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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에서 섬진강으로 스며드는 능선. 옛날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는 화개장터. 그 화개 장터와 삼도봉을 잇는 불무장등. 아닐 不, 없을 無 = 아닌 것이 없다. 없는 것이 아니다. = 즉, 장등이 있다. 장등(長嶝)이란 바닥 반대쪽 등이란 뜻. '없는 듯, 길고 완만한 등 같은 능선.'
불무장등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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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산(942.9m)
경남 하동군 화개면
전남 구례군 토지면
그 경계선이 황장산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하동
3도의 3군의 경계선 삼도봉(1499m)
삼도봉에서 불무장등, 황장산 지나 섬진강.
화개골 주민도 황장산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구례와 하동을 잇는 19번 국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품은 화개골.
그 진입로에 바짝 엎드린 황장산.
불무장등의 베일을 풀 열쇄., 황장산.
황장산은 어떤 유래를 품은 지명일까?
낙동강 옛 이름은 황산강.
황장산은 황산강에서 유래.
중국 황산에서 유래된 황산강.
낙남정맥 동쪽에 있기에 낙동강.
낙동강은 일제시대에 변경된 지명.
황장산은 노루 형상을 지닌 산세.
옛 황산에서 황장산으로 바뀐 지명.
옛부터 중국과 일본을 오간 무역상들.
황장산은 황산과 관련된 지명인 듯
황산은 잠시 후에 별도로 알아보자.
황장산 산길 들머리는 구례 농평마을.
그 옛날 등짐 상인들이 애용하던 길목.
지금은 옛 영화를 찾아볼 수 없는 마을.
불무장등 능선은 반달곰 보호구역이다.
황장산은 지리산 야생 동물들의 서식처.
하여, 농평마을은 지리산 속 외딴 오지.
피아골 연곡사에 닿기 전 농평마을 이정표
구불구불 약 2㎞ 시멘트 도로는 내내 오르막
산행 시작 전 사람도 차량도 지치기 마련이다.
농평의 밭 너머로 보이는 건 오직 파란 하늘.
칠 팔백 고지 농평마을에서 능선은 10분 거리.
불무장등과 황장산으로 나뉜 능선 길은 뚜렷하다.
농평마을에서 화개재까지는 약 12㎞ 거리.
철망을 내려서면 화개골 목통마을과 연결된 임도
오르막 내내 철망은 염소를 방목하는 목장 울타리
황장산 등산로는 그 철망 사이 쪽문을 통해야 한다.
'봉우리 너머 더 높은 봉우리'를 반복해야 정상.
황장산은 호락 호락 그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울창한 숲 남향마다 춘란과 진달래 꽃망울이 가득.
조릿대 사이로 다시 고갯길이 나온다.
쌍계사와 신흥의 중간쯤 모암마을(3.3㎞)
갈림길을 지나면서 황장산의 이마가 보인다.
마치 둥그스름한 노루의 이마 같다.
부드럽고 노란 털로 덮인 노루머리
하여, 산 이름도 노루를 뜻하는 황장.
농평마을에서 2시간 이상 걸어야만
볼록한 이마처럼 솟은 황장산 정상.
구례와 하동이 맞닿은 정상은 좁다.
별다른 표지석도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 하동군에서 설치한 철제 안내판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도경계선.
멀리 화개에서 불어오는 바람,
벚꽃과 야생차와 섬진강의 비릿함
전라도와 경상도 바람이 하나가 된다.
황장산 정상 곳곳의 바윗덩어리는 전망대
산아래 집들과 인근 쌍계사가 내려다보인다.
정상에서 15분 내려서면 동서로 이어진 새껴미재.
전라도 처녀와 경상도 총각이 연정을 나누던 곳.
구례와 하동의 장사치가 물물교환하던 새껴미재
'새껴미재를 홀로 지키는.. 늙은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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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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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산을 본 사람은 오악도 눈에 차지 않는다
1990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
황산의 최고봉은 옥병루에서 보면 연꽃 같아..연화봉
황장산은 가락국에서 유래된 지명.
삼한시대 '바람의 후손'이라 했던 변한.
황하강 풍사(風沙·황사)와 관련이 깊다.
즉, 황하 일대를 오간 무역집단 세력, 변한.
중국 베이징 사람은 봄을 좋아하지 않는다.
매년 2월 말에서 4월 중순까지 부는 황사 때문.
황토 바람이 세차면 자전거 대오도 흩어질 정도.
풍사(風沙·황사) 문제는 중국의 정책 과제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에 비유할 만큼 심각성.
황사는 곧 토지 사막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황산(黃山) 정상에 밭을 만들고,
둥팅(洞庭) 호 가운데에 논을 만들자”
식량 증산을 위해 자연을 파괴한 중국정책.
그 결과 황하강 일대의 황사는 점점 더 심각.
원래, 황하강 상류는 송(宋)대까지 원시림과 초원
실크로드 입구였던 베이징 일대는 현재 황토 민둥산
중국은 원시림 초원 습지를 파괴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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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강(길이 925.502㎞)
우리나라 유역면적은 3만 1,226㎢, 중국 3만 1,934㎢
양강도 김형권군의 남쪽에 솟은 명당봉(明堂峰:1,800m)
"물빛이 오리 머리색과 같다 하여 압록수(鴨綠水)"
남한에서 제일 긴 낙동강(513.5㎞ 우리나라 순위 3번째)
강원도 남부지역과 경상도 중앙을 남류하여 남해로 간다.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 천의봉(1,442m) 동쪽 계곡에서 발원
경북 봉화군·안동시·예천군·상주시·구미시·칠곡군·고령군
그리고 경상남도 밀양시·김해를 지나 두 갈래로 갈라져서 흐른다.
서쪽은 대동수문(大東水門)을 지나 서낙동강이 되어 바다로
본류는 계속 남쪽으로 흘러 부산광역시 서구 명호도(鳴湖島)
사하구 하단동 사이에 놓여진 낙동강 하구둑 갑문 지나 남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류는 반변천(半邊川)·내성천(乃城川)·
위천(渭川)·금호강(琴湖江)·밀양강(密陽江) 등 총 742 개.
삼국시대 황산하(黃山河)·황산강(黃山江)·황산진(黃山津)
고려·조선시대에 와서 낙동강·낙수(落水)·가야진(伽倻津)
<동국여지승람〉에는 낙수로, 〈택리지〉에는 낙동강으로 기록
원래 낙동이란 가락(駕洛)의 동쪽이라는데서 유래
고려·이조시대 낙동강은 영남 농산물 세미(稅米)의 운송로
이때 '상주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으로 명명된 낙동강
낙동강은 영남의 대동맥으로 지역 문화를 발달시킨 원동력.
삼한시대 낙랑군 대방군으로부터 대륙의 금속문물을 들여와
진한(辰韓)과 변진(弁辰) 부락국가를 발달시켰을 뿐만 아니라
상고시대 부족국가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각 국가세력의 각축장
남쪽 대마도나 일본과의 교통무역에도
수운로(水運路)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
낙동강 상류 안동분지,
낙동강 중류 대구,
낙동강 하류 경남평야
안동은 침식분지들이 연결된 비교적 규모가 큰 분지
대구는 낙동강 본류와 금호강 등 여러 지류 연안 평야
경남평야는 창녕 이남의 본류 연안과 남강유역을 중심
낙동강 하류 김해평야는 보기드문 충적평야.
구포 상류 2㎞ 지점에서 낙동강은 2 물줄기로 나뉘며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고, 다시 망상(網狀)으로 분류
대저도·명호도·맥도·일웅도 등의 하중도를 이룬다.
옛날에는 안동까지 배가 올라갈 수 있었다.
강변에 발달한 구포·삼랑진·수산·남지·현풍·
왜관·낙동·풍산·안동 등의 도시는 나룻터 취락
'삼한시대부터 왜와 중요한 교역 수로..낙동강.'
가야국은 낙동강과 한강을 이어 교역로로 이용.
낙동강과 한강의 중요거점 도시들과 여러 항구.
중국과 한반도 내륙과 일본을 잇는 교역로.
김해 가락국과 고령 대가야 옛 영역 도시들.
옛 가야 연맹 정치세력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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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는 황토지대나 사막 등지에서 날아온 미세한 토양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에 온 황사는 3~5월에 약 3일 정도
발원지는 타클라마칸 사막, 고비 사막, 황하강 상류와 아라산[
대규모 모래먼지 이동현상인 황사
대기의 혼탁, 태양 에너지의 감소,
정밀기계의 손상과 호흡기질환, 안질
건강과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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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0대 관광지 가운데 하나 황산(黃山).
인천 공항에서 황산 공항까지는 2시간 거리.
황산 공항에서 버스로 1시간이면 황산 대문.
황산은 199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중국 남부의 안휘성 동쪽에 자리 잡은 황산.
'황산을 보고나면 5대 명산을 보지 않는다.’
중국 속담이 있을 만큼 아름답고 수려하다.
운해 속에서 쉽게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 황산.
황산은 온천구(溫泉區)-옥병루(玉屛樓)-연화봉(蓮花峰)
온천구는 황산 입구에 있어 주로 숙박시설이 몰려있다.
옥병루는 해발 1,680m에 위치한 원래는 문수원의 유적.
이곳에서 정상 연화봉에 이르는 코스는 망망대해 운해
연화봉 정상(1,860m)는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 곳.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광명정은 연화봉 다음 높은 곳.
서쪽 하늘에서 떨어져 꽂힌 듯한 모양 비래석(飛來石)
동해의 기이한 경관과 서해의 무리져 있는 봉우리,
천도, 연화, 옥병 등을 바라볼 수 있는 황산 비래석.
서해 연화봉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의 장관이다.
비래석(飛來石) 북쪽으로 1km 지점에 배운정.
황산의 기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
구름과 안개가 서해의 골짜기들을 휘감아 솟는다
물리칠 배(排), 구름 운(雲)을 써 배운정(排雲亭).
광명정 서쪽, 배운정(排雲亭) 남쪽에 있는 비래석
높이 12m, 600톤 거석이 갈라져 하늘을 나르는 듯
옥빛 연못과 부드럽게 흔들리던 대나무, 비취계곡
황산 동쪽에 위치한 '정인곡(情人谷)’이라는 계곡.
황산 연단봉(煉丹峰)과 시신봉(始信峰) 계곡 발원지
길이는 6000m 정도 계곡에 수백개 연못.
맑고 투명함, 옥빛과 같은 우아한 푸르름
연못 아래 깔린 암석들의 오색 찬란한 빛
연못의 깊고 얕은 차이에 따라 변하는 색
용봉지, 화경지(花鏡池), 녹주지(綠珠池),
옥환지(玉環池),천지(天池) 중 화경지(花鏡池)
영화 ‘와호장룡’의 촬영지로 알려진 관광명소.
황산 동북부에 위치한 몽필생화(夢筆生花)
북해빈관(北海賓館) 앞 산화오(散花塢)에 위치.
필가봉(筆架峰) 가까이 있는 뾰족한 바위봉 군락.
한 그루 고송이 그늘을 길게 드리우고 자랐던 명소.
안타깝게도 70년대 초에 고사(枯死)한 소나무
현재 봉우리 가운데에 서있는 소나무는 모조품.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가마를 타고 오르는 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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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일대 지명과 공통점이 많은 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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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공통점들.
낙동강 한강은 일본과 중국을 잇는 옛 교역로.
중국과 일본을 오갔던 옛 실크로드 무역 거상들.
'그 공동 집단세력이 가야 연맹국 아닐까?'
화개재와 토지면을 좌우로 품고 있는.. 불무장등.
'김수로왕과 허황후' 전설이 가득한 범왕골 칠불사.
불무장등이 섬진강으로 잠기는 지점에 있는 화개장터.
없는 것이 없다는 기나긴 능선.., 불무장등.
그 지명에 담긴 옛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하다.
황산(낙동)강.
황산강은 낙동강의 옛 이름
낙동이란 가락 동쪽이라는 뜻.
고려·이조시대 낙동강은 영남 산물·세미(稅米) 운송로
이때 가락국 땅이었던 '상주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
〈연려실기술〉 지리전고(地理典故)편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라 했다.
또한 낙동강은 영남지방의 대동맥으로서
이 지역의 문화를 발달시킨 원동력이었다.
삼한시대에 낙랑군·대방군으로부터
대륙의 금속문물을 이곳 유역을 통해
수입해 진한 변진(弁辰) 소국들이 발달
상고시대 부족국가에서 근세까지
각 국가세력 각축장이 되었던 곳.
또한 남쪽 대마도나 일본과의 교통무역에도
이 수운로(水運路)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강원도 남부와 경상도 중앙을 남류해 남해로 유입.
한반도 3번째 긴 강(513.5㎞), 유역면적 2만 3,860㎢.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 천의봉(天衣峰:1,442m)에서 발원
경북 봉화군·안동시·예천군·상주시·구미시·칠곡군·
고령군 그리고, 경남 밀양시·김해시 등을 지나는 강.
강 하류지역 김해시 대동면 남동쪽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서쪽은 대동수문(大東水門)을 지나 서낙동강이 되어 바다로
본류는 계속 남쪽으로 흘러 부산광역시 서구 명호도(鳴湖島)와
사하구 하단동 낙동강의 하구둑 갑문을 지나서 남해로 흘러든다.
이 강에 합류하는 지류는 반변천(半邊川)·내성천(乃城川)·
위천(渭川)·금호강(琴湖江)·밀양강(密陽江) 등 742 개.
삼국시대에는 황산하(黃山河)·황산강(黃山江)·황산진(黃山津)
고려·이조시대 낙동강·낙수(落水)·가야진(伽倻津)으로 불렸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낙수로,
〈택리지〉에는 낙동강으로 기록.
주요평야로는 상류부의 안동분지,
중류 대구분지, 하류 경남평야 등
안동분지는 침식분지들이 연결된 비교적 큰 규모
대구분지는 낙동강 본류와 금호강 여러 지류의 평야.
하류 경남평야는 창녕 이남, 남강유역 중심 김해평야.
김해평야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충적평야이다.
구포 상류 2㎞ 지점에서 낙동강은 2 물줄기로 나뉘며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고, 다시 망상(網狀)으로 분류
대저도 명호도 맥도 일웅도 등의 하중도를 이룬다.
강 경사도는 완만하여 340㎞ 상류 안동까지 옛 뱃길.
낙동강 하상의 평균경사는 압록강보다 완만한 편이다.
강변에 발달한 구포·삼랑진·수산·남지·현풍·왜관·
낙동·풍산·안동 등의 도시는 나룻터 취락이었던 곳.
이 강의 하류부에는 많은 인공제방이 축조되어 있다.
1987년 11월에는 을숙도를 가로지르는 하구둑이 건설.
강 유역은 내륙분지형 기후의 특성을 나타낸다.
연강수량은 내륙(대구)지역이 900㎜ 이하 이고
하류지역(김해)은 1,400㎜ 이상의 다우지역이다.
이 강 유역의 주요식물상을 보면
상중류는 남부 난온대 활엽수림,
하류 지역은 조엽(照葉)수림대.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는 철새도래지로 유명했으나
낙동강 하구둑의 건설로 철새들의 터전이 줄어들고,
낙동강 연안 공업단지 오염물질과 농업생활 폐수로
1970년을 고비로 이들 철새는 그 수가 급격히 감소.
강 유역에는
1969년에 건설된 남강댐,
1976년에 건설된 안동댐,
1992년에 건설된 임하댐 등.
강 유역에는 전국 석탄생산량의 약 1/3이 매장
흑연·석회석·시멘트·적색고령토도 대량 매장.
이밖에 주요 금속광물 텅스텐·납·주석 등이 생산되며,
약간의 구리·아연·망간·몰리브덴·철·은 등도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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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해평야' 형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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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구 삼각주 지대에 위치하는 현재의 김해평야.
쌀을 비롯해 대파, 화훼의 생산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김해는 옛날에는 바다와 멀리 동떨어진 낙동강 중부 유역.
분지였던 곳이 김해만 바다로 변했고 낙동강 하류로 변했다.
낙동강 하구의 삼각주 지대에 위치한 현재의 김해평야
형성된 시기는 지금부터 약 20,000년∼18.000년 전 즈음.
빙하시대에 김해평야에는 자갈층(충적층기저역층)이 퇴적.
날씨가 따듯해지며 점토층, 모래 자갈층이 계속 퇴적된 지역.
김해지역 해수면은 현재보다 110∼140 m정도 낮았으며,
당시 낙동강 하구는 일본의 대마도 부근에 있었던 것같다.
약 만년 전부터 기후가 따뜻해지자 해수면도 계속 상승한 듯.
4,100년 전 무렵에는 김해 대동면 예안리 일대까지도 바다였다
즉 이 무렵 한반도에서 바다 범위는 산과·구릉지를 제외한 전역.
김해평야가 바다였던 시점을 고고학에서는 신석기시대로 분류.
그당시 김해 원주민들은 해수산의 조개, 어류, 동물 등 먹거리
그 결과, 김해평야 각지에 수가리패총, 범방 죽곡패총, 북정패총,
농소리패총, 금곡동 율리패총 등 신석기시대의 해수산 패총 형성.
패총은 굴이 주종이며, 꼬막이 많은 것은 바다 바닥이 점토인 점.
한편, 옛날 김해만의 안쪽 '김해 예안리 유적지'는 사주에 입지.
신석기시대 말기 이전에 형성되어 육지로 변한 사실도 밝혀졌다.
청동기시대부터 기후는 다시 추워졌고 해수면도 낮아졌다는 증거.
삼한시대에는 다시 김해평야 곳곳에 해수산 패총이 형성된다.
당시의 무덤에서 조개를 무덤바닥 시설에 이용한 흔적이 있다.
삼국시대에도 신석기시대처럼 바다를 무대로 활발한 어로활동
김해 대성동고분군, 봉황대유적, 양동리고분군, 부원동패총,
예안리유적 등등은 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유적들로 알려졌다.
7세기 무렵 옛 김해만은 바다가 물러가며 퇴적물이 쌓여 육지화
낙동강은 보다 많은 토사를 운반해 옛날 김해만은 삼각주를 형성.
마침내 육화로 변해 현재의 김해평야의 골격으로 뒤바뀐 것이다.
대동여지도(1861년)에 낙동강 하류 김해지역이 이를 뒷받침한다.
김해지역이 농업지대가 된 시기는 20세기에 들어온 이후부터이다.
일제시대에 쌀의 증산을 위해 낙동강변에 제방을 쌓고 수로를 정비
저지대 삼각주를 본격적인 평야농업 지대로 전환시켰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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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동(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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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가야 세력이 최초로 정착한 곳.
이곳은 고령가야(대가야)와 김해 가야 모체
경상북도 북부 중앙에 있던 옛 '고령'이 안동.
풍산읍·와룡면·북후면·서후면·풍천면·
일직면·남후면·남선면·임하면·길안면·
임동면·예안면·도산면·녹전면 등 1개읍
13개면 177개 동리가 이 지역에 해당한다.
창녕국(昌寧國) 소라국(召羅國) 구령국(駒令國)
삼한시대에도 여러 소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신라가 이곳에 고타야군(古陀耶郡)을 설치.
삼국통일후 757년(경덕왕 16) 고창군(古昌郡)으로 개칭,
직령현, 일계현(日谿縣), 고구현(高邱縣)을 영현으로 관할.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각축지가 되었던 이 일대.
이 고을 호족인 김선평(金宣平)·김행(金幸)·장길(張吉) 등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으로 940년(태조 23) 안동부로 승격
영가군으로 강등되었다가 995년(성종 14)에 길주(吉州)로 승격
그뒤 몇 차례 변화를 거쳐 1030년(현종 21)에 안동부로 개칭.
임하군 등 3개 속군과 일직현 등 11개 속현을 관할하는 큰 고을.
1197년(명종 27)에 도호부,
1202년에 대도호부,
1308년에 복주목(福州牧)으로 승격
1310년(충선왕 2)에 복주로 강등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복주목이 되었고,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 침입때 왕이 피난
1362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승격.
이조시대 안동은 경주와 함께 대도호부로서
낙동강 동쪽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 역할
많은 인물을 배출했던 '추로지향'(鄒魯之鄕).
1576∼81년, 1776∼85년에는 현으로 강등.
안동의 별호는 석릉(石陵)·고령(古寧)·화산(花山)·
능라(綾羅)·지평(地平)·일계(一界)·고장(古藏) 등.
1895년 고종 때 안동부 안동군,
1896년 경상북도 안동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로 감천면을 예천군으로,
재산면 소천면 춘양면 내성면을 봉화군에 이관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예안군 폐지
읍내면·동하면·동상면이 예안면으로,
서면·북면이 녹전면으로,
의동면·의서면이 도산면으로 통합
안동군에 편입됨으로써 면적이 다시 확대.
안동군도 북선면·동선면이 와룡면,
길안면·임남면이 길안면으로 폐합,
서선면·풍현내면이 풍산면으로 폐합,
나머지 17개면은 그대로 이름을 유지.
1931년 읍면제 실시에 따라 부내면이 안동읍으로 승격,
임현내면·임서면을 임하면으로, 풍남면과 풍서면을 풍천면
풍북면을 풍산면에 편입했고 1973년에 풍산면을 읍으로 승격,
1976년 안동댐 완공으로 월곡면을 폐지했다.
1963년 안동읍이 신안동시(안동시)로 승격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어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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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회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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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치 :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844
풍산 류씨가 대대로 살아 오던 전형적인 집성촌.
이조 대유학자 류운룡 선생과 류성룡 선생 출생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문해 더욱 유명해졌다.
하회(河回) 지명은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는데서 유래.
동으로는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이 있고
그 줄기의 끝이 마을까지 뻗어 낮은 구릉
집들은 구릉을 중심으로 낮은 지역에 배치
집의 좌향이 일정하지 않고 동서남북 각각
마을 중심에는 류씨들의 집인 큰 기와집들.
초가집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은듯 모여있다.
마을 앞쪽에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깍아지른 부용대 앞 백사장, 노송숲.
하회마을은 별신굿 탈놀이와 하회탈이 유명.
하회 병산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이며,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 쓰이며 원래는.. 14 개
현재는 초랭이, 양반, 백정탈 등 11개가 보존
병산탈 2개와 함께 14개가 국보 제 121호로 지정
하회 별신굿 탈놀이는 매주 말에 상설 공연을 한다.
○3월,4월,11월 : 매주 일요일 (15:00 ~ 16:00)
○5월-10월 : 매주 토, 일요일 (15:00 ~ 16:00)
(※ 1월, 2월, 12월은 공연을 하지 않음.)
숙박시설은 모텔1개와 야영이 가능하며
여름철 마을 앞 강변 모래밭은 피서 인파.
찾아가는 길
1) 안동시→20Km→풍산(매곡교)→4.8Km→하회 입구
하회입구→민속마을 3Km, 하회입구→병산서원 4.2Km
2) 안동에서 예천방향으로 25km거리
(안동->송현동->풍산->풍천중리->하회마을)
3) 안동 시내버스 46번 1일 8회 운행, 40분 소요
................... 안동 김씨....................
이조 후기 외척이 권력을 주도했던 세도정치 가문.
'세상의 도리' 세도(世道)를 실현한다는.. 세도정치
본래는 세도의 책임자가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취지.
이조 순조·헌종·철종 대에 실제 전개되었던 정치형태
세도를 빙자해 세력을 휘둘러 훗날엔 세도정치(勢道政治)
그 효시는 정조 신임으로 세도 책임을 부여받았던 홍국영
순조 이후 안동김씨·풍양조씨 등 노론 출신의 외척 가문들
여기에 남양홍씨·대구서씨·연안이씨·나주박씨 등 노론파.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로 당쟁을 통해 다른 당파를 도태
당쟁의 주요쟁점이었던 명분과 의리 다툼에서 승리
오랜 당쟁 과정에서 살아 남은 세도가문들
올바른 도리를 정립해 세도 책임자로서 자임
왕실 외척으로 정치적 영향력과 주도권을 행사
대표적인 예가 안동김씨 김조순(金祖淳) 집안.
김조순은 순조비의 아버지로서
순조가 친정하며 정치권을 장악.
노론 중심인물들(김수항·김창집)이 쌓아놓은 기반
그는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정조의 신임을 받았다.
김조순의 뒤를 이어, 김좌근(金左根)·김병기(金炳冀) 등
풍양조씨 조만영(趙萬永) 집안과 경쟁하면서
세도 지위를 놓치지 않았고 고위 관직을 독점
군영을 장악해 군사력을 그들 통제안에 두었다.
국왕은 정치를 거의 이들에게 의존하고
왕은 독자적 정치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세도정치가 행해졌던 19세기 봉건사회 급격히 해체
백성은 물론이고 양반들마저도 권력으로부터 소외.
농민들은 점차 격화되는 사회모순에 저항하기 시작,
1862년(철종 13)에는 삼남지방에서 대대적으로 봉기했다.
이에 세도정권은 사회모순 해결 없이는 정권유지가 불가
농민들의 요구였던 삼정(三政) 문제점 해결을 약속하고
사태를 수습했으나 그것마저도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농민항쟁으로 조성된 정치적 위기 상황 속에서
1863년 고종의 왕위계승을 계기로 대원군 등장
안동 김씨 중심이었던 세도정치는 막을 내렸다.
'안동 김씨는 이조 후기를 이끈 세도정치 가문.'
안동은 가야 근원지이자 가야사가 막을 내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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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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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의 옛 이름은 황산강.
황산강의 발원지가 곧 황지.
낙동강은 가락국의 동쪽을 흐르는 강.
하여, 이조시대에는 낙동강이라 불렀다.
낙동강은 남해를 거쳐 일본으로 연결되는 수로.
낙동강 발원지는 황지이고, 한강 발원지는 검룡소
한강은 서해를 거쳐 중국으로 연결되는 무역 수로.
중국 산동반도 -강화도 -한강 -낙동강 = 부산 -일본.
가락국은 중국 한반도 일본을 잇는 무역로 도시국가.
'낙동강의 옛 이름' 황산강은 중국의 황산에서 유래.
'황지'는 가락국의 뿌리를 짐작하게 해주는 지명이다.
변한 가락국은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한 고대국가.
중국과 일본을 잇는 3각 무역으로 성장한 가락국.
'낙동강 발원지 황지는 태백 시내 공원의 한복판에 있다.
황지(상지, 중지, 하지)둘레에는 100 여m 산책 길이 있다.
태백산,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 지하수가 솟아오르는 연못
황지연못 -태백시 - 경상남도 - 경상북도 - 부산 을숙도 - 남해
하루 5천 톤의 물이 방출되며, 한국 명수 100선에 꼽히기도 한다.
....................황지 전설...................
옛날 황씨성을 가진 노랭이 부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황부자가 외양간 소똥을 치우고 있었는데
옷차림이 남루한 한 노승이 찾아와 시주를 청했다.
황부자가 거절해도 거듭 염불하며 물러나지 않는 노승.
화가 치민 황부자는 소똥을 퍼 노승의 바랑에 넣고 만다.
노승이 분노한 기색도 없이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가는데,
아기업고 방아찧던 며느리가 이 광경을 보고 민망히 여겨,
시아버지 몰래 쌀 한 바가지를 시주하며 대신 잘못을 사과.
" 이 집은 운이 다했으니 속히 소승의 뒤를 따라 오시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절대 뒤를 돌아 보아서는 안되오"
며느리가 노승을 따라 송이재 넘어 구사리 산마루에 이르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돌아본 순간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 버린 며느리.
'황부자 집은 땅 밑으로 꺼져 간곳 없고 집터는 큰 연못.'
'삼척군 도계읍 산마루에 황지 쪽을 뒤돌아보는 돌미륵.'
집터는 지금의 상지, 방아간 자리가 중지, 뒷간 터가 하지
청천벽력과 함께 사라진 황씨 집터에서 유래된 지명이 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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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길 -
서울 청량리역 오전 8시부터 하루 6회 운행되는 태백행 열차
동서울터미널에서 오전 6시 10분~ 오후 6시 30분( 20회 버스)
태백역 관광안내소 앞 골목길을 성심의원 방향 20 분 도보 거리.
태백산(太白山).
삼국시대 '단군의 성지.'
'삼한의 아버지' 단군왕검.
단군조선 이전의 단군 성지.
조선의 후예를 표방한 이성계.
이조 창건 후 성지로 여긴 산.
단군을 모신 천제단이 있는 산.
'매년 개천절에 국가 제사.'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단군을 섬기는 천제단.
세 곳을 품고있는 태백산.
백제의 근원을 상징하는 산.
강원도 태백시 남부에 있는 산.
한반도 척량 산맥인 태백산맥의 주봉이며,
소백산맥이 갈라져나와 남서쪽으로 발달한다.
흰모래와 자갈이 쌓여 눈덮인 것 같다 하여 태백산
'크고 밝은 뫼'라는 뜻이 담겨진 신라 5악 중 북악.
우리나라 삼신산 중 하나로 옛부터 영산으로 여겨왔다.
노란만병초·태백말발도리·노랑무늬붓꽃
희귀식물이 서식처이며 갈대·버들·물봉선화
밤나무·상수리나무·아까시나무 등 활엽수림
산중턱에는 고로쇠나무·너도밤나무·소나무·졸참나무
그 위로는 사스래나무·신갈나무·자작나무 등이 자라며,
산정에는 주목군락(강원도 보호림)·분비나무·잣나무 등.
참새·무당새·촉새·박새·노란할미새·꾀꼬리·종다리 등
90여 종의 조류, 25종의 포유류, 340여 종의 곤충류, 서식처.
청개구리·금개구리·두꺼비 등 양서류,
참종개·열목이·연준모치·긴물개·수수미꾸라지·
버들개·자가사리 등 희귀한 어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매년 개천절에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天祭壇).
또한 북쪽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있는 정암사
당나라 부처 사리를 봉안한 수마노탑(보물 제410호)
이곳은 예로부터 계룡산과 함께 민간신앙의 중심지
산신당을 비롯한 토속신앙 기도처가 곳곳에 많았는데
1970년대 대부분 철거되었고 유명한 사찰들이 많은 곳.
백단사·덕원사·망경사·유일사·단군각 등.
일대에는 백천계곡·학산폭포와 대이리동굴지대 등의 명소
대추·고추·송이버섯 등 산지이고 태백산 일대는 탄광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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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 이미 제철 기술을 보유한 가야국 집단.
철기시대 철강석을 제련하려면 꼭 필요했을 석탄.
태백산은 철기 시대부터의 경제적 전략적인 요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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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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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은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가 있는 곳.
검룡소는 '전설속 백제영역'을 상징하는 소.
백제 영역은 일본 한반도를 포함 중국 대륙백제
대륙백제 최남단 영역은 흑치국(현재 베트남)
'검은 이빨을 갖인 종족이 세운 국가 = 흑치국.
온조백제와 비류 백제가 이룩했다는 거대한 영역.
'검룡소는 한강 발원지이자 백제 영역의 상징.'
현재 사학자 대부분 한반도 백제를 백제라 한다.
그러나, 검룡소는 비류 백제 영역을 상징하는 소.
중국 대륙 대부분은 한때 고구려 신라 백제의 영역.
<흑치국> <대륙백제> <제나라>에서 자세히 알아보자.
검룡소는 검은 용이 소안에서 나왔다는 전설의 고향.
한강은 살아있는 용처럼
인천을 지나 서해로 나가
일본과 중국 사이를 지나
망망대해 태평양으로 흐른다.
'전설 속 비류백제 영역속으로..'
백제는 백가지 성씨 민족들 국가.
바다를 제패했다는 전설 속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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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소 상류 1.5km에는 제당궁샘(1,340m)이 있다.
금대봉 기슭의 제당굼샘,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예터굼 굴물 등등의 물이 지하로 스며 다시솟는 검룡소.
검룡소는 태백터미널에서 (06:10, 19 : 50) 안창죽행 버스
하차 후, 도보거리 30~40분.하루에 2회 버스 운행이라 불편.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는 묘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검룡소 주차장에서 1.3 km 표지판 따라 20~30 분.
<둘레가 20m 밖에 되지 않는 '깊은 산 속 옹달샘'.>
그 샘 속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깊고 아득한 샘.
물이끼 꽃처럼 곱게 핀 와폭에는 검룡소의 탄생 설화가 있다.
옛날 황해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이곳에서 안간 힘을 다해 꼬리를 흔드는 바람에 패였다는 전설의 샘.
신비롭고 기기묘묘묘하게 조각된 듯한 와폭과 송글송글 솟구치는 샘.
'하루에 2천 톤의 물이 용출되는 지름 4~5m 규모 검룡소.
정선의 골지천- 조양강- 영월 동강- 충주, 여주, 양수리, 팔당
서울까지 장장 514km, 수온은 9℃. ‘생태계 보존지역’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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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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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국토개발 계획
부산에서 인천까지 내륙 운송 수로용.
왜 한반도 고대 중국을 잇는 옛 수로.
이명박 서울시장의 야심만만한 계힉.
한강은 강화만에서 38선 이북 임진강과 만나 인천 앞바다로 간다.
인천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이조 초기 태종 13년(1413).
삼국시대 초기에는 인천을 미추홀(彌鄒忽)이라 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매소홀(買召忽)현을 일명 미추홀.
매소홀은 고구려 시대의 인천의 이름이다. <고려사지리지>
<미추홀>의 '미'나 <매소홀>의 '매'는 물(水)이란 뜻.
'홀'은 성이나 골로 해석되고 '추'나 '소'는 사잇 소리.
매소홀은 신라 경덕왕 16년(757) 소성현으로 바뀐다.
경덕왕이 신라의 제도나 관직을 중국식으로 고치는 한편,
토박이 말로 되어 있는 땅 이름을 모두 한자어로 바꾼 탓.
고려 숙종(1095∼1105)에 이르러 소성현은 경원군으로 승격.
인천이 숙종의 어머니 인예(仁睿) 순덕태후의 고향이었기 때문.
인종(1122∼1146) 때에는 인종의 어머니 순덕왕후의 고향.
하여, 인주(仁州)로 개칭, 공양왕 2년(1390)엔 경원부로 승격.
인천은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 동안 왕비의 고향인 곳이다.
이조 초기에 태조원년(1392)에 인주로 환원되었고
태종 13년(1413)엔 인주가 물에 가깝다하여 '인천'
따라서, 인천의 명칭은 한자풀이 식의 '어진내(仁川)'
즉, 인천의 지명은 인주 이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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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이씨의 유래..................................
755년 (신라 경덕왕 14년)에 '아찬' 벼슬을 지낸 허기(許奇)
'허황후의 23 대손'인 그가 신라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었다.
그해 11月에 '안록산의 난'에 당 헌종이 촉 나라로 피난했다
그때 위험을 무릅쓰고 당 헌종을 호위하여 목숨을 구해냈다.
757년에 난이 평정되자 헌종이 황제의 姓인 李씨 성을 사성.
신라에 귀국하자 경덕왕이 소성백 작위와 식읍 1,500호를 봉.
허씨에서 이씨가 된 이허기(李許奇)를 득성조(得姓祖)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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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하구의 여수, 낙동강 하구의 부산, 한강 하구의 인천.
가락국 옛 영역인 곳은 대부분 해상무역 및 육로의 상권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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