을 여기서 찾는다
내 인생의 남은 날들이여
이번 한가위만 같아라.
-귀향-
이은봉(시인, 광주대 교수)은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에서
“이승하의시집은 소외되는 것들, 버려지는 것들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시인의 표현을 빌면 “썩어가는 것들”,“혀, 혀가 자, 잘, 도, 도, 돌아가지 않는” 것들이기도 한
이들 존재에 대한 애정은 근원적인 것들, 민족ㆍ민중적인 것들에 관한 열정과 맞물리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의 양심을 즐겁게 고문한다. 공허한 관념을 되씹고 있는 오늘의 시단에서
그가 제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은 주목받아 마땅하다.”고 한다.
또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도 “이승하의 시는 끈질기게 고통의 도상학을 그려낸다.
고통은 내부(질병)에서, 혹은 외부(전쟁ㆍ고문ㆍ기아ㆍ폭력)에서 발생하고,
생체에 침입하고 감염시키며 에너지를 소진시키지만, 신생을 위한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산 것들 저렇듯 낱낱이/진저리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도 고통의 극점을 통과한 뒤에 신생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넘어서야 꽃은 피고, 고통이 여물어야 생의 진경에 도달한다.
이승하의 시편은 고통을 먹고, 혹은 고통을 머금고 피어나는 꽃들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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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름다운 모습 뒷면에는 치열하게 쓸 수밖에 없는, 삶도 시도 그렇게 하나만이 아닌
많은 것을 시로 보일 수밖에 없는 구슬픈 세계가 있었다. 사람의 손길,
마음길이 닿지 않는 외면되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슬픔이 담겨 있다.
그래서 고통의 실상을 일상으로 환기시키면서 소통을 이끌어내고 가슴에 그대로 와 닿는다.
스스로 문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의식한 것들을 표현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이라면서
“자신은 부족한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조사하고, 이해하고, 성찰하면서 완결된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라고 조근 조근한 말투와 조용한 목소리로 지난 상처를 풀어놓았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과 같이 시를 놓고 이야기할 때가 가장 좋다는 시인에게 보람은,
졸업한 학생들이 작품을 투고하려고 하는데 보아 달라고 연락했을 때, 등단 소식을 알릴 때,
또 각자 사회인으로서 자기 몫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릴 때라며 시인이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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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과 필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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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한영숙 시인 한비문학 수석 기자 |
촬영: 안은주 시인 한국 한비문학 작가협회 시낭송 분과 회장 |
월간 한비문학 5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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