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학교 문창과 주최 전국고교생 백일장은 올해로 제14회 째를 맞는다. 벌써 상당한 전통과 연륜이 축적된 셈이다. 이번 백일장의 예심에도 엄청난 응모자들이 몰려왔다. 전통과 연륜이 축적된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 예심에 통과한 60여명(운문, 30명, 산문 30명)을 초대해 지난 5월 19일(토) 본교 문예창작과 창작실습실에서 직접 백일장을 치렀는데, 이번 백일장의 시 부문 시제는 ‘바지’와 ‘문’이었다.
이번 백일장에 제출한 시들을 심사하면서 느낀 것은 신선한 발상의 작품들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고만고만한 수준의 시들이 고만고만하게 몰려 있어 심사를 곤란하게 했는데, 무엇보다 가족의 일원에 기대어 시를 발상하는 습관이 상투적으로 보였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를 상상의 기초로 삼지 않으면 시를 못 쓰는가. 이렇게 발상된 시들을 읽으며 백일장에 참가한 학생들의 상상력이 너무 획일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다소간 새로운 이미지와 발상을 담고 있는 시들을 골라 장원에 노연지(대광여고 3년)의 「문을 닫아주세요」, 차상에 심현지(문정여고 3년)의 「바지」, 채연우(고양예고 3년)의 「문」, 차하에 백희원(동아여고 3년)의「문」, 천선미(대광여고 3년)의 「문」, 이재희(문정여고 3년)의 「바지」, 류민주(해남고 3년)의 「문」, 한진우(서강고 3년)의 「서재의 문」을 밀기로 했다. 장려로는 정다솜(국제고 3년)의 「아버지의 문」, 임새별(전대 사대부고 3년)의 「엄마의 문은 참꽃보다 븕다」, 김연진(설월여고 3학년)의 「바지」, 김지선(청주외고 3년)의 「문」, 전수명(고양예고 1년)의 「할아버지의 바다」를 밀기로 했다.
장원을 차지한 노연지의 시 「문을 닫아주세요」는 미장원에서 일하는 ‘엄마’의 내면 심리를 미장원의 용어들을 사용해 실감 있게 표현해 주목이 되었다. 특히 “마흔 여섯 암컷”인 엄마가 아빠 없이 “홀로 살아남기 위한 습성”으로 “쉭쉭, 욕설을 뿜어내는” 대목이며, “서둘러 미용실 문을 닫”는 대목 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차상을 차지한 심현지의 「바지」는 초경의 결과로 “구름무늬 잠옷바지에” 핀 노루오줌과 관련된 상상력이 즐거움을 주었고, 채연우의 「문」은 ‘쾅’하고 문이 닫히면서 고양되어 가는 인간의 단절된 삶에 대한 통찰이 재미를 주었다.
기존의 낡은 인식에 도전하지 않고 좋은 시를 쓰기는 쉽지 않다. 좋은 시는 언제나 전복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전복적 상상력은 역사의 첨단에 서서 오늘의 상식적인 사유를 뒤집어낼 때 가능해진다. 따라서 일단은 먼저 역사의 첨단에 서서 오늘을 사는 상식적 사유부터 알아야 한다. 그럴 때 그것의 한계를 파악해 역발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대학교 문창과 주최의 전국고교생 백일장에 참가하여 이것 하나만이라도 알고 가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이은봉(시인, 광주대학교 문창과 교수)
김은수(고전연구가, 광주대 문창과 교수)
신덕룡(문학 평론가, 광주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