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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구원은 취소될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이 확정된 절대로 취소되지 않는 사람의 특징 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유튜브 제목에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구원이 확정되면 취소되지 않는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교단에 관계없이 공통적입니다. 성경 말씀에 위배되지 않게 구원이 확정되고 절대 변치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구원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의 특징은 상호간입니다. 내가 약속을 어기고 깨버렸는데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나는 계약금만 주었고 상대방은 계약금만 받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집을 내 집이라고 합니까? 말씀은 그렇지 않은데 수많은 목사님들이 성도를 잠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원은 확정을 받으면 절대 변치 않는다고 어떤 분이 말씀하신 것을 200만이 봤습니다. 확정되면 변치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바람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출애굽기 32장을 말씀드리면 돌아오는 대답은 구약이라 하고 많은 분들이 성경을 변개합니다. 성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2장 30절부터 33절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이것은 생명책에 대한 말씀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백성을 용서해줄 수 있다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져도 좋다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대하는 대답은 무엇입니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면 지워지지 않는다고 해야 목사님들이 맞는데 그렇게 말씀을 안하십니다.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한 가지 죄를 범하면 구원을 못 받다는 뜻이 아니라 십계명의 언약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기겠다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신을 만들었습니다. 돈과 물질, 세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약을 파괴했다는 뜻입니다. 언약을 저버리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되고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하면 화목이 깨진 것인데 어떻게 그 상태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구원의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성경 구절들을 짜맞춘 것입니다. 그것은 구약이라고 말하면 요한계시록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에 하나님이 언약을 맺은 처음과 마지막 요한계시록 끝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1절부터 15절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출애굽기가 알파라면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은 오메가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성도님에게 가장 왜곡되게 가르치는 구절이 있습니다.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 이것만 적어놓으면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면 다 갚아주신다는 뜻입니까? 위에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11절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여기에서 일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교회 생활입니까? 여러분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린 자는 그대로 두라 하시고 내가 올 때 각자에게 줄 상이 있다고 하십니다. 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의를 행한 상을 주실 것이고 거룩한 자는 거룩한 상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며 살고 있느냐에 대해서 질문하고 계십니다. 위에 말씀을 빼고 행함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면 이단이라고 합니다.
행한다는 것이 왜곡되고 부딪히는 이유는 구약을 오해해서 그렇습니다. 구약을 모르고 빼고 없애다 보니까 신약 말씀만 가지고 맞추니까 안 맞습니다. 어떤 구절에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하고 어떤 구절은 행함이 따라야 된다고 섞여 있는 것입니다. 행함으로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는 성경 구절을 보면 혼동되고 서로 부딪히니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바울이 한 말이 서로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이라고 빼고 바울과 야고보가 한 말이 다르니까 서로 또 부딪힙니다. 온갖 이론들을 붙이고 심지어 이론이 잘 안 맞으니까 야고보서는 찢어야겠다는 말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려워서 설교하는 목사님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는 대로 구원하시고 또 멸망시키겠다는 말씀들이 왜 이렇게 부딪힐까요? 구약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절대로 부딪히지 않고 오해에서 생긴 잘못된 이론들입니다. 오늘 그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절에서 21절
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시록 말씀을 제하여 버리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시겠다고 합니다. 계시록 말씀은 반드시 전해야 되고 이 말씀은 열려 있는 책입니다. 닫혀 있는 비밀 책이 아닙니다. 어떤 이단은 계시록 말씀이 닫혀 있고 본인만 풀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혼자하는 말이고 성경은 정확히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계시록의 말씀은 열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책에 이름이 올라가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지워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십니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계시록에 하셨던 말씀은 동일합니다.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바꾸는 것은 실력이 부족한 것이고 성경이 틀린 게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고 기초 부족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부터 27절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바울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구원받으려면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운동하는 사람은 썩을 것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구원을 얻기 위해서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 몸을 쳐 복종함으로 구원받겠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내 몸을 쳐 복종시켜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바울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아 살리라 했습니까? 이것은 하박국에서 나온 말씀을 인용하여 ‘기록된 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오해가 생긴 것은 믿음이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헬라어로 번역되어 사람들이 혼동한 것입니다. 믿음은 히브리어로 [에무나]입니다. 성실, 변함없는 충성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 믿음이 변치 않는 것입니다. 목이 잘리고 화형을 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이혼을 당한다 할지라도 이 믿음은 변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내 삶과 생활에 1번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 번역을 하기 때문에 혼동할까봐 위에 설명을 붙였습니다. 말씀을 편집하기 때문에 왜곡시킨 것입니다. 아까 각각 일한대로 상을 주니까 열심히 교회의 일을 해야 상 받는다고 얼마나 많이 왜곡합니까? 삶 속에 의롭게 행하고 거룩하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세상과 구별되고 의롭게 사는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원래 의미가 구약의 히브리어 원어와 똑같은 뜻입니다. 이것은 고백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바울이 같이 적어놨는데 죄송하지만 목사님들이 성경 말씀을 왜곡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입니다. 부부가 왜 싸웁니까? 듣기 싫으면 안 들리고 우리의 귀와 기억은 왜곡되어 있어서 싸움이 됩니다.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우리의 생각이 있습니다. 내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곡시켜서 성경을 이해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성경을 바꾸는 일들은 인류가 처음부터 했던 일입니다. 하와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생각은 왜곡되어 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마태복음 5장 말씀을 보다가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3절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신 것은 아버지의 보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되는 산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자 가르침을 받아야 될 제자들이 나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예수님이 가르치는 대상은 수많은 무리가 아니라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에게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신 것이 마태복음 5장에 나오고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산에서 가르치신 것이 바로 마태복음 28장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것은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아래 낮아진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십니다.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으면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구원은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예수님입니다. 구원은 주인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뀐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여기서 복은 [바라크]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를 복이라는 단어로 한 번 더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다.(경배하다. 찬양하다) 뜻입니다. 이방인들은 그냥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복을 주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고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은 복을 주시는 대상이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마음의 무릎을 꿇은 자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무릎을 꿇으면 그가 복을 주십니다. 이 복은 천국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아래 내 생각을 낮추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셨기 때문에 주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예수께 속해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입니다. [바라크]의 의미가 무릎을 꿇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아래 곧 말씀이신 예수께 무릎을 꿇은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앞에 무릎을 꿇은 상태에 있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놀랍게도 [바라크]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무릎을 꿇었다가 펴면 내가 높아지고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릎을 꿇었다가 세웠더니 구원이 취소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구원이 확정되고 절대로 취소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시편 1편에 나옵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이라고 나오는 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라크]가 아닌 [아쉬레]입니다. [아쉬레]는 구원이 확정됐다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확정되고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행동을 취하고 그분이 복을 주시는 게 아니라 그냥 복이 있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아쉬레 하이쉬]로 나옵니다. ‘그 사람의 복이여’ 입니다. ‘너는 복이 있다, 구원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바라크]는 구원을 받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면 [아쉬레]는 구원이 확정된 상태입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확정받는가 점검해봅시다.
시편 1편 1절부터 6절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복 있는 사람의 뜻이 ‘그 사람의 복이여’입니다. ‘너는 구원받았다. 좋겠다’ 는 뜻입니다. 구원이 확정되어 있는 [아쉬레]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확정받았는가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습니다. 악인은 히브리어 [라사] 입니다. 뜻은 유죄한자,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 놀랍게도 유죄 판결을 받은 자는 인류입니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유죄 판결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꾀에서 꾀는 히브리어로 [에차] 뜻은 의도, 도모, 생각입니다. 모든 인류의 생각을 왜 악인의 꾀라고 하실까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자기 생각에 붙잡혀 있는 자는 악인이고 그의 생각이 바로 악인의 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것은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생각에서 결정됩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있는 자,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똑같은 말씀입니다. 하와가 생각으로 멸망 당했습니다. 죄가 점점 어떻게 커질까요?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은 히브리어로 [하타]라고 합니다. [하타]는 표적을 벗어나다는 뜻도 있지만 길을 벗어났다는 뜻이 있습니다. 죄인의 길에 섰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길로 가려고 섰습니다. 생각을 하고 있었던 죄가 한 단계 더 커진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죄인의 길입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는 히브리어 [레침]이고 조롱하는 자란 뜻입니다. 악한 말로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 오만입니다. 오만은 우리가 거만하다고 생각하지만 겸손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요? 예수님을 안 믿고도 마음속으로 자기의 선한 행위 때문에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말로써 조롱하는 자는 구원이 완전히 취소된 자들입니다. 자리에 앉아버렸으면 돌이키기가 어렵습니다. 구원과 멀어지는 과정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생각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다음은 내 생각대로 살아가고 세 번째는 하나님을 부정해버린 자들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어떤 자가 구원받는게 확정되는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이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기서 율법은 번역이 잘못되어 주의하셔야 됩니다. 율법은 여호와의 가르침이고 십계명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언약 관계입니다. 구원을 받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즐거워합니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더 중요한 자이고 심령이 가난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내 생각보다 위에 있는 자는 언약을 즐거워하고 끝나는게 아닙니다.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절대 잊지 않고 아침과 저녁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어는 한 단어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한국말로 좁게 표현한 것입니다. 히브리어 묵상하다는 [하가]이고 ‘읊조리다’는 뜻입니다. 조용히 반복해서 말한다고 묵상이라고 한것입니다. 묵상을 ‘읊조리다’ (말한다) 로 번역을 바꾸면 성도들이 더 은혜받을 줄 믿습니다. 주야로 말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언약은 맹세의 뜻과 같이 7번 말하는 것이고 아침과 저녁으로 계속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가]에는 두 가지 뜻이 더 있습니다. 하나는 ‘으르렁거리다’ 이것은 짐승이 먹을 것을 뺏기지 않고 반드시 먹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반드시 먹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나를 먹고 마시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뜻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서 말씀을 계속 사모하여 먹으려는 것입니다.
또 ‘경영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려면 계획하고 결정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서 결정합니다. 생활속에서 말씀에 내 생각을 낮추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말씀과 내가 싸워서 말씀이 승리하는 상태를 바울이 구원이 확정됐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려 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인도 사랑하시고 구원받아야 될 자들이고 지옥이 확정된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너무 불쌍히 여기시고 안타까워 하십니다. 구원이 확정된 사람은 언약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언약을 기억하며 언약의 말씀이 삶의 지표가 되는 사람은 구원이 확정됐습니다. 여러분 돌아보십시오. 확정되고 절대 변치 않는 이것이 [아쉬레]의 복입니다.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옮기겠다는 것입니다. 옮겨주시는 장소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천국에 가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자라는 뜻입니다. 하늘나라 새 예루살렘성의 생명나무 과실을 먹읍시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아버지의 보좌로부터 강이 흘러 넘치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자가 될 것이라고 보장해 주십니다.
언약을 저버린 자는 구원을 못받습니다. 예레미야서에 다시 언약을 맺을 것이니 그들의 마음에 새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렘32:40) 언약을 맺은 자는 언약을 지켜야 됩니다. 언약을 안 지키는 것은 한 두 가지 죄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언약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으로 갔습니다(딤후4:10)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엡4:30)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살전5:19) 성령을 소멸하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성경은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언약을 지키는 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아프고 다리가 부러지고 하는 일마다 이상해도 다 형통한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 하나님이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저주받은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통하여 여러분이 정화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서 오직 하나님이 1번이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1번이 아니라 내 생각이 1번인데 믿음이 좋다고 착각을 합니다.
이번주에 믿음이 좋은 분이 한의원에 오셨습니다.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일을 겪어서 몸이 망가지졌습니다. 더 힘든 것은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던 마음이 무너지고 죽고싶다고 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몰랐다고 우시는 그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분은 우울증 전 단계인데 예수 믿는다고 정신병에 안드는 것이 아닙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갔던 엘리야는 우울증에 걸려서 천사가 찾아와서 먹여줘도 안나았습니다. 시내산에 올라갈 때 하나님이 폭풍을 일으키고 지진과 불에도 꼼짝을 안합니다. 우울증에 걸려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립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특심했고 자기 생각이 강했습니다. 잘 믿는 줄 알았고 잘하는 줄 착각합니다. 내 생각이 강하면 하나님이 내 속에 주인되지 못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야 무너집니다. 내가 너를 데리고 갈 것이다. 너는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다. 이제는 내 생각을 믿지 않게 자신이 초라해졌던 많은 일들이 있고 낮아져야 구원받습니다.
모세는 대인기피증에 걸려서 형제와 누구도 안 만나고 혼자 고독하게 40년을 살았는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흥미를 일으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안타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가니까 하나님이 신을 벗게 합니다. 네가 원하는 길을 가지 말고 너의 생각을 벗고 내가 인도하는 길로 따라 오라는 뜻입니다. 이게 신발을 벗으라는 뜻입니다. 죄인의 길을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러 가라고 갑니까? 다섯 번이나 안가려고 합니다.
40세때는 능변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시키려던 모세가 심각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걸려서 입이 굳어져버리고 말이 안나옵니다. 하나님이 대신 말할 아론을 보내주십니다. 여러분 인생에 많은 일들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보기에는 망했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망한게 아니고 다 형통한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형통은 잘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생각하는 형통은 망하는 것입니다. 쫄딱 망했더니 내 생각이 내려가서야 모세를 쓰시고 엘리야를 쓰셨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이런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요나는 분노조절 장애입니다. 화나면 절대로 멈춰지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분노조절 장애가 있었는지 하나님의 명령이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선장이 물었을 때 나 때문이니 죽이라고 합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달라서 너무 분노하고 하나님이 싫어서 도망가다 붙잡혀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회개합니다. 요나가 3일 동안 죽도록 회개해서 깨끗한 사람이 되어 나왔을까요?
모세는 끝까지 대기피증 안나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할 때마다 모세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피하여 숨어서 그 상황에 있고싶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쓰셨습니다. 생각이 완전히 박살난 모세와 엘리야를 쓰셨습니다. 요나는 살아났더니 기쁘게 전할까요? 니느웨 성은 사흘을 돌아야 되는 큰 성인데 요나가 반나절 만에 다 전합니다. 걷는 속도의 6배로 뛰었다는 뜻입니다. 빛의 속도로 이야기하고 산에 올라가서 니느웨 성이 멸망하지 않으니까 하나님과 싸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각이 내려지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하는 일이 늦어지는 과정들과 잘 안되는 일이 다 형통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과 하나님 말씀의 형통은 다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그러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형통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아쉬레]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고 생명나무 시냇가로 갑니다. 새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로마서 1장 16절 17절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하박국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수가 구주가 되게 하라. 너의 생각의 주인이 되시게 하라. 그러면 천국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아래 내 생각을 내려놓으면 구원받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고 모든 인류에게 열려 있습니다. 작은 교리에 붙잡히지 마십시오. 말씀이 중심이 되셔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권능이 이루어져서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아까 옮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 또한 헬라인에게 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하나님의 의는 곧 예수님이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믿음으로 시작한 단계에서 구원받은 것이고 믿음의 결론은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라고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서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을 성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데 아닙니다. 성화 과정이 아니라 시작부터 구원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습니다. 병상에서 예수 믿고 구원받는 수많은 분이 계십니다. 이 상태를 끝까지 지속하면 구원받는다고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부터 13절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처음에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예수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믿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으면 예수로 인하여 구원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아까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는 구원을 얻는 똑같은 말씀입니다. 시편 1편에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 마음에 믿다가 입으로 시인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일회성입니까? 일회성 고백하는 것에 포인트를 두고 구약을 모르니까 신약을 착각한 것입니다. 바울이 한 말은 반복성입니다.
11절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12절 유대인이나 헬라인나 차별이 없습니다. 구원은 모든 인류에게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아버지입니다.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 그를 믿고 이름을 부른 자, 주야로 묵상하는 자, 주야로 엎드리는 자는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13절 누구든지 주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의 이름을 밤낮으로 부릅시다. 그의 언약을 굳게 붙잡읍시다. 끝까지 이 길을 따라갑시다. 그런 자는 반드시 주님께서 구원이 확정됐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병이 들고 힘든 일이 있고 아픈 일이 있어도 다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어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하여 여러분의 마음을 낮추시고 구원이 확정되고 반드시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어떤 자가 구원이 확정되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밤낮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예수로 인하여 구원받는 이 은혜에 우리가 밤낮으로 엎드리겠습니다.
삶 속의 생활 속에 예수님이 주인 되어 내 생각을 이기고 살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