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鄕愁 HOMESICKNESS
[고향(故鄕)에 대한 화자(話者)의 태도(態度)]
‘고향(故鄕)’과 ‘향수(鄕愁)’는 모두 고향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다룬 정지용의 작품이다. 하지만 ‘향수’가 과거의 고향에 대한 추억을 노래하며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데 반해, ‘고향’은 심리적(心理的) 거리감(距離感)이 조성되는 현실의 고향에서 느끼는 상실감(喪失感)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정서(情緖) 면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시인(詩人)이 국권(國權) 상실(喪失) 이전의 고향을 회상(回想)하며 지은 작품이 ‘향수(鄕愁)’이고, 나중에 고향(故鄕)의 현실적(現實的) 모습을 체험(體驗)하며 지은 작품이 ‘고향’이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지용 鄭芝溶과 생가生家 위치지도
The house where one(JungJiyong)'s was born
정지용 鄭芝溶
시인우 본관은 연일(延日).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신. 아명(兒名)은 태몽에서 유래된 지용(池龍)이고 세례명은 프란시스코[方濟角]이다. 가끔 ‘지용’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을 뿐이며, 여타의 아호(雅號)나 필명은 없다.
고향에서 초등 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서 중등 과정을 이수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한다.
귀국 후 곧바로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8·15광복과 함께 이화여자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옮겨 문학 강의와 라틴어를 강의하는 한편, 천주교 재단에서 창간한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역임하기도 했다.
6·25 때 납북된 뒤 행적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정지용이 1950년 9월경 경기도 동두천 부근에서 미군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소문이 있다
정지용 고향 충북 옥천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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