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南) 프랑스의 풍광(風光)
<4> 고흐다리(Gogh Bridge/Langlois)
로마 경기장 관광을 끝내고 언덕을 내려오면서 사람들에게 고흐다리(Gogh Bridge/Langlois)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는데 모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대체로 프랑스 사람들은 영국과의 껄끄러운 과거사(過去史) 때문인지 영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아예 못하는 사람이 많다. 영어를 제법 하는 젊은이한테 물어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네덜란드의 화가 고흐,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너 진짜 몰라??’ 했더니 ‘아, 방코브릿지? 한다.’
‘Van Gogh Bridge’를 프랑스 사람들은 ‘방코브릿지’라고 발음한다.
이 다리 이름이 고흐 작품명으로는 ‘랑글로아 다리(Pont de Langlois)’ 였다고 생각된다.
암튼, 가르쳐준 대로 1번 시내버스를 타고 10분쯤 갔는데 버스 종점인 모양으로 기사가 모두 내리라고 한다.
버스 기사에게 방코브릿지가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저~기로 10분쯤 걸어가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버스에서 함께 내리던 수다쟁이 프랑스 아주머니가 자기를 따라오라더니 조금 가서 벌판을 손가락질하며 저기 벌판이 끝나는 곳,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데까지 가서 왼쪽으로 가면 론강이 나오고 거기에 방코브릿지가 있다고 한다.
<5> 고흐 도개교(Pont de Langlois)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고흐 도개교(跳開橋) / 고흐 그림 ‘랑글로아 다리’ / 기념촬영
남프랑스 풍경은 모로코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기분이 상쾌하다.
아프리카 모로코(Morocco)는 가는 곳마다 메마른 황야로 황토색 일색이었는데 이곳은 이미 가을이 깊었건만, 온통 푸른 포도밭과 올리브밭, 그리고 소와 말, 당나귀와 양들이 뛰노는 넓은 목장이 이어져 풍요로움과 여유가 보인다.
그런데 그 유명한 고흐다리를 가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니??
10분 정도 걸어가 갈랫길에서 왼쪽으로... 한참을 가도 강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가서 모퉁이를 돌자 저쪽 편에 나무로 만든 엉성한 다리 모양이 언뜻 보인다.
다가가면서 보니 바로 그 고흐다리(Gogh Bridge) 였다!!!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을 빨리하여 다가가 보니...
쓸쓸히 무성한 잡초 덤불, 인적 없는 좁은 수로, 사람이 살지도 않는 폐가 옆에 엉성한(?) 고흐의 도개교(跳開橋)가 하늘을 향해 쓸쓸히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고흐다리(Pont de Langlois)가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못 받고 버려져 있는듯하여 서글퍼지는 마음을 가눌 수 없다.
<6> 네덜란드의 천재 화가 고흐(Gogh)
네덜란드의 천재 화가 고흐(Vincent van Gogh)는 살아생전에는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한 무명화가였다.
오직 그림 밖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 고흐는 미술상이던 동생 테오(Theo)의 보살핌 속에 생활했다고 한다. 생전에 1,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팔린 그림은 단 1점.
그것도 미술상이었던 동생 테오가 400프랑(우리 돈 15만 원 정도)에 사 준 그림 ‘포도밭’ 1점뿐이었다고 한다.
정신질환이 있었던 고흐는 말년에 이곳 아를로 와서 창작 활동을 하는데 화가 고갱(Paul Gauguin)을 불러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등 정신병이 심해지자 고갱도 떠나고 곧이어 동생 테오가 병원으로 옮기지만 1890년 파리 근교 오베르(Auvers)에서 권총 자살로 37년의 생을 마감한다.
형과 특히 사이가 좋았던 동생 테오도 형 고흐 사망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6개월 뒤 34세로 세상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