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霞
김동원
복사꽃은 다 지는데,
뭐 하능교 아지매
간당간당 양산 쓰고
구름 지짐 두어 판
낮술 서너 병,
볼또그리 죽인다
한 만 년 저 꽃밭에서
우리 뒹굴고 나오면,
이 봄 몸에
꽃필 랑가 나비 될 랑가
이불속 몸뚱어리
문드러지는 것도 모르고
하이고,
뭐 하능교 아지매 !
시「하霞」는 노을이 만든 색채 시이다. 시안詩眼을 통한 색의 프리즘은 광적인 흥분을 자아낸다. 푸른 하늘의 공감각적 언어 구성을 지나서, 섬세한 색의 붓질, 허공에 번진 복사 꽃잎의 부조浮彫, 삶의 환을 꿰는 인상을, 행간에 재빨리 채색하고 있다. 날이미지의 상상력을 스치고 지나가는 떨림의 풍경과 버무려 서정 화폭에 담고 있다. 색채 시의 세계는, 사물의 놀라운 시공간과 시인의 내부를 넘나드는 틈입을 찌른다. 이런 시화동원의 세계는, 화폭 속의 오브제들이 시적 주체로 변주되며, 언어로 재구성되는 과정 시학을 말한다. 기존의 동일성의 시학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서정 언어의 전면적 균열을 가져온다. 나는 특정 계보에서 비껴 난 인상주의 화가들이 사용한 색의 순간 터치를, 언어로 은유하여 화폭에 드로잉 하였다. 기존 시의 해체나 실험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수용하여, 전혀 다른 세계로의 서정시를 추구하고 싶었다. 클로드 오스카 모네(Claude-Oscar Monet) 프랑스, 1840~1926년)가 〈인상, 해돋이〉(48x63cm, 1872년 작作.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소장)에서 시도한 붉은 빛의 시어를, 노을「하霞」를 통해 즉흥적으로 물들이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세밀한 묘사와 치밀한 관찰 대신,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터치의 분할을 압축과 비약을 통해 느낌의 언어로 채색하였다.
그렇다. 시「하霞」의 모티브는, 복사꽃 아래에서 양산을 들고 한 여인이 꽃잎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는 순간을, 수채화로 포착하였다. 이 시는 그림처럼 읽어주기를 원하는 시적 의도가 바탕색으로 깔려있다. 붉은 꽃빛이 만발한 과수원은 그 자체가 다겹 이미지의 화폭이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빛은 미묘한 색조들의 교향악이다. 꽃나무와 나비, 봄바람과 우산 쓴 여인의 실루엣, 푸른색의 하늘과 지평선, 들녘 너머의 산의 음영을 언어로 바꿔내는 작업은 실로 경이로웠다. 공간과 사물 간의 빛의 단순한 배색은, 시의 행간을 순수한 색채로 변화시켰다. 색채 시의 요체는 복사꽃의 개화와 낙화의 인상을, 어떻게 삶의 허무와 겹칠 하느냐가 관건이다. 노을은 복사꽃으로 번지고, 복사 꽃빛은 여인으로 번지고, 여인은 화무십일홍으로 사라지고 마는, 그 순수한 색의 대비가「하霞」이다. 이런 꽃의 풍경은 화폭 속 “낮술 서너 병”을 마신 사내로 바뀌고, “간당간당 양산” 쓴 여인은 스치고, 무상함을 느낀 사내의 내면적 심미는 온통 빨간색이다. 하여 “한 만 년 저 꽃밭에서 / 우리 뒹굴고 나오면,” 이미 둘의 몸은 흙 속에 문드러져, 꽃이 나비가 되고, 나비가 꽃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霞」의 허무 의식은 “하이고, / 뭐 하능교 아지매”에서 극점에 놓인다. 감아치는 이런 외형의 리듬은 사투리의 아이러니한 맛과 아주 결이 잘 맞는다. 사투리야말로 인상파 화가들의 정열적이고 원초적인 색채를 가장 잘 터치한 언어이다. 이런 말투는 직관의 언어이자, 사물 간의 미세한 심미적 감각의 차이뿐 아니라, 다채로운 시각적 착시 효과를 반전시킨다. 그렇다. 시「하霞」는 ‘찰나에 포착된 그림’을 ‘언어’로 그려낸 색채의 향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