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못 생긴 양파랑 잘 생긴 양파가 살았다. 이들은 처음부터 못 생기고 잘 생기지 않았다. 양파망에 담겨 3000원에 팔려 온 열댓 개의 양파 중 둘이 실험용으로 선발되었다. 둘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몸집도 비슷하고 뿌리 수염 개수도 비슷하고 빛깔도 비슷했다. 닮은꼴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키며 선발된 양파 둘은 똑같은 컵에 똑같은 양의 물에 뿌리를 담그고 엉덩짝을 컵 입구에다 떡하니 걸치고 둘이 똑같은 모습으로 앉았다. 화장실 볼 일을 보는 것 같아 쿡 웃음이 나왔다. 양파가 살짝 볼을 붉힌 것도 같다.
'잘 생긴 양파', '못생긴 양파' 이름표 다는 것을 끝으로 모든 실험 준비는 끝났다. 두 양파는 2미터의 거리를 두고 거실 탁자에 올려졌다. 우리는 성형외과 의사가 되었다. 메스와 거즈와 소독약은 오로지 하나, 바로 말이었다. 심심하면 양파에게 가 말을 걸었다.
"어휴, 꼴 보기 싫어. 넌 어쩜 이렇게 못 생겼니? 에구 이 꼴이 뭐꼬?"
'못 생긴 양파' 이름표를 단 양파에게는 스트레스로 응축된 몹쓸 말을 쏟아 부었다.
"어머, 넌 양파 중에 제일 멋진 양파구나. 눈 부셔라. 예쁜 양파야, 아주 맛있게 자라다오. 이 매끄러운 피부 좀 봐."
잘 생긴 양파에게는 좋은 말로 쓰다듬었다. 애들 친구들이 놀러 와도 양파에게 말 걸기를 요구했다. 쭈빗거리다 건넨 말들은 아이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넌 밤새 게임만 했냐? 팍삭 삭았네. 삭았어."
"넌 공부도 잘하게 생겼네. 아이큐가 150은 돼 보인다."
"넌 초정리 샘물같이 맑구나."
"넌 구정물이야."
이런 부탁을 많이 들어본 듯 천연덕스럽게 미션을 수행하는 코디 아주머니 뿐만 아니다. 헉헉대며 물건배달을 온 택배아저씨에게도 시원한 냉수 한잔과 함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양파 마이크를 갖다 대며 한 말씀 부탁드렸다.
"허, 이건 포장상태도 별로야. 배달하고 싶지 않은 양파네. 구려 구린내 나."
"햐, 미스 양파구나. 나랑 같이 다니면 좋겠다. 잘 있어라 이쁜 양파야."
택배 아저씨가 이쁜 양파에게만 손 흔들어주고 떠났다.
아마 일주일쯤 지났을 것이다. 양파 몸속에서 싹이 나왔다. 그러더니 점점 달라졌다. 양파의 위치도 공평하게 번갈아가며 바꿔줬고 물도 똑같이 갈아줬는데 '잘 생긴 양파'는 좋은 말만 들어서, 칭찬의 말만 들어서 예쁘고 싱싱하고 쑥쑥 자라 푸른 싹이 풍성하게 달리며 날마다 자라는데 못생긴 양파는 비실비실 가늘고 누렇게 떠서 애들 말대로 밤새 게임을 한 양파의 몰골로 변해 갔다.
양파 키우기는 내 인생의 중대한 실험이었다. 한 마디 말이 가지는 파장. 말 한 마디의 위대함을 체득했다.
얼마 전 베스트셀러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은 이 양파와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다. 물이 좋은 말을 들으면 웃고 나쁜 말을 들으면 찡그리는 사진이 특수촬영기법에 의해 촬영되어 있었다. 물이나 양파가 이럴진대 사람은 더 말해 무엇하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넌 왜 맨날 그 모양이니?" 이런 말들은 먹음직스런 양파가 못생긴 양파가 된 것처럼 빛나는 아이의 인생을 시궁창으로 떠민 악의 손이 되고 말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두 양파는 내 휴대폰에 영정사진으로 찍히고 라면과 함께 우리 식구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잘 생긴 양파는 분명 이쁜 똥으로 나왔을 것이고 못 생긴 양파는 못생긴 똥이 되어 나왔을 것이다.
나는 못 생긴 양파 먹은 것을 후회한다. 기왕이면 못 생긴 양파에게 사랑 담긴 인사를 건네고 날마다 시를 읽어주고 잘 생긴 양파로 거듭나게 되었을 때 먹었으면 남다른 똥을 누었을 걸 후회막급이다. 명시를 들으며 거듭난 양파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 내게 뜻밖의 영감을 주어 대작의 행운을 안겨줬을 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첫댓글 잘 보았어요. 화이팅~
나도...근데 못생긴 양파 먹은 걸 후회하지 마시길...담부터 안 먹으면 되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