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2021년 강원사학회의 첫 학술대회를 강원대학교 국학연구소와 공동으로 개최하게 되어 기쁩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눈의 귀중함을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몸’을 ‘역사’로 바꾸면 ‘눈’은 ‘사료’가 될 정도로 사료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사료가 없이는 역사가 성립되지 않으며, 사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역사에 대한 이해도 불가능하고, 사료에 대한 이해 능력이 곧 역사 이해 능력의 기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도 다듬고 정리하여 쓸모 있게 만들어 놓아야 값어치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말은 사료와 역사서술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구슬이 없으면 보배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슬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듯이, 사료는 역사학과 역사서술의 핵심중의 핵심입니다. 구슬은 꿰지 않아도 그 자체로서 귀중하듯이 사료 역시 그러합니다.
오늘은 바로 그 ‘눈’이 되고 ‘구슬’이 되는 사료를 발굴하고 정리하고 분석한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사료를 발굴하고 분석하고, 이를 기초로 보배를 만드는 우리들이 스스로의 연구 활동과 성과에 대하여 되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21세기는 ‘인공지능시대’입니다. 오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비게이션이 말하는 대로 운전하고 인공지능이 정리해준 뉴스를 읽고 인공지능이 가리키는 곳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점차 각종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고 노동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고, 우리는 하나 둘 인공지능에게 의사결정을 맡기면서 몸도 새로운 변화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아직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손에 있는 스마트폰과 각종 플랫폼이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듯이, 오랫동안 인간이 만들어온 역사, 가치, 질서나 생산력과 생산관계도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 수 없고, 개인이나 집단, 지역사회나 국가도 새롭게 재편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학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역사의 주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고 연구의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이고 연구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빅데이터, 영상 및 음성 자료, 인공지능이 생산하는 자료는 전통적 역사관과 연구방법으로 처리하기 쉽지 않게 되었고, 의사결정 과정을 복기하거나 분석하기 어려운 인공지능의 의사결정들도 앞으로는 역사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은 역사학에 새로운 길을 열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류는 역사학을 통해 지속적으로 과거를 재구성하고 미래를 만들어왔고, ‘인공지능시대’ 역시 그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통적 역사학의 패러다임 교체를 요구하면서도 역사학의 기본적 활동인 사료를 발굴하고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 역시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유사이래 그 어느 시기보다 근거, 믿음의 원천, 신용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국가권력과 같은 전통적 권위를 넘어선 ‘블록체인’이란 새로운 신용 담보 체계가 등장한 것이 그 일례입니다.
역사학은 인간학이고 미래학입니다. 우리가 발굴하고 분석하는 사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고, 사람과 기계와 자연을 연결하고, 소우주와 대우주를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이 자리가 우리의 연구를 심화시키고, 강원지역 역사연구를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시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원지역의 특수성과 다원성, 각종 집단과 사회의 다양성, 그리고 이곳에서 살았고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든 소우주의 생동감과 그 개별성을 고민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오늘 학술대회에서 귀한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과 사회를 맡아주신 선생님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대회를 준비해주신 관계자 여러분들, 그리고 후원해주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께 학회를 대표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1. 3. 19.
강원사학회 회장 원정식