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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텃밭시인학교 시창작 교실 요강
텃밭의 정신은 각양각색의 씨앗을 존중하는 터입니다. 개인의 창의와 개성을 꽃 피울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갈 사람을 기다립니다. 《텃밭시인학교》는 2024년 시창작교실을 개강합니다. 즐거운 시 창작이론과 행복한 시쓰기를 통한, ‘나와 세상과의 멋진 연애하기’,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 꿈꾸기’에 함께 할 詩의 동반자를 찾습니다.
일시 : 매주 월요반 · 화요반(10시 30분~12시 30분) / 첫째 시간 시 이론 / 둘째 시간 퇴고 및 토론 수업 / 월 8만원 / 이메일 수업 진행
장소 : 텃밭시인학교 사무실(수성구 무학로 187 (지산동, 녹원맨션) 101동 102호
강사 : 김동원 시인( 010-3276-8034)
특강자로 모신 분 : 김상환, 김석, 장하빈, 홍승우, 이승주, 이진엽, 박지영, 이자규, 변희수, 박소유, 김창제, 김청수, 박이화, 박정남, 이규리, 이하석, 이태수, 정하해, 류인서, 이진엽 시인
교재 : ◆ 김동원 평론집 『시에 미치다』 ◆ 김동원 편저 『신춘문예 100년사』
◆김동원 편저 『한국서정시 200선, 1권 2권』 ◆ 김동원 평론집 『시집사리詩集思理』
신춘문예가 걸어온 길
김동원 시인 / 평론가
한국의 신춘문예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신춘문예는‘여러 부문의 문학 신인 선발을 목적으로 신문사에서 매년 행하는 문예행사’로 정의할 수 있다. 1912년 2월 9일 매일신보의 ‘현상모집’은 신춘문예의 정의를 바탕으로 할 때, 그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당시엔 ‘각지기문(各地奇聞), 속요(俗謠), 소화(笑話), 시(詩), 단편소설(短篇小說), 서정서사(敍情敍事)’의 6개 부문에 걸쳐 작품을 모집했다. 이후 1914년 12월 10일자에는 ‘신년문예’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신춘문예라는 제도화된 용어의 최초의 출현이다. 신년문예 모집 공고를 보면 모집 장르로는‘시, 문文, 시조, 언문줄글, 언문풍월, 우숨거리, 가(唱歌), 언문편지, 단편소설, 화(畵)’ 등이 있었다. 그리고 심사위원의 경우에는 단순히 선자(選者)로만 표기했을 뿐 그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이후 1919년 12월 2일의 현상 모집에서는 신년문예 대신 신춘문예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한시, 신체시, 시조, 미어(謎語, 수수께끼), 만화를 모집했다. 이렇게 보면, 신춘문예의 시작은 우리 신문의 창간과 맥을 같이한다. 1925년과 1928년에 각각 신춘문예를 시행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의해, 신년 문학작품 모집 제도를 가리키는 보편적인 용어로 자리잡게 된다. 당시엔 각 장르마다 과제(課題)가 주어졌으며, 반드시 본격 문예 작품에 한정하지는 않았다. 주제가 여럿이면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썼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현상금이란 말 대신 ‘박사진정(薄謝進呈·사례로 얼마 안 되는 돈이나 물품을 준다)’이라 했다. 소설의 경우 1등에게는 60원, 2등에게는 30원. 당시 쌀 중급품 한 가마가 30원, 택시 요금이 1원(균일가)이다. 첫해에는 4편의 소설과 8편의 시가가 뽑혔다. 주제는 ‘싸움 이야기’와 ‘용 이야기’였다. (참조. 위키백과 및 이재복,「신춘문예 우리문학사에 어떻게 기여했나」, 『시인세계』, 2002 겨울)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신춘문예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한국경제≫, ≪경향신문≫, ≪세계일보≫, ≪서울신문≫, ≪매일신문≫, ≪광주일보≫, ≪부산일보≫, ≪국제신문≫, ≪문화일보≫ 등 25여 곳이 있다. 최근 2019년 ≪뉴스N제주≫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디카시’ 신춘문예 신설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내일을 가늠하는 지남(指南)으로서 신춘문예 제도는 신인 작가 발굴은 물론 문단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은 주로 ‘참신한 언어 실험’, ‘응시와 발견’, ‘언어의 조탁(彫琢)과 감각’, ‘현실의 부조리와 풍자’, ‘압축 혹은 형상화의 미학’ 등을 위주로 뽑힌다. 최근 성향에는 ‘소통과 흡인력이 높은 작품’, ‘독창적 체험의 깊이를 확보한 날 이미지’의 개성적 작품이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함께 응모한 다섯 편 작품들의 수준은 골라야 하며, 기성 시법의 흉내나 모방은 금기이자 탈락의 대상이다. 신춘문예의 활성화는 전문 시인들의 배출뿐 아니라, 고급 독자층의 확보 및 아마추어리즘을 걸러내는 검열의 기능을 갖기도 한다. 1990년대 이전까지의 신춘문예 작품은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곤 소통에 별반 문제가 없었으나, 2000년대 이후에 오면 대다수의 작품이 불통의 문제로 곤혹스럽다. 전자가 시적 소재와 대상, 형식과 내용, 주제 의식과 형상화의 방법을 ‘세계의 자아화-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이란 전근대의 방식으로 풀어냈다면, 후자는 미래시의 영향으로 신인마다 주체를 끌고 가는 방식이 자아의 분열과 확장, 극적 전개와 타자성으로 인해 크게 변모한 게 사실이다. 하여, 2010년에서 2024년까지 당선작 중 다수는, 독해 자체가 암호화된 기호처럼 보인다. 이런 언어의 분리와 단절성은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기상천외한 ‘실험’과 ‘파격성’이야말로 신춘문예에서만 가능한 도전이기도 하다.
이제 오독을 전제로 한 신춘시 읽기의 몇 가지 방법을 보기로 하자. 우선 ‘주체와 객체’를 인식하는 시선이 혁명적이어야 한다. 신선한 언어 감각의 강점을 흡수하고, ‘다름과 차이’를 인정할 때 비밀스런 독해는 비로소 풀리기 시작한다. 개인적 일상과 은폐된 언어 구조의 의미는 더욱 심층화되어 있다. 이런 숨겨진 무의식을 행간 밖으로 끌어내려면 오랫동안 행간을 곱씹어 보아야 한다. 시대가 언어를 규정한다. 이성과 의식의 통제와 지배를 거부하며, 초현실주의의 모호한 기분과 감정을 개인의 극단적인 언어와 이미지로 드러내는 최근 신춘시의 수법은, 갈수록 진화되어가는 느낌이다. 다층적 언어 실험은 언어를 형태소의 최소 단위로 쪼개고, 단어와 기호를 혼합하고, 색채와 시선의 이미지를 분산하여, 수많은 낯선 점으로 찍어 놓은 ‘주체’로 대체 된다. 행(行)과 연(聯)의 갑작스런 단절과 놀라운 비약은 신인의 패기이자 강점이다. 물론, 거칠고 모호한 언어 습관, 외래어 및 외국어의 과다한 사용은, 자칫 한국어에 대한 무시로 비춰질 수 있어 금기의 대상이다. 최근 신춘문예의 역기능도 제기된 바 있다. 문학작품, 특히 시는 ‘느낌’으로서의 작품 읽기가 중요하다. 신춘문예가 ‘불통 혹은, 지나친 언어 조작’으로 인한 시 만들기에 집중되었다는 비판이다. 소위 판에 박힌 신춘문예용 당선작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낳았다. 또한, 등단 과정에서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도, 작가의 이후 문학 활동을 보장받지 못하는 점은, 신춘문예의 위상을 점점 위축시키고 있다. 특히, 공정한 경쟁과 심사보다는 문단 권력화로 인한 ‘나눠먹기식’ 심사의 폐단은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춘문예가 한국어 사용자들의 공동 관심사이자 신춘문예 당선작과 등단 작가는, 문학 지망생들에겐 새해의 소망이자 로망roman이 아닐 수 없다. 뿐아니라, 신춘문예는 “우리 자신보다 더 예민하게 앓고 노래해 줄 새 소리꾼, 새 예언자를 기대하는 사회적 형식”(2014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심사평, 황현산/김사인)이란 점에서 더욱 새로운 관심을 환기한다.
이 장에서는 1950년대에서 2024년까지의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중에서 분기점이 될 만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초기 신춘문예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단편소설의 선구자인 황순원이, 동아일보에 시 「우리의 새날을 피바다에 떠서」(1933)란 작품으로 당선된 점이다. 서정주의 「벽(壁)」(1936), 조선일보 김광균의 「설야(雪夜)」(1938) 역시 눈길을 끈다. 신춘문예는 8·15광복 후 몇 해 중단되었다가 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필두로 상승세를 탄다. 55년 황명의 동아일보 당선작 「분수」, 56년 박봉우의 조선일보 당선작 「휴전선」, 59년 신동엽의 조선일보 당선작 장시 「이야기 하는 쟁기꾼의 대지」 등이 주목 받았다. 특히 박봉우의 휴전선은 6·25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의 문제와 분단 현실 인식을 첨예하게 다룬 점이 돋보였다. 62년 박이도의 한국일보 당선작 「황제와 나」는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정신적 깊이를 담았다. 64년 이근배의 한국일보 당선작 「북위선」은 시상 전개 방식의 활달성, 이미지의 치밀한 전개를 통해 분단 조국의 현실 문제를 현명하게 다뤘다는 점이 호평을 샀다.
70년 정희성의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변신」은 현실진단 능력에서 어떤 기존 유행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기류의 표현방법을 구사하여, 한국시의 매너리즘을 극복했다. 72년 정대구의 대한일보 당선작 「나의 친구 우철동 씨」는 현대가 갖는 불안의식과 가면의식을 가차 없이 천착한 수작으로, 시가 산문적 측면과 교섭하는 데 있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81년 남진우의 동아일보 당선작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은 그때까지의 당선작 중 가장 긴 시 제목을 기록했다. 81년 곽재구의 중앙일보 당선작 「사평역에서」는 시골 기차역 대합실을 배경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당대 현실에 빗대 밀도 높게 형상화 하였다. 84년 안도현의 동아일보 당선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85년 정일근의 한국일보 당선작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와 더불어 민중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시의 새장을 열었다. 86년 최영철의 한국일보 당선작 「연장론(論)」은 목수가 사용하는 연장을 통해 인간 삶의 존재 방식을 특이한 시선으로 조망한 사물 시로 자리매김했다.
89년 조기원의 경향신문 당선작 「풍자시대에서 - Videod의 꿈」은 90년대 전개될 시풍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그때까지 신춘풍의 기존 패턴을 깨뜨린 파격을 선보였다. 90년 박라연의 동아일보 당선작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는 서울에 사는 가난한 신혼부부의 사랑을 평강공주의 사랑법과 견준 수작으로, 현실인식과 신선한 감수성을 고루 갖춘 작품이었다. 92년 박현수의 한국일보 당선작 「세한도」는 외롭고 고된 제주 귀양살이에서도 단아하고 고고한 품위를 잃지 않았던 추사의 삶과 작품에, 시인의 준엄한 자기 성찰을 포갠, 세련되고 응축된 진실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94년 심보선의 조선일보 당선작 「풍경」은 시 속에 영화적 기법을 처음 도입한 시이며, 이런 세밀한 현실의 관찰과 현미경적 투시법은 90년 중반 이후 기성시단의 서정적 한계성을 뛰어넘는 계기가 되었다. 97년 배용제의 동아일보 당선작 「나는 날마다 전송 된다」는 텔레포트라는 가상현실을 제재로 하여 2000년대의 시적 흐름이 우주로 확장되리란 것임을 시사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2001년 김지혜의 동아일보 당선작 「이층에서 본 거리」는 언어 마디를 극미세 이미지로까지 치고 들어간 관찰력과 묘사력이 단연 돋보인다. 2001년 조유인의 매일신문 당선작 「금관」은 고대 석관의 밀폐된 뚜껑을 여는 듯한 돌출한 상상력으로 빛과 소리의 영롱한 합금을 빚고 있다. 2005년 윤진화의 세계일보 당선작 「모녀母女의 저녁식사」는 신선한 발상이 주목받았다. 유방암에 걸린 어머니의 이미지를-아마존의 여왕 히포리테-로 연상한 시적 비유는,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다른 사람과는 본질적으로 다름을 잘 보여주었다. 2006년 곽은영의 동아일보 당선작 「개기월식」은 시와 과학적 사실이 시인의 상상력과 버물려 어떻게 시로 재탄생되는지 보여준 수작이다. 2007년 신미나의 경향신문 당선작 「부레옥잠」은 근래 보기 드문 서정시의 완성작이었다. 부유성 수초인 부레옥잠이라는 작은 사물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여성성에 이어 닿게 한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2008년 문정의 문화일보 당선작 「하모니카 부는 오빠」는 현대시 속에 외국노동자(캄보디아)의 신산한 삶을 새롭게 환기시킨 작품이다. 한 소녀의 입을 통해 부정적이고 어두운 노동자의 고통스런 현실을 따스한 서정으로 희망과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2009년 임경섭의 중앙일보 당선작「진열장의 내력」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초점을 잃지 않고 삶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서류뭉치로 정의되는 직장인의 고단한 하루를 통해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폐쇄적 환경을 잘 응시한 작품이다.
2010년 성은주의 조선일보 당선작 「폴터가이스트」는 불안을 이미지의 질료로 비벼 수준 높게 형상화하였다. 진심이 묻어있는 어눌하면서도 차분한 어조, 공포를 해소시키는 짧은 농담, 살얼음처럼 떨리는 섬세한 문체로, 현대인의 불안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2012년 김민철의 문화일보 당선작 「풍경 재봉사」는 기존의 서정시에 한 발 비껴나 있는 작품이다. 유행과 시류에서 벗어나 신선한 서정 세계를 아름답게 그려냈다. 호수에 떨어지는 장맛비를 풍경 재봉사로 인식하는 형상화 과정 하나하나가 놀랍고 기발하다. 2013년 황은주의 중앙일보 당선작 「삼만 광년을 풋사과의 속도로」는 발랄한 상상력, 풋풋한 사유, 오랜 시적 내공과 함께 새롭게 찾은 사물의 성질, 감각의 명증성, 모국어를 최적화할 수 있는 야무진 시로 평가 받았다. 2014년 심지현의 경향신문 당선작 「갈라진 교육」은 그때까지 신춘에서 볼 수 없었던 교육의 적폐를 욕설을 통해 당돌하게 되묻는다. 그의 이런 말들은 불편하면서도 낯설고 새로운 생생한 발화로서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2015년 조선일보 당선작 「면面」은 독특한 위치에 놓인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평면 측면 얼굴 경계선 바닥 방향성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면이란 단어를 활용하여 우리 시대 삶의 다층적 ‘면’을 성찰한 작품이다. 2016년 변희수의 경향신문 당선작 「의자가 있는 골목-李箱에게」는 이상의 시 「거울」의 말투를 빌어, ‘의자’가 함의하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파편적 의미들을 깊이 있게 성찰했다. 특히 시 행간 툭툭 던지는 대화의 시법과 ‘의자’를 ‘침묵의 의지’로 인격한 점은, 시가 어떻게 철학과 소통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좋은 실례가 된다. 2017년 문보영의 중앙일보 당선작 「막판이 된다는 것」은 숙련공의 언어 부림과, 단단한 사유의 힘을 갖춘 시로 평가된다. 이 시는 산문시가 갖기 쉬운 상투적 서술의 위험을 아슬아슬한 정도에서 조절해내는 자유롭고도 능숙한 언어 구사와 일관된 주제 이미지를 행간 속에 밀고나간 힘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근래에 유행하는 미래시에서 한 발 비껴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2018년 강지이의 중앙일보 당선작 「수술」은 시의 구체성과 몽환성, 선명한 이미지와 신비한 여백미로 눈길을 끌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 침대에 누워 기다리는 짧은 순간을, 긴장 미학으로 끌어올린 점이 높이 평가된다. 2018년 변선우의 동아일보 당선작「복도」는, 소재를 다층적 은유에 의해 능란하게 확장함으로써 흥미로운 시적 사유의 전개를 보였다. 소재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힘과 대상을 옮겨가는 유연한 처리는 상당한 시적 내공을 가늠케 한다. 2018년 우남정의 세계일보 당선작 「돋보기의 공식」은 시어의 섬세함과 적확한 묘사, 이야기 구조의 탄탄한 전개 방식이 돋보였다. 주름을 아코디언처럼 폈다 접어지는 기막힌 묘사는, 세월의 무수한 실금으로 은유된다. 2019년 노혜진의 한국일보 당선작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았다」는 신선한 자기만의 화법이 돋보였다. 모두가 충분히 시라고 부를 만한 진짜 시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 시는 산문을 어떻게 시적으로 잘 끌고 갈 것인지를 보여준 작품이다. 2019년 류휘석의 서울신문 당선작 「랜덤 박스」는 소재의 참신성으로 상당한 시선을 끌었다. 상품을 무작위로 상자에 넣어서 파는 상술로 일종의 도박을 시적 소재로 가져와 현실의 그늘을 은유한 이 작품은, 실패 · 실종을 겪은 자만이 그릴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음화의 한 단면을 깊게 짚어냈다. 2019년 설하한의 한국경제 당선작 「물고기의 잠」은, 신화적 상상력을 이미지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능력이 탁월하다. 유목민의 떠돎과 인간의 회귀하는 서사를 시의 구조로 조직화해낸 것은, 젊은 신인의 독창적 안목으로 평가 된다. 2019년 오경은의 중앙일보 당선작 「계시」는, 다소 언어의 결이 거칠지만 세계와 정면으로 맞서려는 패기와 진지함이 돋보인 작품이다. 디스토피아적인 현실 속에서도 끝내 길들여지지 않는 우울과 분노를 그의 시들은 품고 있다. 매일 복권을 긁으며, 당첨되기를 무슨 계시처럼 여기는 현대인의 그늘과 소시민의 삶에 대한 통증을 제대로 집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조온윤의 문화일보 당선작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는, 자연의 냉혹한 질서와 죽음의 공포, 삶의 애착을 무심하게 바라본 점이, 높이 평가 되었다. 죽기 직전의 할머니가 바라본 풍경과 할머니의 죽음을 기억하는 호랑이의 교차된 시선을 통해, 스케일 큰 상상력으로 버무려낸 힘은, 신선했다. 이 시는 지상의 수많은 삶과 죽음을 자신의 몸으로 겪어낸 것 같은 할머니가 자신의 마지막을 풍경화처럼 바라보는 시선은 적요하다. 개개의 삶을 넘어 생태계에 각인된 기억에 따라 움직이는 호랑이의 시선과 교차시킨 점, 또한, 이 시의 관점 포인트다.
2020년 고명재의 조선일보 당선작「바이킹」은, 한 남녀가 놀이기구 바이킹을 타면서 한순간 겪게 되는 고통과 공포를 통해 우리 삶의 절망과 희망이 교직되는 순간순간을 절실하게 잘 드러내었다. 2020년 김동균의 동아일보 당선작 「우유를 따르는 사람」은, 일상을 이야기로 벼리고 여기에 재기를 담아 삶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흔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2020년 차도하의 한국일보 당선작 「침착하게 사랑하기」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다소 작은 세계를 말하려는 듯한 제목과는 달리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용기가 돋보였다. 천진해 보이는 어투가 단단한 세계를 뒷받침하고, 너른 시선이 가벼운 문체를 단속했다. 낯선 시선과 개성으로 주목받았다. 2020년 박지일의 경향신문 당선작 「세잔과 용석」은, 자신만의 고유한 호흡을 유지한 어투가 빛났다. 따뜻하고 유려하다가도 일순간 차가워질 줄 알았다. 사유가 과장 없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사람을 호명하며 이룩하고 있는 기체(氣滯)적인 시 세계는 정물적으로 보이면서도 또한 움직였다. 현대시에 매혹적인 시 쓰기로 기록된다. 2020년 김지오의 세계일보 당선작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는, 대화체, 소설화법을 활용한 내용 전개의 신선감이 빛났다. 자칫하면 외설스럽게 읽힐 수도 있는 한 남자의 호주머니 속 심벌을 화두로 내세워 사탕·사랑·꽃의 의미로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시적 능력은 예사롭지 않다. “어머, 꽃 피우는 당신, 마법사였군요” 같은 마지막 부분의 재기발랄한 표현은 압권이다. 2021년 강우근의 조선일보 당선작 「단순하지 않은 마음」은, 일일(日日)의 단일하지 않은, 갈래와 가닥이 많은 사건들이 어떻게 내면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주목한 작품이다. 돌발적이고, 바뀌고 달라지며, 충돌하고 흩어지는 일상, 그것이 곧 우리 존재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말한다. “마스크”, “소독된 병실”과 같은 시어를 통해서는 코로나 대유행의 사회적 상황을 투영하고도 있다. 무엇보다 ‘마음’과 같은 관념어를 제목으로 내세우면서도 정공법으로 개진해가는 뚝심에서 앞으로 펼칠 시작(詩作)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갖게 했다. 2021년 이근석의 동아일보 당선작 「여름의 돌」은, 무엇보다 과장이나 과잉 없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연스러운 리듬에 실은 점은, 예사롭지 않은 기량이다. ‘여름의 돌’은 청년의 불안과 기대를 수일한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2021년 신이인의 한국일보 당선작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는, 정돈되면서도 어질러진 시이다. 익숙한 지명을 동원하고 친숙한 어투로 말을 건네어 귀를 붙잡아 두면서도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리된 채 구성된 이미지 속에서도 곳곳에 돌출하는 의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2021년 윤혜지의 경향신문 당선작「노이지 캔슬링」에는, 기차 소리로 달려가는 지상의 시간이 있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공중의 시간이 있다. 날아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들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시는 부유와 진공이 꼭 공중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결처럼 규칙적으로 이어지던 관계가 대낮의 파도처럼 무너질 때, 일상의 비애를 지워내는 것 또한 일상이고 그것이 진짜 비극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특히 시 속의 목소리는, 숨기지도, 대놓고 드러내지도 않으며 이어짐과 멈춤의 무심한 굴절을 만들어내는 매혹이 압권이다. 2021년 김민식의 서울신문 당선작 「최초의 충돌」은, 상상력의 스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크고 빛나는 장면을 문장으로 포착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과거와 미래, 현실과 초현실, 미시적인 시각과 거시적인 시각을 넘나드는 화자의 폭넓은 관점, 예언을 떠오르게 하는 언술 방식에서 고요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 관찰이 곧 발명이 되는 시의 세계에서, 예리한 시선과 명징한 목소리로 고유의 세계를 그려내는 실력은 일품이다. 2022년 고선경의 조선일보 당선작 「럭키수퍼」는, 지금-여기의 사회 현실과 청춘의 당사자성이 감지된다는 미덕이 있다. 버려진 과일(홍시), 낙과(사과), 씨는 물론 껍질째 먹는 과일(자두), 그리고 부풀었다 터지는 단물 빠진 풍선껌, 헐렁한 양말, 납작한 동전을 먹는 자판기 등이 있는 ‘럭키슈퍼’가 화자의 현주소다. 젊은이의 미래와는 먼 오브제들이다. 화자는 ‘농담 맛’이 가득한 ‘럭키슈퍼’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화자의 동창이자 ‘럭키슈퍼’ 사장 딸은 감미료로 비유되는 ‘대기업의 맛’을 맛보고 있다는 대비도 능청스럽다. 퉁치면서 눙치고, 관(貫)하면서 통(通)하는 ‘행운’의 의미를 농담과 엮어내는 시적 패기는 높이 평가된다. 2022년 채윤희의 동아일보 당선작 「경유지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력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나아가 찰나적 순간을 자신의 삶에 대한 사유로 길어오는 기량도 믿음직스럽다. 2022년 오산하의 한국일보 당선작 「시드볼트」는, 비참한 죽음과 살아남음에 관한 이야기를 일관되게 풀어낸다. 아포칼립스를 예감하고 노르웨이 ‘시드볼트’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 ‘라’와 종말에 남겨진(혹은 종말을 목도 중인) ‘나’는, 어느 쪽이 살아남았는지와 상관없이 비슷하게 비참할 뿐이다. 삶과 죽음을 공평하게 끔찍한 것으로 만드는 저 압도적 절망감은 때로 ‘산불’로, 때로는 ‘깨진 도자기’나 ‘폭풍우’로 형상화된다. 시인은 “간신히 우연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폭풍우')로서 분명히 어떤 현실의 환유일 비극적 사태를 생생히 기록한다. 2022년 백가경의 경향신문 당선작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은, 명징한 언어로 작품을 구축한다. 어떤 모호성에 기대어 상상을 비약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유와 진술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방법론은 자칫 단순해지고 평이해질 위험이 따르는 것이지만 시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공고하게 세계를 확장시킨다. 미학적 자유로움은 정확함 위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름답고도 투명하게 상기시켜주는 시인이다. 2022년 이신율리의 세계일보 당선작 「비 오는 날의 스페인」은,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구성해가는 사람살이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이 인생론적 깊이를 함축하고 있는 수작이다. 그 안에는 음식들에 관한 숱한 기억의 구체성과 함께, 스페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더 멀리 떠나 있어도 좋을 사랑과 불꽃과 시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수없는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의 파노라마가 환상성과 역동성을 함께 거느리면서 그림처럼 사진처럼 다가온 선물이자 이벤트이다. 2023년 이진우의 조선일보 당선작 「홈커밍데이」,「멜로 영화」두 편 은, “운명을 동봉한 선물”(파울 첼란)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생의 변곡점일 수 있는 순간을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그러쥐고 모호함을 뚫고 나오는 시적 명증성을 붙잡은 시이다. 이 시들은 범속한 생활 감정을 의미가 분광하는 이미지로 빚어낼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언어 감각과 섬세한 느낌의 표현은 시의 풍부화를 이루는 데 보탬이 되었다. 숙고와 머뭇거림에서 길어낸 사유를 자기의 리듬에 실어 전달하는 능력, 능숙한 악기 연주자가 악기를 다루듯이 시를 연주할 줄 안다는 것은 분명 귀한 재능이다. 2023년 권승섭의 동아일보 당선작 「묘목원」은, 체험의 일단을 시적 상황으로 변환시키는 기량이 뛰어나다. 과장과 작위가 없이 단정한 문장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건에서 중층적인 의미가 배어나게 하는 시적 구성이 돋보이는, 군더더기 없는 수준 높은 작품이다. 2023년 이예린의 한국일보 당선작 「나의 마을이 설원이 되는 동안」은, 언어가 선명하고 정직하다.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진술들을 차곡차곡 쌓아 어느새 의무도 당위도 필요 없는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파편화된 삶의 장면들을 그러모아 큰 서사를 만들어내는 데 능숙하다. 불필요한 제스처 없이 일상의 세목들을 담담하게 펼쳐내면서도 그 안에 가계와 욕망과 폭력 같은 유구한 것들의 민낯을 기록한다. 사유와 관념을 단단히 비끄러매면서도 일순간 낯선 세계의 이면을 보여주는 지점들이 인상적이었다. 2024년 추성은의 조선일보 당선작 「벽」은, 감각, 사유, 언어라는 시의 세 꼭짓점을 오가며 빚어낸 뛰어난 작품이다. 그의 시편들은 읽는 사람을 충분히 매료시키며 시의 안쪽에 오래 머물게 한다. ‘벽’은 녹록하지 않은 신예의 탄생을 예고하는 수일(秀逸)한 작품이다. 버드 스트라이크 혹은 조류 충돌의 새에게 사람 사는 곳이란 온통 부딪힐 수밖에 없는, 차단된, 차가운 벽이다. 그러니 ‘새’의 선택지는 진화하거나 깨져 죽거나, ‘창’ 안에서 ‘옥수수’를 받아먹으며 길들거나 창의 ‘바깥’으로 넘어서거나, 숱한 ‘새 아닌 새’가 되거나 ‘진짜 새’가 되거나일 것이다. 비단 새뿐이겠는가. 이 시가 반문명과 비인간을 지향하는 시로 읽히는 대목이다. 미래의 시인으로서 우리 시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나갈 신예로 주목된다. 2024년 한백양의 동아일보 당선작 「왼편」은, 일상적인 장면을 사유화 이미지로 벼리는 솜씨가 탁월하다. 이미지를 통해 핍진하게 전개되는 사려 깊은 성찰이 마지막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2024년 맹재범의 경향신문 당선작 「여기 있다」는, 투명인간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생활의 감각으로 어떻게 변용해 시적인 순간을 발명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사라짐을 노래한 시는 많았지만,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던 “나는 투명인간”이라는 선언은, 부조리한 현실의 절박함을 멋지게 포착하였다. “밖으로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 어디에나 있”고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음을 담담히 보여주었다. “덜컥 적시며 쏟아지는 것”처럼 시도 그렇게 “여기에 있”음을 믿어보고 싶게 하는 주목된 시다.(『신춘문예 당선시집』, 문학세계사 전권 해설 참고)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