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사찰순례 및 문화유적 답사기.원산 명적사 방문(2)
글/ 정진옥
명적사 대웅전
명적사 부도비
제4일 (2016년 9월 2일, 금요일)
반룡산(명적사),원산(송도원해수욕장),설봉산(석왕사),금강산(호텔)
금강산을 가는 날이다. 원산까지 199km의 시멘트로 포장된 왕복 2차선정도의 폭이 될 도로를 달린다.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서인지 차선의 구분이 없다. 도로면 전체에 걸쳐 필요한 노면을 순간 순간 골라가며 달린다. 연일 내리는 비로 도로가 요 며칠사이에 많이 훼손되었을 것 같다. 운전이 쉽지 않아 보이는 길을 이철진 운전기사는 요리조리 패인 구덩이를 피해가며 달린다. 도로보수공사를 하는 군중들이 간간이 이어진다. 기계식 장비보다는 주로 인력으로 공사를 한다.
도로밖으로는 푸르고 평화로운 산야가 계속된다. 농경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인지 밭뚝이나 논뚝으로 토지를 잘게 구획하지 않기에 들녁의 미관이 매우 단순하고 깨끗하다. 옥수수밭이 많다. 북한측 동행인에 주식이 뭐냐 물으니 감자와 옥수수란다. 먹기에 좋도록 쌀같은 형태로 가공하여 먹기도 한단다. 북녁동포들의 식생활이 빨리 나아지기를 염원한다. 도로변으로는 함초롬히 비에 젖어 꽃을 피우고 있는 코스모스가 끝없이 이어진다. 산천은 그대로 아름답다.
도로에서 우리가 탄 차와 지나치는 차는 아주 드물다. 가끔은 큰 트럭이 지나는데 무개 적재칸에 20명은 되어보이는 남녀노소 주민들이 선채로 가득 타고있는 모습을 여러번 본다. 차림은 다소 남루해도 표정들이 밝다. 도로보수에 동원된 인력인지, 아니면 노선버스 대신 비공식으로 주민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옛날, 내 가난한, 그러나 인정이 넘치던 그 어릴적에 있던 따숩고 정겨운 광경이다. 지금의 미국이나 한국같으면 교통안전 법규위반으로 대번에 문제가 될 일이다.
원산에 이미 도착한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가야 하는지 잘 모르는 지점에서, 김형근단장의 집념으로 마식령도로로 들어서고 신성저수지라는 곳을 지나서 명적사라는 절을 찾아간다.
이 지역의 당 간부라는 50대 중반일 남자분이 현지 안내원격으로 차에 동승한다. 이목구비도 좋지만 겸손과 정직을 갖춘 분으로 느껴진다. 시골길에 접어 들면서 흐르는 큰 냇물이 앞을 막아 차량통과가 불가능하다. 다들 차에서 내려 돌 징검다리를 건넌다. 큰 냇물이 또 나온다. 연일 비가 내리고 있어서인지 비교적 평평한 지형인 이 산골마을에는 여기 저기 시냇물의 흐름이 풍성하다. ‘춘수만사택 하운다기봉’이라는 시의 정경이 바로 이 아닌가 싶다. 산골마을의 주택들이 저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 띠엄 띠엄 떨어져 있다. 빼어나게 수려하진 않지만 고향마을 같은 소박한 자연환경이 좋기만 하다.
5분여 시골길을 걸어가니, 냇물을 건너는 나무다리가 있다. 통나무를 얼기설기 놓아 만든 아주 소박한 토속적인 다리이다. 길이가 10 m 쯤이고 폭은 1 m 남짓이며 물에서 다리까지의 높이는 2 m 내외이다. 다리 중간에 나무기둥을 세웠다. 동네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건너다니는 실제의 살아 숨쉬고 있는 다리이다. 50년전쯤의 고향마을에 들어가는 듯한 감회가 밀려온다.
북한여행은 어쩌면 시간여행인지도 모르겠다. 별나고 생경한 곳이 아닌 낯익은 나의 옛 고향땅을 방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앉아 채소를 다듬고 있는 노파를 지난다. 검게 타고 쪼글한 얼굴에 어색하게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그 모습이 바로 어릴적 내 할머님의 모습 그대로이다. 동네 길변에 있는 생나무 울타리에는 노랗게 큼직한 꽃들을 피우고 있는 호박덩굴들이 뻗어 올라가 있다.
대략 30여분을 걸으니 길 오른쪽으로 명적사 스님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셨을 부도비가 모여있는 곳에 이른다. 북한의 불교문화유적에 각별한 관심을 지닌 것이 한 눈에 느껴지는 김형근단장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마침내 올 수 있었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이다. 북한인이 아닌 사람으로는 우리가 첫걸음이란다. 7기의 부도탑이 횡으로 벌려있다. 4기는 둥그스럼한 단지형이고, 3기는 평면비석의 형태이다. 왼쪽에서 4번째의 비석에는 ‘대조계종 학곡당 대선사탑’이라는 우아하고 정제된 해서체의 탑문이 선명하다. 다시 5분여를 나아가니, 명적사 입구가 나온다.
명적사는 강원도 원산시 영삼리에서 북으로 2km거리의 반룡산 중턱에 있는 불교사찰이다. 정면으로 대웅전이 있고 오른쪽으로 극락전이 있다. 고구려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왕조 중기에 중건되었다는 이 절은 북한의 국보 제105호이다. 절 마당 한쪽에는 가지가 땅에 닿을 정도로 무겁게 푸른감을 주렁주렁 달고있는 큰 감나무가 있어 정겹다. 구경을 나온 주민들 몇이 우리를 지켜본다.
대웅전의 단청이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특히 대웅전의 앞문 10개의 창살문양이 둥근 꽃모양을 중심으로 하는 무늬라서 사찰건물의 창살장식으로는 매우 독특하다. 예전에 집에서 흰떡에 일정한 문양을 찍어내던 그 떡살의 무늬도 연상된다. 어쨌거나 그 조각술의 정교함과 채색의 화려함이 감탄을 자아낸다. 대웅전 내부의 단청은 보존상태가 좋아서 화려한 색상과 정교한 문양을 원래대로 잘 간직하고 있으나, 외부의 단청은 많이 퇴색되어 있어 안쓰럽다.
참, 이 명적사의 대웅전 내부에는 불상이 없다. 텅 비어있다. 상주하는 스님도 없다.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 한 사람이 관리인이어서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하는데, 순박한 농민으로 보인다. 사찰 주변에 있는 일정한 토지를 자경하여 그 소출로 생활토록 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의 방문에 즈음하여 사찰주위를 깨끗이 정리한 노고의 자취가 여기 저기 완연하다. 경전이나 예불 또는 화두가 아니더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손님을 맞으려는 그 낮춤의 마음이 더욱 확실한 보살이나 부처의 마음일 것으로 느껴진다.
대웅전을 향하여 밖에 선 채 김형근단장이 치는 목탁소리에 맞추어 반야바라밀다심경 독송으로 간소하게 예불을 올린다.
명적사를 나온지 약 70여분만에 어느 해변에 도착한다. 원산의 송도원해수욕장이다. 저쪽 건너편으로 백사장이 보인다. 제 철이 아닌 백사장에 사람들은 거의 없고 자전거를 타고 길을 지나는 한 무리의 남자들을 만난다.
송도원식당이라는 간판이 있는 2층 건물에서 점심을 먹는다. 흑도미 매운탕이다. 맛이 있다. 특히 명란젖도 내 구미에 잘 맞는다. 농부일시 분명한 남자가 한가롭게 소달구지를 타고 지나간다. 웃으며 지나가는 아이들과 여인들이 있다.
원산시내에는 그래도 차량의 통행이 적지 않은데, 보행자 우선이 아니라 완전한 차량 우선의 교통흐름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탄 차가 길을 건너는 행인을 치는 것이 아닌지 깜짝 깜짝 놀라는 일이 빈번하다.
주택 외부에 페인트칠을 하는 남자가 있다. 북한은 1970년대에 시골의 모든 주택지붕을 기와로 교체했다고 한다.
명사십리해수욕장을 찾아서 차가 동해의 해변길을 따라 달린다. 어느 군 초소에 이른다. 동승한 해동측 요원이 초소에 다가가서 뭔가 얘기를 나눈다. 바로 저 앞쪽이 명사십리라는데, 차는 지나가지 못하고 시간만 지나간다. 얘기가 복잡한가 보다. 몇군데에 전화를 거는 동정이다. 그러나 결국은 통과불허다. 목하, 여기서 가까운 동해상에서 대규모로 실시되고 있는 한미합동 군사훈련으로 북한군이 초비상 상황하에 있기 때문이란다.
다음 행선지는 강원도 고산군 설봉산 기슭에 있다는 석왕사이다. 석왕사 입구에 도착하니 역시 출입통제 게이트가 있고 근무자가 있다. 통과허용 여부로 다시 지체된다. 단원들이 차에서 내려 주변을 거닐며 기다린다. 다행히 약 30여분만에 출입이 허락된다.
빨간 한복차림의 중년여성이 해설강사로 우리를 맞아 안내한다. 조선의 시조인 이성계가 젊었을 때 이곳 석왕사 인근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꿈 속에서 서까래 3개를 짊어졌다. 꿈에서 깨어나 한 고승에게 해몽을 부탁하니, 서까래 3개를 등에 진 모습은 임금 왕(王)자를 상징한다며, 왕이 될 예시라고 풀었다. 이 고승이 지금의 석왕사 자리의 토굴에서 수도하고 있던 무학이었다. 이성계는 왕이 된 뒤 이곳에 절을 짓고 임금이 될 것으로 해몽을 한 곳이라 하여 석왕사라고 이름하였다.
조선의 시조와 관련된 절이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건물 53동이 세워지는 등 대규모 사찰로서 번성했으나 6.25전쟁때 대부분 소실 파괴되고, 지금은 단 4개의 작은 부속 건물만 남아있다.
입구를 들어가면 개천을 건너는 교량역할을 겸하는 불이문이 먼저 나오고 일주문 성격의 조계문이 그 다음이다. 다시 멋드러진 2층 누각형식의 설성동루에 이어 호지문이 나온다. 모든 건물들이 대단히 아름답다. 호지문을 지나면 대웅전을 신축하고 있는 공사현장이 있다. 시멘트로 된 기본 골격이 거의 잡혀져 있다. 경내의 수목들 역시 대단히 아름다운데, 특히 이곳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소실되기 전에 찍은 석왕사의 사진을 보니, 참으로 숱한 건물들이 놀라울만큼 즐비하여 어엿한 한 마을이 연상되는 규모이다.
이어서 석왕사의 부도탑들을 둘러보고 나서 이제 바야흐로 우리의 차는 그립고 그리운 우리조국 우리겨레의 자랑인 금강산을 향해, 비가 내림을 개의치 않고 서둘러 달려간다. 아니 기실은 금강산이라는 민족의 Black Hole에 우리가 탄 차가 지금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금강산 가족호텔
드디어 금강산지구에 도착한다. 비가 계속 내리는 가운데 장전항 또는 고성항이라는 둥그스럼한 만에 접해 있는 ‘금강산 가족호텔’에 여장을 내린다. 그리높지 않은 3층짜리 건물인데, 4동의 독립된 건물이 연이어 길게 늘어서 있다. 세련된 색감이나 건물디자인 또 정교하고 기품있는 실내마감, 경사진 지형을 따라 환경친화형으로 보기좋게 배치되어 있다. 혹시 남한 국민들의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했었던 ‘현대그룹’에서 지은 시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호텔 앞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코스모스가 꽃을 피우고 있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에 젖으며 투명한 보석같은 물방울들을 아롱아롱 매달고 있는 가녀린 줄기의 꽃송이들이 너무도 예쁘다. 울긋불긋 하늘하늘한 이 코스모스들이 이내 늙은 나를, 옛 고향으로, 또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던’ 그 어린시절로 데려다 준다. 드리운 구름이 짙어 금강의 자태는 잘 보이지 않으나, 이 산의 정기를 두루 받으며 피어났을 이 붉은 꽃송이 하나로도 마냥 행복하다.
서울에 갔을 때 딸아이가 남한에서 자유로이 쓸 수 있도록 내게 준 현금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방문을 마치면 다시 한국에 들릴거라서 지갑에 넣어 두었는데, 여기 저기를 두루 찾아봐도 마찬가지다. 분실한 것 같다. 누군가가 습득하여 사용하면 피해가 클터이니 서울에 알려서 분실처리토록 해야겠다. 호텔에 국제전화를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있다. 그런데 서울은 서비스가 안된단다. 결국 LA의 아들과 통화를 하여 서울로 연락토록 당부한다. 이곳에서 불과 지척의 거리이며, 반만년 겨레인 남한과는 전화가 안되고, 태평양을 격한 엄청난 거리의 적대적 국가인 미국과는 통화가 된다는 이 이상한 두 조국의 현실이 참으로 부끄럽고 애석하다. 요금 $22에 $5을 덤으로 건넨다.
제5일 ( 2016년 9월 3일, 토요일 ) :
외금강(구룡연 계곡), 해금강(해만물상, 삼일포)
구름이 짙고 비가 내리는, 그러나 마냥 설레는 마음의 금강산의 아침이다. 차를 타고 12층의 우아한 건물인 외금강호텔로 간다. 김금순이라는 27세의 여성 해설강사를 차에 태운다. 김형근단장과는 구면이라 서로 아주 반가워 한다. 김단장의 특별한 요청으로 원래의 계획을 변경, 이틀동안 우리의 금강산 유람을 안내하게 되었단다. 딸처럼 손녀처럼 어린 상냥하고 예쁜 처자다.
금강산은 보통 크게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의 3개 지구로 구분하여 관광을 한단다. 첫날인 오늘은 외금강 해금강을 보고, 둘째날이자 마지막날인 내일은 내금강을 본다고. 대체로 주마간산의 바쁜 탐방이 계획되었을 것인데, 비가 내리는 데다, 또 고령인 우리들의 보행을 감안하면, 당연히 여러면에서 아쉬움이 남을 탐방이 될게 분명하다고 하겠다.
외금강호텔을 떠나 외금강으로 가는 길에 아주 대형 한옥양식의 건물이 보인다. 묘향산에서 본 국제친선관람관을 닮은 성처럼 웅장한 건물이다. 일본의 오오사카성과 유사한 느낌도 드는 그런 건물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스쳐지나는 산봉우리들 중에 바위덩이로만 이루어진 암봉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20여분만에 ‘구룡연등산로’안내판이 있는 목란관주차장에 도착한다. 외금강지구의 구룡연계곡의 탐방출발점이다. 안내도에 따르면 이곳에서부터 2,770m가 되는 지점인 은사류에서 구룡폭포쪽과 상팔담쪽으로 길이 갈라지는데, 상팔담이 또한 절경이지만, 그 쪽은 원래 길이 가파른데다 비가 내려 미끌어져 다칠 염려가 있어서, 우리는 구룡폭포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일정이란다. 왕복 6,000m의 행정이 된다.
다들 우산을 펼쳐 든다. 나는 카메라를 비에 젖지 않게 품안에 잘 간수하면서 수시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려면 두 손이 자유로워야 하겠기에 우산이 아닌 등산용 우의를 입는다. 실제로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Miller보살님이 그때 그때 우산을 받혀주곤 하셨다.
잘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계곡으로 들어선다. 요즘 며칠동안에 꽤많은 비가 내렸었고 또 지금도 내리고 있기 때문인지, 크고 작은 미끈한 바위들을 감싸듯 휘감으며 흐르는 계곡물의 기세가, 고삐풀린 야생의 말처럼 무척 괄괄하다.
멋진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송림사이로, 100m쯤의 앞쪽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붉은 색의 다리를 건너서, 하얀 건물의 일부가 어렴풋하게 나타난다. 건물의 뒤로는 운무에 싸여 보일듯 말듯한 기암봉들의 자태가 희미하게 드러나 마치 한폭의 수묵화같은 아름다운 경개를 드리운다.
계곡물이 흐르는 왼쪽의 하상에 있는 큰 바위에 한글로 ‘오선암’이라 선명히 새겨져 있다. 옛날 옛적에 5명의 신선이 내려와 풍악을 즐기며 노닐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언젠가 큰 물이 나서 바위가 뒤집혔고 그런 연유로 지금은 바위의 윗면이 평평하지는 않다.
이제 겨우 구룡연계곡의 초입인데 주위를 둘러보는 단원들이 말 그대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렇잖아도 고금을 통해 풍류 시인묵객들은 물론 우리 온 배달겨레 전체로 부터 찬탄과 동경의 대상이 되어온 절경의 금강일진대, 절세의 가인이 얇은 망사로 몸을 살풋 가리듯, 지금 계곡과 연봉들이 얇은 운무를 두르고 있어, 더욱 더 유현한 비경의 금강을 보고 있는 것이니 만큼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도 하겠다.
봉우리 곳곳을 적시며 흘러 내려온 빗물들은, 나뭇닢에서 초록물이 살짝 든 것인지, 투명하다 못해 푸른빛으로 보이는데, 이젠 다시 계곡을 샅샅이 훑으며 흘러 내린다. 때로 몸을 잔뜩 낮춘 너럭바위를 만나면, 잘 순치된 말처럼 차분하게 흐른다. 비단필처럼 부드럽게 펴지며 흐른다. 때론 고개를 높게 쳐든 큰 바위와 맞닥뜨리면, 갓 포획된 야생의 말처럼 포효하며 뛰닫고 또 흩뿌려진 구슬처럼 산산히 쏟아지며 흐른다. 이렇게 저렇게 변화무쌍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쉬지 않고 구룡의 계곡을 흘러 내린다. 겨레의 명산, 금강에서 오늘에 보는 이 아름다움은 억년의 쉼없는 조탁의 손길로 빚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억년은 계속되어질 미완의 무상한 아름다움임을 깨닫는다.
다리를 건너 목란관에 이른다. 목란이란 모란이 아니고 목련의 동의어임을 나중에 알게 된다. 계곡을 따라 운치있게, 계곡의 아름다움이 잘 보이도록 길쭉하게 지어놓은 꽤 큰 레스토랑이다.
구룡폭포 등반 후 목란관에서 점심식사
이곳을 지나면 수림대라 부르는 구간이 나오는데, 이 산에 서식하고 있다는 소나무 단풍나무 박달나무 참나무 엄나무 산죽 등이 특별히 더욱 우거진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나 싶다.
외금강의 계곡과 봉우리의 빼어난 아름다움에 운우의 유현한 신비감이 더욱 조화를 이루고 있는 승경을 둘러보며, 푸르른 숲속으로 나있는 정갈한 산길을, 바윗돌 계단의 오름길을, 비에 젖고 구름에 젖어드는 잘 포장된 길을 가노라니, 이 길이야 말로 바로 인간계를 벗어나 천상계로 이어지는 길이고, 학발의 우리 단원들은 바로 이 선계를 노니는 신선 선녀가 아닐 것인가 상상케 된다.
앙지대에 이르른다. 걸음을 멈추고 이곳 경관을 우러러 봐야하는 곳이라는 의미같다. 코끼리 거북이 토끼 도마뱀 등을 닮은 바위들을 볼 수 있다.
큰 바위덩이의 몸통에서 그대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삼록수라 부르는 기묘한 약수터에 이른다. 이곳 금강산에 자생하는 산삼과 녹용성분이 이 물에 녹아들어 흐른다는 뜻으로 김일성주석이 이렇게 삼록수라 명명했다는 설명문이, 산삼과 사슴의 그림과 함께 바로 옆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이 물을 마시면 산삼과 녹용을 섭취하는 것 만큼이나 건강에 유익하리라는 의미의 작명이었을 것이라고 조금 다르게 이해해 본다. 바위 중간에서 물이 나오는데 그릇이 없어도 바위에 직접 입을 대고 흘러나오는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인위적인 조형물 - 여인의 젖가슴을 연상시킨다 - 을 바위에 부착했다. 기발한 착상이다. 그래서 더욱,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몇몇 북한주민들 뒤에서 순번을 기다려, ‘금강산표 천연삼록수’로 기필코 목을 축인다. 금강의 맛으로 뇌리에 저장한다.
목란관다리, 금수다리에 이은 오늘의 세번째인 교량인 만경다리를 건넌다. (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