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여자들에게 최초로 팬츠를 선사했던 코코 샤넬은 이렇게 외쳤다. “여자들이여, 우아함과 매혹을 갖춰라!” 여자의 진짜 매력은 남성성이 살짝 가미됐을 때 드러난다는 건 이미 100년 전에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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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이턴트 소재의 화이트 레이스업 슈즈. 나무하나 제품. 가격 17만9천원. 2 화이트 칼라가 달린 네이비 컬러 셔츠. 바네사브루노 제품. 가격 60만원대. 3 턱시도 디테일의 자카드 소재 크롭트 재킷. 드민 제품. 가격 1백8만원. 4 풍성한 실루엣의 회색 울 팬츠. 바네사브루노 제품. 가격 90만원대. 5 페이턴트 소재 오페라 슈즈. 라우드무트 제품. 가격 39만9천원.
‘매니시’라는 단어가 이제 약간 진부하게 들릴 만큼 패션계에서 몇 시즌째 회자되고 있지만, 이제서야 서서히 걸들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몇 시즌 전까지만 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던 오버사이즈 코트가 이젠 위시 리스트 1순위를 차지하고, 하이힐 대신 납작한 레이스업 슈즈를 신는 데 익숙해졌으니 말이다. 실제로 요즘 옷 잘 입는 여자들은 트렌디한 의상에 저마다 약간씩 매스큘린한 요소를 첨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예를 들어 심플한 원피스나 스커트에 박시한 오버사이즈 코트를 걸치거나 페미닌한 스커트에 하이힐 대신 양말과 남성적인 로퍼를 신음으로써 매니시한 취향을 드러낸다. 확실히 이런 룩은 오로지 예쁘게만 보이고 싶어하는 여자들 틈에서 돋보이게 만드는 힘을 지녔는데, 1920년대 파리에서 독보적인 패션 취향을 갖고 있는 여자로 여겨졌던 코코 샤넬이나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독특하게도 팬츠를 입었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하는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올 겨울 매니시 룩의 모습은? 언제나 매스큘린과 페미닌 사이를 넘나드는 디자이너 스텔라 맥카트니가 쇼를 마친 후 백스테이지에서 외친 한마디가 첫 번째 답이 될 듯. “남성적인 것에 페미닌함을 슬쩍 끼워 넣기!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의 묘한 경계!” 맥카트니는 이 알쏭달쏭한 룩을 위해 은행가나 증권 회사 직원들의 수트에 주로 사용되는 핀 스트라이프 소재를 사용했는데, 전형적인 남성복 팬츠 수트 대신 테일러드 재킷이나 풍성한 니트 스웨터, 오버사이즈 코트, 비대칭적인 스커트 등으로 끝없는 변주를 하며 컬렉션 전반에 매스큘린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이어가는 요소로 활용했다. 박시한 핀 스트라이프 코트를 입은 모델에겐 맨다리에 청키한 플랫폼 부츠를 신기고 회색 울 소재 캡을 씌우는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21세기적 쿨한 매니시 룩의 표본이 아닐까? 핀 스트라이프의 활약은 맥카트니 쇼를 거쳐 동시대적인 또 한 명의 파리지엔느에게도 영감을 선사했으니 바네사 브루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쇼의 오프닝 룩으로 등장한 핀 스트라이프 수트는 지극히 남성적인 요소의 룩이지만 자세히 보면 팬츠엔 풍성한 주름이 잡혀 걸을 때마다 실루엣이 부드럽게 물결치고, 앞코가 뾰족한 스틸레토 힐을 매치해 근사한 비율과 섹시함이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니시 룩에 페미닌한 감성을 슬쩍 끼워 넣는 이런 방법은 드리스 반 노튼(잘 재단된 테일러드 코트에 깃털 스커트나 반짝이는 크리스털 목걸이), 마르탱 마르지엘라(반짝이는 실크 의상에 오버사이즈 코트), 생 로랑(러플 블라우스와 턱시도 수트), 루이 비통(슬립 드레스와 오버사이즈 코트) 런웨이에 거듭되며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이쯤에서 뉴 매니시 룩의 두 번째 공식을 알아볼까? 눈치챘겠지만 두말할 나위 없이 오버사이즈 실루엣이다. 보이프렌드 룩, 대디 룩 등 다양한 명칭으로 진화를 거듭해온 오버사이즈 실루엣은 남성적인 룩을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 실제로 매니시 룩을 즐겨 입는 세련된 여자들은 예전부터 진짜 남자 옷을 입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소매를 대충 둘둘 말아 입은 화이트 셔츠나 어깨선이 축 처질 만큼 커다란 재킷을 입은 모습에서 케이트 모스나 엠마누엘 알트 식의 쿨한 애티튜드가 완성됐다. 영화 속 베드신에서도 나체의 여인보단 남자 친구의 와이셔츠를 툭 걸친 여성이 더 관능적이고 세련돼 보이는 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요즘은 굳이 남성용 의상을 구입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멋진 디자인의 코트나 재킷, 스웨터 등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바야흐로 오버사이즈 룩의 전성기! 그것은 곧 바로 지금이 매니시 룩에 도전할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올 겨울 매니시 룩이 다가온 것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평소 입던 원피스나 스커트에 커다란 코트를 툭 걸치고 남성용 슈즈를 신거나, 평범한 팬츠 수트에 리본 블라우스를 곁들이거나, 풍성한 테일러드 팬츠에 앞코가 뾰족한 스틸레토 힐을 매치하는 걸로 충분하다. 그리곤 당당하게 걸어라! 움츠리고 눈치 보는 듯한 태도는 이 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팬츠 주머니에 무심한 듯 손을 찔러 넣거나 커다란 코트의 앞섶을 한 손으로 여며 쥔 다음, 여자를 유혹하는 잘생긴 신사처럼 매력적인 태도를 취할 때 비로소 매니시 룩은 당신의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