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충견 '하치' 이야기
센 다이 대지진과 쓰나미는 지구의 자전축을 10cm 가량 이동시키고 일본열도를
2.4m나 움직였다고 한다. 조금 전까지도 그토록 잔잔하고 평화스럽던 저녁바다가
불끈 일어서 휩쓸고 지나간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인
것을 어찌하랴. 도대체 어디에 분노하고 어디에 호소를 해야하며 어디에다
슬픔을 말해야 하나. 그러나 전 세계가 놀란 엄청난 재난의 현장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준 시민의식은 전 세계를 다시 놀라게 했다고 한다.
"처참한 현실 앞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통곡하지 않았고,
폭동이나 약탈도 없었으며 항상 줄을 지어 다음 사람들을 배려하며 기다렸다."
대재앙 속에서도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킨 일본을 많은 전문가들은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익혀온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생각, 주위와의 조화를 종요시하는
화합의 정신,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배려의 마음'을.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는 독특한 일본문화를 발견해 낸다.
그는 그의 명저 [국화와 칼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에서 일본의 소학교 2학년용
수신(修身)교과서에 실린 [일본 충견 '하치'의 이야기]를 주목한다.
그 이야기는 "은혜를 잊지 말자"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하치는 예쁜 개입니다. 태어나자 곧 낯선 사람 손에 넘어가 그 집의 아이들처럼 귀여움을
받았습니다.그 때문에 허약했던 몸도 건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주인이 매일 아침 직장에
나갈 때에는 전차 정거장까지 배웅을 갔으며, 저녁에 돌아올 때에도 다시 정거장으로
주인을 마중 나갔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주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치는 그것을 모르는지 날마다 주인을 찾았습니다. 늘 정거장에 가서는 전차가
도착할 때마다 나오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주인이 있나 하고 찾았습니다.
이렇게 날이 가고 달이 갔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을 때에도
여전히 자기 주인을 찾고 있는 늙은 하치의 모습을 날마다
정거장 앞에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수신 교과서의 '하치 이야기>
베네딕트의 견해다. 일본의 온<恩>은 영어의 오블리게이션(obligation:dmlan),
로열티l(loyalty:충성), 카인드니스(kindness:친절), 러브(love:사랑) 등을 모두
포함하면서 그 모두를 합한 것보다 훨씬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베네딕트의 견해에 따르자면 충(忠), 의무, 의리라는 윤리관이
일본인들이 하치를 사랑하는 이유이지 싶다.
우리에게도 전라북도 임실군의 '오수의견(獒樹義犬) 이야기가 있다.
최자(崔滋)의 보한집 견분곡(犬墳曲)에도 은(恩)을 강조하고 있다.
人恥時爲畜(사람은 짐승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만)
公然負大恩(공공연히 큰 은혜를 저버린다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실려 있는지는 모르겠다.
오늘 아침 고국판 신문사설에서 본 내용이다. 초등학교 4학년 도덕 국정교과서에 실린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선정됐다."는 내용이 사실무근이라고.
보도에 따르면 해당 내용은 교과서 집필진이 'OSEN'이라는 인터넷매체 등이
유포한 기사를 확인 없이 인용해 쓴 것으로, 전혀 근거 없는 인터넷 황당뉴스에 불과하다고.
일본을 보고 배우고 깨우쳐야할 것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우리는 고도성장만을 바라보며 소홀히 넘기는 일이 없는지...
초등학교 도덕교과서마저 믿을 수 없데서야 어찌 재난 대비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저 아름다운 저녁바다가 언제 벌컥 성을 내고 일어설 지 모를 일이다.
일본 충견 하치公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해 보면 이렇다.
1923년 일본 북부 아키다(秋田)현에서 태어난 순종 아키다견 한 마리가
도쿄제국대학 농학부 교수 우에노(上野)박사에게 보내졌다. 옛제자가 보낸 것이다.
우에노 박사는 굳게 땅을 디디고 선 강아지의 다리 모양이 팔(八)자를 닮았다고 일본어로 <8>을 의미하는
'하치'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하치는 노교수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하치는 명견다웠다. '시부야'에 살고 있던 우에노 교수는 열차를 타고 출근할 때
시부야 역까지 배웅하고 또 퇴근할 무렵엔 역에 마중나가 주인을 기다렸다.
하치가 두 살이 채 되기 전인 1925년, 우에노 교수는 학교에서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하치는 친척집에 넘겨졌으나 자신의 옛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저녁 무렵이면
시부야 역에 나가 돌아올 리 없는 주인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10년.
1935년 3월 8일 하치는 눈 내리는 시부야 역에서 주인이 간 곳으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는 하치가 죽기 전,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이
[그리운 노견, 지금은 죽은, 주인을 기다린 지 7년]이라는
제목의 연재기사로 소개하면서 일본열도에 알려졌다.
일본 열도의 감동은 유별난 데가 있었다.
아직 하치가 죽기 전인 1934년, 저명한 조각가 안도 테루(安藤照)가 하치의 모습을 조각해
시부야 역 광장에 세웠다. 그리고 동상의 좌대에는 [충견 하치공]이라고 새겨졌다.
한 마리 개가 공(公)이 된 것이다.
첫댓글 우리가 일본한테 배울게 한 두 가지인가요...
그들에게 배울 제일 먼저 꼽는게
애국과 단결 그리고 질서의식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