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요약]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679387?sid=103
: 책 <‘나’라는 착각>은 자아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저자는 자아란 개념이 뇌가 만들어낸 편집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기억과 현재의 인식 역시 우리가 가진 사전 정보나 믿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인식에 의해 영향을 받으므로 불완전하다고 주장한다. 라캉의 상상계 개념이 떠오르는 기사이다.
https://youtu.be/uUrMsGEj_rc?si=HhEdiTkMAGkFHRFo
(강의의 핵심 개념 정리)
상상계 : 상상계는 사회와 구별되는 개인의 주체적인 영역으로,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모두 상상계의 인식을 통해 우리에게 받아들여진다. 자아는 자기중심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계에서 끊임없이 선입견, 고정관념, 잘못된 인과관계 설정 등의 오류를 만들어내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상상계는 평생 주체를 지배하는 심리적 구조이므로, 이러한 오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상징계 : 상상계의 반대로, 말 그대로 현실의 영역이다. 언어적 구조가 바로 상징계의 본성인데, 이에 기초해 형성된 모든 상징, 문화, 규칙의 영역이다. 언어적 구조는 나와 주체의 관계를 인식하게 하고, 주체가 타자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가 언어를 마음대로 바꾸면 타자와 소통할 수 없게 되듯이 여기서 언어는 법의 가치를 띠고, 언어의 사용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이다. 언어의 세계에 들어오지 않으면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이는 즉 상징계가 상상계보다 선행하고, 한 개인은 상징계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상상계에 대한 인식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후 상징계를 인식하게 된다는 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자크 라캉이 설명한 아이가 상상계를 거쳐 상징계로 들어오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였다. 상징계 1단계에서 아기는 아직 다른 욕망을 찾기 못해 정체성을 찾기 위해 어머니의 욕망과 동일화를 이룬다. 이후 상징계 2단계에서 아버지가 개입하자, 아기는 상상과 자아를 분리하게 되고 어머니가 아닌 자신을 욕망의 주체로 세울 수 있게 된다. 상징계 3단계에서 아기는 아버지의 법, 언어로 대표되는 사회적 질서나 규칙, 타자와의 관계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여기에 자신을 일치시킴으로써 상징계에 진입하게 된다.
*용어에 대한 설명은 이미 기사 요약에서 이루어져 생략하겠다.
[나의 생각]
정체성을 지키는 인식론
최근 후배에게서 우리 학교에서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어울려야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 또한 입학 후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분투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현재 우리 학교는 정체성을 지키기 어려운 구조이다.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공동체 속에서 보내 타자에 끊임없이 나의 정신의 일부를 내주어야하고, 자신의 내면을 돌볼 여유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입학 이래로 원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나지 않기 시작했고, 다시 내 정체성을 찾고자 교내 사회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물리적으로는 사람들과 멀어질 수 없었기에, 인식적으로 나를 분리하는 방법을 생각해냈었는데, 최근 자크 라캉의 철학을 접하면서 이것이 자크 라캉의 상징계, 상상계 개념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철학에 대한 해석과 함께 나의 인식론에 적용해 서술해보려 한다.
상상계와 상징계의 개념을 요약하자면 상상계는 자신의 생각을 믿는 세계, 상징계는 이미 구성된 세계이다. 이를 확장해석하자면 한 개인은 항상 상징계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상상계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지는 상태에 놓여진다. 곧 우리의 존재는 상징계와 상상계 사이의 경계에 놓여져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각 계와의 거리에 따라 정체성을 인식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생각이다. ‘정체성’을 라캉 철학의 범위 내에서 정의내리면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는데, 정체성은 자기중심성의 성격을 띠는 상상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 상상계와 거리가 가까울수록 자아정체성을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 해석될 수 있다. 자아를 잃어버린듯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상징계에 과도하게 예속되어 상상계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므로, 정체성을 다시 찾기 위해선 상상계에 대한 인식을 되찾아야한다. 이때 상상계를 통해 인식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될 수 있는데, 우리가 사회활동을 하는 과정 속에서 나를 인식하는 것과 혼자 있을 때 나를 생각하는 게 다르듯이, 상징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과 상상계 내에서 자기를 생각하는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타자와 공존해야하는 시간 속에서 자아를 잃지 않으려면 우리는 후자를 선택해야한다. 자기를 계속 생각한다는 것이 혼자 있을 때 수월한 것은 맞지만, 우리는 의도적으로 주변으로부터 분리해서 자신을 인식해야만, 상상계를 뚜렷하게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만 실존의 느낌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주체, 즉 나라는 존재는 것은 상상계, 즉 언어의 구조 하에서 설명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언어의 구조는 주체의 위치를, 역할을 결정하기 때문에 주체는 상징계로부터 완전한 분리를 이룰 수 없다. 그저 상징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조금 더 자기중심적이고 기만적이려 분투할 뿐인 것이 내가 주장하는 인식론이다. 이 글은 우리가 일상에서 받는 추상적인 느낌을 구조적으로 설명하고, 그를 통해 자아를 인식하는 행위를 의식적으로 생각해보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